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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에서 전기가 한 번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정수리 왼쪽에서 시작해 귀 뒤까지 순식간에 지나가요.
어제는 수업하다 분필을 집는데 왔고, 밤에 불 끄고 누우면 더 자주 옵니다.
큰 병원에서 검사까지 받았는데 이상이 없다고 합니다. 아무 이상이 없다는데 저는 왜 매일 이걸 느낄까요."
학원에서 중학생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마흔두 살 남성분이 처음 상담실에서 꺼낸 말입니다. 머리가 찌릿찌릿한 느낌이 시작된 것은 이 년쯤 전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어쩌다 한 번 스쳐 지나가는 정도였지만, 지난겨울부터는 하루에도 몇 번씩 느껴졌다고 합니다.
알아볼 수 있는 것은 다 알아봤습니다. 동네 의원을 거쳐 큰 병원까지 갔고, 검사 결과는 이상이 없었습니다. 검색창에는 '머리가 찌릿찌릿'이라는 말을 수십 번 넣어 봤습니다. 목에서 오는 문제라는 글도 있고, 신경 탓이라는 글도 있고, 별것 아니니 신경 쓰지 말라는 답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시간을 되짚어 보니 앞뒤가 잘 맞지 않았습니다. 몸을 많이 쓴 날이라고 더 잦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칠판 앞에서 한 시간 내내 수업하는 동안에는 한 번도 오지 않다가, 수업이 끝나고 혼자 책상에 앉으면 그때부터 한 번씩 왔습니다. 밤에 불을 끄고 누웠을 때가 가장 잦았습니다.
밤에만 크게 들리는 냉장고 소리
이 차이를 이해하려면 감각이 어떻게 더 크게 느껴지는지부터 봐야 합니다. 우리 몸에서는 늘 작은 감각들이 오갑니다. 두피가 당기는 느낌, 귀 뒤가 스멀거리는 느낌 같은 것들입니다. 대부분은 알아차리지도 못한 채 지나갑니다.
그런데 뇌 안쪽에 있는 편도체가 그중 어떤 감각을 위험 신호로 읽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편도체는 지금 상황이 안전한지 위험한지를 빠르게 판단하는 부위입니다.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그 감각에 주의가 쏠립니다. 감각의 크기가 그대로여도 주의가 쏠리면 훨씬 또렷하게 느껴집니다.
한밤중의 냉장고 소리를 떠올려 보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냉장고는 낮에도 밤에도 같은 소리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낮에는 들리지도 않던 소리가 잠이 오지 않는 밤에 귀를 기울이면 방을 다 채울 만큼 크게 들립니다. 소리가 커진 것이 아니라 그 소리에만 주의를 기울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머리가 찌릿찌릿한 느낌도 이처럼 더 크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한 번 크게 느끼고 놀라면 더 자주 살피게 되고, 살필수록 그 감각을 더 자주 알아차리게 됩니다. 수업 중에는 괜찮다가 혼자 앉거나 누웠을 때 유독 잦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물론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확인해야 합니다. 찌릿한 느낌이 한쪽에만 계속 머무르거나, 그 부위의 감각이 둔해지거나, 팔다리에 힘이 빠지거나, 말이 어눌해진다면 병원 진료가 먼저입니다. 이 글이 다루는 것은 그런 신호 없이 찌릿함만 되풀이되는 경우입니다.
잊으려 해도 자꾸 머리에 손이 갔습니다
잊으려 해도 자꾸 머리에 손이 갔습니다
지난 한 주를 한번 되짚어 보면 단서가 보일 수 있습니다. 일에 몰두하거나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에도 찌릿함이 자주 느껴졌는지, 아니면 혼자 있을 때 ‘오늘 머리는 괜찮은가’ 하고 살피는 순간에 더 자주 느껴졌는지 떠올려 보는 것입니다. 찌릿함이 주로 머리 상태를 확인할 때 더 잘 느껴졌다면, 원래 스쳐 지나가던 작은 감각에 주의가 쏠리면서 이전보다 더 또렷하게 느껴지고 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것만으로 원인을 판단할 수는 없지만, 왜 자꾸 그 감각에 신경이 쓰이는지는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분도 머리에 신경을 덜 쓰려고 여러 번 노력했습니다. 검색을 끊어 보기도 하고, ‘이제 신경 쓰지 말자’고 마음먹기도 했습니다. 몇 달에 한 번씩 다시 병원을 찾아 큰 문제가 없다는 것도 확인했습니다. 진료를 받고 나온 날에는 마음이 놓였지만, 며칠이 지나면 어느새 다시 머리에 손이 올라갔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마음을 놓으려면 지금 머리가 어떤지 먼저 확인하고 싶었고, 확인하는 순간 다시 그 감각에 주의가 쏠렸습니다. 안심하려고 한 행동이 오히려 머리 상태를 계속 살피게 만드는 일이 되풀이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어떤 감각은 그냥 지나가는데, 어떤 감각은 자꾸 위험하게 느껴질까요. 무엇을 위험하다고 받아들일지는 생각으로 정하는 것보다 훨씬 먼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경 쓰지 말아야지’ 하고 마음먹는 것만으로는 쉽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최면상담에서는 머리가 찌릿할 때 함께 올라오는 몸의 느낌과 감정을 살펴보고, 비슷한 반응이 언제부터 익숙해졌는지 관련된 과거의 경험과 감정까지 함께 다룹니다.
