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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마약 바르고 기다리는 사십 분, 급행열차가 역 두 개를 그냥 지나치는 칠 분,
광역버스가 고속도로를 달리는 이십오 분이요. 요즘은 어디를 가든 중간에 못 내리는 시간이 몇 분인지부터 세요.
그 시간이 시작되면 명치가 조여 오고, 눈은 저도 모르게 문만 찾아요."
서른네 살 출판사 편집자인 여성분이 상담실에 앉자마자 꺼낸 말입니다. 지난달에는 파마약을 바른 지 십오 분 만에 미용실 의자에서 일어났다고 합니다. 머리에 비닐 캡을 쓴 채 유리문 앞으로 가 손잡이를 잡고서야 숨이 조금 돌아왔습니다. 미용사에게는 급한 전화가 왔다고 둘러댔다고 하셨습니다.
처음부터 이렇지는 않았습니다. 출퇴근길 급행을 완행으로 바꾼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지하철에서는 늘 문 옆에 섰고, 영화관은 통로 쪽 끝자리가 없으면 표를 사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영화관에는 아예 발길을 끊었고, 미용실은 커트만 받고 금방 나오는 곳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분은 남편이 곁에 있어도 불안하다는 점이 특히 이해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나란히 앉아 있어도 급행열차가 역을 지나치면 손바닥에 땀이 뱄습니다. 이런 증상을 검색하다가 광장공포증이라는 말을 처음 알게 되셨습니다.
불안이 처음 크게 올라온 것은 이 년 전, 고속도로를 달리던 광역버스 안이었습니다. 갑자기 심장이 빨라지고 숨이 가빠졌는데, 다음 정류장까지는 이십 분을 더 가야 했습니다.
그날 겪은 두근거림과 숨 가쁨은 공황발작을 다룬 칼럼에서 자세히 설명해 두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그 뒤로 어디를 가든 “여기서 바로 나갈 수 있을까?”부터 확인하게 된 광장공포증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넓은 곳이 아니라 나갈 수 없는 곳
광장공포증은 이름 때문에 넓은 광장이 무서운 증상으로 오해받곤 합니다. 하지만 이분의 불안은 장소의 크기에 따라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같은 지하철이라도 역마다 서는 완행은 괜찮고, 역을 건너뛰는 급행은 힘들었습니다. 영화관에서도 통로 쪽 끝자리는 견딜 만했지만, 줄 한가운데 좌석은 앉기도 전에 가슴이 조였습니다.
불안이 가장 심했던 장소를 두세 곳 떠올리고, 그곳에서 원할 때 바로 나갈 수 있었는지 적어 보아도 좋습니다. 장소의 크기나 사람 수보다 바로 나갈 수 있는지에 따라 불안이 달라진다면, 광장공포증에서 보이는 모습과 닮았을 수 있습니다. 의학적 진단을 대신하지는 않지만, 어떤 상황에서 불안해지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새로 뚫린 도로에서 길을 못 찾는 내비게이션
급행열차와 미용실처럼 서로 다른 장소에서도 ‘지금 바로 나갈 수 없다’는 공통된 느낌 때문에 비슷한 불안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위험을 감지하는 데 관여하는 뇌의 편도체는 과거에 크게 놀랐던 상황과 비슷한 단서에도 반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빠져나가기 어려운 곳에서 심한 불안을 겪었다면, 이후에는 그 느낌만으로도 불안해질 수 있습니다.
새로 뚫린 도로를 달릴 때 내비게이션이 길을 찾지 못하는 경우와 비슷합니다. 도로는 멀쩡히 이어져 있고 조금만 더 가면 아는 길이 나오는데, 지도에는 아직 표시되지 않아 경로를 다시 찾겠다는 안내만 되풀이됩니다. 급행열차에서도 머리로는 칠 분 뒤에 내릴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도 당장 나갈 길이 없다는 느낌에 몸은 먼저 긴장합니다.
문 옆에 서거나 통로 쪽 자리를 고르면 당장은 마음이 놓입니다. 하지만 그럴 때만 안심하는 일이 반복되면 “문 가까이 있어야 안전하다”는 생각이 굳어지기 쉽습니다. 그러면서 문에서 먼 자리는 점점 피하게 됩니다.
문 옆에 서도 줄지 않던 불안
그분도 불안을 줄이려고 여러 방법을 써 보았습니다. 병원에서 받은 약은 심한 불안을 가라앉히는 데 도움이 됐고, 약을 챙긴 날에는 광역버스를 끝까지 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주말에는 일부러 급행을 타고 한 구간씩 늘려 보기도 했습니다. 견딘 날도 있었지만 다음 날 아침이면 다시 문 옆부터 찾았습니다.
