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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해 넘게 불린 제 이름인데, 사람 앞에서는 첫 글자가 안 나와요. 병원 접수대에서 성함을 물으면 입술이 붙은 채로 숨이 멎어요. 그러면 아무 말 없이 신분증부터 꺼내 내밀어요."
이 말을 털어놓은 분은 동네 빵집 주방에서 일하는 서른네 살 제빵사입니다. 지난주에도 손목이 아파 정형외과에 갔다가 똑같은 일을 겪었습니다. 이름을 묻는 말이 들리자 목 안쪽이 딱 닫히고 턱과 입술에 힘이 들어갔습니다. 뒤에 선 사람들이 기다린다는 생각에 귀까지 달아올랐고, 손은 벌써 뒷주머니의 지갑을 찾고 있었습니다. 서른 해 넘게 불러 온 자기 이름이 사람 앞에서만 목에 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분은 말을 못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주방에서 후배에게 반죽 순서를 알려 줄 때나 퇴근길 차 안에서 혼잣말을 할 때는 막힘없이 이야기합니다. 같은 소리를 되풀이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첫소리가 나오지 않다가도 그 소리만 넘기면 뒷말은 이어졌습니다.
피하는 말과 상황도 하나둘 늘었습니다. 그분에게는 'ㅂ'처럼 입술을 붙였다 떼며 내는 소리가 특히 어려웠습니다. 손님이 진열대의 빵을 가리키며 무슨 빵이냐고 물으면 계산대 직원을 불렀고, 식당에서는 메뉴판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이거요'라고 했습니다. 말막힘 치료를 검색하면 천천히 말하라는 조언이 많았지만, 사람 앞에서는 그 방법을 떠올리기도 전에 입술부터 붙어 버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상담에서 이 막힘과 함께 떠오른 것은 병원이나 빵집이 아니었습니다. 오래전 여름 저녁, 거실 바닥에 놓인 아이스크림 쟁반이었습니다. 그 장면을 이해하려면 먼저 사람 앞에서 첫마디를 꺼낼 때 몸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혼자 있을 때는 나오는 이름
상담에 오기 전, 그분은 차 안에서 자기 이름을 소리 내어 말해 보았다고 합니다. 열 번을 말해도 한 번도 막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약국에서 약사가 '성함이요?' 하고 쳐다보자 입술이 다시 붙었습니다.
혼자서는 나오는 말이 누군가 답을 기다리는 순간에만 막힌다면, 말하는 능력뿐 아니라 말을 시작할 때 몸에 들어가는 힘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서른 해 넘게 써 온 이름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아는 말을 꺼내는 순간 몸이 굳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머릿속에서는 이름이 벌써 다 나와 있어요. 입만 그걸 못 따라가요. 누가 저를 쳐다보면서 기다리는 게 느껴지면 더 그래요."
박자보다 먼저 나가는 발
이름처럼 아주 익숙한 말은 발음 순서를 하나씩 떠올리지 않아도 나옵니다. 숨을 내쉬고 목소리를 만들며 입술과 혀를 움직이는 여러 과정이 짧은 순간에 맞물립니다.
운동장에서 긴 줄넘기를 해 본 분이라면 떠올리기 쉽습니다. 돌아가는 줄에 뛰어들 때 몸을 박자에 맡기면 자연스럽게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들어가지 않으면 늦는다는 생각에 서두르면 발이 박자보다 먼저 나가 줄에 걸립니다. 일단 들어가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잘 뛰는데도 말입니다.
이 사례의 첫마디도 이와 비슷했습니다. 상대가 답을 기다린다고 느끼면 빨리 말해야 한다는 마음에 목과 입술부터 힘이 들어갔습니다. 숨과 목소리가 함께 나올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몸이 한발 앞서 조인 것입니다. 첫소리에서는 흐름이 멈췄지만, 그 소리만 넘기면 뒷말은 다시 이어졌습니다.
치료실에서는 되던 첫소리
그분은 언어치료실에도 몇 달 다녔습니다. 숨을 고르고 첫소리를 천천히 내는 연습을 하며, 치료실에서는 막히던 이름도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호흡을 가다듬고 말의 속도를 조절하는 연습은 말막힘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병원 접수대에서는 사정이 달랐습니다. 직원이 쳐다보고 뒤에 사람이 서 있으면 연습한 방법을 떠올리기도 전에 목이 먼저 닫혔습니다. '치료실에선 되는데 밖에만 나가면 안 돼요. 제가 연습이 부족한 걸까요?'
