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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도 먹어 보고 상담도 받아 봤어요.
그때는 좀 괜찮다가도 몇 달 지나면 어김없이 또 그래요.
이젠 나아질 거란 말도 안 믿겨요."
여러 곳을 거쳐,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센터를 찾으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멀쩡히 지내다가도 갑자기 심장이 마구 뛰고 숨이 턱 막히며, 이러다 잘못되는 게 아닌가 싶은 공포가 덮칩니다.
응급실에서 아무리 검사를 받아도 돌아오는 말은 늘 정상이라는 것뿐입니다. 좋아졌다 싶으면 다시 무너지기를 몇 번이나 되풀이하는 사이, 발작 그 자체보다 '평생 이렇게 사는 건 아닐까' 하는 무력감이 더 깊이 내려앉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토록 애를 써서 좋아졌다가도 번번이 같은 자리로 돌아오는 걸까요.
그분의 절망은 뜻밖의 장면에 닿아 있었습니다
앞서 여러 방법을 거쳐 오셨던 그분과도, 바로 그 물음에서부터 상담을 시작했습니다. 발작이 찾아올 때마다 밀려오던 막막한 절망감, 그 느낌을 실마리 삼아 최면 속에서 천천히 따라 내려가자 한 장면에 가 닿았습니다. 공황과는 아무 상관도 없어 보이는, 아주 어린 날의 기억이었습니다.
말도 채 트이기 전, 혼자 남겨진 방에서 누군가 와 주기를 기다리며 울던 장면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목이 쉬도록 울었습니다. 그러나 와 주는 사람이 번번이 늦거나 끝내 오지 않자, 그 작은 아이는 어느 순간 울음을 뚝 그쳤습니다. '아무리 울어도, 아무리 기다려도 소용없다' — 기대가 거듭 어긋난 끝에 내려진 그 단념이, 어른이 된 뒤에도 마음 깊은 곳에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울다 그친 어린 기억이 공황과 무슨 상관일까 싶으실 겁니다. 여기에는 뇌가 위험을 다루는 방식이 얽혀 있습니다. 우리 뇌 깊은 곳에는 위험을 감지해 경보를 울리는 자리, 흔히 '편도체'라 불리는 곳이 있습니다. 이곳이 '이 느낌은 위험하다'고 한 번 새겨 두면, 그와 닮은 느낌이 올 때마다 사실인지 따지기도 전에 먼저 경보부터 울립니다. 공황발작 때 심장이 뛰고 숨이 가빠지는 것이 바로 그 경보입니다. 게다가 이 자리는 의식 아래에서 작동하는 터라, '괜찮아, 안전해'라고 머리로 아무리 타일러도 다짐만으로는 좀처럼 꺼지지 않습니다.
그때 뿐이었던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물론 그동안의 노력이 헛된 것은 아닙니다. 약은 예민해진 그 경보 장치를 가라앉혀 쉽게 울리지 않도록 도와주고, 그만큼 발작의 강도와 횟수를 줄여 주곤 합니다. 상담으로 마음을 들여다보고 명상이나 호흡으로 몸을 다독이는 것도 분명 힘이 됩니다. 다만 이 방법들이 주로 가 닿는 곳은 겉으로 드러난 증상과 의식의 생각입니다. 경보 장치가 애초에 왜 그토록 예민해졌는지, 그 까닭이 박힌 무의식의 자리는 손이 닿지 않은 채 남아 있기 쉽습니다.
마당의 잡초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습니다. 눈에 보이는 잎과 줄기를 아무리 잘라 내도, 땅속 뿌리가 살아 있으면 머지않아 다시 돋아납니다. 좋아졌다가도 스트레스가 쌓이거나 비슷한 상황이 닥치면 공황이 도로 돌아오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표면을 다듬는 동안에도 뿌리는 그 자리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셈입니다.
어른이 된 그분이 그 아이 곁으로 갔습니다
그래서 최면상담에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그 뿌리가 처음 내린 자리를 찾는 것입니다. 같은 '상담'이라도 대화로 생각을 짚어 가는 길과, 의식 아래 무의식으로 직접 내려가는 길은 닿는 깊이가 다릅니다. 그분도 그렇게 무의식 깊은 곳, 혼자 울던 그 아이에게로 내려갔습니다.
깊은 최면 속에서, 어른이 된 지금의 그분이 그 아이 곁에 다가가 앉았습니다. '이제는 내가 곁에 있어, 너를 두고 가지 않아'라고 가만히 다독여 주자, 울음을 삼킨 채 굳어 있던 아이의 어깨가 천천히 풀어졌다고 합니다. 수십 년 묵은 단념이 비로소 녹는 자리였습니다.
사실 그분을 가장 힘들게 한 것은 발작이 다시 찾아오는 일 그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좋아질 거라 기대를 걸었다가 무너질 때마다, 그 옛날 혼자 울던 아이의 단념이 고스란히 되살아나 '이번에도 어차피 안 될 것'이라고 속삭였습니다. 그 오래된 절망이 회복에 대한 믿음을 번번이 거두어 갔고, 그래서 좋아지다가도 자꾸 같은 자리로 되돌아왔던 것입니다. 도로 돌아온다는 회의감의 뿌리가, 정작 공황이 일어나는 상황이 아니라 전혀 다른 과거의 한순간에 닿아 있었던 셈입니다.
다시 무너지지 않은 두 번의 계절
그렇게 뿌리를 다루고 한참이 지난 어느 날, 그분이 담담하게 소식을 전해 왔습니다. 예전 같으면 좋아진 지 두어 달이면 어김없이 도로 무너졌을 텐데, 계절이 두 번 바뀌도록 그 자리로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고 말입니다. 정작 본인이 가장 놀란 것은 발작이 멈췄다는 사실보다, '이번에도 또 그럴 것'이라던 오래된 예감이 더는 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고 합니다.
좋아졌다 도로 돌아오기를 거듭하다 보면, 어느새 회복이라는 말조차 멀게만 느껴집니다. 하지만 자꾸 되돌아온다는 것은, 아직 풀리지 않은 원인이 그 자리에 남아 있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그 속사정을 혼자 힘으로 떠올리려 애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무엇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는, 상담 안에서 함께 천천히 더듬어 갈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