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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죄송한데요. 지금 내리면 부친 짐은 어떻게 되나요?”
제주행 비행기 좌석에 앉은 지 오 분쯤 됐을 때였습니다.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공정 관리를 맡고 있는 서른여덟 살 남성분이 승무원에게 물었습니다.
옆에는 아내와 일곱 살 딸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분은 양손 엄지손톱으로 검지 옆을 번갈아 눌렀고, 셔츠 등판은 벌써 땀에 젖어 있었습니다. 승무원이 괜찮으시냐고 되묻는 사이 앞쪽 출입문이 묵직하게 닫혔다고 합니다.
비행기가 활주로로 움직이자 심장이 목까지 올라오는 듯했습니다. 이륙한 뒤에도 등받이에 등을 대지 못한 채, 한 시간 조금 넘는 비행 내내 좌석 앞 화면의 비행 경로만 들여다봤습니다. 딸이 창밖 구름을 보라며 팔을 잡아당겨도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고 합니다.
결혼 후 십 년 동안 가족 여행은 늘 차로 갈 수 있는 곳으로 다녔습니다. 신혼여행도 남해로 갔습니다. 이번에는 딸이 비행기를 꼭 타 보고 싶다고 졸라 제주 여행을 잡았습니다. 날짜가 다가올수록 그분은 출입문이 닫힐 순간이 걱정됐습니다.
비행기가 다른 교통수단보다 안전하다는 글도 여러 번 찾아 읽었습니다. 읽을 때는 고개가 끄덕여졌지만 막상 좌석에 앉으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비행기공포증이라는 이름은 알아도 두려움을 가라앉히기는 어려웠습니다.
흔들릴 때보다 문이 닫힐 때가 더 무섭다면
상담에서 비행 중 언제가 가장 힘들었는지 여쭤보았습니다. 기체가 흔들릴 때였을 거라 짐작했지만 대답은 달랐습니다. 아직 비행기가 땅에 있을 때, 출입문이 닫히고 안전띠 표시등이 켜지는 순간이 가장 무서웠다고 합니다.
“그때부터는 제가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잖아요.”
비행기공포증을 겪는 분 중에는 사고에 대한 걱정뿐 아니라, 불안해도 스스로 멈추거나 내릴 수 없다는 점을 힘들어하는 분이 있습니다. 조종은 다른 사람에게 맡겨야 하고 날씨나 도착 시각도 마음대로 바꿀 수 없습니다. 문이 닫히면 착륙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몸이 긴장하기도 합니다.
무엇이 두려운지 알아보려면 기내에서 자꾸 확인하게 되는 것을 떠올려 보세요. 비행 경로나 승무원의 표정을 살피고 엔진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사고가 날까 봐 걱정되는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고 중간에 내릴 수도 없어 불안한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진단을 내리는 방법은 아니지만 자신을 긴장하게 하는 이유를 짚어 볼 수 있습니다.
안전하다는 걸 알아도 긴장이 먼저 올라오는 이유
그분은 기내에서 몇 분마다 비행 경로를 확인했습니다. 기장의 안내 방송이 나오면 내용보다 목소리가 떨리는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승무원이 복도를 조금만 빨리 지나가도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얼굴부터 살폈다고 합니다.
“제가 확인한다고 달라질 게 없다는 걸 아는데도 멈춰지지가 않더라고요.”
이런 반응을 설명하는 개념 중 하나가 ‘공포 조건화’입니다. 어떤 상황에서 크게 무서웠던 경험이 있으면 나중에는 비슷한 상황만 만나도 긴장할 수 있습니다. 그분에게는 남에게 몸을 맡긴 채 스스로 멈출 수 없다는 점이 두려움을 불러왔을 수 있습니다.
팀장의 ‘잠깐 얘기 좀 할까요?’라는 메시지 뒤에 곤란한 일이 몇 번 있었다면, 이번에는 점심 약속일 뿐이어도 가슴부터 철렁할 수 있습니다. 이분에게는 비행기 출입문이 닫히고 안전띠 표시등이 켜지는 순간이 그런 신호였습니다. 내 힘으로 멈출 수 없다는 느낌이 무섭다면 안전하다는 설명만으로는 안심하기 어렵습니다.
제주에서 돌아올 때는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먹고 탔다고 합니다. 두근거림이 한결 줄어 제주로 갈 때보다 수월하게 비행을 마쳤습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딸이 다음에는 비행기를 타고 더 먼 곳에 가자고 하자 목 뒤가 다시 뻣뻣해졌습니다.
다음에는 괜찮을 거라고 다짐해도 비행기만 떠올리면 몸이 굳었습니다. 일부러 긴장한 것이 아니라 생각보다 먼저 몸이 반응한 것입니다. 최면상담에서는 이런 무의식 자동반응에 주목합니다. 기내에서 느낀 긴장과 몸의 감각을 따라가며 떠오르는 경험을 살피고, 그때의 감정을 함께 다룹니다.
