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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뽑는 건 길어야 몇 초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 몇 초 때문에 전날 밤을 통째로 못 자요.”
출판사에서 책을 편집하는 서른여섯 살 여성분의 이야기입니다. 회사에서 건강검진 안내 문자만 와도 자신도 모르게 팔을 몸 쪽으로 끌어당긴다고 했습니다.
지난 검진 전날 밤에도 불을 끄고 눕자 팔꿈치 안쪽이 저릿해졌습니다. 손바닥으로 팔 안쪽을 덮어 봐도 고무줄이 팔을 조이는 느낌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손발은 차갑게 식는데 등에는 땀이 났고, 베개에 댄 귀로 심장 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새벽 세 시가 넘어서는 휴대전화로 예약 취소 화면을 열어 놓고 한참 망설였다고 합니다. 주사공포증을 처음 검색한 것도 그런 밤이었습니다.
정작 다음 날 채혈실에 앉으면 일은 금세 끝났습니다. 솜을 누르고 나올 때는 허탈해서 웃음이 날 정도였습니다. 동료들이 주사 하나에 뭘 그렇게 떠느냐며 웃으면 그저 따라 웃었습니다. 속으로는 다 큰 어른이 이게 뭔가 싶어 자신이 한심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검진 안내 문자가 오면 잠 못 이루는 밤이 어김없이 돌아왔습니다.
채혈은 몇 초면 끝나는데, 두려움은 왜 전날부터 시작될까요?
눈 딱 감으면 금방이라는 말
주사가 무섭다고 하면 대개 바늘을 보지 말고 다른 생각을 하라고 합니다. 간호사에게 미리 말해 두라는 조언도 듣습니다. 이분도 모두 해 보았습니다. 창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속으로 숫자를 세며 채혈을 견뎠습니다.
이런 요령은 바늘이 들어가는 순간의 긴장을 덜어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분에게 길고 괴로웠던 시간은 검진 날짜가 잡힌 날부터 채혈실에 들어가기 전까지였습니다. 그 기다림을 어떻게 견딜지는 누구에게도 듣지 못했다고 합니다.
지난 검진에서 가장 힘들었던 때를 물으니 바늘이 들어가던 순간은 오히려 흐릿하다고 했습니다. 또렷하게 기억나는 것은 전날 밤의 어두운 천장과 대기실에서 손에 쥐고 있던 번호표였습니다.
최근 주사나 채혈을 받았던 날을 떠올려 보세요. 바늘이 닿을 때보다 전날 밤이나 대기실에서 기다릴 때 더 괴로웠나요? 그렇다면 실제 통증뿐 아니라 ‘곧 아플 것’이라는 생각에도 몸이 긴장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만으로 진단할 수는 없지만 두려움이 언제 시작되는지 짚어 볼 수는 있습니다.
번개와 천둥 사이가 하루로 늘어날 때
아직 아프지도 않은데 몸부터 움츠러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무서웠던 일과 그 직전의 신호가 연결되면, 나중에는 그 신호만으로 긴장할 수 있습니다. 이런 학습을 ‘조건화’라고 합니다.
천둥을 무서워하는 아이는 번개가 번쩍하면 소리가 나기도 전에 귀를 막고 웅크립니다. 번개 다음에는 천둥이 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아이에게는 천둥소리뿐 아니라 그 소리를 기다리는 몇 초도 무섭습니다.
이분도 처음에는 바늘 끝만 무서웠다고 합니다. 그러다 알코올 솜 냄새, 팔에 감기는 고무줄, 번호를 부르는 소리에도 긴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는 검진 예약 문자의 알림음만 울려도 팔꿈치 안쪽이 저릿해졌습니다. 번개를 본 아이가 천둥을 기다리듯, 바늘이 닿기 전날부터 긴장한 채 기다렸던 것입니다.
천둥이 어떻게 나는지 알아도 번개가 치면 다시 귀를 막을 수 있습니다. 채혈이 금방 끝난다는 것을 아는 이분도 날짜가 잡히면 팔부터 움츠렸습니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두려움이 가라앉는 것은 같지 않았습니다.
최면상담에서는 채혈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긴장하게 되는 무의식 자동반응을 살펴봅니다. 이분과의 상담에서도 지금 느끼는 두려움에서 출발해, 함께 떠오르는 경험과 당시의 감정을 다루었습니다.
