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멀쩡히 잘 있다가도 갑자기 심장이 터질 듯 뛰고 숨이 안 쉬어져요.
한 번 그러고 나면, 언제 또 그럴지 몰라 하루 종일 마음을 졸이게 돼요.
그 순간이 닥치면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나요.”
발작 그 자체도 두렵지만, 더 사람을 지치게 하는 건 ‘또 올까’ 하는 그다음의 불안입니다. 아무 일 없이 멀쩡한 순간에도 마음 한쪽은 늘 다음 발작을 기다리듯 곤두서 있고, 어디를 가든 ‘여기서 그러면 어쩌지’부터 떠오릅니다. 정작 발작이 오는 시간보다, 오지 않을 때조차 졸이며 보내는 시간이 훨씬 길어지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발작이 밀려오는 그 순간에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발작이 없을 때조차 마음을 놓지 못하는 이 불안은,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요.
그 순간을 넘기는 호흡
발작이 밀려올 때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숨을 천천히 고르되 들이쉬는 숨보다 내쉬는 숨을 길게 늘여 보는 것입니다. 가쁘게 차오르던 숨이 길고 느린 날숨을 따라 가라앉으면, 곤두섰던 몸도 한 박자 누그러집니다. 이때 ‘이건 실제로 위험한 게 아니라, 경보가 잘못 울린 것’이라고 가만히 되뇌면 한결 도움이 되지요. 다만 이런 대처는 그 순간의 고비를 넘기게 해 줄 뿐, 발작이 자꾸 되풀이되는 것이나 ‘또 올까’ 하는 불안까지 잠재워 주지는 못합니다.
경보를 거두지 못하는 편도체
그 까닭을 알려면, 발작이 왜 일어나는지부터 봐야 합니다. 우리 뇌 안쪽에는 위험을 살피는 ‘편도체’라는 기관이 있는데, 마치 지진 조기경보 장치처럼 작동합니다. 큰 흔들림을 한 번 겪고 나면, 그 뒤로는 아주 미세한 진동에도 미리부터 사이렌을 울려 대비시키지요. 발작이 한 번 크게 지나간 편도체도 꼭 그렇습니다. 별일 아닌 신호에도 ‘또 그게 오는 것 아니냐’며 앞당겨 경보를 울리는데, 이렇게 미리 켜진 경계가 바로 하루 종일 따라다니는 예기불안입니다.
게다가 편도체는 우리가 마음먹은 대로 다룰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의식 아래 무의식의 영역에서 움직입니다. 그래서 ‘이제 괜찮아, 안 올 거야’ 하고 아무리 다잡아도 그 경계 태세가 좀처럼 풀리지 않습니다.
어린 시절에 닿아 있는 긴장의 뿌리
그 경계가 어디서 비롯됐는지는 평소 의식으로는 닿지 않습니다. 그래서 최면상담에서는 그 무의식의 자리로 한 걸음씩 들어가, 편도체가 맨 처음 그렇게까지 곤두서게 된 때가 언제였는지를 짚어 봅니다. 발작 대처법을 찾아 헤매다 오신 어느 분과도, 바로 그 자리를 함께 더듬어 보았습니다.
발작 직전마다 솟구치던 그 조마조마함을 실마리 삼아 거슬러 가 보니, 발작과도 대처법과도 아무 상관 없어 보이는 아주 어린 시절의 한 장면에 닿았습니다. 아직 어른 무릎께밖에 오지 않던 무렵, 잔잔하던 집안이 어느 날 예고도 없이 와장창 깨지는 소리와 고함으로 한순간에 뒤집힌 적이 있었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소스라치게 놀란 그 아이는, 그날 이후 아무 일 없이 조용한 순간에도 ‘또 언제 갑자기 그럴지 몰라’ 늘 귀를 곤두세우고 마음을 졸이게 됐습니다. 평온함 속에서도 다음 위험을 미리 살피는 그 습관이, 몸 깊이 새겨진 것입니다.
깊은 최면 속에서 어른이 된 그분은 그때 떨고 있던 어린 자신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깨지는 소리와 고함은 어른들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었고, 아이가 일으킨 일도 미리 막아야 할 일도 아니었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지금은 위험한 소리가 들리면 그 자리에서 벗어나거나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도 전했습니다. 아이는 갑작스러운 소리까지 자신이 미리 살필 수는 없으며, 조용한 순간마다 다음 위험을 기다릴 필요도 없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됐습니다.
이처럼 발작이 없을 때조차 마음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그 긴장의 뿌리는, 정작 발작이 아니라 한참 거슬러 올라간 어린 시절의 어느 순간에 닿아 있곤 합니다. 본인은 그 연결을 알 길이 없으니, 다음 발작을 어떻게 막을지만 붙들고 애쓰게 되는 것이지요.
상담 뒤 그분은 더 이상 출구 가까운 자리만 찾지 않게 됐다고 전했습니다. 예전에는 어디를 가든 ‘여차하면 빠져나가야 한다’며 문 옆자리부터 살폈지만, 어느 모임에서는 안쪽 깊숙한 곳에 앉아 끝까지 자리를 지켰습니다. 다음 발작을 기다리며 출구로 쏠리던 마음이 지금의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다음 발작을 막는 것 너머의 회복
발작이 올 때 숨을 고르는 법을 익혀 두는 것은 도움이 됩니다. 다만 ‘또 올까’ 하는 불안까지 내려놓으려면, 다음 발작을 막는 방법뿐 아니라 편도체가 왜 한순간도 경계를 풀지 못하게 됐는지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도 아무 일 없기를 바라며 아침을 맞고, 별일 없이 하루가 저물어도 마음 한구석은 끝내 놓이지 않는 — 그런 나날을 오래 보내 오셨을지 모릅니다. 그 긴장을 늦추는 길은 다음 발작을 더 잘 막아 내는 데 있지 않습니다. 편도체가 어쩌다 한순간도 경계를 풀지 못하게 됐는지, 그 이유를 만나는 데 있습니다. 그 자리는 혼자 헤아리려 애쓰지 않으셔도, 상담 안에서 천천히 함께 찾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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