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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둘에 처음 알았어요. 학교 다닐 때 떠든다고 혼난 적이 한 번도 없거든요.
지금도 사무실에서 저만큼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이 없고요.
그런데 서류 한 장을 붙들고 있으면 같은 줄을 네 번, 다섯 번 읽어요.
그러다 누가 등 뒤로 지나가면 목덜미가 확 굳고, 어디까지 읽었는지가 또 사라집니다."
보험사에서 청구 서류를 심사하는 마흔두 살 남성분의 이야기입니다. 휴대전화로 조용한 ADHD에 관한 영상을 보다가 댓글 하나하나가 자기 이야기 같아서 소파에서 한참 일어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에게도 ADHD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그날 처음 알았습니다.
그분은 어릴 때 늘 "얌전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성적은 중간쯤이었고 선생님이 집에 따로 연락할 일도 없었습니다. 숙제를 빠뜨리거나 준비물을 두고 오는 날은 많았지만, 다들 덤벙대는 성격이라고만 여겼습니다. 회사에 들어가서는 남들보다 한 시간 일찍 나와, 사무실이 비어 있을 때 서류를 읽는 식으로 버텨 왔습니다.
떠들지 않는 아이는 눈에 띄지 않는다
ADHD라고 하면 흔히 교실을 돌아다니거나 차례를 기다리지 못하는 아이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과잉행동은 크게 드러나지 않고 부주의가 두드러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딴생각을 하면 겉으로는 수업을 듣는 것처럼 보이기 쉽습니다. 숙제나 준비물을 자주 잊어도 덤벙대는 성격으로 여겨지다가, 스스로 챙길 일이 많아진 성인이 되어서야 어려움이 뚜렷해지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영상이나 글만으로 조용한 ADHD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멍해지거나 자꾸 일을 놓치는 데는 다른 이유도 있을 수 있어 정신건강의학과 평가가 먼저입니다. 이 글에서는 그 평가와 치료를 받으면서도 남아 있는 긴장에 주목하려 합니다.
그분도 영상을 본 그 주에 병원을 예약했습니다. 진료에서는 부주의가 뚜렷하고 긴장과 불안도 꽤 높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의사와 상의해 약을 먹기 시작한 뒤로는 오전에 서류를 읽는 시간이 전보다 길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등 뒤에서 발소리가 나거나 건너편 책상에서 전화벨이 울리면, 여전히 읽던 내용보다 그 소리에 먼저 신경이 쏠렸습니다.
장부를 보면서도 출입문에 쏠리는 귀
과각성은 위험에 대비하느라 필요 이상으로 예민해지고 긴장한 상태를 말합니다. 주변에 무슨 일이 생기는지 계속 살피다 보면 눈앞의 일에 집중하기가 어렵습니다. ADHD의 부주의를 모두 긴장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긴장이 겹치면 집중은 더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혼자 작은 가게를 지키며 계산대에서 장부를 맞추는 사람을 떠올려 보세요. 고개는 장부를 향해 있어도 귀는 출입문에 달린 종에 가 있습니다. 언제 손님이 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종이 울리지 않아도 문 쪽을 신경 쓰다 보면, 더하던 숫자를 놓쳐 다시 계산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조용히 앉아 있지만 장부에만 집중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설명을 들은 그분은 잠시 말이 없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제가 딴생각을 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떠올려 보면 딴생각보다 소리를 먼저 듣고 있었네요."
일하다 집중이 끊기는 순간을 며칠간 살펴보셔도 좋습니다. 다른 생각에 빠지는지, 발소리나 전화벨, 누군가의 한숨 같은 주변 기척에 먼저 신경이 쏠리는지 보는 것입니다. 주변 기척이 먼저 신경 쓰인다면, 혹시 긴장한 채 주변을 살피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수 있습니다. 이것으로 ADHD 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다짐보다 귀가 먼저 움직일 때
그분에게는 집중이 끊기기 전에 목덜미부터 굳는다는 특징이 있었습니다. 이런 긴장은 소리에 신경 쓰지 말자고 다짐해도 쉽게 가라앉지 않습니다. 다짐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약을 먹은 뒤 서류를 읽는 시간은 길어졌지만, 발소리에 몸이 굳는 반응은 남아 있었습니다.
