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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에 두 알, 차 수납함에 두 알, 카운터 서랍에 한 통 있습니다.
나갈 때 약이 없으면 그것부터 불안해요.
어제도 오후 세 시쯤 정수리가 눌리듯 무거워지더니 눈 뒤가 뻑뻑해졌습니다.
손님 머리를 감기다 말고 서랍부터 열었고요. 이렇게 계속 먹어도 되나 싶은데
안 먹으면 그날 예약을 못 끝냅니다."
미용실을 이십 년 가까이 해 오신 오십 대 초반 여성분이 상담 첫날 하신 말씀입니다. 머리가 아플 때 진통제를 챙겨 먹기 시작한 것은 삼십 대부터였다고 합니다. 그때는 한 달에 한두 번이었는데, 요즘은 일주일에 서너 번 약통을 엽니다.
주변에서는 약을 좀 줄이라고 합니다. 본인도 줄이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다만 예약이 줄줄이 잡힌 날 두통이 시작되면 중간에 손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손님을 앉혀 놓고 아파서 못 하겠다는 말을 하지 못해, 결국 물 없이 한 알을 삼키고 가위를 다시 듭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약은 먹을 때마다 잘 듣는데, 아픈 날은 해마다 늘었습니다. 잘 듣는 약을 꼬박꼬박 먹는데 왜 아픈 날은 줄지 않을까요.
여기서 먼저 확인할 것이 있습니다. 벼락이 치듯 갑자기 시작된 두통이거나, 늘 겪던 두통과 양상이 달라졌거나, 열이 나고 말이 어눌해지거나 팔다리에 힘이 빠진다면 병원 진료가 먼저입니다. 진통제를 드시는 날이 눈에 띄게 늘었다면, 복용 횟수도 진료 때 함께 확인해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이 글에서 다루는 것은 검사에서 큰 이상이 나오지 않았는데도 두통이 되풀이되는 경우입니다.
약을 꺼내는 순간
한번 떠올려 보시면 됩니다. 최근 약을 먹었던 날들 가운데는 머리가 아파서 먹은 날도 있었겠지만, 아직 아프지 않은데 “오늘은 바쁘니까 미리 먹어 둬야겠다” 하고 먼저 한 알을 챙긴 날도 있었을 수 있습니다.
그분도 예약이 많은 토요일이면 미용실 문을 열기 전에 진통제부터 먹곤 했습니다. 두통이 시작되면 손님에게 아프다고 말하고 쉬거나 예약을 미루기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약을 미리 먹는 것은 통증을 줄이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파도 내색하지 않고 그날 일을 끝까지 버티기 위한 준비가 되기도 합니다. 그분에게 진통제는 두통이 생긴 뒤에 먹는 약을 넘어,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고 하루를 넘기기 위해 먼저 챙기는 것이 되어 있었습니다.
신발 안에 든 작은 돌
긴장은 우리가 알아차리기 전에 몸에서 먼저 시작됩니다. 뇌 안쪽의 편도체가 위험하다고 판단하면, 우리가 미처 생각하기도 전에 근육에 힘이 들어갑니다. 이때 턱과 목, 머리를 덮은 근육도 함께 조여집니다. 이런 조임이 오래 이어지면 그 자체가 통증이 됩니다.
진통제는 이렇게 생긴 통증이 뇌로 전해지는 신호를 줄여 줍니다. 그래서 약을 먹으면 눌리던 느낌이 옅어지고 남은 일을 마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약이 줄여 주는 것은 이미 생긴 통증 신호입니다. 통증을 만들어 낸 근육의 조임과, 그렇게 힘이 들어가게 한 긴장은 그대로 남습니다.
신발 안에 작은 돌이 들어간 채로 하루를 걷는 사람을 떠올려 보시면 됩니다. 발이 쓸려 아프면 저녁에 반창고를 붙입니다.
반창고 덕분에 다음 날도 걸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돌은 신발 안에 그대로 있어서, 하루가 끝날 때쯤이면 같은 곳이 또 쓸립니다.
