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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나는 것보다 너무 빠른 게 문제예요.
팀장님이 ‘이건 방향을 다시 잡아 보자’ 한마디만 해도 몇 초 만에 얼굴이 달아오르고 눈물이 핑 돌아요.
속으로 여기서 울면 안 된다고 다그치는 순간 목이 더 메고, 결국 화장실로 뛰어가요.
집에 와서 생각하면 별말도 아니었는데, 그때는 감정이 저보다 먼저 달려가 버려요.”
온라인 쇼핑몰에서 상품 기획을 맡고 있는 서른네 살 여성분의 이야기입니다. 이 년 전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성인 ADHD 진단을 받았고, 지금도 약을 먹으며 진료를 이어 가고 있습니다. 마감을 놓치는 일이 줄고 회의 내용도 예전보다 잘 따라가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감정은 여전히 뜻대로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또 열쇠를 두고 나왔느냐고 웃기만 해도 목소리가 먼저 높아지고, 친구가 약속을 미루자는 문자 한 통에 눈물부터 났습니다. 좋은 소식을 들으면 주변이 놀랄 만큼 들떴다가 금세 가라앉기도 했습니다. 성인 ADHD의 감정조절 어려움에 관한 글을 읽고 나서야, 이런 감정 기복도 ADHD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더 힘든 것은 감정이 지나간 뒤였습니다. 또 과하게 굴었다는 생각에 얼굴이 화끈거렸고, 그 부끄러움 때문에 괜히 더 날카롭게 말해 버리는 날도 있었습니다. 감정은 왜 이렇게 빨리 올라오고, 가라앉히려 할수록 더 커지는 걸까요?
눈물이 나면 안 된다는 생각
감정 기복을 이야기할 때는 병원 진료도 함께 짚어야 합니다. ADHD 진단과 약물치료는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이루어집니다. 감정 기복이 오래 이어지거나 일상을 크게 흔든다면, ADHD 외에 다른 원인은 없는지도 진료에서 함께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이 글에서는 진료를 받으면서도 감정이 너무 빨리 올라와 힘들었던 한 분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감정이 올라왔을 때 그 크기와 표현을 조절하는 것을 정서조절이라고 합니다. 기분 나쁜 말을 듣고도 잠깐 멈추거나, 마음을 가라앉히거나, 다른 생각으로 주의를 돌리는 일이 여기에 속합니다. 성인 ADHD가 있으면 이런 조절이 어려워, 감정이 곧바로 표정과 말로 드러나기도 합니다.
그분도 서운하다는 생각을 채 하기도 전에 목소리부터 높아진다고 했습니다. 회의에서 눈물이 날 때는 또 다른 어려움이 뒤따랐습니다. 눈가가 뜨거워지면 곧바로 ‘울면 끝이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목이 더 메었습니다.
감정을 드러냈다가 창피를 당하거나 지적받은 경험이 있으면, 감정이 올라오는 순간부터 남에게 보일까 걱정할 수 있습니다. 서운하거나 화가 난 마음에, 들키면 안 된다는 긴장과 부끄러움까지 겹치는 것입니다.
조용한 영화관에서 과자 봉지를 뜯을 때를 생각해 보세요. 살짝 만졌는데도 크게 바스락거려 앞줄 사람이 돌아봅니다. 얼른 소리를 멈추려 손에 힘을 주다가 봉지를 더 요란하게 구기기도 합니다. 감정도 서둘러 감추려다 긴장이 더해지면 오히려 가라앉히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분에게도 눈물 자체보다 우는 모습을 남에게 보이는 일이 더 힘들었던 셈입니다.
서운함 뒤에 따라온 부끄러움
최근에 감정이 크게 올라왔던 순간을 떠올려 보세요. 처음에는 서운하거나 짜증이 났는데, 곧이어 ‘사람들이 보겠다’, ‘또 과하게 굴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나요? 그때부터 얼굴이 더 달아오르고 목소리가 커졌다면, 처음 느낀 감정에 부끄러움과 긴장이 더해졌을 수 있습니다. 감정이 빨리 올라오는 것도 힘들지만, 그런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숫자를 세고 잠깐 나가 봐도
그분도 감정을 가라앉히려고 여러 방법을 꾸준히 써 왔습니다. 감정이 올라오면 속으로 숫자를 열까지 세고, 회의 중에는 물을 마시러 잠깐 나갔다 오기도 했습니다. 집에서는 목소리가 높아질 것 같으면 먼저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습니다.