이렇게 애썼는데도 불안이 반복되면 자신을 탓하기 쉽습니다. 칠 분 뒤면 열차가 선다는 것은 그분도 알고 있었습니다. 몰라서 무서운 것이 아니라, 알아도 몸이 먼저 긴장했던 것입니다. 의식적으로 생각하기 전에 일어나는 반응이라 다짐만으로 바꾸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최면상담에서는 이처럼 저절로 나타나는 무의식의 자동반응을 살펴봅니다. 문부터 찾게 되는 순간의 답답함이나 명치가 조이는 느낌을 따라가며, 그 반응과 이어진 경험을 찾고 당시의 감정을 함께 다룹니다.
화살표가 여러 방향을 가리키던 날
최면이 깊어진 상태에서 그분은 급행열차가 역을 지나칠 때의 명치 조임에 집중했습니다. 그 느낌을 따라가자 사람들로 붐비는 실내 박람회장이 떠올랐습니다. 아빠 허리띠에 손이 겨우 닿을 만큼 어렸을 때였습니다.
천장에는 초록색 출구 표지판이 여기저기 매달려 있고, 화살표는 왼쪽과 오른쪽, 계단 쪽을 제각각 가리킵니다. 엄마는 접힌 안내도를 펼쳐 이리저리 돌려 보고, 아빠는 "아까 이쪽으로 들어온 것 같은데" 하며 몇 걸음 가다가 다시 돌아옵니다. 머리 위로는 안내 방송이 웅웅 울리고, 사람들이 가족 양옆을 쉴 새 없이 스쳐 지나갑니다.
아이는 엄마 옆에서 화살표와 엄마 얼굴을 번갈아 올려다봅니다. 엄마 아빠를 따라가면 밖으로 나갈 줄 알았는데, 두 사람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모릅니다. “엄마 아빠도 모르는데, 여기서 어떻게 나가지?” 하는 생각에 겁이 납니다. 명치가 딱딱하게 굳고 두 다리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가족은 한참 동안 나갈 방향을 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분은 서른네 살인 지금의 모습으로 박람회장에 있는 어린 자신에게 다가갔습니다. 아이 눈높이에 맞춰 앉아 이야기했습니다. “엄마 아빠는 처음 온 곳이라 길을 찾고 있어. 어느 쪽인지 모른다고 못 나가는 건 아니야. 나가는 문은 여러 개 있으니까 조금 헤매도 같이 나갈 수 있어.”
그 이야기를 들은 뒤 같은 장면을 처음부터 다시 겪었습니다. 엄마는 안내도를 돌려 보고, 아빠는 몇 걸음 갔다가 돌아옵니다. 아이도 여전히 엄마 옆에 서 있습니다. 이번에는 두 사람을 보며 “길을 찾고 있구나” 하고 기다립니다. 나가는 방향을 아직 몰라도 명치가 예전처럼 굳지는 않았습니다.
남편이 곁에 있어도 급행열차에서 불안했던 모습은 이 경험과 연결해 볼 수 있습니다. 어린 그분에게는 부모님이 옆에 있어도 나가는 길을 모른다는 것이 무서웠습니다. 상담에서는 당장 나갈 방향을 몰라도 결국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점을 어린 자신이 이해하도록 도왔습니다.
사십 분 동안 넘긴 교정지
이후 그분은 미용실에서 파마를 했던 이야기를 전해 주셨습니다. 파마약을 바른 뒤 사십 분쯤 걸린다는 말을 듣고, 가방에서 교정지 한 묶음과 빨간 펜을 꺼냈다고 합니다. 틀린 글자에 동그라미를 치며 스무 장 가까이 넘겼을 때 미용사가 머리를 감으러 가자고 불렀습니다. 그동안 유리문 쪽으로는 한 번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출근길에 먼저 들어온 급행을 그대로 탄 날도 있었다고 합니다. 문 위 노선도 대신 휴대전화로 원고 한 편을 끝까지 읽는 사이 열차가 역 두 개를 지나쳤습니다. 완행을 기다릴 때보다 일찍 도착해 회사 앞 빵집에서 팀 동료들 몫의 빵도 샀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버스에 오르며 뒷문까지 몇 걸음인지부터 헤아리셨나요. 영화관 통로 쪽 끝자리가 없어 예매 창을 닫으셨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확인을 소심한 성격 탓으로만 돌릴 필요는 없습니다. 바로 나갈 수 없을 때 느끼는 두려움 때문에 저절로 반복되는 행동일 수 있습니다. 그 두려움에 얽힌 경험과 감정을 다루면서, 급행열차 안의 칠 분도 문을 살피는 대신 하던 일에 집중하는 시간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