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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기 전에 세 번 봤어요. 한 줄씩 손가락으로 짚어 가면서요.
그런데 오후에 현장에서 욕실 줄눈재가 안 들어왔다고 전화가 와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고 손바닥이 축축해져요.
전화를 끊고 발주서를 다시 열면 줄눈재만 쏙 빠져 있어요."
인테리어 회사에서 5년째 자재 발주를 맡고 있는 서른여섯 살 여성분의 이야기입니다. 현장마다 타일, 수전, 실리콘, 줄눈재까지 수십 가지 품목을 공사 날짜에 맞춰 주문하는 일입니다. 업무 실수가 한 번 나면 공사가 하루 멈추기도 해서, 팀장에게 꼼꼼히 좀 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써 봤습니다. 품목별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칸마다 형광펜을 두 번씩 긋고, 퇴근 전에는 그날 보낸 발주서를 전부 다시 열었습니다. 옆자리 동료에게 한 번 더 봐 달라고 부탁하는 날도 늘었습니다. 그래도 빠뜨리는 품목은 줄지 않았고, 밤에 누우면 낮에 보낸 메일이 떠올라 휴대전화로 메일함을 다시 열었다고 합니다.
세 번씩 확인하는 사람이 왜 한 줄을 놓칠까요. 실수가 잦으면 확인을 덜 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분은 확인 횟수를 늘려도 같은 일을 겪었습니다. 얼마나 확인했는지와 함께, 확인하는 동안 무엇에 신경이 쏠렸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었습니다.
실수가 몰리는 날이 따로 있다면
어릴 때부터 숙제나 준비물, 약속을 자주 놓쳤고 지금도 회사와 집에서 비슷한 어려움이 이어진다면 성인 ADHD 가능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정신건강의학과에서 평가를 받는 것이 먼저입니다. 잠이 많이 부족하거나 우울과 불안이 심할 때도 실수가 늘어날 수 있습니다.
이분도 성인 ADHD에 관한 글을 찾아 읽으며 혹시 자신도 그런 것은 아닌지 고민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주말 캠핑 짐은 목록 없이 혼자 챙겨도 빠뜨리는 물건이 없었습니다. 실수는 회사에서, 그중에서도 지적을 받은 다음 며칠 동안 몰렸습니다.
머릿속 쟁반에 주전자부터 올라가면
지적을 받은 뒤에는 왜 더 꼼꼼히 보려 해도 놓치는 것이 생길까요. 이때 살펴볼 것이 작업기억입니다. 정보를 잠깐 기억해 두면서 그 정보를 이용해 일을 처리하는 기능입니다. 발주서의 품목을 보며 수량을 옮겨 적거나, 전화로 들은 주소를 받아 적을 때도 쓰입니다. 한 번에 기억하며 처리할 수 있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식당에서 쟁반에 물잔을 담아 나르는 모습을 떠올려 보세요. 쟁반이 넓어도 잔을 끝없이 올릴 수는 없습니다. 한가운데 커다란 주전자까지 놓여 있다면 잔을 놓을 자리는 더 좁아집니다.
이분에게는 ‘또 빠뜨리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그 주전자와 같았습니다. 걱정에 신경을 쓰느라 정작 품목과 수량을 충분히 살피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눈으로는 줄을 따라가면서도 이미 본 곳으로 자꾸 돌아가다 보면 다음 줄을 건너뛸 수 있습니다. 그분도 발주서를 세 번째 볼 즈음이면 눈은 줄눈재 칸을 지나가는데 머릿속에는 팀장 얼굴이 떠 있었다고 했습니다.
목록을 늘려도 가슴은 먼저 뛰었다
체크리스트와 알림, 일을 작은 단계로 나누는 방법은 실제로 도움이 됩니다. 기억해야 할 것을 종이에 옮기면 머릿속에서 붙잡고 있어야 할 양이 줄기 때문입니다. 성인 ADHD로 진단받은 분이라면 의사와 상의해 복용하는 약도 주의를 오래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이분은 목록을 펴는 순간에도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확인한 칸에 줄을 긋고 나서도 정말 그었는지 다시 보았습니다. 빠뜨리지 않으려고 만든 목록까지 거듭 확인하며 같은 걱정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다음에는 꼼꼼히 하자는 다짐만으로는 달라지기 어려웠습니다. 발주서를 열자마자 손바닥이 젖는 것은 마음먹고 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최면상담에서는 이처럼 생각보다 먼저 나타나는 무의식 자동반응을 살펴봅니다. 긴장이 올라올 때의 몸 느낌과 감정에 집중하며, 함께 떠오르는 경험과 그때의 마음을 다룹니다.
