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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면 잊힌다고들 하잖아요. 그 말 믿고 삼 년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어제도 앞차가 급하게 서는 소리에 손이 굳어서 핸들을 못 놨어요.
등에 식은땀이 나고 숨이 안 쉬어져서 갓길에 차를 세웠습니다.
밤에도 그 소리가 갑자기 들려서 잠이 깹니다."
트라우마 치료를 어디서 받아야 하는지 알아보던 사십 대 초반 남성분의 이야기입니다. 몇 해 전 밤, 신호를 기다리며 서 있던 차를 뒤에서 오던 차가 크게 들이받았습니다.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문이 밀려 한동안 차 안에서 나오지 못했다고 하셨습니다.
그 뒤로 달라진 것은 운전만이 아니었습니다. 몸이 소리에 먼저 반응했습니다. 주차장에서 나는 타이어 소리, 뒤에서 가까워지는 엔진 소리에 가슴이 조여 오고 다리에 힘이 빠졌습니다.
사고 뒤로 트라우마가 남은 것 같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다들 시간이 약이라고 했습니다. 잊으려 애쓰지 말고 그냥 지내다 보면 무뎌진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삼 년이 지나는 동안 무뎌진 것은 사고 이야기를 입 밖에 꺼내는 일뿐이었고, 소리에 몸이 굳는 반응은 그대로였습니다.
같은 시간이 지났는데 어떤 기억은 흐려지고 어떤 기억은 왜 그대로 남을까요. 이 글에서는 시간이 지나도 같은 반응이 되풀이되는 이유와, 트라우마 치료가 그 반응의 어디에서부터 시작하는지를 짚어 보려고 합니다.
떠오르는 기억과 되살아나는 기억
스스로 가늠해 볼 단서가 하나 있습니다. 그 일이 생각날 때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처럼 떠오른다면 기억으로 남은 쪽에 가깝습니다. 반대로 소리나 냄새가 먼저 오고 몸이 굳거나 심장이 뛴 다음에야 그 일이 떠오른다면, 기억보다 반응이 앞서 나오는 것입니다. 의학적인 구분은 아니지만 자기 경우가 어느 쪽인지 살펴보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분은 뒤쪽이었습니다. 사고 이야기를 차분히 하다가도 밖에서 급한 브레이크 소리가 나면 하던 말이 끊겼습니다. 이야기를 멈춘 것이 아니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반응은 조건화로 설명합니다. 조건화는 두 가지를 함께 겪고 나면 뇌가 그 둘을 묶어서 기억하는 학습을 말합니다. 강한 공포를 겪는 순간에는 그때 들리던 소리와 몸의 반응까지 한 덩어리로 저장됩니다. 그래서 나중에 그중 하나만 나타나도 나머지가 같이 끌려 나옵니다.
식탁에 그냥 둔 음식은 하루가 다르게 변합니다. 그런데 얼려 둔 것은 몇 해 뒤에 꺼내 보아도 넣던 날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시간은 밖에 있는 음식에만 흐른 것입니다. 강한 공포와 함께 묶인 기억도 이와 비슷하게 남습니다.
그분에게 급한 브레이크 소리는 사고 전까지 아무 뜻도 없는 소리였습니다. 그런데 그 소리가 공포와 한 번 묶이고 나면, 이후에는 소리만으로도 그날의 반응이 다시 켜집니다. 삼 년이 지나도 이 연결은 시간만으로 끊어지지 않습니다.
피하는 동안 달라지지 않는 것
그동안 그분이 한 일은 피하는 것이었습니다. 사고가 났던 교차로를 돌아서 다녔고, 되도록 운전대를 잡지 않았습니다. 피하면 그날 하루는 아무 일 없이 지나갑니다. 다만 피하는 동안에는 그 소리가 더 이상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몸이 겪어 볼 기회도 없습니다.
잠을 못 자고 낮에도 가슴이 뛰어 병원을 찾는 분도 많습니다. 진료를 받고 약을 쓰면 올라온 각성이 낮아지고 밤에 잠을 자는 데 도움이 됩니다. 사고 뒤에 이런 도움을 받는 것은 회복에 필요한 과정입니다. 다만 약이 낮춰 주는 것은 지금 올라온 반응이고, 소리와 공포가 묶여 있는 연결은 그대로 남습니다.
트라우마 치료를 알아보며 트라우마센터와 병원 정보를 찾아보다가, 결국 시간이 해결해 주기를 기다리는 쪽으로 돌아가는 분도 적지 않습니다. 무엇을 다뤄야 하는지가 손에 잡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한 덩어리로 묶인 이 반응은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마음을 다잡는 것만으로는 잘 되지 않습니다. 소리가 들리고 몸이 굳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생각이 끼어들 틈보다 짧기 때문입니다. 최면상담에서는 그 순간 몸이 먼저 내놓는 반응을 실마리로 삼아, 같은 반응이 그 사람에게 언제부터 익숙했는지를 찾아 들어갑니다. 사고가 난 그날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까지 함께 봅니다.
