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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여덟 시에 딱 한 판만 하려고 켰는데, 정신을 차려 보면 창밖이 밝습니다.
눈이 따가워서 억지로 끄고 누우면 뒷목이 굳어 있고요. 아침에는 알람을 세 번 끄고 겨우 일어납니다.
회사에서는 하루 종일 머리가 멍하고요. 이러면 안 되는 걸 아는데
퇴근하고 현관에 들어서면 신발을 벗기도 전에 손이 먼저 화면으로 갑니다."
삼십 대 중반 남성분이 첫 상담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게임중독 치료를 검색하다가 여기까지 오셨다고 했습니다. 이 글에서 말씀드리려는 것은 게임 시간을 줄이는 요령이 아닙니다. 하루가 불편했던 날일 수록 왜 화면부터 켜게 되는지를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본인도 요즘은 게임이 그렇게 재미있지 않다고 했습니다. 예전에는 새 판이 시작될 때 가슴이 뛰었지만, 이제는 이겨도 별 느낌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끄지 못했습니다. 재미도 없는데 계속하는 자신이 한심했고, 게임을 끄고 나면 시작하기 전보다 마음이 더 무거웠습니다.
재미가 없는데도 끄지 못하는 저녁
스스로 가늠해 볼 수 있는 단서가 하나 있습니다. 즐거워서 켠 게임은 재미가 떨어지면 끄게 됩니다. 하지만 다른 이유로 켠 게임은 재미가 없어져도 쉽게 끄지 못합니다. 지난 몇 번의 저녁을 돌아봤을 때 아무 일 없던 날보다 무슨 일이 있었던 날에 게임을 더 오래 했다면, 재미 말고 다른 이유가 있었을 수 있습니다.
그분이 그랬습니다. 회의에서 자신이 낸 안이 밀린 날, 팀장에게 한마디 들은 날, 부모님과 통화하다 말이 어긋난 날에는 유독 게임을 오래 했습니다. 아무 일 없던 저녁에는 한두 판 하다가 그냥 껐습니다. 정작 힘든 일이 있었던 날일 수록 화면을 놓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불편한 기분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게임을 하는 동안 잠시 덜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반응을 회피 학습이라고 부릅니다. 불편한 느낌이 올라올 때 어떤 행동을 해서 그 느낌을 바로 느끼지 않게 되면, 다음에는 비슷한 불편함이 생겼을 때 그 행동이 더 빨리 나옵니다. 불편한 일이 실제로 해결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순간 불편함을 느끼지 않게 해 주는 것만으로도 이런 학습은 일어납니다.
겨울에 손이 시릴 때 주머니에 손을 넣는 것과 비슷합니다. 손을 넣으면 시린 느낌이 곧 줄어듭니다. 바깥 공기가 따뜻해진 것은 아니지만 당장은 견딜 만합니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 조금만 손이 시려도 주머니부터 찾게 되고, 나중에는 주머니 밖으로 손을 내는 것 자체가 더 어려워집니다.
그분에게는 게임 화면이 그런 주머니였습니다. 회의가 끝난 뒤 남은 답답함이나 부모님과 통화한 뒤의 서운함이 올라올 때 게임을 켜면 그 감정을 잠시 덜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답답함과 서운함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게임을 끄면 다시 올라왔고, 그래서 화면을 끄기가 더 어려웠습니다.
게임기를 치워도 저녁은 돌아옵니다
이쯤 되면 스스로 여러 방법을 써 보게 됩니다. 사용 시간을 제한하는 앱을 깔고, 계정을 지우고, 게임기를 상자에 넣어 옷장 위에 올려 둡니다. 이런 조치는 게임을 바로 시작하기 어렵게 만들어 주고, 실제로 며칠은 그렇게 지나갑니다. 잠을 못 자거나 기분이 오래 가라앉아 있다면 병원에서 한 번 확인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게임에 손이 닿는 길을 줄이는 데 주로 도움이 될 뿐, 불편한 기분이 올라오는 순간 습관적으로 화면을 찾는 반응은 그대로 남습니다. 그래서 게임기를 치운 저녁에도 손은 다른 화면을 찾습니다.
