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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먹고 앉았는데 창밖이 벌써 깜깜하더라. 기출문제 스무 개 풀었어.
문 열리는 소리만 나면 고개가 저절로 돌아가고, 다시 문제를 보면 엄마 문자에 답을 했나 싶고, 정신 차려 보면 내일 모의고사 걱정까지 가 있어.
지금은 관자놀이가 욱신거려서 잠깐 나왔어."
행정직 공무원 시험을 두 번째 준비하는 스물일곱 살 여성분이 스터디카페 앞 편의점 벤치에서 공부 친구에게 한 말이라고 합니다. 오후 내내 책상에 앉아 있었지만 문제에 좀처럼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출입문 잠금장치가 삑 울릴 때마다 눈이 먼저 문 쪽으로 갔고, 옆 사람이 의자를 끄는 소리에도 몸이 움찔했습니다. 해가 질 무렵이면 관자놀이가 조여 오고 속까지 메스꺼웠다고 합니다.
노이즈캔슬링 이어폰도 사 보았습니다. 소리는 줄었지만 이번에는 누가 말을 걸었는데 못 들었을까 싶어 몇 분마다 한쪽을 빼 보게 되었습니다. 책상 위에 뒤집어 둔 휴대전화도 화면이 켜지지 않았는데 몇 번씩 들춰 보았습니다.
집중 안 되는 이유를 검색해 보니 잠부터 챙기라는 글, 커피를 줄이라는 글, 성인 ADHD 집중력 문제를 다룬 글이 이어졌습니다. 잠은 일곱 시간씩 자고 있었습니다. 혹시나 싶어 정신건강의학과에서 검사를 받았더니 ADHD로 보기는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오히려 더 막막해졌다고 합니다. 병이 아니라면 결국 자기 의지가 약하다는 뜻인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스터디카페에는 이분을 부를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왜 자꾸 문 쪽을 돌아보고, 놓친 연락이 없는지 확인하게 되는 걸까요.
초점이 자꾸 뒤로 넘어가는 카메라
집중이 어렵다고 해서 모두 같은 이유는 아닙니다. 잠이 모자라거나 우울·불안이 있을 때, 복용 중인 약이나 갑상선 질환 같은 몸의 문제로도 집중력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학교와 집 등 여러 곳에서 비슷한 어려움이 있었다면 성인 ADHD 평가를 받아 보는 것이 좋습니다. 이 글에서는 이런 확인을 거친 뒤에도 작은 소리와 걱정에 주의가 자꾸 끌려가는 경우를 살펴보려 합니다.
책을 읽다가 소리가 나더라도 하던 일을 이어 가려면, 그 소리에 계속 신경 쓰지 않고 다시 책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필요한 곳에 주의를 기울이고 조절하는 기능을 주의조절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무언가 놓치지 않았는지 늘 주변을 살피고 있다면, 작은 소리나 떠오르는 생각도 그냥 넘기기 어렵습니다.
꽃을 찍으려는데 뒤로 지나가는 사람에게 자꾸 초점이 맞는 카메라를 떠올려 보세요. 화면 한가운데 꽃이 있어도 초점이 뒤로 옮겨 가면 꽃은 흐릿해집니다. 이분도 책을 보고 있었지만 문소리가 나거나 걱정거리가 떠오르면 그쪽으로 주의가 옮겨 갔습니다.
문소리가 나면 누가 들어왔는지 확인했고, 조용할 때는 엄마 문자에 답했는지, 학원 환불 신청 기한이 오늘까지였는지 같은 생각이 끼어들었습니다. 대부분 즐거운 공상이 아니라 무언가 놓치지 않았는지 되짚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분도 상담을 시작하며 사흘 동안 적어 보았습니다. 메모에는 판례의 요지가 막 이해되기 시작할 때 고개를 든 기록이 유난히 많았습니다.
소리를 막아도 확인은 멈추지 않는다
휴대전화를 멀리 두거나 25분 타이머를 맞추고 공부하면 방해를 줄이고 시작하는 부담을 덜 수 있습니다. 이어폰으로 주변 소리를 줄이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분은 이어폰으로 소리를 줄여 보았지만, 무언가 놓치고 있지 않은지 확인하는 일은 계속됐습니다. 소리가 줄자 놓친 연락이 없는지 생각했고, 누가 말을 걸었을까 봐 이어폰 한쪽을 빼 보았습니다.
