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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오전 일인데요. 같이 일하는 분이 지나가면서 오늘 국이 좀 짜다고 한마디 했어요.
그 말에 귀 뒤가 확 달아오르고 심장이 쿵 내려앉더라고요.
손이 떨려서 국자를 개수대에 떨어뜨렸습니다."
"별일 아니잖아요. 저도 압니다. 그런데 목요일 새벽에 눈이 떠졌는데 그 목소리가 아직 들리고 있었어요. 이틀이 지났는데 말입니다."
어린이집 조리실에서 일하는 마흔세 살 여성분이 첫 상담에서 하신 이야기입니다. 중학생 아들 하나를 키우고 있고, 지금 일터에서는 팔 년째 같은 사람들과 지내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 다루려는 것은 감정을 빨리 없애는 요령이 아니라, 왜 어떤 감정은 일이 끝난 뒤에도 오래 남는가입니다.
주변에서 이분을 마음 다스리기가 안 되는 사람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언성을 높이는 일도 거의 없고, 그 순간에는 대개 웃으며 넘깁니다. 힘든 것은 그다음이었습니다. 퇴근 버스에서 그 말을 떠올리고, 집에서 설거지를 하다가 또 생각나고, 잠자리에 누우면 처음 들었던 말부터 다시 되짚었습니다.
국이 짜다는 말이 큰일이 아니라는 것도, 누구나 그런 말을 들으면 잠깐 기분이 상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답답한 것은 감정의 크기보다 얼마나 오래 남느냐였습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금세 지나갈 말이 자신에게는 이틀째 계속 되살아나고 있었습니다.
해 볼 만한 것은 이미 해 봤다
그래서 마음을 진정시키는 방법으로 알려진 것은 웬만큼 해 봤습니다. 숨을 길게 내쉬고, 속으로 열까지 세고, 잠들기 전에는 명상 앱도 틀었습니다. 주변에서는 그냥 넘기라고, 마음에 담아 두지 말라고 했습니다.
전혀 소용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숨을 고르면 두근거림이 조금 잦아들었고, 명상을 하는 동안에는 생각도 잠시 멈췄습니다. 이미 올라온 감정의 세기를 낮추는 데에는 분명 도움이 됐습니다.
하지만 앱을 끄고 방이 조용해지면 그 말이 다시 또렷해졌습니다. 아예 진정이 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조금 가라앉을 만하면 같은 말을 떠올리면서 몸의 반응까지 다시 살아나는 쪽에 가까웠습니다.
감정이 내려갈 때마다 다시 시작되는 반응
누군가의 말이 비난이나 위험처럼 받아들여지는 순간에는 편도체를 포함한 뇌의 위험 감지 체계가 빠르게 반응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얼굴이 달아오르거나 심장이 빨라지고, 손이 떨리거나 명치가 조이는 등 몸의 변화가 먼저 나타납니다. 생각으로 상황을 정리하기도 전에 몸이 반응하는 것입니다.
이런 반응 자체는 낯선 일이 아닙니다. 사람마다 다른 것은 얼마나 쉽게 시작되고, 일이 끝난 뒤 얼마나 오래 이어지느냐입니다. 특히 같은 말을 여러 번 되짚을 때마다 당시의 표정과 목소리, 몸의 느낌까지 함께 떠오르면 감정이 충분히 가라앉을 틈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아파트 복도의 센서등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한 번 켜진 불은 시간이 지나면 꺼지지만, 꺼지기 전에 다시 움직임이 감지되면 또 켜집니다. 마음속에서 같은 장면을 거듭 확인하는 일도 이와 비슷할 수 있습니다. 머리로는 상황을 정리하려는 것인데, 몸은 아직 끝나지 않은 일처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최근 감정이 크게 올라왔던 일을 하나 떠올려 보셔도 좋습니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만 보지 말고, 언제 처음 그 일을 잊고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있었는지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다시 떠올렸을 때 몸까지 함께 긴장했는지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감정이 올라온 정도에 비해 가라앉는 데 유난히 오래 걸린다면, 마음을 다잡는 방법을 더 찾기보다 그 반응이 어떤 순서로 반복되는지 보는 편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최면상담에서는 이런 반복의 순서에서 출발합니다. 감정이 올라올 때 몸에서 먼저 나타나는 느낌과, 일이 끝난 뒤에도 계속 확인하고 되짚는 반응을 살펴봅니다. 그런 다음 비슷한 반응이 오래전부터 어떤 상황에서 익숙해졌는지를 함께 다룹니다.