잠자리 준비에서 빠진 한 가지
깊은 최면 속에서 그분은 현장 전화를 받을 때 가슴이 쿵 내려앉던 느낌에 집중했습니다. 그러자 어린 시절 어느 밤의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치약을 아직 엄마가 짜 주던 무렵입니다. 엄마가 방에 이불을 펴며 말합니다. "손 씻고, 이 닦고, 잠옷 입고 와." 아이는 세면대 앞 발판에 올라가 손을 씻고, 엄마가 짜 둔 치약으로 이를 닦습니다. 그러고는 입가에 거품 자국을 묻힌 채 낮에 입던 옷 그대로 방으로 뛰어 들어갑니다.
이불에 앉으려는 아이를 보고 엄마가 한숨을 쉽니다. "잠옷은? 세 개 말했는데 또 하나 빼먹었네. 너는 꼭 하나씩 빠뜨리더라." 아이는 얼굴이 달아오른 채 발가락을 오므리고 서랍으로 달려가 잠옷을 꺼냅니다.
그 뒤로 잠자리 준비를 하는 밤이면 아이는 손을 씻다가 멈추고 방 쪽을 돌아봅니다. 이를 닦으면서도 작은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 봅니다. 잠옷을 입고 나서도 세면대로 돌아가 칫솔이 젖어 있는지 만져 봅니다.
최면 속에서 어른이 된 그분은 발판 위의 어린 자신에게 다가갔습니다. 거울에는 두 사람의 얼굴이 함께 비쳤습니다. 한꺼번에 들은 세 가지를 모두 기억하기에는 아직 어리다는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잠옷을 늦게 입었다고 모자란 아이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도 전했습니다. 그런 다음 엄마가 잠자리 준비를 시키던 때부터 같은 밤을 다시 경험했습니다.
아이는 이번에도 낮에 입던 옷 그대로 방에 들어갔고, 엄마는 한숨을 쉬며 같은 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아오르던 얼굴이 금방 식었고, 오므렸던 발가락도 풀렸습니다. 서랍에서 잠옷을 꺼내면서도 자신을 늘 하나씩 빠뜨리는 아이라고 여기지는 않았습니다. 잠옷을 조금 늦게 입었을 뿐이라고 받아들였습니다.
잠옷을 빠뜨린 뒤 아이는 이미 이를 닦았는지까지 다시 확인했습니다. 상담 전에도 그분은 지적을 받은 뒤면 보낸 발주서를 몇 번이고 열었습니다. 상담에서는 하나를 놓쳤다는 이유로 자신을 부족한 사람처럼 여기고, 이미 한 일도 믿지 못해 되짚는 마음을 함께 다뤘습니다.
줄눈재 전화가 다시 걸려 온 오후
요즘 그분은 발주서를 보내기 전에 품목을 위에서부터 한 번 차근차근 읽고 전송 버튼을 누른다고 합니다. 퇴근 전에 그날 보낸 메일을 모두 다시 열어 보던 습관도 사라졌습니다.
얼마 전 현장에서 또 줄눈재 때문에 전화가 왔을 때도 달랐다고 합니다. 예전 같으면 휴대전화를 쥔 손부터 젖었을 텐데, 그날은 발주서를 확인해 보겠다고 말하고 파일을 열었습니다. 줄눈재는 제대로 주문되어 있었고, 현장에서는 색상을 바꿔 달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새 색상으로 주문한 뒤 곧바로 다음 현장 발주서를 이어서 썼습니다.
실수가 아예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지난달에는 실리콘을 한 상자 적게 적었다고 합니다. 전화를 끊고 바로 한 상자를 더 주문했고, 그 일을 밤까지 되짚지는 않았습니다. 늘 사양하던 두 현장 동시 발주도 이번에는 먼저 맡겠다고 나섰습니다.
확인 횟수를 늘려도 같은 실수가 되풀이된다면, 확인하는 동안 무엇을 걱정하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분은 품목보다 다시 지적받을 가능성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습니다.
그분의 모니터 옆에는 지금도 체크리스트가 붙어 있다고 합니다. 칸마다 그어진 형광펜 줄이 이제 한 줄씩이라는 점만 예전과 다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