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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정말 잘 참습니다. 아침은 원래 안 먹고, 점심도 커피 한 잔으로 넘길 때가 많아요.
그런데 밤 열한 시쯤 되면 제가 저를 못 말려요. 냉장고 문을 열어 둔 채로 서서 이것저것 집어 먹는데
배가 부른지도 모르겠고 맛도 잘 모르겠어요. 다 먹고 나면 속이 더부룩해서 바로 눕지도 못하고
내일부터는 진짜 안 그래야지 하면서 잡니다."
마흔을 갓 넘긴 남성분이 상담을 신청하며 적어 보내신 이야기입니다. 회사 검진에서 관리가 필요하다는 말을 들은 뒤로 저녁을 거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식욕 조절하는 법을 검색해 나온 방법은 거의 다 해 봤습니다. 물을 미리 마셔 두고, 과자를 사 두지 않고, 저녁 약속도 줄였습니다.
그런데 낮에 잘 참아 낸 날일 수록 밤이 더 위험했습니다. 하루를 잘 버텼다 싶은 날에 오히려 더 크게 무너졌습니다. 먹는 것 하나 못 참는 사람이라는 말을, 누가 하기도 전에 스스로에게 먼저 했습니다.
잘 참는 사람이 더 크게 무너진다
그런데 여기서 앞뒤가 안 맞습니다. 참는 힘이 부족한 사람이라면 낮에도 못 참아야 맞습니다. 그런데 이분은 낮 동안 누구보다 잘 참았습니다. 못 참는 사람이 아니라 오래 참은 사람이 밤에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이 대목을 심리학에서는 억제이론이라는 이름으로 설명합니다. 먹는 것을 의식적으로 강하게 통제할수록, 그 통제가 한 번 깨지는 순간 오히려 더 많이 먹게 된다는 설명입니다. 참는 정도가 셀수록 되돌아오는 힘도 함께 세집니다.
숨을 오래 참아 본 적이 있으실 겁니다. 참은 시간이 길수록 참기를 그만둔 순간의 첫 숨은 더 크고 급해집니다. 폐가 약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오래 참았기 때문입니다. 하루 종일 먹는 것을 눌러 둔 밤도 이와 비슷합니다.
그분도 그 반동을 몸으로 겪고 있었습니다. 저녁 무렵이면 속이 비어 쓰린 느낌이 올라오고 침이 자꾸 고였다고 합니다. 그 상태로 현관에 들어서면, 생각이 끼어들 틈도 없이 손이 먼저 냉장고 손잡이를 잡고 있었습니다.
일주일만 살펴보시면 알 수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종일 굶다시피 한 날의 밤과, 배가 고플 때 제때 먹은 날의 밤 중 어느 쪽이 더 힘든지 기억해 두는 것입니다. 참아 낸 날의 밤이 더 힘들다면, 그 식욕은 못 참아서가 아니라 너무 오래 참아서 커진 쪽에 가깝습니다.
참는 방법이 그날 밤까지만 듣는 이유
식욕을 다스리는 방법들이 소용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물을 마시면 위가 잠시 차고, 눈에 보이지 않게 치워 두면 손이 덜 갑니다. 식욕을 낮춰 주는 약의 도움을 받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날 저녁 하나를 넘기는 데는 분명히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이런 방법들은 이미 올라온 식욕을 그때그때 눌러 두는 쪽에 가깝습니다. 눌러 두는 힘이 세질수록 되돌아오는 힘도 함께 세진다는 점은 그대로 남습니다. 그래서 잘 참은 날이 쌓일 수록 무너지는 밤도 같이 커집니다.
그렇다면 남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이분은 왜 배가 고픈 순간에 조금 먹고 넘어가는 대신, 끝까지 눌러 두었다가 한 번에 쏟아 내는 방식을 쓰고 있었을까요.
먹지 말자고 마음먹는 것은 의식이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저녁마다 속이 쓰려 오고 손이 먼저 냉장고로 가는 것은 의식이 끼어들기 전에 일어납니다. 최면상담에서는 이렇게 저절로 일어나는 반응을 다룹니다. 식욕이 치솟기 직전에 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부터 살펴보고, 욕구를 눌러 두는 방식이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그 무렵의 감정과 함께 다룹니다.
시계를 보며 기다리던 아이
상담에서도 그 느낌부터 다시 꺼냈습니다. 저녁이 되면 목 안쪽이 조이면서 침이 고인다고 하셨습니다. 깊은 최면 속으로 들어가 그 느낌에 머물자, 뜻밖에도 어린 시절의 어느 오후가 떠올랐습니다.
집 거실입니다. 아직 말이 서툰 아이가 소파 옆 바닥에 앉아 벽시계를 올려다보고 있습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크레파스 통은 손이 닿지 않는 선반 위에 있습니다. 어른은 시계를 가리키며 긴바늘이 저기까지 가면 내려 주겠다고 말합니다.
아이는 처음 몇 번은 손을 뻗고 조릅니다. 그때마다 아직이라는 말이 돌아옵니다. 그다음부터 아이는 조르지 않습니다. 두 손을 무릎에 모으고 앉아 바늘만 봅니다. 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올 때마다 그 마음을 안으로 눌러 두고, 정해진 때가 될 때까지 기다립니다.
마침내 시간이 되어 크레파스 통이 내려옵니다. 아이는 손에 힘을 잔뜩 주고 급하게 칠합니다. 하나를 다 쓰기도 전에 다음 색을 집습니다. 오래 눌러 두었던 것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저녁이었습니다.
그 집에서 왜 그렇게 시간을 엄격하게 지켰는지는 장면 속에서 끝내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이런 장면을 들으면 참는 습관이 어릴 때 무언가 잘못돼서 생긴 것처럼 보이기 쉽습니다. 그런데 아이에게 그 방법은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습니다. 참고 기다리면 결국 원하던 것이 왔고, 그렇게 잘 통하던 방법은 상황이 달라진 뒤에도 몸에서 먼저 나옵니다.
최면 상태가 더 깊어진 뒤, 그분은 그 저녁으로 다시 들어갔습니다. 무릎에 손을 모으고 앉은 아이 옆에 앉아, 시계는 자기가 볼 테니 너는 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오는 것은 잘못이 아니고 그 마음을 없앨 필요도 없다고 일러 주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같은 저녁을 다시 겪었습니다. 어른은 그대로 아직이라고 말했고, 크레파스도 정해진 시간에 내려왔습니다. 달라진 것은 기다리는 동안의 몸이었습니다. 무릎에 모은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목이 조이던 느낌도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장면을 이야기하는 동안 그분은 자꾸 침을 삼켰습니다. 이야기가 끝날 무렵에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배가 고파진 저녁
요즘 그분은 점심을 거르지 않습니다. 배가 고프면 그 시간에 먹습니다. 예전에는 하루를 얼마나 버텼는지로 그날 하루에 점수를 매겼는데, 지금은 그런 계산을 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며칠 전 밤에는 잠이 오지 않아 부엌에 나갔다고 합니다. 물을 한 컵 마시고 그대로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냉장고 문은 열지 않았습니다.
식욕 조절하는 법을 오래 찾아온 분일 수록 참는 요령을 하나 더 배우려고 합니다. 그런데 밤마다 무너지는 이유가 덜 참아서가 아니라 너무 오래 참아서라면, 방법을 하나 더 얹는 것으로는 같은 밤이 되풀이될 수 있습니다. 낮에 잘 참은 날일 수록 밤이 무섭다면, 이제 들여다볼 것은 참는 힘이 아닙니다. 욕구가 올라올 때 눌러 두는 방식만 몸에 익힌 것이 언제부터였는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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