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선생님, 잠깐만요! 발이 안 닿아요. 숨이, 숨이 안 쉬어져요."
그날도 킥판을 잡고 발차기를 하며 반대편 깊은 쪽으로 건너가던 중이었습니다. 숨이 차서 잠깐 서려고 발을 내렸는데 발끝에 아무것도 닿지 않았습니다. 물이 입술까지 차오르자 가슴이 한순간에 꽉 조여들었습니다. 코로는 숨이 들어가지 않아 입으로 짧게 헐떡였습니다. 킥판은 이미 손을 떠났고, 두 손은 레인을 나누는 줄을 꽉 붙잡고 있었습니다.
강사가 헤엄쳐 올 때까지 두 다리는 계속 바닥을 찾아 허우적거렸습니다. 줄을 한 손씩 옮겨 잡으며 얕은 쪽으로 돌아 나왔고, 발바닥이 타일에 닿자 거짓말처럼 숨이 다시 들어왔습니다. 수영 가방은 그 뒤로 현관 옆에 걸린 채 열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분은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경리로 일하는 서른아홉 살 여성입니다. 여름마다 가족이 물에 들어가면 혼자 파라솔 아래에서 짐을 지키는 게 싫어, 큰마음 먹고 구민체육센터 성인 초급반에 등록했습니다. 얕은 쪽에서는 반에서 가장 먼저 물에 얼굴을 담갔고, 물속에서 숨을 내쉬는 연습도 곧잘 따라 했습니다.
물공포증을 검색해 보니 어릴 때 물에 빠진 뒤로 생겼다는 사연이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남편도 혹시 그런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계곡에서 떠내려간 적도, 바다에서 파도에 휩쓸린 적도 없었습니다. 이유를 모르니 자신이 유난스럽게 느껴졌고, 강습에 다시 나갈 엄두는 더 나지 않았습니다.
얕은 물에서는 얼굴을 담그고 숨도 곧잘 내쉬던 분이었습니다. 숨이 막히는 것은 발끝이 바닥에 닿지 않을 때였습니다. 발이 안 닿는 깊이는 왜 이렇게 유독 무서운 걸까요?
발이 닿으면 괜찮고, 떨어지면 숨이 막히는 이유
발이 바닥에 닿아 있으면 물이 얼굴에 튀거나 몸이 기우뚱해도 다시 딛고 일어서면 됩니다. 언제든 제 힘으로 얼굴을 물 밖에 두고 숨을 쉴 수 있다는 뜻입니다. 발끝이 바닥에서 떨어지면 딛고 일어설 곳이 없어집니다.
발이 닿지 않을 때마다 숨부터 막히는 반응은 조건화와 관련이 있을 수 있습니다. 조건화란 어떤 감각과 강한 공포를 함께 겪은 뒤, 나중에는 그 감각만으로도 공포를 느끼게 되는 학습입니다. 예전에 제 힘으로 숨을 되찾기 어려워 크게 놀랐다면, 비슷한 느낌이 드는 순간 가슴이 먼저 조여 올 수 있습니다.
겨울철 정전기를 떠올려 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쇠 문고리를 잡다가 따끔한 정전기에 놀란 뒤에는 손을 뻗다가도 멈칫하게 됩니다. 나무 손잡이는 괜찮아도 쇠 문고리 앞에서는 다시 따끔할까 봐 긴장하는 것입니다. 그분에게는 발끝이 바닥에서 떨어지는 감각이 이처럼 두려움을 불러오는 신호였던 셈입니다.
되뇌는 말보다 먼저 막히는 숨
그분도 깊은 쪽이 가까워지면 괜찮다고 속으로 되뇌고, 강사가 알려 준 대로 숨을 길게 내쉬어 보았습니다. 이런 방법은 올라오는 긴장을 잠시 누그러뜨리는 데 도움이 됩니다. 얕은 물에서 발차기와 물에 뜨는 법을 익힌 것도 헛수고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발끝이 바닥을 놓치는 그 한순간에는 되뇌던 말이 떠오르기도 전에 숨이 먼저 막혔습니다.
