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어제도 오후 세 시쯤이었어요. 오른쪽 눈 뒤가 쿡쿡 쑤시더니 관자놀이에서 맥박이 뛰는 것처럼 욱신거렸습니다.
천장 조명이 유난히 따갑고 옆자리 통화 소리도 다 거슬렸고요. 속이 울렁거려서 저녁도 못 넘겼습니다.
먹는 건 다 바꿔 봤는데 왜 자꾸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고객센터에서 십 년 넘게 전화 상담을 해 온 마흔 중반 여성분이 첫 상담에서 한 말입니다. 편두통 원인을 알고 싶어 병원도 다녀왔고, 그 뒤로는 나쁘다고 알려진 것을 하나씩 끊어 왔다고 합니다. 먼저 커피를 끊었고, 이어 치즈와 견과류도 끊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목록대로 생활해도 발작 횟수는 줄지 않았습니다. 지난여름 일주일 휴가 때는 매일 아이스커피를 마셨는데도 한 번도 아프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물만 마시고 일찍 잔 주에도 머리는 어김없이 욱신거렸습니다.
이럴 때는 쉬는 기간에도 발작이 비슷하게 찾아오는지 비교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먹는 것과 자는 시간이 비슷한데 일하는 주에만 발작이 몰린다면, 편두통 원인을 음식 목록에서만 찾기는 어렵습니다.
그분도 지난 석 달의 근무표와 아팠던 날을 겹쳐 보았습니다. 발작은 대부분 오후 두 시에서 네 시 사이에 시작됐습니다. 바로 대기 건수가 한꺼번에 쌓이고, 옆자리의 통화 소리가 겹치며, 관리자가 자리 사이를 오가는 시간대였습니다.
다만 그전에 확인할 것이 있습니다. 늘 겪던 두통과 양상이 달라졌거나, 머리를 얻어맞은 듯 갑자기 심한 통증이 생겼거나, 한쪽 팔다리가 저리고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면 병원 진료가 먼저입니다. 이 글은 진료를 통해 확인한 뒤에도 같은 발작이 되풀이되는 경우를 다룹니다.
그림자만 스쳐도 켜지는 현관 불
머리가 아프기 전에 몸에서 먼저 일어나는 변화가 있습니다. 뇌 안쪽의 편도체는 지금이 안전한지 위험한지를 빠르게 가려냅니다. 위험하다고 판단하면 몸은 곧바로 대비 태세에 들어갑니다. 호흡이 얕아지고 목덜미와 두피 근육이 조이기도 하는데, 이런 긴장은 편두통을 부르는 흔한 방아쇠 가운데 하나입니다.
편도체는 한 번 겪은 일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에서 긴장했고 그 뒤에 머리가 아팠던 경험이 몇 차례 반복되면, 다음부터는 그 상황이 시작되는 것만으로도 몸이 같은 대비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현관 센서등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사람이 문 앞에 완전히 다가오기도 전에 그림자만 스쳐도 불이 먼저 켜집니다. 등이 고장 난 것이 아니라 작은 움직임에도 반응하도록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몸도 이처럼 실제 상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먼저 대비할 수 있습니다.
그분의 오후도 그런 순서였습니다. 화면에 대기 건수가 쌓이기 시작하면, 아직 어려운 통화가 걸려 오지도 않았는데 목덜미부터 뻣뻣해졌습니다. 그리고 한두 시간이 지나면 오른쪽 눈 뒤가 쑤시기 시작했습니다.
약을 지니고도 돌아오는 오후 두 시
약은 발작을 견디는 데 큰 힘이 됩니다. 통증이 가라앉아야 그날 남은 일을 마칠 수 있고, 예방 목적의 약이 발작 빈도를 낮춰 주기도 합니다. 무엇이 자신의 발작과 자주 함께 나타나는지 적어 두는 일도 필요합니다. 함께 나타나는 조건을 알면 그만큼 미리 피할 수 있습니다.
다만 여기까지는 이미 시작된 통증과 눈에 보이는 유발 요인을 다루는 방법입니다. 오후 두 시가 되면 몸이 먼저 긴장하기 시작하는 순서는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분이 가방 앞주머니에 늘 약을 넣어 다닌 것도 그래서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순서는 마음을 다잡는 것만으로 바꿀 수 있을까요. 쉽지 않은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위험한지 아닌지를 가려내고 몸을 준비시키는 일은 생각으로 끼어들기 전에 이미 시작됩니다. 오늘은 긴장하지 말자고 마음먹어도 목덜미는 같은 시간에 같은 순서로 굳었습니다.