그분도 약을 먹고 두어 시간이면 다시 가위를 들 수 있었습니다. 다만 마지막 손님을 보내고 거울 앞을 정리할 때쯤이면 뒷목과 턱이 어느새 다시 굳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긴장은 마음을 고쳐먹는다고 없어질까요. 아프지 말자고 다짐한다고 통증이 오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아플 때 몸에 힘부터 들어가는 반응은 스스로 고른 대처가 아니라, 생각하고 판단하기 전에 먼저 나오는 무의식의 자동반응이기 때문입니다. 최면상담에서 다루는 것이 바로 이 자동반응입니다. 두통이 시작되기 직전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그때 드는 감정을 따라가면서, 같은 반응이 처음 익었을 무렵의 경험과 감정까지 다룹니다.
문틈에 낀 손가락
그분의 상담도 이 자동반응을 살펴보는 데서 시작했습니다. 머리가 무거워지기 직전이면 턱 안쪽부터 뻣뻣해진다고 하셨습니다. 깊은 최면 상태에서 그 뻣뻣함을 따라가자, 평소에는 떠올려 본 적 없는 집 안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아이는 몇 마디씩 말을 이어 하기 시작할 무렵으로 보였습니다. 마루에서 놀던 아이가 방문을 여닫다가 문틈에 손가락이 끼입니다. 아이는 손을 감싸 쥐고 주저앉아 웁니다.
부엌에 있던 어른이 젖은 손을 앞치마에 닦으며 나옵니다. 끼인 손가락을 한 번 보고는 말합니다. 그 정도는 참아라, 엄살 부리지 마라. 그러고는 다시 부엌으로 들어갑니다.
아이는 울음을 삼킵니다. 숨을 크게 들이켜고 턱에 힘을 줍니다. 아픈 손은 등 뒤로 감춥니다. 손가락은 그대로 욱신거리지만, 얼굴에서는 아픈 표정이 사라집니다.
어른에게는 지나가는 한마디였을 겁니다. 하지만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아직 말로 옮기기 어려운 아이에게는 그 말이 다르게 남았습니다. 아프다고 하면 안 된다는 것, 아픈 티를 내지 않으려면 몸에 힘을 주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날이 한 번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어른이 된 뒤에도 그 방식은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머리가 아파 오면 먼저 티가 나지 않게 턱과 목에 힘을 줍니다. 그렇게 힘을 주는 동안 조임은 더 심해지고 통증도 함께 무거워집니다. 약은 그 통증을 눌러 주었지만, 아프다는 말을 삼키느라 몸에 힘을 주는 반응까지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그분은 최면 속에서 그 마루 장면으로 돌아가 아이 옆에 앉았습니다. 손가락이 정말 많이 아팠던 게 맞다고, 아파서 운 것은 엄살이 아니었다고 아이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 일을 처음부터 다시 겪었습니다. 손가락이 문틈에 끼이고, 어른은 똑같이 참으라는 말을 남기고 부엌으로 들어갑니다. 아이는 이번에도 손을 등 뒤로 감췄습니다. 다만 들이켜던 숨을 삼키지 않고 그대로 내쉬었고, 턱에 들어가던 힘이 풀렸습니다. 손가락은 여전히 아팠지만 어깨까지 굳지는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예약이 다섯 건 잡힌 토요일
최면상담을 받으신 후에도 이분의 바쁜 일상은 그대로였다고 합니다. 토요일이면 여전히 예약이 다섯 건씩 잡혔습니다. 지난주에도 오후 네 시쯤 정수리가 무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그 신호가 오는 순간 아무 말 없이 카운터 서랍을 열어 진통제부터 꺼냈을 상황이었습니다. 이번에는 마지막 예약 손님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머리가 아파서 그런데, 다음 주로 옮겨도 괜찮으실까요?”라고 물었습니다. 손님은 괜찮다고 했고, 그날 미용실 문은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닫혔습니다.
약을 아예 끊은 것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필요할 때는 여전히 진통제를 드신다고 합니다. 하지만 요즘은 머리가 아픈데도 아무렇지 않은 척 끝까지 버티지는 않는다고 하십니다.
오늘도 머리가 아픈데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약부터 꺼내고 계신다면, 단순히 참을성이 많은 성격 때문만은 아닐 수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익숙해진 반응이 지금도 통증이 올 때마다 먼저 나타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몸에 밴 자동반응은 마음먹는다고 쉽게 사라지지는 않지만, 언제부터 이런 반응이 시작됐는지 살펴보고 그때의 경험과 감정을 다시 다루면 달라질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