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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료식에서 본부장님께 칭찬받음.’ 여기까지는 좋아요. 그 뒤에 제가 뭐라고 붙였는지 보세요. ‘그런데 올해 신입들이 원래 순해서 그런 거다.’ 넉 달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썼는데, 다시 넘겨 보니 줄마다 끝에 ‘그런데’가 붙어 있더라고요.
공책의 주인은 식품회사 교육팀에서 신입 사원 교육을 맡고 있는 서른일곱 살 여성입니다. 첫 상담 날, 그분은 인사를 마치자마자 가방에서 손때 묻은 공책을 꺼내 펼쳤습니다. 넉 달 동안 빼곡히 썼는데도 자존감은 왜 그대로였을까요? 답은 줄마다 따라붙은 ‘그런데’에 있었습니다.
그분이 상담실을 찾은 계기는 지난달 신입 교육 수료식이었습니다. 본부장이 마이크를 잡고 올해 교육이 유난히 알찼다며 그분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박수가 터지자 귀밑에서 뺨까지 확 달아오르고, 명치는 누가 움켜쥔 듯 조여 왔습니다. 그분은 탁자 밑으로 두 손을 내려 무릎 사이에 꼭 끼웠습니다. 웃는 얼굴은 굳었고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습니다.
입에서는 "아니에요, 신입들이 잘 따라와 준 거예요"라는 말이 먼저 나왔습니다. 행사가 끝나자마자 화장실로 가서 찬물에 손목을 한참 대고 서 있었다고 합니다. 칭찬을 들은 날인데 가슴은 꾸중을 들은 날처럼 쿵쾅거렸습니다. 그날 밤에는 다음 교육 때 밑천이 드러날 거라는 생각에 새벽까지 뒤척였습니다.
줄마다 따라붙은 '그런데'
그분이 낮은 자존감에서 벗어나 보려고 해 본 일은 적지 않았습니다. 자존감에 관한 책을 세 권 읽었고, 아침마다 거울 앞에서 "나는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말해 보기도 했습니다. 거울 앞의 말은 끝내 입에 붙지 않아 일주일 만에 그만두었습니다. 칭찬 일기만은 넉 달 동안 잠들기 전마다 세 줄씩 채웠습니다.
공책은 벌써 절반 넘게 차 있었습니다. 그분이 펼쳐 보인 쪽에는 이런 문장이 이어졌습니다. ‘후배가 자료 정리를 잘한다고 함, 그런데 할 사람이 나밖에 없었다.’ ‘친구가 내 옷 고르는 눈이 좋다고 함, 그런데 걔는 원래 칭찬을 잘한다.’ 잘한 일은 빠짐없이 적었지만, 줄 끝마다 그 일을 깎아내리는 말이 붙어 있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도 최근에 들은 칭찬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떠올려 볼 수 있습니다. 거의 매번 ‘운이 좋았다’, ‘원래 쉬운 일이었다’, ‘다른 사람 덕분이다’라는 말이 뒤따른다면, 칭찬을 받아들이기 전에 먼저 밀어내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볼 만합니다. 이것만으로 어떤 상태를 진단할 수는 없지만, 자존감이 낮다고 느끼는 이유를 이해하는 단서가 될 수 있습니다.
진짜 지폐를 뱉어 내는 자판기
심리치료에서는 이런 반응을 결함·수치심 도식의 관점에서 이해하기도 합니다. 도식은 경험을 해석할 때 사용하는 마음속 틀입니다. ‘나는 어딘가 모자란 사람’이라는 믿음이 강하면 부족하다는 말은 쉽게 받아들이면서 칭찬은 예외나 빈말로 넘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칭찬을 들어도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로 잘 쌓이지 않습니다. 이런 믿음은 어린 시절의 경험과 이어져 있을 수 있습니다.
지폐를 유난히 까다롭게 가려내는 자판기가 있다고 해 보겠습니다. 은행에서 막 찾은 빳빳한 지폐를 넣어도 기계는 가짜로 판단해 투입구로 되돌려 보냅니다. 지폐에는 문제가 없지만 화면의 금액은 좀처럼 올라가지 않습니다. 그분도 구체적인 근거가 있는 칭찬을 들었지만, 마음에 담기도 전에 ‘운이 좋았다’는 생각으로 밀어냈습니다.
그분도 본부장이 빈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며, 신입들이 돌아가며 적어 준 인사말도 진심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수료식 다음 날에는 ‘다음엔 그냥 고맙다고만 하자’고 몇 번이나 되뇌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뒤 팀 회의에서 팀장이 교육 자료를 칭찬하자 두 손은 벌써 탁자 밑에 있었고, 입에서는 ‘운이 좋았죠’라는 말이 먼저 나왔다고 합니다.
