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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다는 건 다 해 봤어요. 주말마다 산에 가고, 퇴근하면 반신욕을 하고, 한 달에 한 번은 마사지를 받습니다.
받고 나오면 분명히 가볍습니다. 그런데 하룻밤만 지나면 뒷목이 또 딱딱해지고
아침에는 턱이 뻐근해서 입을 크게 못 벌립니다."
중소기업 총무팀에서 십이 년째 일해 온 삼십 대 후반 여성분이 스트레스 해소법을 검색하다 상담을 신청하며 들려주신 이야기입니다. 회사에서는 일도 잘하고 성격도 좋다는 말을 듣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유난히 큰일을 겪은 것도 아닌데 왜 몸이 이렇게 굳는지 모르겠다고 하셨습니다.
방법을 몰라서 못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스트레스 푸는 법을 정리한 글은 거의 다 읽었고, 그중 자기에게 맞는 것을 골라 몇 년째 지키고 있었습니다. 산에 다녀온 일요일 저녁에는 실제로 어깨가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문제는 그 가벼움이 오래 가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월요일 아침 지하철에서 손잡이를 잡고 서 있으면 특별한 일이 시작되기도 전에 어깨가 귀 쪽으로 올라가 있었습니다. 아침부터 턱도 뻐근했습니다. 분명 전날 긴장을 풀었는데, 하룻밤 사이 몸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 듯했습니다.
스스로 가늠해 볼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다음에 운동이나 마사지로 몸이 가벼워졌을 때, 그 느낌이 얼마나 오래 가는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잠자리에 들기도 전에 다시 목과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면, 긴장을 덜어 내는 방법이 부족하다기보다 쉬는 사이에도 긴장이 계속 생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볼 필요가 있습니다.
쉬었는데도 다시 굳는 몸
몸이 왜 이렇게 빨리 다시 긴장하는지는 뇌의 위협 감지 체계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편도체는 주변의 위험 신호를 빠르게 감지하는 데 관여합니다. 대비가 필요하다고 느끼면 호흡이 얕아지고 목과 어깨 같은 근육에 힘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상황이 지나가면 들어갔던 힘도 함께 빠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그런데 상황이 끝난 뒤에도 몸이 힘을 빼는 순서가 잘 이어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긴장한 상태가 오래 반복되면 별일이 없는 순간에도 목과 어깨에 이미 힘이 들어가 있고, 밤이 되어도 충분히 풀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때는 스트레스를 받은 뒤에만 긴장하는 것이 아니라, 긴장한 채 하루를 시작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욕조에 물이 차 있다고 해 보겠습니다. 대야로 퍼내면 그동안에는 물이 분명히 줄어듭니다. 하지만 수도꼭지가 조금 열린 채라면 대야를 내려놓는 순간부터 다시 물이 차오릅니다. 운동이나 마사지가 이미 찬 물을 퍼내는 일이라면, 쉬는 동안에도 몸에 힘을 넣는 자동반응은 계속 열린 수도꼭지와 비슷합니다.
풀어 주는 방법이 맡는 몫
그렇다고 운동이나 휴식이 소용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운동을 하면 몸에 쌓인 긴장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되고, 잘 자고 난 아침에는 예민함이 덜할 수 있습니다. 몸이 계속 무겁고 힘이 나지 않거나 불편이 이어진다면 병원에서 다른 원인이 있는지 확인해 두는 것도 필요합니다.
이런 방법이 맡는 몫은 이미 올라온 긴장을 덜어 내는 것입니다. 문제는 덜어 낸 뒤에도 몸이 다시 힘을 주는 반응이 계속될 때입니다. 그러면 그날은 조금 편해져도 다음 날 비슷한 상태로 돌아오고, 결국 또 다른 스트레스 해소법을 찾게 됩니다.
그렇다면 긴장을 새로 만드는 쪽은 어떻게 다룰 수 있을까요. 마음을 느긋하게 먹자고 다짐하는 것만으로는 잘 바뀌지 않을 수 있습니다. 몸이 먼저 굳는 반응은 생각해서 선택한 행동이 아니라, 상황을 알아차리는 순간 거의 자동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최면상담에서는 바로 그 자동반응을 살펴봅니다. 지금 목이나 턱에 힘이 들어가는 느낌과 그때 함께 올라오는 감정을 따라가며, 비슷한 반응이 익숙해진 오래된 경험이 떠오르는지 확인합니다. 그리고 그 장면에서 당시의 감정과 몸의 반응을 다시 다룹니다.
