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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이 일렁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제 하루가 아닙니다.
커튼 치고 문 닫고 수건으로 눈을 덮고 누워서 약도 제때 먹습니다.
그런데 누워 있는 내내 이번엔 얼마나 갈까, 내일 출근은 되겠나 그 생각만 합니다.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에요. 아는 건 다 하는데도 이럽니다."
마흔 초반의 여성분이 상담 첫날 들려주신 이야기입니다. 초등학생 아이 둘을 키우면서 회계 사무실에 다닌다고 하셨습니다. 편두통이 심할 때는 왼쪽 관자놀이 안쪽이 쿵쿵 울리고, 주방에서 나는 음식 냄새만 맡아도 속이 뒤집힌다고 했습니다.
병원에서 편두통 진단을 받았고 처방약도 여러 번 바꿔 봤습니다. 그런데 정작 견디기 힘든 것은 통증이 한창일 때보다 그 앞뒤라고 하셨습니다. 금요일 오후에 눈앞이 일렁이면 토요일 약속부터 취소했습니다. 아이가 방문을 열고 부르는 소리에도 날카롭게 대답하게 되고, 그러고 나면 또 미안했습니다. 그런 날 저녁은 시켜 먹였고, 다음 날 오전까지 머리가 묵직했습니다.
편두통이 심할 때 가장 미안한 것은 아이와의 약속이라고 하셨습니다. 놀이공원에 가기로 한 날 아침에도, 아직 머리가 아프지 않은데 오늘은 어려울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여러 번이었습니다.
아프기도 전에 먼저 접어 두는 하루
주변에서는 스트레스를 줄이라고 했습니다. 본인도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줄일지 생각하기도 전에 편두통의 낌새가 오면 몸부터 굳어 버렸습니다. 아직 통증이 시작되지 않았는데도 약속을 취소하고 하던 일을 멈추면서, 하루를 통째로 포기하는 날이 되풀이됐습니다.
이렇게 지내다 보면 실제로 머리가 아픈 시간보다 ‘곧 아플 것 같다’는 생각에 미리 조심하며 보내는 시간이 더 길어질 수 있습니다. 통증이 올까 봐 약속을 잡지 않고, 외출을 줄이고, 해야 할 일을 미리 미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살펴봐야 할 것은 편두통의 통증만이 아닙니다. 통증이 오기도 전에 몸이 긴장하고 일상부터 멈추게 되는 반응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통증이 오기 전 몸부터 굳는 이유
몸이 이렇게 먼저 굳는 데에는 편도체가 관여합니다. 편도체는 몸에 해로운 일이 벌어지는지를 빠르게 가려내는 데 관여하는 뇌 부위입니다. 통증은 편도체가 위험으로 받아들이는 가장 분명한 신호입니다.
한 번 크게 아프고 나면 편도체는 그 통증을 위험으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비슷한 낌새만 느껴져도 몸이 곧바로 위험에 대비합니다. 목과 어깨 근육이 조이고, 호흡이 얕아지며, 온 신경이 아픈 한 군데로 쏠립니다.
문제는 이런 반응이 통증을 줄이는 쪽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근육이 조이면 머리가 받는 부담이 늘고, 통증에만 주의가 몰리면 같은 아픔도 더 크게 느껴집니다. 그렇게 통증이 커지면 몸은 다시 위험하다고 받아들여 긴장을 더 높입니다.
엉킨 매듭을 빨리 풀려고 양쪽 끝을 잡아당길 때와 비슷합니다. 매듭을 풀려고 힘을 쓰지만, 정작 매듭은 더 단단해집니다. 통증이 시작되는 순간 몸에 힘부터 들어가는 것도 이와 닮았습니다.
그렇다고 어두운 방이나 약이 소용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빛과 소리가 줄면 그만큼 자극이 줄고, 통증이 올라가는 속도도 더뎌집니다. 약 역시 이미 시작된 통증을 낮추고 발작 시간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저마다 익힌 대처법도 도움이 됩니다. 찬 수건을 관자놀이에 대는 분도 있고, 목덜미를 누르며 숨을 고르는 분도 있습니다. 이렇게 통증이 심해지는 정도를 조금이라도 낮추면 그날 일상을 덜 놓치게 됩니다.