저녁마다 이마를 짚던 손
그분의 상담도 찌릿함과 함께 올라오는 느낌에서 시작했습니다. 찌릿함이 지나가면 뒷목이 서늘해지고 숨이 얕아진다고 하셨습니다. 최면이 깊어진 상태에서 그 느낌에 집중하자, 어린 시절 집 안에서 있었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아이는 집 안에서 뛰어다니다가 미끄러져 뒤통수를 바닥에 부딪혔습니다. 크게 울자 어른이 놀라 달려왔습니다. 머리를 이리저리 만져 보고는 몇 번이나 물었습니다.
“머리 아파? 어지럽지는 않아?”
그날 저녁에도 어른은 아이의 머리를 만져 보며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잠들기 전에도 한 번 더 확인했습니다. 다음 날에도 아이가 머리를 만지고 있으면 어디가 아픈지, 이상한 느낌은 없는지 물었습니다.
어른에게는 혹시 모를 일을 살피기 위한 행동이었지만, 아이는 그때부터 자기 머리에 자꾸 신경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가만히 있다가 두피가 조금 당기는 것 같으면 손으로 만져 보고, 순간적으로 이상한 느낌이 스치면 조금 전에도 그랬는지 다시 생각해 봤습니다.
밤에 누우면 더 심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니 머리에서 느껴지는 작은 감각들이 더 잘 느껴졌습니다. 아이는 눈을 감고도 뒤통수와 정수리 쪽에 이상한 느낌이 없는지 살폈습니다. 별다른 느낌이 없으면 안심했다가도, 무언가 조금만 느껴지면 다시 손이 머리로 올라갔습니다.
그분은 깊은 최면 속에서 그 아이 곁에 앉았습니다. 머리를 부딪혀 놀랐던 것은 맞고, 어른이 자꾸 확인했던 것도 아이의 몸에 큰일이 생겼다는 뜻이 아니라 걱정이 되어 살펴본 것이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몸에서는 잠깐 당기거나 간질거리거나 이상하게 느껴지는 작은 감각들이 생겼다가 사라질 수 있고, 그런 느낌을 하나하나 찾아내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런 다음 같은 저녁을 다시 경험했습니다. 어른은 똑같이 다가와 머리를 만져 보고 “아픈 데 없어? 어지럽지는 않아?”라고 물었습니다. 잠들기 전에도 다시 한번 머리를 확인했습니다.
달라진 것은 아이가 받아들이는 방식이었습니다. 어른이 머리를 만졌다고 해서 곧바로 자기 머리 안에서 이상한 느낌을 찾아보지 않았습니다. 잠자리에 누워 작은 감각이 스쳐도 그 느낌이 무엇인지 확인하려고 머리에 손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잠깐 느껴졌다가 지나가면 그대로 두었습니다.
하천을 한 바퀴 돌고 온 토요일
요즘 그분은 수업이 끝난 뒤 곧장 집으로 들어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퇴근하자마자 방에 들어가 불을 끄고 누웠습니다. 그 시간이 하루 중 머리 상태를 가장 자주 확인하던 때였습니다.
지난 토요일에는 초등학생 아들과 자전거를 타고 하천을 한 바퀴 돌았다고 합니다. 두 시간 가까이 페달을 밟고 돌아와 늦은 점심을 함께 먹었고, 다음 주에도 같이 가기로 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주말 낮에도 방에 누워 오늘은 몇 번이나 왔는지 세고 있었을 시간입니다.
머리가 찌릿찌릿한 느낌은 몸이 없던 감각을 새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늘 오가던 작은 감각이 위험 신호로 받아들여지면서 더 크게 느껴진 것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위험하다고 받아들일지 정하는 반응은 마음먹는다고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오늘 밤에도 불을 끄고 누운 채 머리 어디가 또 찌릿하는지 세고 계신다면, 세는 횟수보다 먼저 살펴볼 것이 있습니다. 그 감각을 위험으로 받아들이는 반응이 언제부터 몸에 익었는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