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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도 먹어 보고 상담도 받아 봤어요. 그때는 좀 괜찮다가도 몇 달 지나면 어김없이 또 그래요. 이젠 나아질 거란 말도 안 믿겨요.”
여러 곳을 거쳐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찾아오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멀쩡히 지내다가도 갑자기 심장이 마구 뛰고 숨이 턱 막히며, 이러다 잘못되는 게 아닌가 싶은 공포가 덮칩니다. 응급실에서 검사를 받아도 늘 정상이라는 말뿐입니다. 좋아졌다 싶으면 또 무너지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다 보면, 발작 자체보다 ‘평생 이렇게 사는 건 아닐까’ 하는 무력감이 더 깊이 가라앉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애를 써서 좋아졌다가도 번번이 같은 자리로 돌아오는 걸까요. 이 회의감이야말로 오래 공황장애를 겪어 온 분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대목입니다.
다짐만으로 꺼지지 않는 무의식의 경보
우리 뇌 깊숙한 곳에는 위험을 감지하는 ‘편도체’라는 경보 장치가 있습니다. 이 편도체가 한 번 크게 놀라 ‘이 느낌은 위험하다’고 새겨 두면, 그와 닮은 상황이 올 때마다 진위를 따지기도 전에 먼저 경보부터 울립니다. 공황발작 때 심장이 뛰고 숨이 가빠지는 것이 바로 그 경보입니다. 더구나 편도체는 우리가 의식적으로 다스릴 수 있는 영역에 있지 않고, 의식 아래 무의식에서 작동합니다. 그래서 ‘괜찮아, 안전해’라고 아무리 머리로 되뇌어도 다짐만으로는 가라앉지 않습니다.
약과 상담이 닿는 곳, 닿지 못하는 곳
많은 분이 약의 도움을 받습니다. 약은 예민해진 편도체를 가라앉혀 경보가 쉽게 울리지 않도록 해 주고, 그만큼 발작의 강도와 빈도를 줄여 주곤 합니다.
상담으로 마음을 들여다보고, 명상이나 호흡으로 몸을 다독이는 것도 분명 힘이 됩니다. 다만 이 방법들이 주로 닿는 곳은 겉으로 드러난 증상과 의식적인 생각입니다. 편도체가 애초에 왜 그렇게까지 예민해졌는지, 그 이유가 새겨진 무의식의 자리는 그대로 남아 있기 마련입니다.
마당의 잡초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습니다. 눈에 보이는 잎과 줄기를 아무리 잘라 내도, 땅속 뿌리가 살아 있으면 비 한 번에 다시 돋아납니다. 좋아졌다가도 스트레스가 쌓이거나 비슷한 상황이 닥치면 공황이 도로 돌아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표면을 다듬는 동안에도 뿌리는 그 자리에 남아, 다시 비가 내리기를 기다리고 있는 셈입니다.
공황과 상관없어 보이던 어린 날의 기억
그래서 무엇보다 그 뿌리가 처음 내린 자리를 찾는 일이 먼저입니다. 최면상담에서는 의식으로는 닿지 않던 무의식의 영역으로 들어가, 편도체가 그 경보를 처음 새기게 된 순간까지 더듬어 갑니다.
앞서 여러 방법을 거쳐 오셨던 그분도, 발작 때마다 밀려오던 막막한 절망감을 따라가다 한 장면에 닿았습니다. 공황과는 아무 상관도 없어 보이는, 아주 어린 시절의 기억이었습니다. 말도 채 트이기 전, 혼자 남겨진 방에서 울며 누군가 와 주기를 기다리던 장면이었습니다. 처음엔 목이 쉬도록 울며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와 주는 사람이 번번이 늦거나 끝내 오지 않자, 그 작은 아이는 어느 순간 ‘아무리 울어도, 아무리 기다려도 소용없다’며 울음을 그쳤습니다. 기대가 거듭 어긋나며 새겨진 그 단념이, 어른이 되어서도 마음 깊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에게는 발작이 다시 찾아오는 일 자체보다, ‘이번에도 어차피 안 될 것’이라는 오래된 절망이 더 무거웠습니다. 좋아질 거라 기대를 걸었다가 무너질 때마다, 그 옛날 혼자 울던 아이의 단념이 고스란히 되살아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자꾸 도로 돌아온다는 회의감의 뿌리는, 정작 공황이 일어나는 상황이 아니라 전혀 다른 과거의 한순간에 닿아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연결을 본인은 알지 못하니, 나아졌다 무너질 때마다 ‘내 의지가 약한 탓’이라며 자신을 몰아세우게 되는 것입니다.
깊은 최면 속에서, 어른이 된 지금의 그분이 혼자 울던 그 아이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이제 내가 곁에 있어, 너를 두고 가지 않아’라고 다독여 주자, 울음을 삼킨 채 굳어 있던 아이의 어깨가 천천히 풀어졌다고 합니다.
‘또 그럴 것’이라던 예감이 사라진 자리
그렇게 뿌리를 다루고 한참이 지난 어느 날, 그분이 담담하게 전해 왔습니다. 예전 같으면 좋아진 지 두어 달이면 어김없이 도로 무너졌을 텐데, 계절이 두 번 바뀌도록 그 자리에 다시 서지 않았다고 말입니다. 그분이 가장 놀란 점은 발작이 멈춘 것보다, ‘이번에도 또 그럴 것’이라던 오래된 예감이 더는 들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고 합니다.
좋아졌다 도로 돌아오기를 거듭하다 보면, 어느새 회복이라는 말조차 믿기 어려워집니다. 하지만 자꾸 되돌아온다는 것은, 아직 풀리지 않은 원인이 그 자리에 남아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 속사정을 혼자 떠올리려 애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무엇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는, 상담 안에서 함께 천천히 더듬어 갈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