한마디가 끝난 뒤에도 확인하던 아이
이분은 그 말을 떠올릴 때마다 명치 위쪽이 조이고 귀 뒤가 뜨거워지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최면이 깊어지면서 그 감각에 머물자, 집에서 저녁을 먹고 난 뒤의 오래된 장면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아이는 식사가 끝난 상을 닦고 있었습니다. 어른 한 사람이 상을 지나가다가 손끝으로 한곳을 짚으며 말했습니다. “여기 아직 끈적하네.” 목소리가 크거나 말이 길게 이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한마디를 듣자 아이는 손을 멈췄습니다. 귀 뒤가 뜨거워지고 명치가 딱딱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무 말 없이 그 자리를 다시 닦았습니다. 어른은 이미 다른 방으로 갔는데도 아이는 상을 한 번 더 훑어보고, 컵이 놓였던 자리와 바닥에 떨어진 부스러기까지 다시 확인했습니다.
일은 끝났지만 아이에게는 끝난 것 같지 않았습니다. 또 무엇이 잘못됐다고 할지 몰라 어른들 쪽 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방으로 들어간 뒤에도 방금 들은 말을 머릿속에서 되풀이했습니다. 비슷한 일이 생길 때마다 아이는 지적받은 순간보다 그 뒤에 더 오래 긴장하고 확인하는 데 익숙해졌습니다.
깊은 최면 속에서 어른이 된 지금의 자신이 그 아이에게 다가갔습니다. 어른이 한 번 짚어 준 일이 네가 잘못된 아이라는 뜻은 아니고, 한 번 고쳤다면 그 일은 거기서 끝내도 된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계속 확인하고 떠올린다고 해서 다음 말을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짧게 설명했습니다.
그런 다음 그날 저녁의 일을 다시 경험했습니다. 어른은 똑같이 “여기 아직 끈적하네”라고 말했고, 아이도 그 자리를 다시 닦았습니다. 이번에는 이미 닦은 곳을 몇 번씩 다시 확인하지 않았고, 어른이 다른 방으로 간 뒤에도 계속 귀를 세우지 않았습니다. 귀 뒤의 열감과 명치의 조임도 오래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있었던 말과 상황은 그대로였습니다. 달라진 것은 한마디가 끝난 뒤에도 계속 잘못한 것이 없는지 확인하던 아이의 반응이었습니다. 현재의 이분에게도 비슷한 점이 있었습니다. 작은 지적을 들은 순간보다, 그 말을 집까지 가져가 거듭 되짚는 동안 감정이 더 오래 이어졌습니다.
다시 들은 한마디
그 뒤 같은 조리실에서 비슷한 일이 또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오늘 국이 좀 싱겁다는 말이었습니다. 이분은 어느 정도로 싱거웠는지 바로 되물었고, 내일은 간을 보고 맞춰 보겠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예전이라면 그 자리에서는 웃고 넘겨도 그 말을 집까지 가져갔을 상황이었습니다.
그 주말에는 몇 해째 미뤄 온 친구에게 먼저 연락해 약속을 잡았다고 하셨습니다. 마음에 걸리는 일이 생기면 오래 생각하다 관계까지 미뤄 두곤 했는데, 이번에는 먼저 연락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마음 다스리기는 감정이 전혀 생기지 않는 상태를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기분이 상할 만한 말을 들으면 잠깐 마음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이 끝난 뒤에도 같은 말을 계속 확인하느라 하루 이틀을 붙잡혀 있다면, 감정의 크기만 낮추는 방법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왜 화가 났는지만 묻기보다, 그 말이 끝난 뒤 내가 무엇을 반복하는지도 함께 볼 필요가 있습니다. 같은 장면을 머릿속에서 계속 돌리고, 상대의 뜻을 거듭 추측하고, 그때마다 몸까지 다시 긴장한다면 오래전부터 익숙해진 반응이 이어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최면상담에서는 이런 자동반응과 연결된 경험을 다시 다루면서, 지금의 일이 끝났을 때 몸과 마음도 함께 긴장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돕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