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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터디에서는 제가 제일 말을 잘한다는 소리를 들어요.
그런데 면접관이 '자기소개부터 해 보세요' 하는 순간 귀 뒤가 확 달아오르고 목이 조여 옵니다.
백 번은 소리 내서 외운 첫 문장이 입 안에서 안 떨어져요.
가운데 앉은 면접관이 펜을 내려놓고 팔짱을 끼는 게 보이면,
그다음부터는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면접 긴장 때문에 상담을 신청한 스물아홉 살 남성분의 이야기입니다. 공공기관 채용을 삼 년째 준비하며 필기시험은 네 번 붙었지만, 면접에서는 네 번 모두 떨어졌습니다. 면접장을 나와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면 그렇게 안 나오던 답이 그제야 줄줄이 떠올랐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준비가 모자란 줄 알았습니다. 예상 질문을 이백 개로 늘리고, 답변을 녹음해 버스 안에서 이어폰으로 들었습니다. 면접 긴장 푸는 법을 검색해 호흡법을 익혔고, 면접 전날에는 청심환도 챙겼습니다. 그래도 실제 면접에서는 같은 일이 되풀이됐습니다.
연습할 때는 막힘없이 하던 말을 면접관 앞에서는 하지 못했습니다. 준비한 내용은 같은데, 마주 앉은 사람이 달라지면 왜 말까지 막히는 걸까요.
지난 면접에서 말이 끊긴 순간을 떠올려 보면 단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처음 듣는 어려운 질문보다 면접관이 메모를 하거나 표정을 굳혔을 때 말이 더 자주 끊겼다면, 질문의 내용뿐 아니라 상대의 표정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만으로 원인을 단정할 수는 없지만, 무엇이 긴장을 불러오는지 가늠하는 데는 도움이 됩니다.
굳은 얼굴 앞에서 말이 막힐 때
조건화는 어떤 상황에서 겪은 불편한 감정과 몸의 반응이 나중의 비슷한 상황에서도 되풀이되는 현상입니다. 누군가의 굳은 표정 앞에서 자꾸 위축된다면, 과거에 배운 반응이 영향을 주는 것일 수 있습니다. 평가하는 사람의 표정을 두렵게 느껴 왔다면, 면접관의 눈썹이 조금만 움직여도 몸이 먼저 긴장할 수 있습니다.
긴장이 심해지면 심장이 빨라지고 입이 마릅니다. 상대의 표정에 신경이 쏠리면서 준비한 답을 떠올리고 말을 이어 가기도 어려워집니다. 알고 있던 답을 잊었다기보다, 긴장한 순간에는 잘 떠올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되짚은 지난 면접들도 그랬습니다. 어려운 질문이 나오면 오히려 잠시 뜸을 들이며 답을 고를 수 있었습니다. 말이 뚝 끊긴 것은 무난한 질문에 답하던 중, 면접관이 고개를 숙이고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을 때였습니다. 스터디원이 똑같이 메모를 할 때는 아무렇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분에게는 팔짱을 끼는 모습이나 펜을 내려놓는 소리까지 긴장을 불러왔습니다. 면접관이 실제로 어떤 평가를 내렸는지 알기도 전에 몸부터 굳었던 것입니다.
면접이 끝나면 더는 상대의 표정을 살피지 않아도 됩니다. 그렇게 긴장이 가라앉고 나서야 준비한 답이 다시 떠오르기도 합니다.
청심환과 모의면접을 거쳐도
그분도 청심환을 먹고 면접에 들어간 날이 있었습니다. 그날은 손끝의 떨림이 덜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면접관이 팔짱을 끼는 순간 목이 조여 오는 느낌은 그대로였고, 준비한 답의 두 번째 줄부터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은 두근거림과 떨림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모의면접을 거듭하면 답을 다듬고 말하는 순서도 익힐 수 있습니다. 그분도 함께 준비하는 동료 앞에서는 잘 말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자신을 평가하는 면접관 앞에서는 목이 조였습니다. 연습 때와 실전에서 느끼는 부담이 달랐던 것입니다.
이번에는 떨지 않겠다고 다짐해도, 면접관의 표정이 바뀌면 마음을 다잡을 틈도 없이 목부터 조여 왔습니다. 이렇게 저절로 일어나는 반응은 결심만으로 조절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최면상담에서는 면접관 앞에서 느끼는 긴장을 실마리로 삼습니다. 그 느낌과 이어지는 오래된 경험과 감정을 살펴보고, 평가받을 때마다 움츠러드는 반응을 함께 다룹니다.
