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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관자놀이만 며칠째 계속 뻐근합니다.
오른쪽은 괜찮은데 한쪽만 계속 이러니까 혹시 큰 병의 신호는 아닌가 자꾸 겁이 납니다.
어젯밤에도 누웠다가 불안해서 다시 일어나 거울을 봤습니다.
입꼬리가 한쪽만 처진 건 아닌지 보고, 왼팔에 힘이 빠지지는 않는지 몇 번이나 확인했습니다.
그러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검색을 계속하다 보니 새벽 두 시가 됐습니다.”
오십 대 초반의 여성분이 첫 상담에서 들려주신 이야기입니다. 왼쪽 머리가 아프기 시작한 지는 반년쯤 됐고, 그동안 병원 두 곳에서 진료를 받고 머리 촬영까지 했다고 합니다. 검사에서는 특별한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통증은 계속됐습니다. 특히 오른쪽은 괜찮은데 왼쪽만 반복해서 아프다 보니, 통증이 올 때마다 혹시 큰 병의 신호는 아닐까 하는 걱정이 다시 올라왔습니다. 검색창에 ‘왼쪽 머리 통증’을 입력하면 목이나 어깨 근육 때문일 수 있다는 글도 있었고, 한쪽만 아프면 검사를 받아 봐야 한다는 글도 있었습니다. 이미 검사를 받고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들은 뒤라 오히려 무엇을 믿어야 할지 더 혼란스러웠다고 합니다.
물론 두통이 갑자기 매우 심하게 시작되거나, 팔다리에 힘이 빠지고 말이 어눌해지거나 시야에 이상이 생기는 증상이 함께 나타난다면 병원 진료가 먼저입니다. 이 글에서 다루는 것은 필요한 진료와 검사를 마쳤는데도 같은 쪽의 통증이 반복되고, 그때마다 불안과 확인이 함께 따라오는 경우입니다.
이럴 때는 통증이 시작된 뒤 자신이 가장 먼저 무엇을 하는지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아픈 부위를 계속 만지는지, 거울을 보는지, 몸의 다른 곳까지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는지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확인한 뒤 마음이 놓이고 통증도 줄어드는지, 오히려 더 신경 쓰이고 통증이 또렷해지는지도 함께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분이 가장 먼저 한 일은 거울 앞에 서는 것이었습니다. 입꼬리가 처지지는 않았는지, 얼굴 한쪽이 이상해 보이지는 않는지 확인하고 나면 안심이 되기보다 오히려 왼쪽 머리 통증이 더 또렷하게 느껴졌다고 하셨습니다.
왼쪽 앞바퀴에서만 나는 소리
우리 뇌에는 지금 상황이 위험한지 빠르게 살피는 데 관여하는 부위가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편도체입니다. 위험하다고 느끼면 우리가 미처 생각하기도 전에 몸이 긴장하고, 문제가 있다고 느낀 곳으로 주의가 쏠립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얼마나 아픈지만이 아닙니다. 그 통증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도 몸의 반응에 영향을 줍니다. 같은 뻐근함이라도 “어제 오래 앉아 있어서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할 때와, “왜 하필 한쪽만 아프지?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라고 걱정할 때 몸의 반응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차를 몰다가 왼쪽 앞바퀴에서 처음 듣는 소리가 난다고 생각해 보면 쉽습니다. 그 순간부터 운전하는 내내 그쪽 소리에 귀가 갑니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쳤을 작은 소리까지 들리고, 혹시 문제가 생길까 봐 몸에도 저절로 힘이 들어갑니다. 정비소에서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들으면 한동안 안심합니다. 하지만 며칠 뒤 같은 소리가 다시 들리면 또 귀가 그쪽으로 갑니다. 소리가 갑자기 더 커졌다기보다, 그 소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계속 신경을 쓰게 되는 것입니다.