그렇다면 이 반응 자체는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요. "오늘은 켜지 말자"는 결심은 저녁마다 다시 해야 합니다. 반면 불편한 기분이 올라오자마자 화면을 찾는 반응은 이미 익숙해져 있어 생각하기 전에 먼저 나옵니다. 그래서 같은 상황이 오면 결심보다 반응이 먼저 나옵니다. 최면상담에서는 화면을 켜기 직전에 올라오는 감각과 감정을 살펴보고, 같은 반응이 처음 생긴 시절의 경험까지 함께 다룹니다.
방바닥에 줄 세워 놓은 자동차
최면상담은 그 감각을 확인하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사례자분은 화면을 켜기 직전이면 명치께가 답답하고 숨이 얕아진다고 하셨습니다. 최면이 충분히 깊어진 뒤 그 답답함이 다시 또렷해지자, 오래전 어느 저녁이 떠올랐습니다.
떠오른 장면은 집 안이었습니다. 키가 어른 무릎께밖에 오지 않는 아이가 방바닥에 엎드려 장난감 자동차 몇 대를 줄 세워 놓고 있습니다. 한 대씩 밀면서 혼자 소리를 냅니다. 부릉, 하고 소리를 내면 자동차가 정말 달리는 것 같습니다.
거실에서는 어른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낮아졌다 합니다. 무슨 이야기인지 싸우는 건지 아이는 알아듣지 못합니다. 하지만 어른들의 목소리가 높아질 때는 아이의 가슴 한켠의 답답함도 커져갔습니다. 아이는 그럴수록 자동차를 다시 밀고 소리를 더 높였습니다. 그렇게 크게 자기 소리를 내는 동안에는 거실 쪽 소리가 잘 들리지 않습니다.
그 집에서 그런 저녁은 드물지 않았습니다. 어른들의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아이는 자동차를 더 열심히 밀었습니다.
최면 속에서 그 저녁을 보고 있던 그분은 방 문턱에서 아이 곁으로 걸어갔습니다. 거실 소리는 그대로 두었습니다. 저 소리는 네가 무얼 잘못해서 나는 것도 아니고, 위험한 소리도 아니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조금 있으면 잦아든다고 아이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같은 저녁을 다시 겪었습니다. 거실의 목소리는 여전히 높아졌다 낮아졌고, 아이도 여전히 자동차를 밀었습니다. 달라진 것은 등과 어깨에 들어가던 힘이었습니다. 소리가 들려도 명치가 조여들지 않았고, 거실 소리를 덮으려고 자기 소리를 더 크게 낼 필요도 없었습니다.
장난감을 밀며 놀던 저녁이 어떻게 지금의 게임과 이어지느냐고 물으실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것은 장난감이 아니라 그때 통했던 방식입니다. 불편한 소리가 들릴 때 자기 놀이에 빠지면 그 소리가 멀어졌고, 그 방식은 아이에게 매번 통했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익숙한 반응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회의에서 안이 밀린 날의 저녁
요즘도 그분은 게임을 합니다. 주말 낮에는 한 판씩 하고 끄신다고 합니다. 달라진 것은 힘든 일이 있었던 날의 저녁입니다.
지난주에는 회의에서 자신의 안이 또 밀렸습니다. 예전 같으면 현관에서 신발을 벗기도 전에 화면부터 켰을 저녁입니다. 그런데 그날은 미뤄 두었던 전화를 걸었습니다. 형 생일에 문자만 보내 놓고 통화는 계속 미루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통화가 길어져 저녁을 늦게 차렸다고 하셨습니다.
요즘은 알람이 한 번 울리면 일어난다고 하셨습니다.
게임을 오래 하는 시간만이 문제의 전부는 아닙니다. 화면을 켰을 때 어떤 불편함이 잠시 잦아드는지를 함께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저녁에도 무슨 일이 있었던 날일 수록 화면부터 켜셨다면, 그것은 의지가 약해서가 아닙니다. 불편한 기분이 올라왔을 때 그 기분을 곧바로 멀어지게 하는 방식이 오래전부터 익숙해져 있었던 것입니다. 게임 시간을 줄이는 계획을 다시 세우기 전에 먼저 살펴볼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 불편해질 때 화면을 켜게 되는지, 그리고 그 반응이 언제부터 익숙해졌는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