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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보고를 하던 중에 갑자기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숨이 턱 막히는데,
귀에서는 삐 하는 소리까지 울리더라고요. 식은땀이 쏟아져서 그대로 회의실을 빠져나왔어요.
병원에서는 심장도 어디도 이상이 없다면서, 스트레스성 공황장애 같다고 하더군요.
솔직히 조금 안심했어요. 정신적인 병이 아니라,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거잖아요."
얼마 전,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신 30대 후반의 직장인 한 분이 계셨습니다. '스트레스성'이라는 말에 마음이 놓였다는 그 고백에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습니다. 정신과 질환이라는 말은 어쩐지 무겁게 들리지만, 스트레스 탓이라면 일만 좀 줄이면 될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절반은 맞습니다. 실제로 쌓인 스트레스가 공황발작의 방아쇠를 당기는 경우는 아주 많습니다.
그분도 그렇게 믿고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 보셨다고 합니다. 번아웃인가 싶어 미뤄 둔 연차를 몰아 쓰고, 주말마다 산에 오르고, 저녁 자리도 줄였습니다. 한동안은 정말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분기 마감이 다가오던 어느 밤, 잠자리에 누웠는데 또 가슴이 두근거리고 몸이 떨려 왔다고 합니다.
쉬어도 시위가 풀리지 않는 몸
여기서 이상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같은 사무실에서 같은 마감을 견디는 동료들은 멀쩡한데, 왜 어떤 사람에게만 공황이 올까요. 스트레스가 원인의 전부라면, 이 차이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우리 뇌에는 위험을 알아차리면 곧장 몸에 비상을 거는 '편도체'라는 부위가 있습니다. 갑자기 심장이 빨리 뛰고 숨이 가빠지는 것도, 위급한 순간 바로 달아날 수 있게 몸을 깨우는 편도체의 경보입니다. 그런데 늘 긴장 속에 살아온 분들의 편도체는, 쉬는 순간에도 시위가 팽팽하게 당겨진 활과 같습니다. 활이 이미 끝까지 당겨져 있으면, 손끝으로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화살이 날아갑니다. 스트레스는 그 손끝일 뿐, 활을 당겨 놓은 힘이 아닙니다.
의지로도 약으로도 닿지 않는 자리
문제는 이 활을 누가, 언제 당겨 놓았는지 본인도 모른다는 데 있습니다. 편도체의 경계 수위는 의식이 아니라, 그 아래 무의식의 영역에서 정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머리로는 '이제 좀 쉬자, 별일 아니다' 다짐해도, 몸의 팽팽함은 의지만으로 풀리지 않습니다. 연차를 내고 몸을 쉬게 해도 시위가 그대로인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병원에서 처방받는 약도 이 지점에서 도움이 됩니다. 약은 곤두선 편도체를 가라앉혀 경보가 덜 울리게 해 주고, 그만큼 발작의 기세와 횟수를 누그러뜨려 줍니다. 다만 시위가 애초에 왜 그렇게까지 당겨졌는지, 그 원인까지 바꿔 주지는 못합니다.
긴장이 처음 새겨진 순간으로
최면상담이 들여다보는 자리가 바로 그 지점입니다. 의식의 다짐이 닿지 않는 무의식으로 들어가, 몸이 그 긴장을 처음 떠안게 된 순간을 찾아가는 작업입니다. 그분이 깊은 최면 속에서 닿은 곳도 바로 그런 자리였습니다.
가슴을 조여 오던 그 느낌을 따라 내려가자, 일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장면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말을 막 배우기 시작했을 무렵의 어느 밤이었습니다. 열이 올라 몸이 펄펄 끓는데, 어두운 집 안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한참을 울다 지친 아이는 울음을 그치고, 현관에서 발소리가 나지 않을까 조그만 귀를 세운 채 밤새 깨어 있었습니다. 울어도 와 주는 사람이 없다면, 스스로를 지키는 길은 잠들지 않고 깨어 있는 것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몸의 팽팽함은 지금의 일이 아니라, 훨씬 이른 시절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습니다. 그 밤의 긴장은 풀릴 기회를 얻지 못한 채 몸에 남아, 자라서는 공부로, 일로 모습만 바꾸며 수십 년째 시위를 당기고 있었던 셈입니다. 정작 본인에게는 기억조차 희미한 시절의 일이니, 그동안 일과 스트레스만 탓해 온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밤새 깨어 있던 아이에게 건넨 말
깊은 최면 속에서, 어른이 된 지금의 그분이 그 어두운 방으로 들어가 아이 곁에 앉았습니다. 이제는 네가 밤새 망을 보지 않아도 된다고, 내가 여기 있겠다고 말을 건넸습니다. 그 말을 건네는 동안, 내내 주먹을 쥔 채였던 그분의 두 손이 무릎 위에서 천천히 펴졌습니다.
몇 주 뒤 상담에서 그분이 들려주신 변화는 거창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일요일 오후에 거실 소파에서 깜빡 잠이 들었다가, 한 시간이 지나서 깼다고 합니다. 결혼하고 처음 보는 모습이라며, 아내분이 사진까지 찍어 두었다고 했습니다. 쉬는 날에도 머릿속으로 월요일 일정을 굴리던 분이, 그날은 그냥 잠이 들었던 것입니다.
마감 철은 어김없이 다시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래도 한밤중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던 일은, 그 뒤로는 없었다고 하셨습니다.
'스트레스성 공황장애'라는 말은 그래서 절반만 맞는 이름입니다. 화살을 날린 것은 분명 스트레스지만, 시위를 당겨 놓은 것은 그보다 훨씬 오래된 긴장입니다. 그러니 쉬어도 자꾸 제자리로 돌아온다고 해서, 노력이 모자랐던 것이 아닙니다. 그 시위가 언제부터 당겨져 있었는지 그 내력을 찾아 풀어 가다 보면, 오래 묵은 어려움도 대개 한 달 안팎에 한결 가벼워지시는 분이 많습니다.
혹시 쉬는 날에도,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깨어 있지 않으신가요. 몸은 소파에 있는데 머리는 다음 주를 살고 있다면, 줄여야 할 것은 일만이 아닐 수 있습니다. 같은 자리에서 증상이 자꾸 되돌아온다면, 이제 필요한 일은 견디는 것이 아니라 푸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