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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두 시쯤이면 어김없이 깹니다.
오른쪽 눈 뒤를 송곳으로 쑤시는 것 같고, 그쪽 눈에서만 눈물이 나고 코가 막힙니다.
누워 있지를 못해서 방 안을 왔다 갔다 하거나 벽에 이마를 대고 서 있어요.
한 시간쯤 지나면 거짓말처럼 가라앉는데, 다음 날은 그 시간이 가까워지는 것만으로 손발이 차가워집니다."
공방에서 가구를 만드는 사십 대 중반 남성분의 이야기입니다. 이런 밤이 삼 주째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처음 겪는 일도 아니었습니다. 몇 해째 가을이 깊어질 무렵이면 비슷한 발작이 몇 주씩 되풀이되었습니다.
신경과에서 받은 진단은 군발성 두통이었습니다. 발작이 시작됐을 때 쓰는 치료와 군발기 동안 발작을 줄이기 위한 치료를 함께 받고 있었습니다.
정작 견디기 힘든 것은 아프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 벌써 어깨에 힘이 들어갔습니다. 저녁 약속은 미리 취소했고, 군발기가 시작되면 주문받은 일을 뒤로 미룬 채 공방 문을 일찍 닫았습니다.
먼저 짚고 갈 것이 있습니다. 한쪽 눈 뒤가 찌르듯 아픈 통증이 되풀이된다면 군발성 두통인지 신경과에서 확인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겪어 본 적 없는 두통이 벼락처럼 시작되거나, 열이나 구토가 함께 오거나, 팔다리에 힘이 빠지거나 말이 어눌해진다면 곧바로 병원으로 가야 합니다.
이 글은 군발성 두통의 원인을 심리적인 문제로 설명하려는 글이 아닙니다. 진단을 받고 치료를 이어 가는 동안에도 남을 수 있는 공포와 무력감, 그리고 아프지 않은 시간까지 이어지는 긴장을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스스로 살펴볼 단서가 하나 있습니다. 발작이 오지 않은 날의 저녁을 며칠만 지켜보시면 됩니다. 아직 아프지 않은데도 평소 발작 시각이 가까워지면 몸이 먼저 굳고, 약속을 미루고, 시계를 자꾸 보게 되는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시간에는 통증뿐 아니라 통증을 기다리는 긴장도 함께 자리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의학적인 구분 기준은 아닙니다. 다만 신경과 치료와 별개로 어떤 반응을 함께 살펴볼 수 있는지 가늠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아프지 않은 저녁부터 몸이 굳는 이유
군발성 두통이 왜 생기는지를 심리반응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극심한 통증이 비슷한 시간대에 되풀이되면, 몸은 통증이 오기 전부터 그 시간을 경계하게 될 수 있습니다. 해가 지거나 평소 발작 시각이 가까워졌다는 사실만으로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손발이 차가워지는 식입니다.
이때 힘든 것은 통증 자체만이 아닙니다. “시작되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무력감이 함께 커지면, 아직 발작이 오지 않은 시간까지 긴장 속에서 보내게 됩니다.
한밤중에 갑자기 정전이 됐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손전등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으면 잠깐 불편해도 할 일이 있습니다. 반대로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어둠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끼면 같은 몇 분도 훨씬 길고 무섭게 느껴집니다. 어둠이 더 짙어진 것이 아니라, 내가 손쓸 수 없다는 느낌이 달라진 것입니다.
통증도 이와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통증의 강도가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극심한 통증이 시작되는 순간 “이번에도 끝날 때까지 꼼짝없이 당해야 한다”는 생각과 몸의 긴장이 함께 올라오면, 그 한 시간을 겪는 부담은 더 커질 수 있습니다.
마음을 다잡아도 몸이 먼저 반응할 때
이런 반응은 다짐만으로 잘 바뀌지 않습니다. 오늘은 겁내지 말자고 생각해도 저녁이 되면 어깨가 굳고, 발작이 시작되면 몸은 이미 긴장해 있습니다. 머리로 상황을 판단하기 전에 몸에서 먼저 나오는 자동반응이기 때문입니다.