발소리마다 하던 일을 멈추던 아이
이분의 상담도 뒷목과 턱에 들어가는 힘에서 시작했습니다. 최면이 깊어지면서 몸이 굳을 때의 느낌에 집중하자, 본인도 예상하지 못한 오래된 집 안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아직 말이 서툰 무렵의 집입니다. 아이가 마루에 배를 대고 엎드려 손끝으로 장판 무늬를 따라 긋고 있습니다. 등 뒤로 어른들이 계속 오갑니다. 한 사람은 가방을 찾느라 방을 드나들고, 한 사람은 싱크대에서 물을 틀었다 잠급니다.
"늦었어", "그거 아직 안 했어?" 하는 말이 아이 머리 위로 오갑니다. 서랍이 열렸다 닫히고 현관문도 계속 여닫힙니다. 발소리가 가까워질 때마다 장판을 따라가던 손끝이 멈추고 어깨가 살짝 올라갑니다. 아이는 입을 꼭 다문 채 소리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손을 움직입니다. 아무도 아이를 부르지 않았고, 아이에게 직접 무슨 일이 생긴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런 저녁이 어쩌다 한 번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른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시간이 자주 이어졌고, 모두가 앉아 쉬는 모습을 보는 일은 드물었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어른들이 바빴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아이에게는 문이 열리고 발소리가 들릴 때마다 '다음에 무슨 일이 생기나' 살피며 하던 일을 잠깐 멈추는 순서가 반복되었습니다. 이제 아무 일도 없고 그냥 놀아도 된다고 알려 주는 순간은 좀처럼 오지 않았습니다.
어른이 된 뒤에도 비슷한 순서가 남아 있었습니다. 일을 끝내도 바로 다음 할 일을 떠올렸고, 퇴근해도 목과 턱에서는 힘이 잘 빠지지 않았습니다. 주말에는 쉬는 것보다 '이번에는 뭘 해야 제대로 풀릴까'를 먼저 찾았습니다. 산에 가고, 반신욕을 하고, 마사지를 받고도 다시 다음 방법을 검색했던 이유도 이 흐름과 맞닿아 있었습니다.
깊은 최면 속에서 어른이 된 그분은 마루에 엎드린 어린 자신에게 다가갔습니다. 주변의 발소리와 말들은 어른들이 자기 일을 하는 소리일 뿐이고, 네가 그때마다 멈춰서 다음 일을 준비할 필요는 없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지금은 네가 하던 놀이를 그대로 해도 된다고 짧게 전했습니다.
그런 다음 같은 저녁을 처음부터 다시 경험했습니다. 어른들은 똑같이 오갔고, "늦었어", "그거 아직 안 했어?"라는 말도 그대로 들렸습니다. 달라진 것은 아이의 반응이었습니다. 발소리가 가까워져도 어깨와 턱에 힘을 주지 않았고, 장판을 따라가던 손도 자꾸 멈추지 않았습니다. 바쁜 저녁은 그대로였지만, 모든 소리를 자기에게 닥칠 일처럼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해가 함께 있었습니다.
퇴근길에 무엇을 풀지 찾지 않은 저녁
요즘은 퇴근길에 무엇을 해야 좀 풀릴지 검색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지난 주말에는 산에 가는 대신 친정에 들러 어머니 장 보는 것을 따라다녔습니다. 예전에는 주말 내내 몸을 되돌려 놓는 데 시간을 다 썼는데, 그날은 오후 내내 걸어 다니고도 저녁에 덜 지쳤다고 하셨습니다.
월요일 아침 지하철에서는 손잡이를 잡고 서서 창밖을 봅니다. 예전 같으면 그 시간에 벌써 어깨가 올라가 있었고, 오늘 저녁에는 무엇을 해서 풀어야 하나부터 생각했습니다. 요즘은 그런 생각이 먼저 떠오르는 일이 줄었다고 하셨습니다.
오늘도 퇴근길에 무엇을 해야 좀 나아질지 찾고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방법을 하나 더 고르기 전에, 지난번에 풀린 느낌이 얼마나 오래 갔는지 먼저 살펴보셔도 좋습니다. 그 시간이 유난히 짧다면 이제 볼 것은 스트레스를 덜어 내는 방법의 개수가 아니라, 쉬는 순간에도 몸이 다음을 준비하며 다시 힘을 넣고 있는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