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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는 제가 화를 안 내는 사람으로 통해요.”
“그런데 집에서는 아이가 똑같은 말을 두 번만 해도 목소리가 확 올라갑니다.”
“화를 내고 나면 미안해서 죽겠어요. 그런데 그 순간에는 제가 왜 그러는지도 모르겠어요.”
반대의 이야기를 하는 분도 있습니다.
“저는 화를 잘 안 내요.”
“억울해도 그냥 넘어가는 편이에요.”
“그런데 몇 년 전부터 목이 자꾸 막히는 것 같고, 명치가 답답하고, 갑자기 얼굴에 열이 올라와요.”
한쪽은 너무 많이 참는 것 같고, 다른 쪽은 너무 쉽게 터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들여다보면 두 모습 사이에 공통점이 보이기도 합니다.
화가 생긴 바로 그 순간, 그 감정을 제대로 느끼고 표현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화를 안 내는 사람에게도 화는 남을 수 있습니다
화가 나면 우리는 보통 소리를 지르거나 얼굴을 붉히는 모습을 떠올립니다. 그래서 평생 싸움 한 번 제대로 하지 않은 사람은 자신에게 화가 많이 쌓여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나는 원래 잘 참는 성격이에요.”
“웬만한 일은 그냥 넘겨요.”
하지만 참았다고 해서 감정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부당한 말을 들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억울했지만 분위기가 깨질까 봐 웃었습니다. 가족을 생각해 또 한 번 넘어갔고, 직장에서는 싫다는 말을 못 한 채 일을 받아왔습니다.
한두 번은 괜찮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오랫동안 반복되면 마음에서 끝나지 않은 감정이 몸의 긴장과 함께 남기도 합니다. 목에 무엇이 걸린 것 같고, 명치가 꽉 막힌 듯 답답합니다. 얼굴이나 가슴으로 열이 확 올라오기도 합니다. 병원에서는 특별한 이상이 없다고 하는데 몸은 계속 불편합니다. 이런 모습 때문에 화병을 떠올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화를 얼마나 많이 냈느냐”가 아니라 “화를 얼마나 오래 삼켜 왔느냐”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참던 사람이 갑자기 폭발할까요?
“저는 원래 화가 많은 사람이 아니었어요.”
분노 때문에 상담을 받는 분들 가운데도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실제로 밖에서는 잘 참습니다. 직장에서 싫은 소리를 들어도 넘어가고, 친구가 약속을 어겨도 괜찮다고 합니다. 부탁받은 일을 거절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후배의 말투 하나, 배우자의 한마디, 아이가 흘린 국그릇 하나에 갑자기 폭발합니다.
본인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게 그렇게 화낼 일이었나?”
눈앞의 일만 놓고 보면 그렇게까지 화낼 일은 아니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날의 한마디가 화를 전부 만든 것이 아니라, 이미 안에 남아 있던 감정을 건드린 것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겨울에 카펫 위를 걷다가 문손잡이를 잡았을 때 정전기가 튀는 것과 비슷합니다. 문손잡이가 전기를 모두 만든 것은 아닙니다. 걸어오는 동안 쌓인 전기가 마지막 접촉에서 한꺼번에 나온 것입니다.
분노도 비슷할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참고 넘긴 감정이 있다면 누군가의 말투나 표정 같은 작은 신호가 마지막 손잡이가 될 수 있습니다.
유독 어떤 말에만 크게 화가 난다면
화를 많이 낸다고 해서 모두 같은 문제는 아닙니다. 평소에도 기다리는 것을 힘들어하고 여러 상황에서 두루 조급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른 일은 잘 넘기면서 특정한 종류의 말만 들으면 유난히 크게 화가 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말입니다.
“그런 적 없는데요?”
“잘못 알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럴 수도 있죠.”
다른 사람에게는 별뜻 없는 말인데, 어떤 사람에게는 “네 말을 믿지 않는다”, “네가 틀렸다”, “네가 또 억울한 일을 당했다”는 뜻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화의 크기는 지금 들은 한 문장보다 훨씬 커집니다. 현재의 일만 건드린 것이 아니라 과거부터 익숙했던 억울함이나 무시당한 느낌까지 함께 올라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최근 크게 화냈던 장면 몇 개를 떠올려 보면 도움이 됩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만 보지 말고, 화가 확 올라오기 직전에 상대가 어떤 말이나 표정을 보였는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사건은 달라도 비슷한 신호가 반복되고 있다면 그것이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습니다.
“화를 내기 전에 참으면 되잖아요”가 어려운 이유
화를 조절하기 위해 숫자를 세거나, 심호흡을 하거나, 물을 마시거나, 잠시 자리를 피하는 방법은 실제로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런 방법을 쓰려면 한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지금 내 안에서 화가 올라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에게는 그 시간이 거의 없습니다.
