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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오른쪽 눈 뒤부터 시작했어요. 맥박이 뛸 때마다 거기가 같이 욱신거리는데
천장 형광등이 너무 밝아서 모니터를 제일 어둡게 내렸습니다.
옆자리 통화 소리는 귀를 긁는 것처럼 들리고, 속이 메스꺼워 화장실에 다녀왔고요.
그런데 사람들은 두통약 하나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합니다."
물류회사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는 사십 대 초반 여성분의 이야기입니다. 이런 날이 달마다 몇 번씩 돌아옵니다. 그런 날이면 오후 회의를 미루고 자료를 덮은 채 버티다가 결국 조퇴하곤 했습니다.
정작 힘든 것은 통증만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주변에서는 자신들도 머리가 자주 아프다는 말이 돌아왔습니다. 커피를 줄여 보라거나 잠을 더 자라는 조언도 이어졌습니다. 같은 말을 들을수록 자신이 별것 아닌 일에 유난을 떠는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이분이 알고 싶었던 것은 딱 하나였습니다. 자신이 겪는 것이 편두통 증상인지, 남들이 말하는 그냥 두통인지였습니다.
같은 두통이라고 하기엔 달랐던 것들
편두통 증상과 흔히 말하는 그냥 두통을 가르는 기준은 얼마나 아픈가가 아니라 어떤 식으로 아픈가입니다.
흔히 긴장성 두통은 머리 둘레를 띠로 두른 듯 양쪽이 조여 옵니다. 아프기는 해도 하던 일을 이어 갈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편두통 증상은 대개 머리 한쪽에서 시작해 맥박이 뛸 때마다 함께 욱신거립니다. 계단을 오르거나 고개를 숙이면 통증이 더 커집니다.
편두통 증상에는 통증 외에 함께 나타나는 증상도 있습니다. 평소에는 신경도 쓰이지 않던 형광등 불빛, 옆 사람 목소리, 엘리베이터 안의 향수 냄새가 그날따라 견디기 어려울 만큼 크게 느껴집니다. 속이 울렁거려 토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불을 끄고 조용한 곳으로 들어가 눕게 됩니다.
물론 이런 차이만으로 진료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살면서 겪어 본 적 없는 강도로 두통이 갑자기 시작되었거나 열이 함께 난다면 병원부터 가시는 것이 맞습니다. 한쪽 팔다리가 말을 듣지 않거나 새벽에 통증 때문에 잠에서 깨는 날이 이어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이어 가려는 이야기는 진료를 받은 뒤에도 같은 발작이 돌아오는 경우입니다.
같은 형광등인데 그날만 칼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이분에게는 한 가지 설명되지 않는 점이 있었습니다. 사무실 형광등은 늘 같은 밝기였고 옆자리 통화도 늘 그 정도 소리였습니다. 그런데 발작이 오는 날에는 그 빛과 소리를 도저히 견딜 수 없었습니다.
달라진 것은 바깥의 자극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몸의 상태였습니다.
뇌 안쪽에는 지금이 안전한지를 살피는 편도체라는 부위가 있습니다. 편도체가 위험 신호에 반응하면 우리가 판단하기 전에 몸이 먼저 대비 상태로 바뀝니다. 이때 감각 자극을 받아들이는 문턱도 함께 낮아집니다. 작은 신호도 놓치지 않으려고 반응 기준이 낮아지면 같은 빛도 더 밝게 느껴지고, 같은 소리도 더 크게 들리며, 같은 욱신거림도 더 아프게 느껴집니다.
여름에 등이 햇볕에 그을린 다음 날을 떠올려 보시면 됩니다.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은 어제와 같은 온도인데 등에 닿는 순간 따갑습니다. 물이 뜨거워진 것이 아니라 살갗이 예민해져 같은 물도 따갑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통증에 예민해진 몸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집니다.
편두통 증상에서 빛과 소리와 냄새가 유독 크게 느껴지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바깥 자극은 비슷하지만 몸이 예민해진 날에는 훨씬 강하게 느껴지고, 그런 날이 되풀이됩니다.
편두통이라는 이름을 알게 된 것은 이분에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자신이 유난을 떠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발작이 오면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병원에서 받은 약은 통증이 한창일 때 그날을 마치도록 도와줍니다. 불을 끄고 잠깐 눕는 것도 그 시간을 넘기는 데 힘이 됩니다.
다만 이런 방법은 이미 시작된 통증을 견디는 데 주로 도움이 됩니다. 아무 일도 없던 오후에 형광등이 갑자기 칼처럼 느껴지고 몸이 먼저 대비 상태로 바뀌는 흐름은 그대로 남습니다.