최면상담에서는 이렇게 숨이 막히기 직전의 몸 느낌에 주의를 기울입니다. 그 느낌과 이어진 오래전 경험을 살펴보고, 당시의 공포와 몸의 반응을 함께 다룹니다.
바가지 물이 얼굴을 덮던 욕실
상담에서 그분은 발이 바닥에서 떨어지던 순간을 떠올리면 코 안쪽이 찡해지고 숨이 목에서 턱 걸린다고 했습니다. 최면이 깊어진 상태에서 그 느낌에 집중하자, 수영장이 아닌 집 욕실이 떠올랐습니다.
김이 뿌옇게 서린 욕실에서 어른이 낮은 목욕 의자에 앉아 아이의 머리를 감기고 있습니다. 아이는 어른의 무릎 위에 가로로 누워 있고, 뒤로 젖혀진 머리 아래에는 대야가 놓여 있습니다. 어른은 한 팔로 작은 아이의 목덜미를 받치고, 다른 손으로 바가지에 물을 떠 머리를 헹굽니다.
처음 몇 바가지는 머리카락을 타고 대야로 흘러내립니다. 그러다 물이 이마를 넘어 코와 입을 덮습니다. 놀란 아이는 고개를 들려고 몸을 뒤틀지만, 누운 자세에서 혼자 몸을 일으키지 못합니다. 숨이 막히는 듯해 가슴이 조여들고, 두 손은 목덜미를 받친 어른의 팔을 꽉 붙잡습니다. 물이 턱 밑으로 흘러내린 뒤에야 울음이 터집니다.
최면 속에서 어른이 된 그분은 목욕 의자 곁에 쪼그려 앉아 어린 자신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물은 얼굴을 지나서 턱으로 내려가. 그러면 코로 숨이 저절로 들어와."
그런 다음 머리를 헹구던 순간을 처음부터 다시 경험했습니다. 물은 이번에도 이마를 넘어 코와 입을 덮었고, 아이는 몸을 뒤틀며 어른의 팔을 붙잡았습니다. 그런데 물이 얼굴을 덮고 있는 동안에도 가슴이 조여들지 않았습니다. 물이 턱 밑으로 흘러내리자 코로 서늘한 공기가 들어오는 것이 또렷하게 느껴졌고, 터져 나온 울음도 금세 잦아들었다고 합니다.
최면에서 깨어난 그분은 코끝을 한참 문지르다가 물었습니다. "물에 빠진 적도 없는데, 왜 하필 머리 감던 욕실이 나온 걸까요?"
욕실과 수영장에서 공통으로 느낀 두려움은 제 힘으로 몸을 일으켜 숨을 쉴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욕실에서는 어른의 무릎에 누워 있었고, 수영장에서는 발로 딛고 일어설 바닥이 없었습니다.
깊은 쪽 레인에서 물을 먹은 날
이후 그분은 현관 옆에 걸어 두었던 수영 가방을 챙겨 다시 강습에 나갔다고 합니다. 킥판을 잡고 깊은 쪽까지 건너가던 중, 앞사람의 발차기에 튄 물이 얼굴을 덮었습니다. 숨을 고르려고 발을 내렸지만 발끝에는 이번에도 아무것도 닿지 않았습니다.
물을 조금 들이켜 한 번 콜록였습니다. 그런데 손은 레인 줄 쪽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킥판을 가슴 앞으로 끌어당긴 채 발차기를 다시 시작해 반대편 벽까지 갔습니다. 벽을 짚고 돌아서서는 강사에게 "물 좀 먹었네요" 하고 웃었다고 합니다.
물공포증이 늘 물에 빠진 경험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사례에서는 머리를 감을 때 제 힘으로 몸을 일으키지 못했던 두려움과, 깊은 물에서 숨이 막히던 반응을 함께 다뤘습니다.
구명조끼를 입고도 발끝이 바닥에서 떨어지는 순간 숨이 막혀 물 밖으로 나오게 되시나요? 수영 실력과 함께 살펴볼 것은 바로 그 순간의 두려움입니다. 물에 뜨고 발차기하는 연습을 이어 가면서, 숨을 멈추게 하는 무의식의 자동반응도 함께 다룰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