바느질 상자에서 나온 바늘
깊은 최면 상태에서 검진 전날 이불 속에서 느꼈던 팔꿈치 안쪽의 저릿함에 집중했습니다. 그 느낌이 검지 끝까지 번지는 듯하더니 햇빛이 드는 집 마루가 떠올랐다고 합니다.
나이를 물으면 손가락을 펴 보이던 어린 시절입니다. 아이는 마루에 놓인 낡은 의자 다리를 짚고 일어서다 가시에 찔립니다. 검지 끝에 가느다란 나무 가시가 박혀 있습니다.
어른은 아이를 창가로 데려가 손가락을 햇빛에 비춰 보더니 바느질 상자를 가지러 갑니다. 잠시 뒤 상자 뚜껑이 열리고 바늘 하나가 나옵니다.
“가만있어. 가시만 쏙 빼면 돼.”
바늘 끝이 햇빛에 반짝이며 가까워지자 아이는 손을 등 뒤로 감추고 벽에 바짝 붙어 웁니다. 바늘은 아직 손가락에 닿지도 않았습니다.
어른이 손목을 살며시 잡아 손을 앞으로 가져옵니다. 아이는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숨을 참습니다. 한 번 따끔한 뒤 가시가 빠집니다. 아이의 흐느낌은 그 뒤로도 한참 이어집니다.
최면 속에서 어른이 된 이분은 어린 자신에게 다가갔습니다. 바느질 상자를 가지러 간 어른을 기다리던 때였습니다. 바늘은 가시 하나를 꺼내고 곧 멀어질 것이며, 따끔함도 숨 한 번 내쉴 사이에 끝날 거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그런 다음 같은 일을 다시 경험했습니다. 어른이 돌아와 상자를 열자 아이는 이번에도 손을 등 뒤로 감추고 벽에 붙어 울었습니다. 손목을 잡혀 손을 내밀었고, 가시가 빠질 때는 여전히 따끔했습니다.
이번에는 가시를 빼고 나면 바늘이 멀어지고 아픔도 끝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바늘이 다가와도 전처럼 숨을 참지 않았고, 가시가 빠진 뒤에는 울음도 차츰 잦아들었다고 합니다.
최면을 마치고 눈을 뜬 이분이 웃음 섞인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가시 하나 뺀 일이 다예요?”
그날 아이는 바늘이 닿기도 전에 손을 감추고 몸을 움츠렸습니다. 지금도 채혈 날짜만 잡히면 팔부터 끌어당겼습니다. 상담에서는 곧 아플 순간을 기다리며 미리 겁먹고 긴장하던 반응을 함께 다뤘습니다. 최면 중에는 아플 일이 다가온다고 느끼면 실제로 시작되기 전부터 팔을 감추고 숨을 참았던 다른 경험들도 함께 살폈습니다. 불편함은 시작되기 전부터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순간에 잠깐 지나가고 끝나며, 그 전까지 몸을 움츠린 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는 이해를 넓혀 갔습니다.
검진을 마치고 국밥집으로
상담 뒤 어느 날 점심을 먹다가 검진 안내 문자를 받았다고 전했습니다. 날짜를 고른 뒤에는 친한 동료에게 검진이 끝나면 병원 앞 국밥집에서 만나자고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예전에는 아무에게도 날짜를 말하지 않고 혼자 남은 날을 세었지만, 이번에는 검진 뒤의 약속부터 잡았습니다.
전날 밤에는 다음 날 입을 옷을 의자에 걸어 두고 불을 껐습니다. 팔 안쪽을 손바닥으로 덮고 천장을 바라보던 예전과 달리, 알람을 맞춘 뒤 그대로 잠들었다고 합니다.
채혈실에서 번호가 불리자 소매를 걷으며 자리로 갔습니다. 고무줄을 감을 때도 팔을 몸 쪽으로 당기지 않았습니다. 채혈을 마치고 솜을 누른 채 병원을 나오니 국밥집 창가에서 동료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고 합니다.
다음 검진 날짜를 알리는 문자를 받는 순간 팔이 저릿하고 전날 밤부터 걱정되시나요? 바늘이 닿을 때만큼이나 아플 순간을 기다리는 시간이 힘든 것일 수 있습니다.
그 기다림의 불안도 상담에서 다룰 수 있습니다. 체인지 심리최면상담센터에서는 문자 한 통에도 몸이 움츠러드는 반응과 그에 연결된 경험을 살핍니다. 당시의 감정을 함께 다루며 검진을 앞둔 밤에도 편히 잠들 수 있도록 돕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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