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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지난주에 마트에서 누가 카트를 철제 선반에 부딪쳤어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몸이 굳어서 카트 손잡이를 잡은 채 꼼짝도 못 했습니다.
심장은 세게 뛰고 숨은 막히는데, 눈앞에는 그날 창고에서 봤던 장면이 그대로 떠올랐어요.
정작 다친 사람은 제가 아닌데, 왜 아직도 제가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류창고에서 십 년 넘게 일해 온 사십 대 남성분이 상담을 신청하며 들려주신 이야기입니다. 그분이 말한 '그날'은 지난겨울 새벽이었습니다. 같이 야간조로 일하던 동료가 지게차로 옮기던 짐 아래에서 크게 다쳤고, 그분은 두 걸음쯤 옆에 서 있었습니다.
기억나는 것은 철제 선반이 울리던 소리와 그 뒤의 조용함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뛰어오는 동안 자신은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서 있었습니다. 그 새벽이 지나고 나서 PTSD라는 말을 처음 검색해 봤다고 합니다.
다친 사람은 따로 있는데
그 뒤로 달라진 것이 하나둘이 아니었습니다. 창고의 그 통로는 멀더라도 돌아서 다녔습니다. 지게차 후진 경고음이 울리면 하던 일을 멈추고 몸이 먼저 굳었습니다. 자려고 누우면 그 새벽이 처음부터 다시 재생됐습니다.
병원에서는 PTSD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고 합니다. 정확한 진단과 치료는 의료진과 확인해야 합니다. 그분은 그와 별개로, 직접 다치지 않은 자신이 왜 이렇게 힘든지 이해하기 어려워했습니다.
사고를 떠올리며 마음이 무거운 때도 있지만, 생각할 겨를도 없이 소리 하나에 몸이 굳는 때도 있습니다. 그분은 사고와 관계없는 마트나 주차장에서도 이런 일이 반복됐습니다. 상담에서는 어떤 소리와 상황이 두려움을 불러오는지 살펴봤습니다.
머릿속에 붙은 위험 표시
몸은 크게 위험한 일을 한 번 겪으면 그 순간 곁에 있던 것들까지 함께 기억해 둡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학습을 조건화라고 부릅니다. 위험 자체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의 소리와 냄새와 시간대를 위험 신호로 묶어 두는 것입니다.
머릿속 지도에서 위험했던 곳에 표시가 붙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 표시는 비슷하게 생긴 곳에도 옮겨붙어, 창고 통로에서 시작된 긴장이 마트 진열대 사이에서도 먼저 올라올 수 있습니다.
그분에게도 그 무렵 창고 밖에서 비슷한 일이 이어졌습니다. 지하 주차장에서 셔터가 내려가는 소리가 나면 걸음이 멈췄고, 식당에서 그릇 부딪히는 소리에도 숨이 한 번 멎었습니다. 창고와 아무 상관 없는 곳인데도 몸은 같은 순서로 반응했습니다.
PTSD에는 전문적인 심리치료가 있으며, 상태에 따라 약물치료를 함께 받기도 합니다. 치료 중에도 특정 소리에 몸이 굳는 어려움이 남는다면 치료진에게 이야기하고 필요한 도움을 상의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마음으로는 괜찮다고 생각해도 몸은 계속 같은 반응을 보일까요. 몸이 생각보다 먼저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큰 소리가 들리면 ‘여기는 마트고 지금은 안전하다’고 생각하기도 전에 몸부터 굳을 수 있습니다.
최면상담에서는 이렇게 몸이 먼저 반응하는 순간에 느껴지는 감정과 신체감각을 살펴봅니다. 그리고 그 반응을 따라가며, 비슷한 두려움과 긴장이 언제부터 익숙해졌는지 과거의 경험과 감정까지 함께 살펴봅니다.
현관문이 크게 닫히던 저녁
최면이 충분히 깊어진 다음이었습니다. 그분은 창고에서 몸이 굳을 때의 느낌부터 다시 떠올렸습니다. 귀가 먹먹해지고 숨이 목에서 멈추는 느낌이라고 했습니다. 그 느낌을 붙들고 있자 예상하지 못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집 안입니다. 아직 말이 서툰 아이가 방 문턱 안쪽 바닥에 앉아 있습니다. 현관문이 크게 닫히면서 벽이 한 번 울립니다. 어른 둘의 목소리가 높아졌다가, 한 사람이 나가고 문이 다시 닫힙니다.
남은 사람의 발소리가 마루를 지나갑니다. 아이는 손에 쥔 것을 놓지 않은 채 숨을 멈추고 그대로 앉아 있습니다. 발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날 어른들이 무엇 때문에 다투었는지, 나간 사람이 언제 돌아왔는지는 장면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뒤로 마루를 지나는 발소리만 들려도 아이가 같은 자세로 숨을 죽였다는 것은 또렷했습니다.
큰 위협을 겪으면 몸이 굳을 수 있고, 그 긴장이 풀리는 데 걸리는 시간도 사람마다 다릅니다. 이 사례에서는 창고에서 숨이 막히던 느낌과 어린 시절 발소리에 숨을 죽이던 모습이 닮아 있었습니다. 상담에서는 그때의 두려움을 함께 살펴봤습니다.
깊은 최면 속에서 어른이 된 그분은 문턱 안쪽에 앉아 있는 어린 자신 옆으로 갔습니다. 아이는 문이 크게 닫히자 손에 쥔 것을 놓지도 못한 채 발소리가 멀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아이가 잘못해서 벌어진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문이 크게 닫혀서 놀랐지. 어른들이 저렇게 말하는 건 네가 뭘 잘못해서가 아니야. 네가 숨을 참고 있어야 이 소리가 지나가는 것도 아니야. 몸에 힘을 빼고 숨을 쉬어도 괜찮아.”
그 말을 전한 뒤 같은 저녁을 다시 경험했습니다. 문은 똑같이 크게 닫혔고 목소리도 높아졌습니다. 발소리가 마루를 지나가는 동안 아이는 여전히 문턱 안쪽에 앉아 있었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자신이 숨죽여 버틸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몸을 굳히거나 숨을 멈추지 않고 그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고 합니다. 최면에서는 갑작스러운 큰 소리를 자신에게 닥친 위험으로 받아들여 숨을 멈추고 굳었던 다른 관련 경험들도 이어서 다뤘습니다. 소리가 크다고 모두 자신에게 벌어진 일은 아니며, 실제 상황을 확인한 뒤 필요한 만큼 반응해도 된다는 이해를 함께 넓혔습니다.
후진음이 울리는 통로에서
상담 뒤 이분은 야간조가 시작되기 전 새 직원에게 통로의 주의사항을 알려 주게 됐다고 전했습니다. 예전에는 후진음만 들려도 자신부터 몸이 굳었지만, 이제는 어디에서 나는 소리인지 확인하고 지나가라고 설명했습니다. 며칠 전 마트에서 카트가 선반에 부딪쳤을 때도 소리가 난 쪽을 한 번 돌아본 뒤 그대로 장을 봤습니다.
큰 위협을 겪은 뒤에는 안전한 장소에서도 비슷한 소리 때문에 당시의 두려움이 되살아날 수 있습니다. 이런 어려움이 계속되면 진단과 치료를 받고, 어떤 순간이 특히 힘든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분과의 상담에서도 현재 반복되는 긴장을 먼저 살피고, 관련된 경험이 떠오르자 당시의 감정을 함께 다뤘습니다. 모든 PTSD가 어린 시절의 경험에서 비롯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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