한쪽 머리 통증도 비슷할 수 있습니다. “또 왼쪽이 아프다”는 생각에 걱정이 커지면 목과 두피에 힘이 들어가고, 아픈 곳에 주의가 더 쏠립니다. 그러면 통증은 더 또렷하게 느껴지고, 또렷해진 통증은 다시 “역시 뭔가 이상한가 봐”라는 걱정을 불러옵니다. 병원에서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들은 날에는 마음이 놓이고 통증도 덜 신경 쓰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같은 쪽이 다시 뻐근해지면 걱정도 다시 시작됩니다. 검사 결과를 몰라서가 아니라, 통증이 나타나는 순간 몸이 먼저 위험 신호처럼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할머니의 한쪽 팔이 움직이지 않던 아침
큰 병이 아니라고 아무리 스스로 되뇌어도, 같은 쪽 머리가 다시 아프면 걱정이 금세 돌아올 수 있습니다. 몸이 위험하다고 받아들이는 반응은 생각으로 따져 보기 전에 먼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최면상담에서는 통증이 시작될 때 함께 올라오는 감정과 몸의 반응을 따라가며, 비슷한 두려움이 언제부터 익숙해졌는지를 살펴봅니다. 그분은 왼쪽 관자놀이가 뻐근해지기 직전이면 명치 아래가 서늘해지고 숨이 짧아진다고 하셨습니다. 깊은 최면 속에서 그 느낌을 따라가자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아침이었습니다. 아이가 방에서 나오는데 식구들이 안방에 모여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이불 위에 앉아 있었고, 한쪽 팔을 제대로 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어른 한 사람이 할머니에게 웃어 보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은 양팔을 들어 보라고 했습니다. 얼굴 한쪽이 이상한 것 같다는 말과 빨리 병원에 가야 한다는 말이 오갔습니다. 조금 전까지 평범했던 집 안이 순식간에 다급해졌습니다. 아이는 방문 옆에 서서 그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할머니가 어디가 얼마나 아픈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다만 몸의 한쪽이 평소와 다르면 갑자기 큰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만은 강하게 남았습니다.
그 뒤로 아이는 자기 몸의 한쪽에서 이상한 느낌이 들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습니다. 한쪽 팔이 저린 것 같으면 양팔을 번갈아 움직여 보고, 얼굴 한쪽이 이상하게 느껴지면 거울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별일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습니다.
깊은 최면 속에서 어른이 된 그분은 그날의 아이 곁에 섰습니다. 할머니에게 실제로 치료가 필요한 일이 생긴 것은 맞지만, 몸의 한쪽에서 느껴지는 모든 통증이나 이상한 느낌이 그런 큰일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몸에서는 한쪽 어깨가 뻐근하거나 한쪽 머리가 아픈 것처럼 여러 가지 감각이 생겼다가 지나갈 수 있고, 그때마다 얼굴과 팔을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고 안심시켜 주었습니다. 그런 다음 같은 아침을 다시 경험했습니다. 할머니는 그대로 한쪽 팔을 잘 들지 못했고, 어른들도 똑같이 급하게 움직였습니다. 아이도 그 모습을 그대로 보았습니다.
달라진 것은 아이가 그 장면을 받아들이는 방식이었습니다. 할머니에게 일어난 한 번의 큰일을 자기 몸에서 느껴지는 모든 한쪽 감각과 연결하지 않았습니다. 어른들의 다급한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자신의 얼굴과 팔까지 확인하지 않았고, 명치에 들어가던 힘도 조금씩 풀렸습니다.
병원 위치를 찾아 두지 않은 사흘
최면상담을 받은 뒤에도 왼쪽 머리 통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지난주에도 저녁이 되자 관자놀이가 뻐근해졌습니다. 예전 같으면 곧바로 휴대전화를 들고 증상을 검색하거나 거울부터 봤을 텐데, 그날은 그대로 불을 끄고 누웠다고 합니다.
지난달에는 딸이 사는 도시에 이박 삼일 다녀오셨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여행을 가면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근처 큰 병원부터 찾아 두곤 했습니다. 이번에는 그러지 않으셨답니다. 가방에 진통제를 챙겨 가기는 했지만,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는 사실도 집에 돌아와 짐을 풀면서 알았다고 합니다.
달라진 것은 통증이 왔을 때의 반응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왼쪽 머리가 뻐근해지는 순간부터 ‘혹시 큰일은 아닐까’ 하며 몸 여기저기를 확인하고 걱정을 키웠습니다. 이제는 통증이 느껴져도 곧바로 위험한 신호라고 받아들이지 않게 된 것입니다.
한쪽 머리가 아플 때 불안해지는 것은 통증이 세기 때문만은 아닐 수 있습니다. ‘한쪽만 아프다’는 사실을 위험 신호로 받아들이는 순간, 몸은 긴장하고 아픈 곳에 주의가 더 쏠리게 됩니다.
오늘 밤에도 관자놀이가 뻐근해 거울 앞에 서거나 몸 여기저기를 확인하고 계신다면, 통증 자체와 함께 한 가지를 더 살펴볼 수 있습니다. 언제부터 몸의 작은 이상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큰일인지 확인해야 하는 신호로 받아들이게 되었는가입니다. 이런 반응은 마음먹는다고 쉽게 사라지지는 않지만, 그 반응이 시작된 경험과 그때의 감정을 다시 살펴보고 다루게 되면 달라질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