최면상담에서는 발작 자체를 심리적으로 없애려는 것이 아니라, 통증을 기다리는 시간과 통증이 시작될 때 함께 켜지는 두려움·무력감·몸의 반응을 짚어 봅니다. 그 반응을 따라가다 보면 지금과 비슷한 방식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꼈던 오래된 경험이 떠오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닫힌 안방 문 앞에서 기다리던 아이
이분은 발작이 시작되기 직전에 가슴 한가운데가 먼저 조여 온다고 하셨습니다. 최면이 깊어진 뒤 그 가슴의 조임이 또렷해졌고, 이어 말이 아직 서툴던 무렵의 집 안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오래 앓아 온 어른이 저녁 무렵 마루를 건너다 갑자기 소리를 내며 주저앉았습니다. 아이는 안방 문턱 앞에서 그 모습을 보았습니다.
어른들이 뛰어왔습니다. 누군가는 이름을 부르고, 누군가는 신발을 꿰어 신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아이는 울면서 안방 앞을 몇 걸음 왔다 갔다 했습니다. 문 쪽으로 손을 뻗었다가 다시 거두고, 어른들 사이에서 어디에 있어야 할지 몰라 같은 자리를 서성였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말해 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잠시 뒤 앓던 어른은 업혀 나갔고 안방 문이 닫혔습니다. 아이는 손을 꼭 쥔 채 문 앞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날 집에 누가 더 있었는지, 업혀 나간 어른이 그 뒤 어떻게 되었는지는 장면에서 더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아이에게 남은 것은 누군가 몹시 괴로워하는데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일이 끝날 때까지 그 자리를 떠나지도 못한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가슴이 조이고 어쩔 줄 몰라 같은 곳을 서성이던 반응도 함께 남아 있었습니다.
그 장면 속에서 지금의 이분은 문 앞을 서성이는 아이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짧게 말했습니다. “이건 네가 막거나 해결해야 할 일이 아니야. 네가 여기서 계속 지키고 있어야 끝나는 일도 아니야.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어. 네가 못한 게 아니라 네가 맡을 일이 아니었던 거야.”
장면은 처음부터 한 번 더 이어졌습니다. 어른은 다시 주저앉았고, 사람들이 뛰어왔고, 업혀 나갔고, 안방 문도 그대로 닫혔습니다. 아이는 이번에도 문 앞에 남아 있었습니다. 다만 손을 꽉 쥐거나 숨을 붙잡지 않았고, 자신이 무언가를 해야 하는데 못 하고 있다는 마음으로 그 소리에 매달리지 않았습니다.
달라진 것은 그날 벌어진 일이 아니었습니다. “무슨 일이 시작되면 끝날 때까지 나는 아무것도 못 한 채 붙잡혀 있어야 한다”는 아이의 받아들임이 달라졌습니다.
이 사례에서 어린 시절의 경험이 군발성 두통을 만들었다고 보는 것은 아닙니다. 연결해서 보는 것은 통증이 아니라 통증 앞에서 자동으로 올라오는 무력감과 긴장입니다. 군발성 두통의 진단과 치료는 계속 신경과에서 받고, 상담에서는 그 위에 겹쳐진 반응을 따로 다루었습니다.
군발기 중에 나간 형제들 모임
이번 가을에도 군발기는 왔습니다. 새벽에 눈 뒤가 쑤셔 깨는 밤도 있었습니다.
달라진 것은 그 시간을 보내는 방식이었습니다. 예전에는 발작이 시작되면 불을 끈 방 안을 돌면서 “이번에는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붙들렸고, 가라앉은 뒤에도 반나절을 누워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받고 있던 치료대로 대처하며 그 시간을 보냈고, 아침에는 공방에 나가 만들던 서랍장에 손잡이를 마저 달았습니다.
저녁 약속도 미리 취소하지 않았습니다. 지난주에는 몇 해째 빠져 온 형제들 모임에 다녀왔다고 하셨습니다. 밥을 먹는 동안 발작은 오지 않았고, 오더라도 먼저 일어나면 된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군발성 두통의 발작은 마음먹기로 줄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진단과 치료는 신경과에서 받는 것이 맞습니다. 다만 통증이 시작될 때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함께 밀려오고, 아프지 않은 저녁까지 그 생각 때문에 생활을 미리 접고 있다면 그 반응은 두통과 구분해 따로 다룰 수 있습니다.
오늘 밤에도 그 시간이 다가오는 것을 세고 계신다면, 두통 자체뿐 아니라 아프지 않은 시간까지 붙들고 있는 공포와 무력감도 함께 살펴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