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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키는 십 년 넘게 서랍에 들어 있습니다. 며칠 전에도 마음먹고 주차장에서 시동을 걸어 봤어요.
그런데 핸들을 잡는 순간 손바닥에 땀이 차고 어깨가 딱딱하게 굳더라고요.
후진으로 빠져나오는데 옆에서 경적이 울리니까 심장이 쿵 내려앉았습니다.
결국 다시 세워 놓고 십 분을 앉아 있다가 키를 뽑고 내렸어요.”
마흔을 앞둔 남성분이 운전공포증으로 상담실을 찾아와 들려주신 이야기입니다. 아이 둘을 키우며 회사에는 지하철로 다닌다고 하셨습니다. 스물셋에 면허를 땄지만, 십 년이 넘도록 거의 운전하지 않았습니다.
집에 차는 있지만 운전은 늘 아내가 했습니다. 처가에 갈 때도, 아이들을 데리고 캠핑을 갈 때도 아내가 네 시간을 운전하는 동안 그분은 조수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미안한 마음에 몇 번 운전대를 잡아 봤지만, 매번 주차장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분에게 더 답답한 것은 평소 겁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놀이공원에 가면 가장 높은 놀이기구부터 타고, 친구 오토바이 뒷자리에도 겁 없이 앉았습니다. 그런데 운전석에만 앉으면 몸이 전혀 다르게 반응했습니다.
주변에서는 자꾸 운전해 봐야 실력이 는다고 했습니다. 본인도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핸들을 잡으면 몸이 먼저 굳었습니다.
조수석에서는 괜찮은데 운전석에서만 굳는다면
먼저 한 가지는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운전 중에 갑자기 숨이 막히고 심장이 터질 듯한 발작을 겪은 뒤부터 차를 못 타게 됐다면, 이 글에서 다루는 경우와는 조금 다릅니다. 그때의 발작부터 먼저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이 글은 그런 일이 없었는데도 운전대 앞에서 몸이 굳는 경우를 다룹니다.
같은 길을 조수석에서 지날 때와 직접 운전할 때 몸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도로가 두려운 것인지, 직접 차를 몰아야 한다는 부담이 큰 것인지 살펴보는 데 도움이 됩니다.
조수석에서는 창밖을 보며 통화도 하는데 운전석에만 앉으면 팔이 굳는다면, 도로 사정보다 “내가 직접 몰고 있다”는 상황에서 긴장이 시작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이것만으로 운전공포증인지 판단할 수는 없지만, 무엇부터 살펴볼지는 좀 더 분명해집니다.
연습을 해도 몸이 먼저 굳는 이유
이런 반응은 심리학의 ‘조건화’로 설명해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신호가 강한 두려움과 연결되면, 나중에는 그 신호만으로도 몸이 긴장하는 것을 말합니다.
냄비를 한 번 태워 집 안에 연기가 찼던 적이 있으면, 그 뒤로는 어디선가 탄 냄새만 나도 하던 일을 멈추고 부엌부터 확인하게 됩니다. 냄새 자체가 불은 아니지만, 전에 겪은 일이 있으면 몸은 확인하기 전에 먼저 움직입니다.
운전공포증에서 무엇이 두려움과 연결돼 있는지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떤 분에게는 속도이고, 어떤 분에게는 좁은 골목일 수 있습니다. 이분에게는 도로나 자동차 자체보다 “내가 잘못 조작하면 다른 사람이 다칠 수 있다”는 느낌이 더 크게 작용했습니다.
그래서 차가 거의 없는 새벽에 나가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복잡한 도로가 문제가 아니라, 운전석에 앉아 직접 방향을 정하는 순간부터 몸이 긴장했기 때문입니다.
주변에서 가장 많이 권하는 방법은 연습입니다. 도로 연수를 더 받고, 차가 없는 시간에 동네를 몇 바퀴 돌아 보라고 합니다. 조작이 서툴러 생긴 두려움이라면 반복 연습이 도움이 됩니다. 주차나 차선 변경이 익숙해질수록 두려움도 함께 줄어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운전 조작보다 ‘다른 사람의 안전을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이 크다면, 연습을 해도 긴장이 쉽게 줄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매번 힘겹게 운전을 버티다 보면 다음에 운전대를 잡는 일도 더 부담스러워집니다.