그렇다면 마음을 다잡으면 이런 예민함을 낮출 수 있을까요. 쉽지 않습니다. 지금 들어오는 빛과 소리를 얼마나 크게 받아들일지는 의식적으로 결정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몸에서는 우리가 판단하기 전에 자동으로 반응이 시작됩니다.
최면상담에서는 바로 이 자동반응을 다룹니다. 통증이 크게 느껴질 때 몸에서 함께 올라오는 느낌을 따라가면서, 작은 자극에도 크게 반응하는 상태가 몸에 익기 시작한 무렵의 경험과 그때 남은 감정을 살펴봅니다.
수건 모서리를 다시 맞추던 저녁
이분의 상담도 발작이 시작되기 전에 먼저 나타나는 느낌에서 시작했습니다. 오른쪽 눈 뒤가 묵직해지고 귀 위쪽이 당기기 시작하면 두어 시간 뒤에는 어김없이 욱신거림이 왔다고 하셨습니다.
깊은 최면에 들어가 그 묵직함에 집중하자 한 번도 떠올려 본 적 없던 저녁 장면이 나타났습니다. 아이는 겨우 몇 마디를 이어 말할 정도의 나이로 보였습니다.
안방 바닥에는 마른 빨래가 쌓여 있습니다. 아이는 어른 옆에 앉아 수건을 하나씩 접습니다. 접어서 옆에 올려놓으면 어른이 그것을 집어 들고 다시 펼칩니다. 모서리가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다시 접습니다. 어른은 또 펼칩니다. 이쪽 끝을 저쪽 끝에 맞추라고 손으로 눌러 가며 알려 줍니다. 목소리가 큰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말이 오래 이어집니다.
얼마 뒤부터 아이는 수건을 반으로 접기 전에 두 모서리부터 확인합니다. 손끝에 힘이 들어가고 눈이 가늘어지면서 눈썹 위부터 귀 위쪽까지 단단해집니다. 빨래가 나오는 날이면 같은 저녁이 돌아왔습니다.
어른에게는 아이에게 빨래 개는 법을 가르친 저녁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무엇을 느끼는지 아직 말로 옮기지 못하는 아이에게는 다른 것이 남았습니다. 손가락 하나 너비만 어긋나도 그냥 지나가면 안 된다는 감각이 남았고, 그 차이를 먼저 찾아내려고 몸에 힘이 들어갔습니다.
작은 차이를 먼저 알아보는 감각은 그때 그 아이에게 쓸모가 있었습니다. 어긋난 곳을 미리 찾아내면 그 저녁이 그만큼 짧아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익힌 반응은 수건이 없는 사무실에서도 이어졌습니다. 형광등의 밝기와 옆자리 목소리의 크기, 관자놀이의 작은 욱신거림까지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크게 받아들였습니다.
이분은 그 저녁으로 다시 들어갔습니다. 어른 옆에 앉은 아이에게 모서리가 조금 어긋난 것은 잘못이 아니며, 다시 접는 동안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고 짧게 일러 주었습니다.
그다음 장면은 그 저녁에 있었던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어른은 다시 수건을 펼쳤고 아이도 다시 접었습니다. 이번에는 아이가 접기 전에 모서리부터 살피지 않았고, 눈썹 위와 귀 위쪽에 힘도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어른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아이의 손끝은 급해지지 않았습니다.
그 장면이 이어지는 동안 이분의 미간에 잡혀 있던 주름은 서서히 펴졌고, 이마 전체의 힘도 풀렸습니다.
몇 해 만에 나간 동창 모임
요즘 이분은 저녁 모임에도 나갑니다. 지난달에는 몇 해째 미뤄 두었던 동창 모임에 처음 나갔다고 합니다.
조명이 밝은 고깃집이었고 옆 테이블은 내내 시끄러웠으며, 앞자리 친구에게서는 향수 냄새가 났습니다. 그런데도 이분은 자리를 옮기지도 먼저 일어나지도 않고 마지막까지 앉아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가방을 내려놓다가 그날 진통제를 한 알도 꺼내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예전에는 그런 모임에 앉아 있는 동안 가방 안쪽 주머니에 손이 몇 번씩 들어갔습니다.
편두통 증상이 유독 크게 느껴진다고 해서 참을성이 부족한 것은 아닙니다. 같은 빛과 같은 소리를 어느 정도로 받아들일지 정하는 문턱이 낮아져 있으면 몸은 같은 자극에도 크게 반응합니다. 머리가 아플 때마다 형광등이 칼처럼 느껴지고 사람 목소리가 귀를 긁는 것 같다면, 바꿔야 할 것은 두통약의 종류가 아닐 수 있습니다. 몸이 언제부터 그렇게 크게 반응하기 시작했는지, 그 무의식의 자동반응부터 들여다볼 차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