“하나, 둘까지 세었어요. 그런데 셋을 세기도 전에 이미 소리를 지르고 있더라고요.”
말을 듣습니다. 귀가 뜨거워집니다. 턱에 힘이 들어갑니다. 목소리가 먼저 높아집니다. 그리고 나서야 ‘내가 또 화를 냈구나’ 하고 알아차립니다. 이런 분들은 흔히 “제 화는 0에서 100으로 바로 올라가요”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자세히 되짚어 보면 그 직전부터 몸에서 작은 변화가 나타난 경우가 있습니다. 말수가 줄고, 어금니를 물고, 목덜미가 뜨거워지거나 손에 힘이 들어갑니다.
비가 내릴 때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어떤 사람은 첫 빗방울이 팔에 떨어질 때 우산을 폅니다. 어떤 사람은 옷이 흠뻑 젖고 나서야 비가 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비가 그 순간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처음 몇 방울을 느끼지 못했던 것입니다.
분노도 그럴 수 있습니다. 화를 잘 내는 사람과 화를 잘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정반대처럼 보이지만, 평소에는 화를 너무 빨리 눌러 알아차리지 못하다가 한계에 이른 뒤 크게 폭발하면서 비로소 자기 화를 알게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단순히 참는 힘을 더 키우는 것만으로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왜 밖에서는 참는데 집에서 터질까요?
이 문제 때문에 가장 괴로운 분들이 있습니다. 직장에서는 친절하고 친구에게도 웬만하면 맞춰 줍니다. 그런데 집에 들어오면 남편이 컵을 내려놓는 소리, 아내의 질문, 아이가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 놓은 것 같은 작은 일에 짜증이 납니다.
그러고 나면 더 괴롭습니다.
“왜 내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한테 이러지?”
눈앞의 작은 일이 화의 전부였다면 상황이 끝난 뒤 감정의 강도도 함께 낮아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컵 소리가 멈추고 아이가 방으로 들어간 뒤에도 화가 오래 남거나 오히려 더 답답해진다면, 이전부터 남아 있던 감정이 함께 올라온 것은 아닌지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원래 대상에게 표현하지 못한 감정이 다른 대상에게 향하는 현상을 전치라고 합니다. 쉽게 말하면 화가 난 곳과 화를 낸 곳이 다른 것입니다.
회사에서는 불이익이 걱정돼 참았습니다. 나를 챙겨 준 사람에게 화를 내는 것은 나쁜 일 같아 또 참았습니다. 나보다 강하게 느껴지는 사람 앞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면 가장 안전하고 편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작은 일이 생기자 그동안 눌러 두었던 감정이 함께 나옵니다.
그래서 집에서 터지는 화를 이해하려면 마지막에 컵을 내려놓은 사람만 봐서는 부족할 수 있습니다. 그날 하루 동안 어디에서 화가 났고, 어디에서 그것을 삼켰는지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소한 일에 짜증 날 때, 정말 그 일 때문에 화가 났을까
후회하는데도 왜 같은 일이 반복될까요?
화를 내고 난 뒤 누구보다 괴로운 사람은 본인일 때가 많습니다. 아이 방문 앞에 서서 한참 들어가지 못하고, 직장 동료에게 미안해 다음 날 커피를 사 줍니다. 배우자에게는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합니다.
그 약속은 거짓말이 아닙니다. 진심으로 후회합니다. 그런데 또 반복됩니다. 이 때문에 결국 “나는 원래 성격이 나쁜가 보다”, “의지가 약한가 보다”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후회와 다짐은 일이 끝난 다음에 일어납니다. 반면 분노의 반응은 그보다 먼저 시작됩니다.
그래서 반복되는 분노를 이해하려면 마지막에 나온 고함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직전의 순서를 살펴봐야 합니다. 무슨 말을 들었는지, 몸 어디에서 먼저 변화가 나타났는지, 어떤 감정이 함께 올라왔는지, 비슷한 상황에서 늘 상대의 말을 어떤 뜻으로 받아들이는지를 되짚어 보는 것입니다. 이런 반복을 찾기 시작하면 단순히 “화를 참지 못했다”는 설명보다 훨씬 많은 것이 보일 수 있습니다.
분노만의 문제가 아니라 ‘충동’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안에서 무언가 차오를 때 그것을 빨리 없애는 방식이 몸에 익으면, 그 반응이 꼭 고함이나 짜증으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해 버리거나, 살 생각이 없던 물건을 충동적으로 결제합니다. 무언가를 하고 나면 순간적으로 속이 시원해지고, 몇 초 뒤 후회합니다.
