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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는 고파요. 먹고 싶은 것도 있어요. 그런데 막상 음식이 앞에 놓이면 못 먹겠어요.한 숟가락 먹으면 그게 바로 살이 될 것 같고, 다시 살이 찌면 사람들이 저를 볼 것 같아요.점심시간이 제일 싫어요. 다른 사람들이 먹는 걸 보면 저도 먹고 싶은데막상 숟가락을 들면 명치가 꽉 막힙니다.”
직장 생활 삼 년째인 이십 대 후반 여성분의 이야기입니다. 회사에서는 야무지고 빈틈없다는 말을 듣는 분이었지만, 하루 중 가장 힘든 시간은 점심시간이었습니다. 동료들이 식사하러 일어날 때면 일이 남았다며 자리에 앉아 있거나, 식당에 함께 가더라도 거의 먹지 않았습니다. 배가 고프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음식 냄새가 좋다고 느낄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먹으려고 하면 다른 생각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이걸 먹으면 살이 찌겠지.’
‘얼굴이 다시 둥글어지면 어떡하지.’
‘사람들이 알아보면 어떡하지.’
먹어야 한다는 것은 본인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머리로 아는 것과 실제로 음식을 입에 넣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습니다.
숟가락을 입 가까이 가져간 순간
이 사례에서 먼저 분명히 할 점이 있습니다. 거식증은 몸의 상태를 함께 살펴야 하는 문제입니다. 음식 섭취가 줄어든 상태가 이어지면 체중과 영양 상태뿐 아니라 여러 신체 기능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체중 감소가 크거나 식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면 병원에서 상태를 확인하고 필요한 치료와 영양 관리를 받는 것이 먼저입니다. 이분도 상담을 시작하기 전부터 병원 진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상담에서 살펴본 것은 병원 치료와는 다른 부분이었습니다. 배가 고픈데도 왜 음식을 입에 넣으려는 순간 몸부터 굳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이분은 숟가락을 입 가까이 가져가면 명치가 단단하게 뭉치고 목이 막히는 느낌이 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야 생각이 따라왔습니다.
‘먹으면 살찐다.’
‘살찌면 안 된다.’
‘다시 그런 말을 들으면 어떡하지.’
겉으로 보면 이런 생각 때문에 몸이 긴장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본인이 느끼기에는 생각보다 몸의 반응이 훨씬 먼저였습니다.
체육복을 입고 교실에 들어간 날
그분이 음식과 체중을 의식하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때였습니다. 사춘기를 지나면서 키가 자라고 몸에도 변화가 생겼고, 어느 시기에는 체중도 빠르게 늘었습니다. 어느 날 체육복을 입고 교실에 들어갔을 때 친구 한 명이 그분을 보며 말했습니다.
“너 요즘 살 많이 쪘다.”
옆에 있던 아이도 웃으며 한마디를 보탰습니다.
“돼지 되는 거 아니야?”
몇몇 아이가 따라 웃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별일 아닌 말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그날 이후 자기 몸을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졌습니다. 교실에 들어갈 때면 사람들이 자기 몸부터 볼 것 같았습니다. 의자에 앉으면 배가 접히는지 확인했고, 거울 앞에서는 얼굴이 커 보이는지 살폈습니다. 점심도 조금씩 남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밥 몇 숟가락을 덜 먹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체중이 줄자 주변에서 다른 말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살 빠졌네.”
“지금이 훨씬 낫다.”
그 말을 들으면 마음이 놓였습니다. 살이 찌면 사람들에게 놀림받을 수 있고, 살이 빠지면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졌습니다. 이후에는 배고픔보다 체중이 늘어나는 것이 더 무서워졌습니다.
하지만 최면상담에서는 중학교 때의 일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의 말이 왜 그분에게 그렇게 큰 두려움으로 남았는지, 그때 느꼈던 감정과 비슷한 느낌을 더 오래전에도 경험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몰라서 먹지 못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건강을 위해 먹어야 한다는 것도, 주변 사람들이 해 주는 말도 대부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음식이 눈앞에 놓였을 때였습니다. 먹겠다고 마음먹기 전에 명치가 조이고 목이 막혔습니다.
심리학에서는 과거의 경험을 통해 만들어져 현재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데 영향을 주는 마음속의 기본 틀을 심리도식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놀림받거나 거절당했던 경험이 강하게 남아 있다면, 나중에 비슷한 상황을 만났을 때 실제로 무슨 일이 생기기 전부터 긴장할 수 있습니다.
이분에게 음식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음식으로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먹으면 살이 찔 수 있고, 살이 찌면 다시 사람들의 시선과 놀림을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까지 함께 따라왔습니다. 그래서 ‘조금 먹어도 괜찮다’고 생각해도 음식 앞에서는 몸이 먼저 굳었습니다. 최면상담은 바로 그 반응에서 시작했습니다.
문밖에 혼자 남아 있던 아이
그분에게 음식을 먹으려 할 때 가장 먼저 나타나는 느낌에 집중해 보도록 했습니다. 명치가 뭉치고 목이 막히는 느낌이었습니다. 깊은 최면 상태에서 그 느낌을 따라가자 처음에는 중학생 때 친구들에게 체중 이야기를 들었던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그때의 창피함과 두려움을 충분히 느껴 본 뒤, 같은 느낌이 더 오래전에도 있었는지를 따라갔습니다.
그러자 세 살 무렵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친척들이 집에 모여 있던 날이었습니다. 조금 큰 아이들이 방 안에서 함께 놀고 있었고, 어린아이는 그 아이들을 따라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문 앞에서 한 아이가 막아섰습니다.