잔칫날 낯선 품에 안겨 멀어지던 아이
그분과의 상담에서도 출입문이 닫힐 때 목 뒤가 뻣뻣해지고 숨이 얕아지는 느낌에서 시작했습니다. 깊은 최면 상태에서 그 감각에 집중하자 잔칫날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친척 어른의 칠순 잔치가 열린 연회장입니다. 둥근 식탁마다 사람들이 앉아 있고 앞쪽에서는 사회자의 마이크 소리가 울립니다. 아직 혼자 오래 걷지 못하는 아이가 엄마 품에 안겨 있습니다. 처음 보는 어른이 한번 안아 보자며 팔을 내밀자 엄마는 웃으며 아이를 건넵니다.
그 어른은 아이를 안고 다른 식탁으로 갑니다. 사람들에게 인사하는 사이 엄마가 보이지 않습니다. 아이는 엄마에게 돌아가고 싶어 몸을 뒤로 젖히고 팔을 뻗으며 웁니다. 그래도 어디로 갈지는 자신을 안고 있는 어른에게 달려 있습니다. 아이는 한 손으로 옷깃을 꽉 쥐고 사람들 틈에서 엄마를 찾습니다.
어른은 금방 간다며 아이를 더 단단히 안고 걷습니다. 울어도 멈춰 주지 않자 아이는 엄마가 있던 쪽으로 고개를 돌린 채 몸에 힘을 줍니다. 한참 식탁 사이를 돌고 나서야 엄마 품으로 돌아갑니다.
최면 속에서 어른이 된 그분은 옷깃을 움켜쥐고 우는 어린 자신에게 다가갔습니다. 지금은 엄마가 보이지 않아도 곧 다시 엄마 품으로 돌아갈 거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네 힘으로 이 어른을 멈춰 세우지 않아도 돼. 싫다고 우는 것만으로 충분해.”
온몸에 힘을 주거나 계속 엄마를 찾아보지 않아도 돌아갈 수 있다고 안심시켰습니다. 그런 다음 그날 잔치에서 있었던 일을 다시 경험했습니다. 엄마는 웃으며 아이를 건넸고, 그 어른은 아이를 안고 식탁 사이를 돌며 인사했습니다. 아이도 여전히 엄마 쪽으로 팔을 뻗으며 울었습니다.
이번에는 곧 엄마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무서움은 남아 있었지만 몸을 잔뜩 굳히지 않았고, 울면서도 한결 편하게 숨을 쉬었다고 합니다.
아이는 낯선 어른의 품에서, 그분은 비행기 안에서 스스로 멈추거나 돌아갈 수 없다는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몸에 힘을 준 채 계속 엄마를 찾던 모습은 기내에서 비행 경로를 확인하던 모습과 이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상담에서는 그때의 두려움과 긴장을 다루었습니다. 최면 중에는 이동이나 상황을 자기 힘으로 멈출 수 없을 때, 끝날 때까지 몸을 굳히고 계속 주변을 확인했던 다른 경험들도 이어서 다뤘습니다. 지금 당장 내릴 수 없더라도 이동에는 끝이 있고, 모든 과정을 감시하지 않아도 필요한 안내와 도움을 받으며 도착할 수 있다는 이해를 함께 다뤘습니다.
딸이 가리킨 창밖 바다
상담 뒤 이분은 가족과 오사카에 다녀왔다고 전했습니다. 직접 항공권을 예약했고, 창가 자리는 딸에게 주고 그 옆에 앉았습니다.
출입문이 닫히고 안전띠 표시등이 켜질 때 그분은 딸의 엉킨 헤드폰 줄을 풀어 주고 있었습니다. 이륙 뒤 기체가 몇 차례 덜컹이고 안전띠를 매라는 방송이 나와도 딸에게 줄 과자 봉지를 뜯던 손은 멈추지 않았다고 합니다. 좌석 앞 화면에는 비행 경로 대신 딸이 고른 만화영화가 끝까지 켜져 있었습니다. 착륙을 앞두고 고도가 낮아질 때는 딸이 가리키는 창밖 바다를 함께 내려다보았습니다.
여행 예약 화면을 열어 놓고도 결제 버튼 앞에서 오래 망설이시나요? 출입문이 닫히는 장면만 떠올려도 숨이 얕아진다면, 그 순간 무엇이 두려운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남에게 몸을 맡기고 스스로 멈출 수 없는 상황에서 오래전의 긴장이 되살아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최면상담에서는 그 경험에 얽힌 감정과 무의식 자동반응을 다루며, 여행을 앞두고 다시 설렐 수 있도록 돕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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