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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좀 그만 깜빡여. 엄마가 하지 말라고 했지.”
“나도 하기 싫단 말이야. 근데 자꾸 되는 걸 어떡해!”
초등학교 3학년 아들과 받아쓰기 숙제를 하던 저녁이었습니다. 공책을 내려다보던 아이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뜨기를 서너 번 되풀이했습니다. 눈가가 파르르 떨리고 이마가 찌푸려졌으며, 연필을 쥔 손에도 힘이 들어갔습니다. 어머니가 한숨을 쉬며 한마디 하자 아이는 손등으로 눈을 문지르다가 연필을 내려놓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닫힌 방문 너머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머니는 식탁에 남은 공책을 한참 바라보다가 휴대전화로 틱 증상을 검색했습니다. 혼내면 더 심해질 수 있다는 글을 여러 번 읽었는데도, 아이가 눈을 깜빡이면 그 말부터 튀어나왔다고 합니다. 하지 말라는 말을 삼키는 것보다 먼저, 부모가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안과에서는 눈에 이상이 없다고 했습니다
깜빡임은 새 학년이 시작될 무렵부터 눈에 띄었습니다. 처음에는 눈이 건조하거나 알레르기가 있는 줄 알고 안과부터 찾았습니다. 눈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들었고, 인공눈물을 넣어 봐도 깜빡임은 줄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눈을 자꾸 깜빡인다면 먼저 눈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눈에는 이상이 없는데 갑작스럽고 빠른 움직임이 반복된다면 틱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틱은 같은 움직임이나 소리가 되풀이되는 증상이며, 눈 깜빡임도 흔히 보이는 운동 틱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어 찾은 소아청소년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일시적인 틱으로 보인다며 좀 더 지켜보자고 했습니다. 아이들의 틱은 시간이 지나며 줄거나 사라지는 경우가 많지만, 일부는 오래 이어지기도 합니다. 틱은 아이가 일부러 만드는 행동이 아니며, 뇌에서 움직임을 조절하는 과정과 유전적·환경적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관련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의사는 깜빡임이 보여도 나무라거나 지적하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어머니도 그 당부를 지키려고 애썼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눈을 깜빡이면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조이고 시선이 아이 얼굴로 향했다고 합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아이는 그 눈길을 알아챘습니다. 엄마와 눈이 마주치면 숨을 멈춘 채 손으로 얼굴을 가리거나 고개를 돌렸습니다.
블록을 조립할 때는 깜빡이지 않던 아이
어머니는 깜빡임이 언제 심해지는지 달력에 적어 보기로 했습니다. 받아쓰기 전날 밤, 학예회 연습이 있던 주, 꾸중을 들은 직후에 특히 잦았습니다. 학예회 연습 때는 친구들이 자기 눈을 볼까 봐 맨 뒷줄에 서겠다고 했습니다. 반대로 거실 바닥에서 블록을 조립할 때는 한 시간이 지나도 거의 깜빡이지 않았습니다.
틱은 스트레스나 불안, 피로가 심할 때 잦아지고, 틱에 관심이 쏠리면 더 두드러질 수 있습니다. 어떤 날과 상황에서 증상이 늘거나 줄었는지 기록하면 아이가 힘들어하는 순간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기록만으로 진단할 수는 없지만 진료를 받을 때 참고자료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증상이 심하거나 오래 이어져 아이의 생활을 방해한다면 약물치료나 행동치료를 고려할 수 있습니다. 행동치료에서는 틱이 나오기 전의 느낌을 알아차리고, 틱과 동시에 하기 어려운 다른 동작을 익히기도 합니다. 이 가족은 지켜보자는 의사의 말에 따라 아이가 일찍 잠자리에 들도록 챙겼습니다. 그래도 긴장한 날에는 깜빡임이 늘었고 얼굴을 가리는 일도 계속됐습니다. 어머니가 아이 손을 잡고 상담실을 찾은 것은 그 무렵이었습니다.
깜빡이지 말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 이유
상담에서 아이에게 눈을 깜빡이기 직전에 어떤 느낌이 드는지 물었습니다. 아이는 손가락으로 눈썹 바로 아래를 짚었습니다. “여기가 간질간질하고 뻑뻑해요. 깜빡하면 좀 시원해져요.”
틱이 나오기 전에 몸 한곳에서 차오르는 불편한 느낌을 ‘전조충동’이라고 합니다. 틱을 하고 나면 그 느낌이 잠시 가라앉기도 합니다. 아이에게는 눈가의 간지러움이 차오르면 눈을 깜빡이고, 잠깐 편해지는 순서가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재채기가 나오려 할 때 코끝이 간질거리는 모습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잠깐 참을 수는 있어도 참는 동안 간지러움이 더 커질 수 있습니다. 옆에서 누군가 “재채기하지 마”라고 하면 신경이 온통 코끝에 쏠립니다. 아이도 “깜빡이지 마”라는 말을 들을수록 눈가의 불편함과 주변의 시선을 더 의식했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이번에는 참아야지’라고 마음먹어도 깜빡임을 바로 멈추기는 어렵습니다. 최면상담은 틱을 없애는 치료가 아니며 의료적 평가나 행동치료를 대신하지도 않습니다. 상담에서는 아이가 긴장하면 숨을 멈추고 몸에 힘을 주는 반응, 깜빡임을 들킬까 봐 얼굴을 가리고 숨는 반응을 중심으로 살펴봤습니다.