최면상담에서는 몸이 긴장하는 순간의 감각과 감정에 집중하며, 그 반응이 언제부터 이어졌고 어떤 경험과 관련되는지 살펴봅니다. 어린 시절의 경험이 떠오르면, 어른이 된 자신이 어린 자신에게 당시에는 알기 어려웠던 점을 알려 줍니다. 그 이해를 가지고 같은 일을 다시 겪어 보는 것입니다.
자석 낚싯대를 쥔 아이
상담실에서 그분이 먼저 짚은 곳은 목덜미였습니다. 깊은 최면 상태에서 등 뒤로 누가 지나갈 때 목덜미가 굳는 느낌에 집중했습니다. 그러자 거실 바닥에 앉아 있는 아주 어린 자신이 떠올랐다고 합니다.
기저귀를 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으로 보였습니다. 현관이 보이는 거실 바닥에서 아이가 자석 낚시 장난감을 가지고 놉니다. 막대 끝의 자석을 플라스틱 물고기 입에 대려고 입술을 앙다뭅니다. 그때 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립니다. 아이의 목이 뻣뻣해지고 낚싯대를 쥔 손이 움츠러듭니다.
발소리가 가벼운 날이면 아버지는 문을 열자마자 아이 이름을 불렀습니다. 무거운 날에는 말없이 신발을 벗고 바닥에 흩어진 장난감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오늘은 어떤 얼굴로 들어올지 문이 열리기 전에는 알 수 없었습니다. 아이는 물고기를 하나 건질 때마다 현관을 보았고, 문이 열리면 아버지 얼굴부터 살폈습니다.
그날 아버지는 말없이 들어와 낮은 목소리로 “좀 치워라” 했습니다. 아이는 낚싯대를 내려놓고 그림책을 펼쳤다가 금세 크레파스 통을 열었습니다. 장면을 이야기하던 그분이 잠시 멈추고 물었습니다. “아버지가 저한테 손을 댄 적은 한 번도 없어요. 그런데 이게 왜 떠오르죠?”
아이에게는 아버지가 어떤 기분으로 들어올지 알 수 없다는 것만으로도 긴장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어른이 된 그분은 현관을 살피는 어린 자신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아빠 기분은 네가 만든 게 아니야. 문이 열리기 전에 미리 알아내려고 애쓰지 않아도 돼.” 아버지의 기분을 아이가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뜻을 전했습니다.
그 이해를 가지고 같은 저녁을 다시 겪었습니다. 계단에서 발소리가 올라왔고, 아버지는 말없이 들어와 “좀 치워라” 했습니다. 아이도 그날처럼 고개를 들어 아버지를 보고 낚싯대를 내려놓았습니다. 이번에는 발소리가 들려도 목이 먼저 굳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얼굴을 보면서도 숨을 참지 않았고, 오늘 기분이 어떤지 서둘러 알아내려는 마음도 올라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낚싯대를 내려놓는 손도 움츠러들지 않았습니다.
그날 아이를 긴장하게 한 것은 “좀 치워라”라는 말보다, 아버지가 어떤 기분으로 들어올지 몰라 발소리를 기다리던 시간이었을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놀이를 하면서도 현관을 확인했고, 지금은 서류를 읽다가도 발소리에 목덜미가 굳었습니다. 이 장면으로 ADHD의 원인을 설명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때의 경계가 남아 있었다면, 원래도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에 긴장까지 더해졌을 수 있습니다.
등 뒤로 발소리가 지나간 오후
요즘은 청구 서류를 읽다가 같은 줄로 되돌아가는 일이 드물어졌다고 합니다. 며칠 전 오후에도 부장이 등 뒤를 지나 사무실을 가로질렀지만 목덜미가 굳지 않았습니다. 발소리를 들으면서도 읽던 줄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서류를 다 읽은 뒤 옆 책상의 후배가 막힌 청구 건을 물어 왔을 때도, 방금 읽은 서류를 다시 들추지 않고 설명해 주었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한 시간 일찍 출근해야 겨우 읽을 수 있던 서류를 이제는 남들과 같은 시간에 나와서도 읽는다고 합니다. 약은 지금도 의사와 상의하며 먹고 있습니다.
학교 다닐 때는 얌전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지금은 같은 줄을 몇 번씩 읽고 있다면, 그 어려움을 성격 탓으로만 돌리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조용한 ADHD인지 알아보려면 병원 평가가 먼저입니다. 치료를 받으면서도 작은 기척에 몸이 굳는다면, 어떤 순간에 무엇을 경계하는지 함께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몸에 밴 긴장이 가라앉으면 눈앞의 일을 이어 가기가 한결 수월해질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