‘오늘은 내가 운전하겠다’고 마음먹어도, 막상 핸들을 잡으면 어깨와 팔이 굳을 수 있습니다. 일부러 힘을 준 것이 아니어서 마음대로 풀기도 어렵습니다. 최면상담에서는 이때 느끼는 감정과 몸의 긴장을 살피고, 비슷한 반응이 나타났던 경험을 함께 다룹니다.
마당에 멈춰 선 수레
그분의 상담에서는 먼저 몸의 느낌을 살펴봤습니다. 핸들을 잡기 직전이면 양쪽 팔뚝부터 뻣뻣해진다고 하셨습니다. 최면이 충분히 깊어진 뒤 그 뻣뻣함을 다시 느껴 보자, 오래전 집 마당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아직 말을 길게 하지 못하던 어린 시절이었습니다. 여름 낮의 마당에 나무 수레가 놓여 있고, 어른이 동생을 그 위에 앉힙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손잡이를 쥐여 주며 마당 끝까지만 끌고 갔다 오라고 합니다.
손잡이를 건네면서 한마디가 붙습니다. “천천히, 똑바로 끌어라. 네가 잘못하면 동생 다친다.”
아이는 두 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수레를 끕니다. 몇 걸음 갔을 때 바퀴가 자갈에 걸려 수레가 한 번 덜컹합니다. 동생이 놀란 얼굴로 아이를 봅니다.
그때부터 아이는 발을 떼지 못합니다. 동생이 다칠까 봐 손잡이를 쥔 두 손에 힘을 주고 그대로 굳어 버립니다. 어른은 마루에서 다른 일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 일을 아이에게 맡겼는지는 장면에서 알 수 없었습니다.
최면 속에서 어른이 된 그분은 어린 자신 곁에 섰습니다. 바퀴가 자갈에 걸려 수레가 덜컹했을 뿐, 네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동생의 안전도 아이 혼자 책임질 일은 아니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 뒤 같은 일을 다시 경험했습니다. 어른은 똑같이 손잡이를 쥐여 주었고, 바퀴는 다시 자갈에 걸려 덜컹했으며, 동생도 똑같이 놀란 얼굴로 아이를 보았습니다.
이번에는 아이의 반응이 달랐습니다. 수레는 멈춰 섰지만 손잡이를 쥔 두 손에 전처럼 힘을 잔뜩 주지는 않았습니다. 바퀴가 자갈에 걸린 것일 뿐 자신이 동생을 위험하게 만든 것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이분은 수레를 끌 때도 자동차를 몰 때도 다른 사람의 안전이 자신의 손에 달렸다고 느꼈습니다. 그 부담과 함께 몸이 굳는 모습도 닮아 있었습니다. 차종을 바꾸거나 한산한 도로를 골라도 긴장이 반복된 이유를 상담에서는 이런 경험과 함께 살펴봤습니다. 최면 중에는 자신이 조작하거나 방향을 정하는 상황에서 다른 사람에게 해가 갈까 봐 몸을 굳혔던 관련 경험들도 이어서 다뤘습니다. 모든 위험을 혼자 막아야 하는 것은 아니며, 필요한 주의를 기울이되 예상하지 못한 작은 흔들림까지 자기 잘못으로 받아들이지 않아도 된다는 이해를 함께 다뤘습니다.
어머니를 조수석에 태우고
상담 뒤 이분은 주말 아침이면 먼저 차 키를 집게 됐다고 전했습니다.
어머니가 병원에 가는 날에는 직접 차를 몰고 시골집으로 내려갑니다. 예전에는 어머니가 시외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올라왔지만, 이제는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를 조수석에 태우고 국도를 한 시간 넘게 달립니다. 옆에서 어머니가 창밖 이야기를 해도 앞을 보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 갔습니다.
지난 주말에는 아이 둘을 뒷자리에 태우고 바닷가까지 다녀왔다고 하셨습니다. 아이들이 뒤에서 시끄럽게 떠들어도 핸들을 쥔 손이 예전처럼 굳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그분에게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운전대를 잡을 때의 긴장이었습니다. ‘내가 잘못하면 사람이 다친다’는 두려움과 함께 손과 팔이 굳던 반응이 전보다 줄었다고 합니다.
운전공포증에는 운전 실력 외에도 여러 요인이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운전석에만 앉으면 몸이 굳어 차 키를 내려놓게 된다면, 그 순간 무엇이 두렵고 어떤 부담을 느끼는지도 함께 살펴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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