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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고 숨이 안 쉬어져요. 손발이 저리고 머리가 핑 도는 게
이러다 죽거나 미쳐 버릴 것 같은데, 응급실에 가면 다 정상이래요.
대체 제 몸이 어떻게 된 걸까요?”
이런 두려움을 안고 센터를 찾아오시는 분이 적지 않습니다. 한밤중에 자다가, 길을 걷다가, 혹은 가만히 쉬다가도 예고 없이 그 느낌이 덮쳐 옵니다. 심장이 마구 뛰고 숨이 턱 막히면서, 정말로 심장이 멎거나 숨이 끊길 것 같은 공포가 온몸을 휩쌉니다. 너무 무서워 심장이나 폐에 큰 병이 생긴 줄 알고 병원을 찾지만, 심전도도 엑스레이도 한결같이 깨끗하다는 말만 돌아옵니다. 그러고 나면 ‘몸은 멀쩡하다는데 나는 왜 이러지’ 하며 더 막막해지곤 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까지 죽을 것 같은데, 정말 아무 위험도 아니라는 걸까요. 그리고 검사가 다 정상이라면, 이 끔찍한 감각은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요.
그 증상의 정체는 뇌가 울린 비상 경보입니다
우리 뇌 깊은 곳에는 위험을 감지하는 ‘편도체’라는 장치가 있습니다. 편도체는 위급한 상황이라고 판단하면 한순간에 비상 명령을 내려, 심장을 빠르게 뛰게 하고 숨을 몰아쉬게 하며 온몸에 피를 돌려 당장 싸우거나 달아날 수 있도록 몸을 깨웁니다. 공황발작 때 심장이 쿵쾅대고 숨이 차오르며 손발이 저리고 어지러운 것도, 바로 이 비상 명령이 한꺼번에 작동한 결과입니다.
말하자면 자동차의 에어백과 비슷합니다. 에어백은 충돌하는 순간 운전자를 지키려고 굉장한 힘으로 터집니다. 그 격렬함만 보면 차가 부서진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사람을 살리려는 보호 장치가 제대로 작동한 것이지요. 공황발작의 그 요란한 증상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이 망가졌다는 신호가 아니라, 나를 지키려는 비상 장치가 힘껏 켜진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강렬해도 그 자체로 심장을 멎게 하거나 정신을 잃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비상 반응은 오래 이어질 수 없어서, 길어도 얼마 지나지 않아 절정을 지나 차츰 가라앉습니다.
다짐으로도 약으로도 그 자리엔 닿지 못합니다
어려움은 진짜 위험이 없는데도 이 비상 장치가 켜진다는 데 있습니다. 게다가 편도체는 우리가 의식적으로 다룰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의식 아래 무의식의 자리에서 움직입니다. 그래서 머리로 ‘괜찮아, 죽지 않아’라고 아무리 타일러도 다짐만으로는 좀처럼 멈춰지지 않습니다. 이 비상벨을 가라앉히는 데 약이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다만 약은 예민해진 편도체를 진정시켜 줄 뿐, 편도체가 애초에 왜 그토록 쉽게 죽음의 경보를 울리게 됐는지, 그 속사정까지 바꿔 주지는 않습니다.
비상벨이 처음 울린 순간을 찾아 내려갑니다
그렇다면 내 편도체는 왜 이렇게까지 쉽게 죽음의 경보를 울리게 된 걸까요. 최면상담에서는 바로 이 물음을 들고, 의지로는 닿지 않는 무의식의 자리로 내려가 그 비상벨이 처음 울리기 시작한 순간을 찾아봅니다. 앞서 응급실을 오가던 그분도, 숨이 막히고 사라질 것 같던 그 느낌의 끝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한 장면과 마주했습니다.
지금의 발작과는 아무 상관도 없어 보이는, 말도 채 트이기 전 아주 어린 시절의 한순간이었습니다. 두툼한 이불에 얼굴이 파묻혀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는데, 작은 팔다리로 아무리 버둥거려도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곁에서 알아채는 이도 없었습니다. 그 어린아이는 그 순간 ‘숨이 막혀 이대로 사라져 버린다’는 원초적인 공포에 통째로 사로잡혔습니다. 풀려나지 못한 그 두려움이 몸 깊이 새겨졌습니다. 그래서 어른이 된 지금도 심장이 조금만 빨리 뛰거나 숨이 가빠지면, 그때의 죽음 같은 공포가 그대로 되살아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죽을 것 같은 그 감각이 정작 심장이나 폐가 아니라 까맣게 잊은 먼 옛날의 한순간에서 비롯되는 일은 드물지 않습니다. 본인조차 그 둘이 이어져 있다고는 생각지 못하니, 애먼 검사만 거듭하거나 마음이 약한 탓이라 여기며 자신을 몰아세우게 됩니다.
이제는 경보가 울려도 일상을 이어 갑니다
깊은 최면 속에서 어른이 된 지금의 그분이 그 시절의 어린 자신에게 다가가, 이제는 숨 쉴 수 있고 안전하다고 다독여 주자 비로소 그 오래된 공포가 풀려 가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뒤 가슴이 두근대고 숨이 차오르는 순간이 또 한 번 찾아왔습니다. 예전 같으면 곧장 응급실로 달려갔을 그 느낌 앞에서, 이번엔 잠시 숨을 고르며 ‘아, 또 그 경보가 울리는구나’ 했다고 합니다. 그러고는 그대로 하던 일을 이어 가셨습니다.
공황발작 증상을 잠시 누르는 것이 아니라, 그 비상벨이 처음 울리기 시작한 자리에 다가가 회복을 돕는 길이 있습니다. 오래 끌어온 어려움이라도 그 뿌리를 따라가 풀어 가다 보면, 한 달 안팎에 한결 편해지시는 분이 많습니다. 죽을 것처럼 무섭던 그 감각 앞에서 늘 마음 졸이며 살아오셨다면, 그토록 요란하게 울리는 경보에도 분명 그럴 만한 까닭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