숫자를 세거나 잠시 자리를 벗어나면 감정이 말과 행동으로 번지기 전에 여유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분은 약물치료로 집중하는 데 도움을 받고 있었고, 감정 기복도 담당 의사와 함께 살펴볼 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숫자를 세기 시작할 때는 이미 눈물을 들키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긴장해 있었습니다. 잠깐 나갔다 와도 부끄러운 마음은 남았습니다.
그분에게 ‘침착하자’는 다짐보다 앞섰던 것은 감정을 감추려는 마음이었습니다. 최면상담에서는 ADHD 특성 자체를 바꾸려 하기보다, 감정이 올라올 때마다 따라붙는 부끄러움과 긴장에 주목했습니다. 그런 무의식 자동반응과 이어진 경험을 함께 살펴봤습니다.
이모네 거실에서 터진 풍선
상담은 회의실에서 눈가가 뜨거워지던 순간을 떠올리며 시작했습니다. 그 장면을 이야기하는 동안 귀 끝이 붉어졌고 목소리도 조금씩 잠겼습니다. 최면이 충분히 깊어진 뒤 화끈거림과 목이 잠기는 느낌에 집중하자, 그분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어린 시절의 풍선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외할머니 생신이라 친척들이 이모네 집 거실에 모인 날이었습니다. 벽에는 색색의 풍선이 붙어 있었고, 아직 말보다 울음이 빠르던 아이가 그 아래에서 사촌들과 뛰어놀았습니다. 그때 바로 머리 위에서 풍선 하나가 펑 하고 터졌습니다.
아이는 깜짝 놀라 바닥에 주저앉아 크게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거실에 있던 어른들이 한꺼번에 돌아보았습니다. 누군가 “그걸로 왜 그렇게 울어” 하고 웃었고, 다른 어른이 “사람들 보는데 그만해” 하고 말했습니다. 아이는 두 손으로 입을 막았지만, 울음은 손가락 사이로 딸꾹질처럼 끊겨 나왔고 얼굴은 귀까지 뜨거웠습니다.
최면 속에서 어른이 된 그분은 풍선이 터지기 전의 거실에서 어린 자신과 눈높이를 맞췄습니다. “큰 소리에 놀라서 우는 건 당연한 거야. 크게 울어도 부끄러운 일이 아니야.” 사람들이 보고 있어도 마찬가지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그 말을 전한 뒤 같은 일을 다시 경험했습니다. 풍선은 이번에도 터졌습니다. 아이는 주저앉아 울었고 어른들의 말도 그대로 들려왔습니다. 두 손으로 입을 막았지만, 이번에는 우는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얼굴이 귀까지 달아오르지 않았고, 울음도 딸꾹질처럼 끊기지 않고 차츰 잦아들었다고 합니다.
이야기를 마칠 무렵에는 그분의 귀 끝에 있던 붉은 기도 가라앉았습니다.
이 장면을 ADHD가 생긴 원인으로 다룬 것은 아닙니다. 놀라서 우는 아이도, 회의에서 울컥한 그분도 남에게 감정을 보이면 창피하다고 느끼며 눈물을 억누르려 했습니다. 상담에서는 그 부끄러움과 긴장에 주목했습니다.
울컥한 채로 끝까지 한 설명
상담 뒤에도 감정은 빨리 올라온다고 합니다. 지난주 회의에서 팀장이 새 기획안의 방향을 다시 잡자고 했을 때도 눈가가 한순간 뜨거워졌습니다. 예전에는 그때부터 목이 조여 화장실로 나가곤 했습니다.
이번에는 자리를 지키고 “잠깐만요, 제가 왜 이 방향으로 잡았는지 먼저 말씀드릴게요” 하며 이유를 세 가지로 설명했다고 합니다. 팀장은 그중 두 가지를 살려 다시 정리해 보자고 했습니다.
집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있었다고 합니다. 남편이 또 열쇠를 두고 나왔느냐고 웃자 순간 목소리가 올라가려 했지만, “그러게, 현관에 열쇠 걸이를 하나 달자” 하며 같이 웃었습니다. 감정은 여전히 빨리 올라와도, 뒤따르던 부끄러움이 없으니 몇 초 만에 지나간다고 했습니다.
성인 ADHD로 감정조절이 어렵다고 해서 성격이 모난 것은 아닙니다. 감정을 가라앉히기 어려운 데다, 감정을 드러낸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면 더 힘들 수 있습니다. ADHD는 진료를 통해 관리하면서, 그분처럼 감정에 뒤따르는 부끄러움과 긴장도 함께 살펴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