다만 이런 방법들은 모두 통증이 시작된 다음에 쓰는 대처입니다. 낌새만으로 몸이 굳는 반응은 그보다 먼저 일어납니다. 그래서 대처법을 아무리 익혀 두어도 다음 발작의 낌새 앞에서 몸은 또 같은 방식으로 굳을 수 있습니다.
이 반응은 마음을 단단히 먹는다고 쉽게 풀리지 않습니다. 힘을 빼자고 결심하는 것은 의식이 하는 일이지만, 통증 신호 앞에서 몸이 굳는 것은 그보다 먼저 일어나는 무의식의 자동반응이기 때문입니다. 최면상담에서는 통증이 올라올 때 몸이 먼저 보이는 반응을 실마리로 삼습니다. 그 긴장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그 무렵 어떤 일을 겪었는지를 함께 살펴봅니다.
차를 타기 전부터 굳어 있던 몸
이분과의 상담에서도 출발점은 몸의 느낌이었습니다. 통증이 오기 직전이면 왼쪽 목덜미부터 뻣뻣해진다고 하셨습니다. 깊은 최면 속에서 그 느낌을 따라가자, 어린 시절 가족과 차를 타고 가던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어릴 때 이분은 차를 오래 타면 멀미를 자주 했습니다. 한 번 심하게 토하고 난 뒤부터는 차 안에서 속이 조금만 울렁거려도 몸부터 긴장했습니다. 차 냄새가 나고 배가 조금 이상해지기 시작하면 아이는 등을 좌석에 붙이고 가만히 앉았습니다. 목과 어깨에 힘을 준 채 눈을 감았고, 창밖을 보지도 않았습니다.
“얼마나 더 가?”
아이는 몇 번이고 물었습니다. 어른들은 조금만 참으면 된다고 했지만, 아이에게는 앞으로 얼마나 더 울렁거려야 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속이 더 나빠질까 봐 아무것도 먹지 않았고, 차가 멈출 때까지 온몸에 힘을 주고 버텼습니다.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자 멀리 나가는 날이면 차에 타기 전부터 걱정이 앞섰습니다. 즐거운 곳에 가는 날에도 먼저 떠오르는 것은 그날 무엇을 할지가 아니라, 또 멀미가 나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른이 된 그분은 깊은 최면중에 그 차 안에서 어린 자신 옆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지금 속이 울렁거리는 것은 힘들지만, 이 느낌이 시작됐다고 해서 앞으로 계속 더 심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멀미가 난다고 해서 오늘 하루가 모두 망가지는 것도 아니고, 지금 느끼는 불편함은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고 지나가 진다고 얘기해 주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올 일을 미리 걱정하며 온몸에 힘을 주고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고 안심시켜 주었습니다.
그런 다음 같은 자동차 여행을 다시 경험했습니다. 차는 그대로 달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속도 다시 울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는 예전처럼 “얼마나 더 가?”라고 물었고, 어른들도 조금만 참으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달라진 것은 아이가 그 순간부터 남은 시간을 모두 힘들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이었습니다.
울렁거림은 그대로 있었지만 목과 어깨에 들어가던 힘은 조금씩 풀렸습니다. 눈을 꼭 감고 다음 불편함을 기다리는 대신, 지금 느껴지는 울렁거림이 올라왔다가 달라지는 것을 그대로 느껴 보았습니다. 차가 계속 달리는 동안에도 아이는 처음 불편함이 시작됐다고 해서 그날의 모든 시간이 이미 정해진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낌새가 온 금요일 오후
요즘 그분은 눈앞이 일렁이기 시작하면 사무실 불을 한쪽만 끄고 약을 먹은 뒤 이십 분쯤 앉아 있는다고 합니다. 그러고는 하던 일을 마저 합니다. 금요일 오후에 또 그 낌새가 온 날에도 토요일 약속을 지우지 않았습니다. 아이 발표회에 갔고, 체육관 조명 아래에서 두 시간을 앉아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머리가 조금 무거웠지만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편두통이 심할 때 사람을 지치게 하는 것은 통증의 세기만이 아닙니다. 아플까 봐 미리 비워 두는 시간까지 더하면, 실제로 아픈 날보다 대비하며 보내는 날이 훨씬 많아집니다. 달력에 약속을 적으면서 그날 머리가 아플지부터 셈하고 계신다면, 먼저 볼 것은 발작을 견디는 요령만이 아닙니다. 통증이 오기도 전에 몸부터 굳어 버리는 반응이 언제 몸에 익었는지를 함께 살펴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