집중하겠다고 다짐해도 문소리에 고개를 돌리는 것은 순식간이었습니다. 이분에게는 집중하려는 마음과 별개로, 주변부터 확인하는 무의식 자동반응이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최면상담에서는 주의가 다른 곳으로 향하는 순간의 느낌에서 시작해, 그 긴장과 연결되는 경험과 감정을 살펴봤습니다.
블록 탑 앞에서 듣지 못한 목소리
이분은 문소리를 들을 때 숨이 멈추고 눈이 커지는 느낌부터 든다고 했습니다. 최면이 깊어진 뒤 그 느낌에 집중하자 어린 시절의 작은 방이 떠올랐습니다.
커다란 플라스틱 블록을 두 손으로 눌러야 겨우 끼우던 나이의 아이가 작은 방 한가운데 앉아 있습니다. 빨강과 노랑을 번갈아 올린 탑은 어느새 아이 가슴께까지 올라왔습니다. 아이는 입술을 꼭 다물고 하나를 더 올립니다. 그사이 부엌에서 엄마가 아이 이름을 두 번 부르지만, 아이 귀에는 블록이 맞물리는 딸깍 소리만 들어옵니다.
방문이 벌컥 열립니다. "몇 번을 불렀는데 대답도 안 해!" 엄마는 아이 팔을 잡아 일으키고, 아이 손에 쥐여 있던 노란 블록이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아이는 영문도 모른 채 끌려 나가며 탑 쪽을 돌아봅니다.
그 뒤로 블록을 쌓는 아이의 손은 자주 허공에서 멈춥니다. 하나를 끼우고는 방문 쪽을 보고, 부엌의 물소리가 끊기면 고개를 듭니다. 탑은 전처럼 높이 올라가지 못합니다.
깊은 최면 속에서 어른이 된 이분은 블록 탑 앞의 어린 자신에게 다가갔습니다. 엄마 목소리를 일부러 무시한 것이 아니라, 놀이에 푹 빠져 듣지 못한 것이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엄마가 화를 냈다고 해서 블록 놀이에 집중한 것까지 잘못은 아니며, 또 혼날까 봐 노는 내내 문 쪽에 귀를 기울일 필요는 없다고 전했습니다.
그런 다음 그 오후를 처음부터 다시 겪었습니다. 아이는 이번에도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했고, 엄마는 똑같이 문을 열고 소리치며 팔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노란 블록도 똑같이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이번에는 놀이에 빠져 못 들은 것이 잘못은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끌려 나가는 동안 아이의 숨은 멈추지 않았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던 느낌도 금방 가라앉았습니다. 탑을 돌아보는 눈에는 겁보다 아쉬움이 더 많이 담겨 있었다고 합니다.
아이는 블록에 빠져 있다가 혼난 뒤부터 놀이 중에도 방문을 살폈습니다. 지금은 문제가 막 풀리기 시작할 때 오히려 고개를 들고, 놓친 연락이나 할 일이 없는지 확인했습니다. 무언가에 몰두하면 중요한 부름을 놓칠 것 같은 긴장이 두 장면을 잇고 있었을 수 있습니다.
문을 등지고 앉은 창가 자리
요즘 이분은 스터디카페에서 출입문을 등진 창가 자리에 앉는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들어오는 사람이 모두 보이는 구석 자리만 골랐습니다. 삑 소리가 나면 누가 들어왔다는 것은 알지만, 고개는 돌아가지 않고 풀던 문제의 보기를 계속 읽어 내려간다고 합니다. 휴대전화는 사물함에 넣어 두고, 쉬는 시간이 되어서야 꺼내 봅니다.
며칠 전에는 행정법 문제 한 묶음을 풀고 채점까지 마친 뒤 사물함을 열었다고 합니다. 휴대전화에는 엄마의 부재중 전화가 남아 있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공부하는 동안에도 몇 번이고 들춰 보았을 텐데, 그날은 전화가 온 줄도 모르고 두 시간을 보낸 것입니다. 편의점 벤치에 앉아 다시 전화를 걸자 반찬을 부쳤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전화를 끊고 옆에 앉은 친구에게 먼저 말을 꺼냈다고 합니다. "오늘은 행정법 한 단원 끝냈어."
집중이 안 될 때마다 의지를 탓해 왔다면, 막 빠져들려던 순간 무엇이 주의를 끌었는지 떠올려 보세요. 문소리를 확인하고 놓친 일을 되짚느라 흐름이 끊겼다면, 집중할 마음이 없는 것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