“너는 아기니까 안 돼.” 그리고 문이 닫혔습니다.
아이에게는 왜 자신만 들어갈 수 없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문 안에서는 아이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가 계속 들렸고, 아이는 손잡이를 잡은 채 한동안 문 앞에 서 있었습니다. 같이 놀고 싶은데 자기만 밖에 남아 있는 것이 서러웠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함께 웃고 있는데 자신만 혼자 남겨진 것 같아 불안하고 외로웠습니다. 다시 들어가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근처에 있던 어른은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언니 오빠들 노는데 방해하지 말고 이리 와.”
하지만 아이에게 그 말은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들어가고 싶은 곳에서는 자신을 밀어냈고, 어른에게도 다시 들어가게 해 달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아이는 문 앞에서 물러나 혼자 거실 한쪽에 앉았습니다.
중학생이 되어 친구들이 자기 몸을 보며 웃었을 때도 비슷한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살이 쪘다는 말 자체도 상처였지만, 더 힘들었던 것은 사람들이 자신을 이상하게 보고 자기만 무리에서 밀려날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두 사건은 전혀 달랐지만 그때 느낀 감정은 닮아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다른 아이들 사이에서 혼자 밀려났다는 서러움과 두려움이었고, 중학생 때는 달라진 몸 때문에 다시 사람들의 웃음거리나 평가의 대상이 되어 밀려날 것 같은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러다 체중이 줄고 주변에서 “살 빠졌네”, “지금이 훨씬 낫다”는 말을 들었을 때 마음이 놓였습니다. 먹는 양을 줄이면 체중이 내려가고, 체중이 내려가면 다시 그런 일을 겪지 않아도 될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먹지 않는 행동은 단순히 살을 빼는 방법을 넘어, 다시 놀림받거나 사람들 사이에서 밀려날 것 같은 두려움을 피하는 방법이 되어 갔습니다. 이후에는 배가 고픈 것보다 체중이 다시 늘어나는 것이 더 무서워졌습니다.
두 장면을 다시 지나가 보았습니다
깊은 최면 상태에서 어른이 된 그분은 문밖에 혼자 서 있는 어린 자신에게 다가갔습니다. 아이 옆에 앉아 손을 잡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문을 닫은 것이 네가 이상하거나 부족해서가 아니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지금 혼자 남겨진 것이 아니며, 누군가 함께 놀아 주지 않는다고 해서 자신이 사람들에게 버려지는 것은 아니라고도 말해 주었습니다. 어른이 된 자신이 곁에 있으니 이제 혼자 그 두려움을 견디지 않아도 된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그 상태에서 같은 장면을 다시 지나가 보았습니다. 방 안에서는 아이들이 여전히 웃고 있었고 문도 닫혀 있었습니다. 바깥 상황이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이가 손잡이를 붙잡은 채 계속 서 있지 않았습니다. 어른이 된 자신의 손을 잡고 문에서 물러났고, 명치에 올라오던 답답함도 한결 줄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다음에는 중학생 때 친구들이 체중을 이야기하며 웃던 장면을 다시 다뤘습니다. 어른이 된 그분은 그때의 자신 곁에 서서, 친구들이 한 말이 자신의 몸이나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몸이 자라는 과정에서 체중이 달라질 수 있고, 조금 살이 찐다고 해서 사람들에게 버림받거나 밀려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다시 알려 주었습니다. 그 장면을 다시 지나갔을 때에도 처음처럼 명치가 심하게 굳지는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최면상담에서는 이렇게 현재 음식 앞에서 올라오는 두려움을 따라가 그 감정과 연결된 오래된 경험을 찾아 다뤘습니다. 과거의 일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때 만들어진 두려움이 지금 음식 앞에서도 계속 같은 반응을 일으키지 않도록 하는 과정입니다.
메뉴판을 오래 들여다본 날
변화가 곧바로 많이 먹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병원 진료와 영양 관리는 그대로 이어 갔습니다. 다만 음식 앞에서 가장 먼저 올라오던 두려움이 전과는 달라졌다고 하셨습니다. 예전에는 점심시간이 가까워지면 벌써부터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동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하면 모니터를 보는 척하면서 어떻게 식사를 피할지부터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뒤에는 동료들과 함께 식당에 나갔다고 합니다. 메뉴판을 받아 들고 한참을 들여다봤습니다. 예전 같으면 어떤 음식이 가장 살이 덜 찔지부터 찾았을 텐데, 그날은 자신이 무엇을 먹고 싶은지를 생각했다고 합니다. 고른 음식이 앞에 놓였을 때도 명치가 전처럼 단단하게 굳지 않았습니다. 주말에는 한동안 미뤄 두었던 친구와의 약속도 잡았습니다. 예전에는 약속 장소가 식당이면 다른 날로 미루거나, 식사를 마친 뒤에 만나려고 했습니다. 병원 치료는 계속 받고 있었습니다.
거식증에서 회복해야 하는 것은 단순히 ‘많이 먹는 것’만이 아닙니다. 음식을 먹는 순간마다 살이 찔 것 같고, 달라진 몸을 사람들이 어떻게 볼지 두려워지면서 몸부터 굳는 반응이 있다면 그 두려움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체인지 심리최면상담센터에서는 현재 음식 앞에서 가장 먼저 나타나는 감정과 신체반응을 살펴보고, 깊은 최면 상태에서 그 반응과 연결된 오래된 경험과 감정을 찾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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