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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는 건 자신 있었어요. 회사에서 무슨 소리를 들어도 그날은 티 안 내고 넘깁니다.
그런데 그게 사나흘 가면 목 뒤가 돌덩이처럼 굳고 명치가 꽉 막혀서 밥이 안 넘어가요.
지난주에는 퇴근하고 들어가다가 현관에 쌓인 택배 상자를 보고 아내한테 소리를 질렀습니다.
상자 때문이 아닌 걸 저도 아는데, 그 순간에는 멈춰지질 않더라고요.”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회사에서 자재 발주와 납기를 맡고 있는 서른아홉 살 남성분의 이야기입니다. 회사에서는 성격 좋다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웬만한 일에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고, 급한 일이 몰리면 혼자 남아 마무리하는 쪽이었습니다.
정작 문제는 집에 돌아온 뒤였습니다. 소리를 지른 그날 밤에도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아이들 방문 쪽을 한참 바라보다가, 아까 자기 목소리가 거기까지 들렸겠구나 싶어 이불을 끌어올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러 스트레스 관리 방법을 해 봤습니다. 퇴근길에는 한 정거장 먼저 내려 걸었고, 자기 전에는 숨을 고르며 화가 날 때 속으로 열까지 세어 보기도 했습니다. 며칠은 도움이 됐습니다. 하지만 납기가 밀리는 주가 오면 다시 말없이 버티다가 집에서 날이 서곤 했습니다.
그분은 정작 가장 바쁜 날에는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회사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듯 일을 마쳤습니다. 그러다 며칠 뒤 집에서 사소한 일이 생기면 참았던 감정이 터졌습니다.
최근 언성이 높아졌던 일을 몇 가지 떠올려 보십시오. 돌아보니 그렇게까지 화낼 일이 아니었다면, 그전에 무엇을 참고 있었는지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힘들었던 곳과 화를 낸 곳이 서로 달랐을 수 있습니다.
회사에서는 버티는데 집에서 터지는 이유
국이 끓는 냄비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습니다. 불을 줄이지 않은 채 뚜껑만 꾹 누르면 잠깐은 조용합니다. 그러다 국물이 넘치면 놀라서 뚜껑을 확 열게 됩니다. 김이 빠지는 동안은 잠잠해지지만, 불이 그대로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끓어오릅니다.
참기만 하는 것은 뚜껑을 누르는 모습과 닮았습니다. 그러다 감정을 한꺼번에 쏟아 내면 잠깐 후련할 수 있지만 관계가 상하거나 후회가 남기도 합니다. 불편한 일이 생길 때마다 말없이 버티고 다음 일을 하는 습관이 그대로라면 같은 어려움이 반복될 수 있습니다.
해 본 방법들이 오래가지 않았던 까닭
걷기와 운동, 취미, 숨 고르기는 분명 도움이 됩니다. 몸을 움직이고 쉬면 그날 올라온 긴장이 낮아지고 잠자리에 들기도 수월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방법을 써도 다음 날 사무실에서 부담이 시작되는 순간 다시 말없이 버티고 몸에 힘을 주는 반응은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참지 말고 그때그때 말하라”는 조언도 많이 듣습니다. 필요한 조언이지만, 막상 그 순간이 오면 말처럼 쉽지 않은 분들이 있습니다.
일부러 말을 안 하기로 정해서가 아닙니다. 불편한 마음이 올라오는 것은 느끼지만, 그것을 말로 정리하기 전에 몸부터 굳고 손은 이미 다음 서류로 넘어갑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상황은 지나가 있습니다.
최면상담에서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 몸의 어디가 먼저 굳는지 살펴봅니다. 그때 어떤 감정을 참고 있는지, 힘들다는 말을 못 하고 다음 일을 하던 모습이 어떤 경험과 닮았는지 함께 알아봅니다.
다리를 뻗자 다시 일으켜 세운 저녁
그분과의 상담도 몸의 반응에서 시작했습니다. 화가 올라오기 전이면 명치 안쪽이 먼저 조여든다고 하셨습니다. 최면이 충분히 깊어진 뒤 그 조임에 주의를 두자, 평소에는 떠올려 본 적 없던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이 이어졌습니다.