연습이 부족해서만 생긴 일은 아니었습니다. 접수대 앞에서 목에 힘이 들어가는 것은 그분이 일부러 선택한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누군가 기다린다고 느끼는 순간, 말하려는 생각보다 몸의 긴장이 먼저 올라왔습니다. 그래서 천천히 말하자는 다짐은 늘 그 반응보다 늦었습니다.
최면상담에서는 몸을 억지로 누르기보다, 잠깐 망설이는 사이 남들보다 늦을 것 같은 급함이 어떤 경험과 이어져 있는지 살펴봤습니다. 그때의 감정을 살피며, 누군가 기다리는 순간 몸이 먼저 조이는 반응도 함께 다뤘습니다.
거실 바닥의 아이스크림 쟁반
최면 상태가 깊어진 뒤, 접수대 앞에 섰을 때처럼 입술이 붙고 목이 조이는 느낌에 집중하자, 한참 뒤 작은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아이스크림이요. 쟁반에 아이스크림이 담겨 있어요.'
선풍기가 돌아가는 여름 저녁의 거실입니다. 어머니가 냉동실에서 아이스크림 몇 개를 꺼내 쟁반에 담아 바닥에 내려놓습니다. '하나씩 골라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형과 누나의 손이 쟁반 위로 들어옵니다.
아이는 아직 아이스크림 껍질을 혼자 뜯지 못해 누나에게 내밀던 무렵입니다. 초콜릿을 입힌 막대 아이스크림과 분홍색 딸기 맛을 두고 망설이는 사이, 초콜릿은 형 손에, 딸기 맛은 누나 손에 들려 있습니다. 쟁반에는 아이가 좋아하지 않는 팥 아이스크림 하나만 남았습니다.
아이는 숨을 훅 들이켜고 턱에 힘을 준 채 남은 하나를 집어 듭니다. 이런 저녁이 되풀이되면서, 아이는 무엇을 먹고 싶은지 생각하기도 전에 숨부터 멈추고 서두르게 됐습니다.
그분은 최면 속에서 팥 아이스크림을 쥔 아이와 눈높이를 맞췄습니다. 초콜릿을 먹지 못해 속상한 마음을 먼저 알아주었습니다. 둘 다 먹고 싶어서 고르는 데 시간이 걸린 것이며, 천천히 골랐다고 잘못한 것은 아니라고 전했습니다. 형과 누나가 먼저 골랐다고 자기 몫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 숨을 멈추고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그 말을 전한 뒤, 어머니가 냉동실 문을 여는 데서부터 같은 저녁을 다시 경험했습니다. 아이는 이번에도 두 아이스크림 사이에서 망설였고 형과 누나의 손도 빨랐습니다. 원하는 것을 고르지 못해 속상했지만, 이번에는 숨을 멈추거나 턱에 힘을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이스크림 사건 하나가 말막힘의 원인이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어린 시절에는 늦으면 원하는 것을 놓칠 것 같아 숨을 멈추고 서둘렀고, 접수대에서는 상대를 기다리게 하면 안 된다는 급함에 첫소리가 준비되기 전 목과 입술부터 조였습니다. 상담에서는 두 장면에 함께 나타난 서두름과 몸의 반응을 다뤘습니다.
신분증 대신 먼저 나온 이름
손목 치료를 받으러 같은 정형외과에 다시 간 날이었습니다. 접수 직원이 이름을 물었고, 뒤에는 그날처럼 두 사람이 서 있었습니다. 그분은 신분증부터 내밀지 않고 이름을 먼저 말했습니다. 첫 글자에서 목이 닫히지 않았고, 이름 세 글자가 한 호흡에 이어져 나왔습니다. 신분증은 직원이 달라고 한 뒤에야 꺼냈다고 합니다.
빵집에서도 달라진 장면이 있었습니다. 손님이 진열대의 식빵을 가리키며 무엇이 들어간 빵이냐고 묻자, 예전 같으면 계산대 직원을 불렀을 그분이 직접 대답했습니다. '밤이요. 오늘 새벽에 구운 밤식빵이에요.' 가장 피하던 'ㅂ' 소리로 시작하는 말이었습니다.
요즘은 이름을 묻는 말이 들려도 지갑보다 입이 먼저 움직인다고 합니다.
오늘도 하려던 말 대신 손가락으로 가리키거나 다른 말로 둘러대셨나요? 누군가 답을 기다릴 때마다 첫마디가 목에 걸린다면, 그 순간 입과 목에 어떤 힘이 먼저 들어가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혼자 있을 때는 술술 나오는 말이 사람 앞에서만 막힌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이분의 상담에서는 말하기 연습과 함께, 생각보다 먼저 몸을 조이던 급함과 그 반응에 얽힌 경험을 다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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