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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허설 영상 보셨잖아요. 저 그 노래 끝까지 불렀어요.
그런데 객석 불이 꺼지고 조명이 얼굴에 떨어지니까 첫 소절부터 목이 조였어요.
반주가 어디까지 갔는지도 모르겠고, 제 귀에는 제 목소리만 들렸어요."
소극장 뮤지컬 무대에 여덟 해째 서 온 서른두 살 남성분이 첫 공연을 마친 밤 연출가에게 한 말입니다. 그동안은 주연 뒤에서 함께 노래하는 앙상블이었고, 혼자 부르는 곡을 맡은 것은 이번 작품이 처음이었습니다. 의상까지 갖춰 입은 마지막 리허설에서는 빈 객석을 보며 고음까지 무리 없이 불렀다고 합니다.
첫 공연 날은 달랐습니다. 전주가 흐르는 동안 숨이 가슴 위쪽에서만 짧게 오갔고, 두 번째 소절은 반 박자 늦게 시작했습니다. 노래를 마치고 무대 뒤 계단에 주저앉았을 때는 셔츠가 등에 달라붙어 있었다고 합니다. 이튿날 공연에서는 전주가 시작되기도 전에 침을 삼키기가 어려웠습니다.
혹시 무대공포증인가 싶어 새벽까지 검색도 해 보았습니다. 연습을 더 하라는 글, 객석 뒤쪽 벽을 보고 부르라는 글, 관객을 신경 쓰지 말라는 글이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연습이라면 누구보다 많이 했고, 그 증거가 리허설 영상이었습니다.
같은 사람이 같은 곡을 부르는데, 빈 객석 앞에서는 되고 찬 객석 앞에서는 막힙니다. 무대공포증을 겪는 분들이 가장 억울해하는 대목이 여기입니다. 실력이 없는 게 아니라면, 본 무대에서는 무엇이 달라지는 걸까요.
빈 객석과 찬 객석 사이에서 바뀌는 것
자기초점주의는 관객에게 평가받는다고 느낄 때, 주의가 반주나 상대 배우보다 자기 목소리와 표정으로 향하는 과정입니다. 목소리가 떨리지는 않는지, 얼굴이 굳어 보이지는 않는지 계속 살피게 되는 것입니다.
충분히 연습한 노래는 다음 소절을 하나하나 생각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익숙한 강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잘하고 있는지 계속 확인하다 보면 그 흐름이 끊길 수 있습니다. 작은 떨림도 크게 들리고, 떨린다고 느낄수록 자기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화상회의에서 내 얼굴이 뜨는 작은 창을 켜 둔 채 이야기해 본 분은 이 느낌을 아실 겁니다. 말하는 동안 눈이 자꾸 그 창으로 가고, 표정을 고치다 보면 하려던 말이 꼬입니다. 본 무대에 서면 그 창이 머릿속 한가운데에 크게 켜져 있는 셈입니다.
리허설에서는 이런 자기 점검이 덜할 수 있습니다. 관객의 평가를 의식하기보다 반주와 무대 위 움직임에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객석이 차고 조명이 켜지면, 같은 무대에서도 잘하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는 부담이 커질 수 있습니다.
공연을 돌아보면 자신이 무엇에 신경을 썼는지 알 수 있습니다. 공연이나 강의를 마친 뒤 무엇이 기억나는지 떠올려 보세요. 상대 배우의 표정이나 청중의 반응보다 내 목소리가 떨렸는지, 손을 어디에 두었는지만 남아 있다면 공연 내내 자신을 살피고 있었을 수 있습니다.
연습을 늘려도 조명 아래에서 다시 조이는 목
그분은 연습 시간을 두 배로 늘렸습니다. 그래도 세 번째 공연에서 조명이 켜지자 목은 똑같이 조였습니다. 연습은 곡을 더 익숙하게 부르는 데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리허설에서는 이미 잘 부르고 있다면, 연습량뿐 아니라 관객 앞에서 무엇에 신경이 쏠리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공연을 앞두고 병원에서 긴장을 누그러뜨리는 약을 처방받는 분도 있습니다. 약은 두근거림이나 떨림을 줄여 무대에 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몸의 긴장이 줄어도, 관객 앞에서 잘하고 있는지 계속 확인하는 반응은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관객을 신경 쓰지 말자고 다짐해도, 무대에 오르면 어느새 자기 목소리를 살피고 있곤 합니다. 의식적으로 마음을 다잡기 전에 긴장하고 자신을 점검하는 반응이 먼저 시작되는 것입니다. 최면상담에서는 그때 느끼는 몸의 감각을 실마리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믿기 어려웠던 경험과 감정을 함께 살펴봅니다.