저녁 시장에서 멈춰 선 아이
그분의 상담도 그 반응에서 시작했습니다. 뒤에서 소리가 나면 목덜미가 뻣뻣해지면서 고개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최면이 깊어지자 그 뻣뻣함이 목뒤에서 다시 올라왔고, 이어서 사고와는 아무 상관도 없어 보이는 오래전 저녁이 떠올랐습니다.
시장 골목입니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이가 어른의 손을 잡고 좌판 사이를 지나갑니다. 사람이 몰리는 저녁 무렵이라 앞뒤로 어른들이 끊임없이 지나갑니다. 잡고 있던 손이 어느 순간 빠집니다.
아이는 걸음을 멈춥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어른들의 다리와 장바구니뿐입니다. 아는 얼굴을 찾으려고 고개를 돌려 보지만 어디에도 없습니다. 울음도 나오지 않고 발도 떨어지지 않습니다.
누군가 아이 옆을 스치며 지나가고, 생선을 손질하는 소리와 손님을 부르는 소리가 뒤섞여 들립니다. 아이는 그 소리들 한가운데에 가만히 서 있습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는지는 장면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분은 이 장면이 떠오르자 되물었다고 합니다. 시장에서 손 한 번 놓친 일이 사고와 무슨 상관이냐는 것이었습니다.
사고 뒤에 남은 반응이라고 하면 원인은 당연히 그 사고 하나뿐이라고 여기기 쉽습니다. 그런데 사고 순간에 몸이 내놓은 반응은 그날 처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사람에게 가장 익숙한 대응이었습니다. 갑자기 위험해지면 굳은 채로 기다리는 대응이 어린 시절부터 몸에 익어 있었고, 사고가 그 반응을 다시 불러낸 것입니다.
그 저녁의 아이에게는 어른이 다시 나타날 때까지가 끝나지 않는 시간 같았습니다. 위험한 일이 생기면 소리를 내거나 움직이는 대신 굳어서 버티는 반응이 그때 몸에 익었습니다. 어른이 되어 사고를 당한 순간에도 그 반응이 그대로 나왔고, 그래서 문이 열릴 때까지의 몇 분이 그날의 공포와 한 덩어리로 남았습니다.
다시 그 저녁으로 들어갔을 때, 그분은 굳어 서 있는 아이 앞으로 걸어가 눈높이를 맞추고 마주 앉았습니다. 아이가 보고 있던 것은 어른들의 다리였는데, 이제 그 앞을 자기 얼굴이 채웠습니다. 잠시 뒤면 이 시간이 끝난다는 것과,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 네 잘못이 아니라는 말을 짧게 전했습니다.
그런 다음 같은 저녁을 처음부터 다시 지나갔습니다. 손은 똑같이 빠지고 사람들도 똑같이 지나가고, 아이는 여전히 걸음을 떼지 못합니다. 달라진 것은 목덜미가 굳지 않고 숨이 막히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시장 소리도 멀어지지 않고 그대로 들렸다고 하셨습니다.
상담실에서도 같은 변화가 몸으로 나타났습니다. 장면 초반에는 목이 굳어 고개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는데, 그 저녁을 다시 지나간 뒤에는 목의 힘이 풀리며 고개가 바로 섰습니다.
앞차가 급히 멈춰 선 저녁
요즘 그분은 퇴근길에 직접 운전을 합니다. 며칠 전에는 앞차가 급하게 서면서 브레이크 소리가 크게 났다고 합니다. 어깨가 한 번 움찔했지만 손은 핸들에 그대로 있었고, 차를 세우지 않고 그대로 지나왔습니다.
지난 주말에는 오래 미뤄 두었던 모임에 나갔습니다. 사고 이후로 사람들 앞에서 그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었는데 그날은 먼저 꺼냈습니다. 말하는 동안 손이 떨리지 않았고, 이야기를 마친 뒤에는 다른 사람들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넘어갔습니다.
트라우마 치료를 알아보면서도 조금 더 기다려 볼까 망설이는 분이 많습니다. 그런데 기다린다고 저절로 느슨해지는 연결이 아닙니다. 몇 해가 지났는데도 소리 하나에 몸이 먼저 굳는다면 그것은 견디는 힘이 모자라서가 아닙니다. 그 반응이 무엇과 묶여 있고 언제부터 몸에 익었는지, 거기서부터 풀어야 달라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