노란 매트 위에서 무릎을 두드리던 아기
깊은 최면 상태에서 아이는 눈썹 아래의 간질거리는 느낌에 가만히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잠시 뒤 작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노란 매트에 앉아 있어요. 현관에서 삐리릭 소리가 나요. 할머니일 수도 있고, 이모일 수도 있고, 모르는 아줌마일 수도 있어요.”
비가 오는 어느 아침, 기저귀를 차서 엉덩이가 불룩한 아기가 거실 매트 위에 앉아 있습니다. 엄마는 출근하려고 외투를 입은 채 현관에서 구두를 신고 있습니다. 도어록이 삐리릭 울리자 아기는 숨을 멈추고 현관만 바라봅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이 우산을 접으며 “아이고, 우리 강아지” 하고 웃습니다.
엄마는 아기 볼에 입을 맞추고 서둘러 나갑니다. 들어온 사람은 장바구니를 들고 곧장 부엌으로 갑니다. 아기는 숨을 멈춘 채 현관을 바라보며 한 손으로 무릎을 두드립니다. 부엌에서 익숙한 물소리와 도마 소리가 이어지고 나서야 긴장이 조금 가라앉습니다.
그날 우산을 들고 들어온 사람의 얼굴은 최면 속에서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장면에 남아 있는 것은 현관의 삐리릭 소리와 누가 들어올지 몰라 멈췄던 숨, 가슴의 두근거림이었습니다.
초등학생이 된 아이는 최면 속에서 매트 위의 아기 곁으로 다가가 앉아 말했습니다.
“누가 들어올지 몰라서 가슴이 콩콩 뛰지. 문으로 들어오는 사람은 날마다 달라도 다 너를 돌봐 주러 오는 사람이야. 혼자 무릎을 두드리며 마음을 달래느라 애썼어.”
현관에서 다시 삐리릭 소리가 났습니다. 이번에도 엄마는 서둘러 나갔고, 들어온 사람은 곧장 부엌으로 갔습니다. 아기는 다시 무릎을 두드렸지만, 이번에는 누가 온 것인지 알 수 없어도 자신을 돌봐 줄 사람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습니다. 숨을 멈춘 채 현관만 바라보던 긴장도 전처럼 커지지 않았다고 아이는 말했습니다.
최면에서 깨어난 아이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습니다. “그 아기 진짜 나예요? 손이 엄청 작던데요.”
이 아침이 틱을 만들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으며, 틱이 부모의 양육 방식 때문에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누가 들어올지 몰라 숨을 멈추고 가슴을 졸이던 반응은 일찍부터 익숙했을 수 있습니다. 지금도 숙제나 학예회처럼 긴장되는 순간에는 몸에 힘이 들어갔고, 누군가 깜빡임을 볼까 봐 얼굴을 가리거나 자리를 피했습니다. 상담에서는 틱의 원인을 한 장면에서 찾기보다, 긴장할 때 몸을 굳히고 혼자 숨으려는 반응을 함께 다뤘습니다.
간지럽다고 먼저 말한 저녁
상담을 마치면서 어머니께 한 가지를 부탁드렸습니다. 아이가 눈을 깜빡여도 얼굴을 빤히 보거나 한숨을 쉬지 말고, 하던 이야기를 그대로 이어 가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받아쓰기 시험을 하루 앞둔 저녁, 식탁에서 공책을 펴던 아이가 먼저 말했습니다. “엄마, 나 지금 눈 간지러워. 조금 있으면 괜찮아.” 아이는 두어 번 눈을 깜빡인 뒤 다시 연필을 잡았습니다. 어머니도 “그래” 하고 깎던 사과를 마저 깎았다고 합니다.
전에는 깜빡임이 시작되면 얼굴을 가리고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제는 눈이 간지럽다고 말하고, 깜빡임이 지나가면 하던 일로 돌아왔습니다. 맨 뒷줄에 서겠다던 학예회에서도 스스로 맨 앞줄에 서서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감기에 걸려 피곤했던 주에는 깜빡임이 다시 늘기도 했습니다. 어머니는 달력에 적어 두었을 뿐 아이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도 그 주에는 방문을 닫고 숨지 않았습니다.
오늘도 아이의 깜빡임을 보며 ‘하지 마’라는 말이 목까지 올라왔을 수 있습니다. 그 말을 꺼내기 전에 아이가 피곤하거나 긴장한 것은 아닌지 살펴봐 주세요. 틱은 참으라는 말로 멈추기 어렵습니다. 아이가 깜빡임을 들킬까 봐 위축되지 않도록 주변의 시선을 거두고, 증상이 생활을 방해할 때는 필요한 진료와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아이는 긴장하면 숨고 몸을 굳히던 반응을 상담에서 다룬 뒤, 깜빡임이 와도 하고 싶은 일을 이어 갈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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