양파 한 알을 내민 부엌
그분과의 상담에서는 목이 조이고 귀 뒤가 달아오르는 느낌에 집중했습니다. 깊은 최면 상태에서 그 감각을 따라가자, 어린 시절 부엌에서 겪은 일이 떠올랐습니다.
아직 감자와 양파를 헷갈리던 어린 시절이었습니다. 저녁을 준비하던 어른이 싱크대 앞에서 돌아보며 웃습니다. “베란다 바구니에서 감자 두 개만 가져올래?” 아이는 자기도 도울 수 있다는 생각에 신이 나서 베란다로 달려갑니다.
바구니에는 감자와 양파가 섞여 있습니다. 아이는 동그란 것 두 개를 골라 품에 안고 돌아옵니다. 하나는 감자, 하나는 양파입니다.
칭찬을 기대하며 두 손을 내미는데, 웃고 있던 어른의 얼굴이 굳습니다. 어른은 짧게 한숨을 쉬더니 “이거 말고”라고 합니다. 아이는 무엇을 잘못 가져왔는지 몰라 어른의 얼굴만 봅니다. 입을 열려다 멈추는 사이 어른은 양파를 받아 들고 직접 베란다로 갑니다.
돕고 싶어서 달려갔는데, 아이는 부엌에 혼자 남았습니다. 손에 든 감자를 내려다보며 어깨를 움츠리고 입술을 꼭 다뭅니다. 며칠 뒤 어른이 다시 심부름을 부탁했을 때도 바로 움직이지 못합니다. 이번에도 잘못 가져와 어른이 실망할까 봐 얼굴부터 살핍니다.
최면 속에서 어른이 된 그분은 감자와 양파를 내미는 어린 자신에게 다가갔습니다. 아직 둘을 헷갈릴 수 있고, 잘못 가져왔다고 해서 네가 못난 아이인 것은 아니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어른의 표정이 굳었어도 도우려던 마음까지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안심시켰습니다.
그런 다음 그 저녁을 처음부터 다시 겪었습니다. 어른은 똑같이 웃으며 감자 두 개를 부탁했고, 아이는 똑같이 양파 한 알을 섞어 왔습니다. 어른의 얼굴이 굳는 것도, "이거 말고" 하는 말도 그때 그대로였습니다.
이번에도 아이는 감자 한 알을 쥔 채 베란다로 가는 어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잘못 가져온 것이 속상하기는 했지만, 자기가 못난 아이여서 어른이 돌아섰다고 느끼지는 않았습니다. 어깨를 잔뜩 움츠리지 않았고, 목에 걸린 듯하던 숨도 편하게 내쉴 수 있었습니다.
면접에서도 상대가 왜 표정을 바꾸었는지 알기 전에 위축되곤 했습니다. 상담에서는 그 순간의 마음과 몸의 반응을 다뤘습니다.
팔짱을 낀 면접관 앞에서
상담 후 그분은 다른 기관의 최종 면접을 본 이야기를 전해 주셨습니다. 답변 도중 가운데 앉은 면접관이 펜을 내려놓고 팔짱을 꼈고, “질문의 요지와는 조금 다른 답 같네요”라고 말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머릿속이 텅 빌 만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날 그분은 "제가 질문을 좁게 이해한 것 같습니다. 다시 답변드려도 되겠습니까?" 하고 먼저 물었습니다. 그러고는 준비해 둔 사례를 처음부터 끝까지 차근차근 이야기했습니다. 팔짱을 낀 면접관을 바라보면서도 목소리가 흔들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면접장을 나와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을 때, 이번에는 뒤늦게 떠오르는 답이 없었다고 합니다. 하고 싶던 말을 이미 면접관 앞에서 다 하고 나왔기 때문입니다.
면접이 끝난 뒤에야 답이 줄줄이 떠오른다면, 준비가 부족해서만은 아닐 수 있습니다. 상대의 표정을 살피느라 몸이 굳으면 알고 있던 말조차 꺼내기 어려워집니다.
답변을 더 준비하는 것과 함께, 면접관의 표정이 바뀔 때 내 몸에서 무엇이 먼저 일어나는지도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오래전부터 이어진 긴장과 감정을 다루는 일은, 같은 표정 앞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준비한 말을 이어 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