계단을 먼저 내려간 형과 빈손의 아이
그분도 최면이 충분히 깊어진 뒤, 조명이 얼굴에 닿았을 때 목이 조이던 느낌에 집중했습니다. 그러자 무대와는 상관없어 보이는 토요일 아침이 떠올랐습니다. 키가 형의 허리춤에 닿을 만큼 어렸을 때였습니다.
온 가족이 할머니 댁에 가려고 현관에 모여 있고, 문밖에는 차를 가져온 삼촌이 서 있습니다. 엄마가 보자기로 싼 꿀병을 형에게 건네며 두 손으로 꼭 들라고 말합니다. 아이도 두 팔을 내밀며 "나도 들래" 합니다. 엄마는 보자기를 형 쪽으로 밀어 주며 짧게 말합니다. "이건 형이 들어. 너는 손에서 놓치잖아."
문밖의 삼촌이 그 모습을 보고 허허 웃습니다. 아이는 내밀었던 팔을 내립니다. 자기도 잘 들 수 있다고 말하고 싶지만, 어른들 앞에서 못 미더운 아이가 된 것 같아 입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형은 보자기를 가슴에 안고 계단을 먼저 내려가고, 어른들은 뒤에서 "옳지, 천천히" 하고 말을 보탭니다. 아이는 맨 뒤에서 따라 내려갑니다. 빈손을 내려다보니 서럽고 창피합니다. 목 안이 뜨거워졌지만 울지는 않았습니다.
최면 속에서 어른이 된 그분은 현관 벽에 기대 선 어린 자신 옆에 섰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형에게 병을 맡겼다고 해서 네가 아무것도 잘하지 못하는 아이는 아니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아직 어리고 서툰 일이 있어도 괜찮으며, 사람들 앞에서 실수한다고 해서 못 믿을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전했습니다.
그런 다음 같은 토요일 아침을 다시 경험했습니다. 엄마는 똑같이 보자기를 형에게 건넸고 삼촌도 웃었습니다. 아이는 이번에도 빈손으로 맨 뒤에서 계단을 내려갔습니다. 하지만 형이 병을 들었다고 해서 자신이 못난 아이가 된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목 안의 뜨거운 기운이 잦아들자, 자기 빈손 대신 형의 품에서 흔들리는 보자기 매듭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린 그분에게는 병을 들지 못한 아쉬움과 함께, 사람들 앞에서 자기 능력을 의심받은 창피함이 남아 있었습니다. 혼자 한 곡을 책임져야 하는 무대에서는 그때의 느낌이 되살아났을 수 있습니다. 잘할 수 있는지 스스로를 의심할수록 반주보다 자기 목소리를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소절에서 먼저 들린 피아노
그 뒤 같은 곡을 다시 부른 날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조명이 얼굴을 비추자 첫 소절에서는 목이 살짝 조였지만, 두 번째 소절로 넘어갈 때는 반주의 피아노 소리가 먼저 들렸다고 합니다. 중간에 음 하나가 흔들려도 목을 점검하느라 멈추지 않았습니다. 상대 배우 쪽으로 한 걸음 옮기며 다음 가사를 이어 불렀습니다.
퇴장해 무대 뒤 계단에 앉았을 때도 자기 목소리보다 관객의 얼굴이 떠올랐다고 합니다. 둘째 줄 가운데에서 가사를 따라 입술을 움직이던 관객이었습니다. 그 공연 뒤에는 다음 시즌 오디션에서 솔로가 더 긴 배역에 지원서를 냈다고 하셨습니다.
리허설에서는 해내던 노래나 강의가 관객 앞에서만 막힌다면, 연습량 외에도 살펴볼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의심하고 목소리와 표정을 계속 확인하게 되는 무의식의 자동반응입니다. 그 순간 무엇이 두렵고, 그 두려움은 어떤 경험과 이어져 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