최면상담에서 살펴보는 것은 통증보다 앞서 나타나는 이런 반응입니다. 몸이 먼저 반응하기 시작하는 순간의 느낌을 따라가며, 그 반응이 언제부터 특정 상황과 함께 나타났는지 평소에는 잘 떠오르지 않는 오래된 경험과 감정에서 찾아봅니다.
부엌 소리가 빨라지던 저녁
그분과의 상담도 그 반응에서 시작했습니다. 발작이 오기 두어 시간 전이면 늘 목덜미가 조이고 정수리 언저리가 뻐근해진다고 하셨습니다.
깊은 최면에 들어가 그 조이는 느낌에 그대로 머물자 아주 오래전의 저녁이 떠올랐습니다. 아직 유치원에 가기 전으로 보이는 나이였습니다.
떠오른 곳은 손님이 오기로 한 날의 집이었습니다. 부엌에서는 냄비 뚜껑이 달그락거리고, 칼이 도마를 두드리는 소리가 점점 빨라집니다. 어른들이 주고받는 말은 짧아지고 말끝은 날카로워집니다. 조금 전까지 웃던 얼굴들에는 이제 웃음이 없습니다.
아이는 거실 한쪽 끝에서 벽에 등을 붙이고 서 있습니다. 야단을 맞은 것도 아니고 부름을 받은 것도 아닙니다. 다만 집 안의 분위기가 조금 전과 달라졌습니다. 누군가의 발소리가 가까워질 때마다 아이는 목에 힘을 줍니다. 그 긴장은 머리 위쪽까지 이어집니다.
그런 저녁은 일 년에도 몇 번씩 돌아왔습니다. 손님상이 차려지기 전 한두 시간은 늘 비슷했습니다.
어른들에게는 손님상을 차리느라 분주한 저녁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무슨 일인지 묻는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는 아이에게는 그 시간이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소리가 빨라지고 말끝이 날카로워지는 동안,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은 몸을 단단히 해 두는 것뿐이었습니다.
몸을 미리 굳혀 두는 것은 그 시간을 넘기는 가장 빠른 방법이었습니다. 이렇게 익힌 반응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손님도 없고 부엌도 조용한 지금도, 주변이 술렁이기 시작하면 예전처럼 몸이 먼저 긴장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그 저녁을 다시 겪는 동안 장면 자체가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냄비 소리도 어른들의 짧은 말도 그대로였고, 아이는 여전히 벽에 붙어 서 있었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어른이 된 그분이 아이 옆에 앉아 그 소리들이 무엇인지 하나씩 알려 주었습니다. 물이 끓는 소리, 도마를 두드리는 소리, 그릇을 옮기는 소리였습니다.
무슨 소리인지 알고 다시 들으니 몸의 반응이 달라졌습니다. 발소리가 앞을 지나가도 아이의 목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숨은 배까지 내려갔습니다. 정수리에서 뒷목으로 이어지던 뻣뻣함도 함께 풀렸습니다.
장면이 끝날 무렵 그분의 관자놀이 쪽 근육이 한 번 크게 씰룩였고, 이어 얼굴 전체가 느슨해졌습니다. 상담실을 나서면서는 손님 오던 날의 이야기가 왜 나왔는지 아직도 모르겠다고 하셨습니다.
두 시가 지나가는 오후
요즘 그분은 오후 두 시가 지나가는 것을 따로 의식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지난주에는 대기 건수가 스무 건 넘게 밀린 시간에도 통화를 하나씩 이어 갔고, 네 시가 넘어서야 물을 마시러 일어났습니다. 예전 같으면 그 시간에 계단참으로 나가 눈을 감고 앉아 있었습니다.
이달부터는 퇴근 후 일주일에 한 번 도자기 공방에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저녁 약속을 잡았다가 머리가 아파 여러 번 취소한 탓에 오래 미뤄 두었던 일입니다.
편두통이 오는 날과 오지 않는 날을 가르는 조건이 먹은 것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상황과 몸의 긴장 반응이 반복해서 이어지면, 그 상황이 시작되는 것만으로도 몸은 익숙한 반응을 되풀이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정해진 시간이 다가올수록 목덜미부터 굳고 몇 시간 뒤 한쪽 머리가 욱신거리기 시작한다면, 끊어야 할 음식을 더 찾기 전에 살펴볼 것이 있습니다. 그 시간마다 먼저 나타나는 무의식의 자동반응이 언제부터 몸에 익기 시작했는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