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새벽 두 시. 잠결에 가슴이 쿵 내려앉더니, 심장이 갑자기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합니다. 손목을 짚어 보니 맥박은 셀 수도 없이 빠르고, 천장이 빙글 돌고, 손이 떨리고, 등에는 식은땀이 배어납니다. ‘심장마비인가, 이러다 죽는 건 아닌가.’ 119를 부를까 망설이다, 그대로 응급실로 향합니다.
서른 중반의 한 분이 들려준 어느 밤의 이야기입니다.
“부정맥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심전도도, 갑상선 검사도, 24시간 심전도까지 다 정상이래요.
심장은 멀쩡하다는데, 그럼 가만히 있어도 이렇게 쿵쾅거리는 건 도대체 뭔가요?”
그 뒤로도 심장은 때를 가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회의에서 긴장한 날, 커피를 진하게 마신 오후, 계단을 오르던 길, 그리고 아무 일 없이 소파에 앉아 있던 저녁에도요. 병원을 옮겨 다시 검사를 받아도 결과는 같았습니다.
검사가 정상이어도 사라지지 않는 두근거림
먼저 분명히 해 둘 것이 있습니다. 심장 두근거림이 반복되면 부정맥이나 갑상선기능항진증, 저혈당 같은 몸의 원인부터 병원 검사로 확인하는 것이 맞는 순서입니다. 그런데 검사에서 이런 원인이 나오지 않는데도 두근거림이 거듭되고, 어지러움과 식은땀, 떨림이 함께 따라온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심장의 문제가 아니라 심장을 깨우는 경보 체계의 문제 — 불안과 공황이 보내는 대표 신호일 수 있습니다.
심장을 깨우는 것은 편도체라는 감시초소
심장이 빨리 뛰는 데에는 정해진 절차가 있습니다. 뇌가 위험하다고 판단하면 교감신경이 켜지고, 아드레날린이라는 비상 호르몬이 쏟아져 심장을 빠르게 몰아붙입니다. 달아나거나 맞서 싸울 수 있도록 온몸에 피를 보내는, 그 자체로는 건강한 생존 반응입니다. 문제는 이 판단을 내리는 자리입니다. 온갖 감각을 받아 ‘지금 위험한가’를 판정하는 뇌 속 감시초소, ‘편도체’가 위험이 없는 순간에도 자꾸 비상 단추를 누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두근거림에는 고약한 구석이 하나 있습니다. 노래방에서 마이크가 스피커에 가까워지면, 소리가 마이크로 되돌아 들어가며 삐— 하고 견딜 수 없이 커집니다. 예민해진 편도체도 마찬가지여서, 심장이 뛰는 감각 자체를 위험으로 듣고 경보를 울립니다. 경보에 심장은 더 빨라지고, 빨라진 박동은 다시 더 큰 경보가 됩니다. 그분의 밤이 꼭 그랬습니다. 잠결의 작은 두근거림 하나가 이 되울림을 타고, 몇 분 만에 응급실로 달려갈 발작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심장아 제발 천천히 뛰어라’ 하고 빌어 본들 소용이 없는 까닭도 여기 있습니다. 편도체와 심장 사이의 이 회로는 의식이 손댈 수 있는 곳에 있지 않습니다. 의식 아래, 무의식이라 부르는 더 깊은 층에서 자동으로 돌아갑니다. 머리는 검사 결과지를 믿어도, 무의식은 아직 다른 무언가를 믿고 있는 셈입니다.
약으로도 지워지지 않는 처음의 자리
그분도 처방받은 안정제의 도움을 받고 있었습니다. 약은 들끓는 경보를 가라앉혀 두근거림과 발작의 기세를 누그러뜨려 주지만, 편도체가 어쩌다 심장 소리를 위험으로 듣게 됐는지 그 처음의 까닭까지 지워 주지는 못합니다.
그 까닭을 찾으려면 회로가 처음 만들어진 자리, 무의식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최면상담이 하는 일이 그것입니다.
최면 속에서 찾아간 세 살의 골목
앞의 그분도 깊은 최면 속에서 그 자리를 찾아 내려갔습니다. 발작 때마다 차오르던 ‘심장이 터져 죽을 것 같다’는 느낌을 따라가자, 떠오른 곳은 병원도 침실도 아니었습니다. 세 돌 무렵, 할머니 댁 골목이었습니다.
아장아장 혼자 걷던 아이 앞으로, 풀려 있던 큰 개가 사납게 짖으며 달려들었습니다. 아이는 도망칠 줄도 몰라 그 자리에 얼어붙었고, 제 몸통보다 큰 개가 코앞에서 으르렁대는 동안 작은 가슴속에서는 심장이 터질 듯 날뛰었습니다. 어른이 달려와 안아 올리기까지는 잠깐이었겠지만, 아이에게는 영원처럼 긴 시간이었습니다.
아이는 그 골목을 기억하지 못한 채 자랐고, 개를 무서워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무의식에는 다른 것이 남았습니다. ‘심장이 이렇게 세차게 뛸 때, 나는 죽음 바로 앞에 있었다’는 등식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편도체에게 빠른 심장 박동은 그저 박동이 아니라, 그 골목의 공포를 깨우는 신호가 된 것입니다. 어른이 되어 긴장한 날, 커피를 진하게 마신 날, 운동으로 맥이 오른 날마다 경보가 울렸던 까닭입니다.
이처럼 두근거림의 뿌리는 심장이 아니라, 심장이 세차게 뛰었던 아주 오래전의 한순간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본인이 기억하지 못하는 시절의 일이니, 아무리 돌아봐도 짚이는 데가 없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습니다.
어른이 된 지금의 그분이 깊은 최면 속에서 그 골목으로 다시 들어갔습니다. 얼어붙은 아이 앞을 막아서서 개를 물리고, 아이를 안아 올려 일러 주었습니다. 너는 물리지 않았고 무사히 컸다고, 심장이 빨리 뛰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너를 지키려던 몸의 일이었다고요. 그렇게 수십 년 묵은 등식을 풀어 갔습니다.
한 달 남짓 지나, 그분은 저녁마다 빠르게 걷는 운동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맥박이 조금만 올라도 큰일이 난 줄 알고 걸음을 멈추던 분이었습니다. 요즘은 오르막에서 심장이 두근거리면 ‘뛰는 만큼 살아 있구나’ 싶다고, 그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셨답니다.
가만히 있어도 쿵쾅거리는 심장은 고장 난 심장이 아닙니다. 무언가로부터 주인을 지키느라 너무 일찍, 너무 오래 곤두서 있던 경보일 뿐입니다. 그러니 멀쩡하다는 심장을 자꾸 의심하며 자신을 다그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남은 일은 심장이 아니라, 심장 소리를 위험으로 듣게 된 무의식의 까닭을 찾는 일입니다. 그 실마리를 찾아 풀어 가면, 오래된 두근거림도 대개 한 달 안팎에 잦아드는 분이 많습니다.
오늘 밤에도 어둠 속에서 가슴에 손을 얹고 맥박을 세고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 손바닥 아래에서 뛰는 것은 고장 난 심장도, 죽음의 예고도 아닙니다. 아주 어린 날부터 주인을 지키느라 한 번도 마음 놓고 쉬어 보지 못한, 까닭 있는 심장입니다. 이제 그 사연을 함께 들어 볼 차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