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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아무 일도 없는 날이었어요. 퇴근하고 늘 다니던 길을 걷는데, 갑자기 심장이 터질 듯이 뛰고
숨이 안 쉬어지는 거예요. 길바닥이 빙글 도는 것 같고, 손발까지 저려 오고요.
응급실에 실려 가서 검사란 검사는 다 받았는데 전부 정상이래요.
그럼 도대체 원인이 뭔가요? 멀쩡하던 제가 왜 갑자기 이러는 거죠?"
마흔을 앞둔 직장인 한 분이 처음 센터에 오셔서 꺼낸 이야기입니다. 응급실에서는 심장이 아니라 공황발작 쪽 같다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심전도와 피검사, 심장 초음파까지 모두 정상이었습니다. 몸에 병이 없다니 다행인데, 이상하게 마음은 더 무거워졌다고 하셨습니다. 병명이 있으면 치료라도 받을 텐데, 원인을 모른다는 건 같은 일이 언제든 또 올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스트레스는 불씨일 뿐, 마른 장작이 진짜 원인입니다
그래서 검색창에 '공황장애 원인'을 쳐 봅니다.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글도 읽고, 자율신경의 균형이 깨져서라는 말도 듣고, 예민한 성격 탓이라는 이야기도 접합니다. 그런데 읽을수록 의문이 남습니다. 나보다 스트레스가 심한 사람도 많은데 왜 하필 나일까. 그날은 별다른 일도 없던 평일 저녁이었는데, 왜 하필 그 평온한 순간이었을까.
그분도 가장 먼저 스트레스를 의심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스트레스가 공황의 방아쇠가 되는 것은 맞습니다. 다만 그것은 절반의 답입니다. 불씨가 떨어진다고 아무 장작에나 불이 붙지는 않습니다. 젖은 장작 위에서는 불씨가 그대로 사그라들지만, 바싹 마른 장작은 작은 불씨 하나에도 확 타오릅니다. 스트레스는 불씨입니다. 정말 물어야 할 것은 따로 있습니다 — 내 마음의 장작은 언제부터, 왜 그렇게 말라 있었을까.
경보를 울리는 사령부는 편도체입니다
자율신경 이야기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발작 때 심장이 뛰고 숨이 가빠지고 식은땀이 흐르는 것은, 자율신경 가운데 교감신경이 작동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자율신경은 명령을 받아 몸을 움직이는 실행 부대일 뿐, 명령을 내리는 사령부는 따로 있습니다.
뇌 깊은 곳에서 한시도 쉬지 않고 '지금 안전한가'를 살피는 '편도체'라는 부위가 그 사령부입니다. 편도체가 위험하다고 판단하는 순간 온몸에 비상이 걸리고, 심장과 호흡은 달아날 채비에 들어갑니다. 공황발작은 이 비상 경보가, 위험이 없는 자리에서 울려 버린 것입니다.
그렇다면 편도체는 왜 안전한 자리에서까지 경보를 울리게 됐을까요. 여기서 짚어 둘 것이 하나 있습니다. 편도체는 의식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곳이 아닙니다. 의식보다 깊은 무의식의 층에서 저 혼자 판단하고 저 혼자 벨을 울립니다. '괜찮아, 아무 일도 없어'라고 머리로 아무리 타일러도 그 말이 거기까지 내려가 닿지 않습니다.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애초에 의지가 닿는 층이 아닌 것입니다.
최면상담은 약이 닿지 못한 뿌리를 찾아갑니다
그분도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먹고 있었습니다. 약은 예민해진 편도체를 가라앉혀 경보가 쉽게 울리지 않도록 도와주고, 그래서 발작의 강도와 횟수를 줄이는 데 힘이 됩니다. 다만 장작이 왜 그토록 말라 있는지, 그 까닭까지 적셔 주지는 못합니다.