아직 말을 길게 이어 하기 어려운 나이였습니다. 저녁 무렵 집 안에서 어른은 계속 무언가를 하고 있었고, 아이도 옆에서 작은 심부름을 몇 번 하고 있었습니다. 오가기를 반복하던 아이가 방바닥에 주저앉아 두 다리를 앞으로 쭉 뻗었습니다.
앉아 있던 시간은 길지 않았습니다. 등 뒤에서 어른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렇게 앉아 있을 시간 있으면 이것 좀 갖다 놔라.” 아이는 뻗었던 다리를 바로 모으고 일어섰습니다. 명치에 힘이 들어갔지만 힘들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물건을 갖다 놓고 돌아온 뒤 비슷한 부탁이 이어지면 다시 같은 식으로 움직였습니다.
아이는 피곤해도 힘들다고 말하지 않고 곧바로 다음 심부름을 했습니다. 명치에 힘을 주는 모습도 반복됐습니다. 상담에서는 이렇게 자신의 피로를 알리기 전에 먼저 움직이던 모습에 주목했습니다.
어른이 된 뒤에도 비슷한 반응이 이어졌습니다. 회의에서 부당한 말을 들어도 표정이 굳고 손은 다음 서류로 넘어갔습니다. 그때 말하지 못한 긴장은 명치와 뒷목에 남은 채 다음 업무와 겹쳤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면 현관의 택배 상자처럼 전혀 다른 사소한 일이 마지막 자극이 되곤 했습니다.
깊은 최면 속에서 어른이 된 그분은 어린 자신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아이는 심부름을 하느라 피곤했지만, 잠깐 앉아 쉬는 것조차 잘못한 일처럼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힘든 느낌이 들어도 괜찮다는 것을 먼저 알려 주었습니다.
“너 지금 힘들구나. 쉬고 싶다고 해서 게으른 건 아니야. 힘들다는 말이 바로 안 나와도 괜찮아. 그렇다고 네가 힘든 것까지 없는 일로 만들 필요는 없어. 지금 조금 쉬고 싶다고 말해도 되고, 혼자 하기 어려운 일은 도움을 요청해도 돼.”
그 말을 전한 뒤 같은 저녁을 다시 경험했습니다. 어른은 똑같이 물건을 갖다 놓으라고 했고, 아이도 일어나 심부름을 했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힘들다는 느낌이 들어도 자신을 잘못됐다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명치를 꽉 조이지 않았고, 피곤한 마음을 서둘러 지우듯 움직이지도 않았습니다.
아이가 심부름을 거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힘든 자신을 탓하지 않게 되자, 몸에 들어갔던 힘도 전보다 줄었다고 합니다. 심부름을 하면서도 피곤한 마음을 알아차렸고, 필요하면 그 마음을 말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최면 중에는 힘들고 부담스러워도 자신의 상태를 말하기 전에 몸을 굳히고 다음 일을 해냈던 다른 경험들도 이어서 다뤘습니다.
현관의 상자가 다시 보인 날
퇴근길도 집 현관도 요즘 그대로입니다. 지난주에도 현관에 택배 상자 두 개가 쌓여 있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아무 말 없이 그 옆을 지나 방으로 들어갔다가, 작은 말 한마디에도 날이 설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상담 뒤 비슷한 날, 이분은 신발을 벗으며 아내에게 납기 문제로 종일 시달려 지금 좀 날이 서 있다고 먼저 말했습니다. 말을 꺼내고 나니 상자는 그냥 상자로 보였고, 주말에는 아내와 함께 상자를 뜯었습니다.
회사에서도 납기가 밀리면 혼자 끌어안고 밤까지 남는 대신 그날 안에 팀장에게 상황을 알리게 됐다고 전했습니다.
스트레스를 관리하려면 힘든 순간을 알아차리고 필요한 말을 제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목과 명치가 굳기 시작할 때 잠시 자신의 상태를 살피고, 부담을 혼자 떠안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수 있습니다.
며칠을 참다가 사소한 일에 크게 화냈다면, 그날 왜 못 참았는지만 묻지 마십시오. 그전 며칠 동안 무엇이 힘들었고 왜 말하기 어려웠는지도 함께 살펴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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