이런 경우 중요한 것은 “왜 그것을 사고 싶었을까?”, “왜 그런 말을 하고 싶었을까?”만이 아닙니다. 그 행동 직전에 무엇이 견디기 어려웠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가슴의 답답함이나 손끝의 저릿함처럼 안에서 올라오는 불편함을 빨리 없애기 위해 어떤 행동이 반복되었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보다 행동이 먼저 나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행동만 막았더니 다른 충동이 늘어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행동마다 따로 싸우기보다 여러 행동 앞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감정과 몸의 신호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화를 없애야 할까요?
화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닙니다.
부당한 일을 당하면 화가 날 수 있습니다. 무례한 말을 들으면 불쾌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이 계속 나에게 넘어오면 싫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 선을 넘으면 멈춰 달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필요한 것은 화가 전혀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화를 느끼지 못할 만큼 눌러 두지도 않고,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쌓인 뒤 폭발하지도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화가 올라오는 것을 조금 더 일찍 알아차리고,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알고,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말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일이 지나간 뒤에는 감정도 함께 내려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면 매번 이를 악물고 참아야 하는 상황도 줄어들 수 있습니다.
마음먹어도 반복된다면 무엇을 살펴볼까요?
어른이 된 우리는 압니다. 누군가 내 말을 믿지 않는다고 해서 큰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고, 화를 느낀다고 해서 나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실제 상황이 오면 생각보다 몸과 감정이 먼저 움직일 때가 있습니다.
오랫동안 “억울해도 참는 게 낫다”, “말해 봐야 소용없다”, “화를 내면 더 나빠진다”, “내 감정보다 다른 사람의 기분을 먼저 봐야 한다” 같은 반응이 반복되었다면, 나중에는 의식적으로 선택하지 않아도 익숙한 방식이 먼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체인지 심리최면상담센터에서는 지금 반복되는 분노의 패턴과 함께 나타나는 감정·신체반응을 살펴보고, 그 반응과 연결된 오래된 경험과 감정을 함께 다룹니다. 중요한 것은 과거의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때 익숙해진 반응이 지금의 생활에서도 계속 반복되고 있는가입니다. 구체적으로 분노조절 최면상담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아래 글에서 다룹니다.
분노조절장애 치료는 어떻게 진행될까? 참았다가 터지는 분노를 다루는 체인지의 최면상담
화가 줄었다는 것은 무조건 조용해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분노 문제가 좋아졌다고 하면 아무 일에도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실제 변화는 조금 다르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전에는 아무 말 없이 일을 받아오던 사람이 “이건 제가 맡을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라고 차분히 말할 수 있습니다.
전에는 한마디를 듣자마자 목소리부터 높아졌던 사람이 “그 부분은 다시 확인해 주세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전에는 회사에서 참은 화를 집에 가져와 가족에게 쏟았다면, 이제는 필요한 곳에서 필요한 말을 하고 집에서는 평소처럼 저녁을 보낼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터지고 난 뒤에야 화가 났다는 것을 알았다면, 이제는 ‘아, 지금 귀가 뜨거워지는구나’, ‘턱에 힘이 들어가고 있네’ 하고 먼저 알아차릴 수도 있습니다.
화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화가 나를 끌고 가던 순서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돌아볼 수 있습니다
최근 가장 크게 화가 났던 순간을 하나 떠올려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장면만 보지 말고 그보다 조금 앞에서부터 되짚어 봅니다.
그날 처음 화가 난 곳은 정말 그곳이었습니까?
그전에 참고 넘어간 일은 없었습니까?
유독 마음에 박힌 말이나 표정은 없었습니까?
화가 터지기 전에 턱이나 목, 가슴, 손에는 아무 변화도 없었습니까?
상황이 끝난 뒤에도 화가 오래 남아 있지는 않았습니까?
그리고 이상하게도 가장 편한 사람에게만 화가 향하지는 않았습니까?
이 질문들 가운데 하나가 자꾸 마음에 걸린다면 문제를 단순히 “나는 왜 이렇게 화가 많을까?”라고만 볼 필요는 없습니다.
질문을 조금 바꿔 볼 수 있습니다.
“나는 언제부터 화를 느끼고 표현하는 대신, 참거나 터뜨리는 방식으로 반응하게 되었을까?”
화를 계속 삼키는 사람과 갑자기 터뜨리는 사람은 전혀 달라 보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같은 문제에서 갈라져 나온 서로 다른 모습일 수 있습니다.
느껴야 할 때 느끼지 못했고, 말해야 할 때 말하지 못했던 감정이 지금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
화병과 반복되는 분노를 이해하는 출발점은 바로 그곳에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