최면상담에서 들여다보는 자리가 바로 거기입니다. 의식이 기억하지 못하는 무의식의 층으로 내려가, 편도체가 맨 처음 '세상은 위험하다'고 배운 순간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분도 그렇게 원인을 찾아 내려갔습니다. 깊은 최면 속에서, 발작 때마다 올라오던 느낌, 평온하던 세상이 한순간에 뒤집히는 듯한 그 느낌을 따라가자 본인도 전혀 예상 못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세 돌이나 됐을까 싶은 어린 날, 한밤중이었습니다.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던 아이가 무언가 와장창 깨지는 소리와 매캐한 냄새, 어른들의 비명에 눈을 뜹니다. 누군가 아이를 와락 안아 든 채 맨발로 집 밖까지 내달렸습니다. 아이는 차가운 밤공기 속에서 영문도 모른 채,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다 믿었던 집이 뒤집히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어른들에게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지나간 하룻밤 소동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말도 채 트이지 않은 아이의 마음에는 전혀 다른 것이 새겨졌습니다. 가장 평온한 순간에도 세상은 예고 없이 무너질 수 있다는, 그러니 한시도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공포였습니다. 그날부터 아이의 편도체는 평온할수록 오히려 더 촘촘히 주변을 살폈고, 그렇게 수십 년에 걸쳐 마음의 장작이 말라 갔습니다.
그러다 어른이 되어 일과 살림에 치이는 사이 피로가 불씨처럼 쌓였고, 별일 없던 어느 퇴근길에 한꺼번에 옮겨붙은 것입니다. 이처럼 공황장애의 원인은 발작이 터진 그날이 아니라, 훨씬 먼 과거에 새겨진 한순간인 경우가 많습니다. 본인은 그 장면을 기억조차 못 하니 원인이 없다고 느낄 수밖에요. 그러나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과 원인이 없다는 것은 전혀 다른 말입니다.
깊은 최면 속에서, 어른이 된 지금의 그분이 그 밤의 어린 자신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떨고 있는 아이를 품에 안고, 이것은 이미 다 지나간 일이고 너는 무사히 어른이 되었다고, 세상은 네가 그 밤에 새긴 것만큼 위험한 곳이 아니라고 차근차근 일러 주었습니다. 수십 년 묵은 오해가 풀려 가는 자리였습니다.
상담을 마치고 어머니께 조심스레 여쭤보았더니, 정말로 그 무렵 한밤중 부엌에서 불이 날 뻔해 온 식구가 맨발로 뛰쳐나온 적이 있다고 하셨답니다. 본인은 까맣게 모르고 지내 온 일이었습니다.
회복은 거창하지 않은 일상에서 드러납니다
한 달쯤 지나 들려주신 근황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요즘은 그 퇴근길에서 한 정거장 먼저 내려 일부러 걷는다고 합니다. 발작이 또 올까 봐 늘 종종걸음으로 지나치던 길인데, 며칠 전에는 노을이 좋아 길 한복판에 멈춰 서서 한참 하늘을 올려다봤다고요. 심장은 끝까지 조용했고, 그것이 당연하게 느껴졌다고 하셨답니다.
공황은 난데없이 들이닥치는 병처럼 보이지만, 원인 없는 공황은 없습니다. 다만 그 원인이 의식이 기억하는 자리보다 한참 깊은 곳에 있어 본인 눈에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그러니 검사마다 정상이라는 말 앞에서 막막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몸이 건강하다는 것은 좋은 소식이고, 남은 일은 마음 깊은 곳의 까닭을 찾는 것입니다. 그 실마리를 풀어 가다 보면, 오래 끌어온 공황도 대개 한 달 안팎에 한결 가벼워지시는 분이 많습니다.
'멀쩡하던 내가 도대체 왜.' 여기까지 읽어 내려오신 마음속에도 아마 그 물음이 있을 것입니다. 그 물음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답이 없는 것이 아니라, 답이 있는 곳을 아직 들여다보지 못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곳으로 내려가는 길은 이미 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