칭찬 일기는 그날 잘한 일을 찾아 적어 보게 합니다. 다만 그분에게는 적는 손보다 앞서 움직이는 반응이 있었습니다. 칭찬이 들리면 생각할 틈도 없이 귀가 달아오르고 손을 숨기면서 ‘내가 잘해서가 아니다’라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따져 보고 내린 결론이라기보다 먼저 튀어나오는 무의식 자동반응에 가까웠기에, 고맙다고만 하자는 결심은 늘 그 뒤를 따라갔습니다.
최면상담에서는 칭찬 앞에서 귀가 뜨거워지고 몸이 움츠러드는 바로 그 감각에서 시작합니다. 이 사례에서도 그 반응과 함께 떠오른 오래된 경험을 살펴보고, 당시 남은 감정을 함께 다뤘습니다.
현관에 나란히 선 신발
깊은 최면 상태에서 그분은 수료식의 박수 소리를 다시 떠올렸습니다. 귀가 달아오르고 두 손이 무릎 사이로 들어가려는 느낌에 집중하던 중, 고개를 조금 갸웃하며 말했습니다. ‘신발이 보여요. 회사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왜 신발이죠?’
신발장 손잡이가 아이 머리보다 한참 위에 달린 현관입니다. 아직 자기 운동화의 왼쪽과 오른쪽도 종종 바꾸어 신던 여자아이가 바닥에 쪼그려 앉아 있습니다. 식구들 신발이 뒤엉켜 있고, 아이는 한 짝씩 집어 들어 짝을 찾습니다. 생김새가 비슷한 아빠 구두 두 켤레는 밑창끼리 맞대고, 뒤축이 닳은 모양까지 살펴봅니다.
짝을 맞춘 신발은 코가 현관문을 향하도록 나란히 세웁니다. 할머니 고무신, 엄마 샌들, 아빠 구두가 차례로 놓이고, 제 운동화는 줄 한가운데 끼워 넣습니다. 마지막 한 켤레까지 세운 아이는 부엌으로 달려가 엄마의 앞치마 끈을 잡아당깁니다. "엄마, 와 봐. 빨리 와 봐."
엄마는 국자를 든 채 현관을 내다보고 소리 내어 웃습니다. "어머, 짝이 다 맞네. 어쩌다 잘됐나 보다." 그러고는 끓어오르는 냄비 쪽으로 돌아섭니다.
신발 줄 앞에 혼자 남은 아이의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고, 웃던 입이 그 모양 그대로 굳습니다. 아이는 신발을 만지던 두 손을 슬그머니 등 뒤로 감춥니다. 잠시 그렇게 서 있던 아이는 고개를 숙인 채 방으로 들어갑니다.
최면 속에서 그분은 신발 앞에 손을 감추고 서 있던 어린 자신에게 다가가 현관 문턱에 함께 걸터앉았습니다. 그러고는 줄 세운 신발을 한 켤레씩 손끝으로 짚으며 말했습니다.
"잘했다고 보여 주고 싶었는데 '어쩌다'라는 말을 들어서 얼굴이 뜨거워졌지. 이 구두는 네가 뒤축까지 보고 맞췄고, 할머니 고무신도 네가 찾아서 짝을 지었어. 어쩌다 된 게 아니라 네 눈과 손으로 한 거야. 엄마는 냄비를 보느라 네가 맞추는 걸 못 봤을 뿐이야."
그다음 그분은 어린 자신으로 돌아가 신발을 세우던 때부터 그날 저녁을 다시 경험했습니다. 엄마는 이번에도 국자를 든 채 웃으며 ‘어쩌다 잘됐나 보다’ 하고 부엌으로 돌아섰습니다. 아이의 뺨은 조금 붉어졌지만 두 손은 등 뒤로 숨지 않았고, 구두 밑창을 맞대 보던 손끝의 느낌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전처럼 방으로 들어갔지만 고개는 숙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잘한 것을 보여 줬다가 ‘어쩌다’라는 말로 넘겨졌을 때 얼굴이 달아오르고 손을 감췄던 모습은, 수료식에서 두 손을 무릎 사이에 끼우던 반응과 닮아 있었습니다. 상담에서는 엄마가 가볍게 던진 ‘어쩌다’라는 말이 칭찬을 들을 때마다 ‘내가 잘해서가 아니다’라고 여기는 반응과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 함께 살펴봤습니다.
마침표로 끝난 한 줄
다음 기수 신입 교육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한 신입 사원이 교육 자료집을 들고 와 ‘이 자료 덕분에 첫 주를 버텼어요’라고 인사했습니다. 그분은 두 손을 탁자 위에 둔 채 신입의 눈을 보며 대답했다고 합니다. ‘고마워요. 그거 제가 몇 번이나 고쳐 가며 만든 거예요.’
그날 밤 칭찬 일기에는 ‘신입이 자료가 좋았다고 함, 내가 공들여 만든 자료다’라고 적었습니다. 그 줄은 ‘그런데’ 없이 마침표로 끝났다고 합니다. 며칠 뒤 팀장이 전 직원 교육 과정을 새로 짜 보자는 이야기를 꺼냈을 때는 먼저 손을 들었습니다. 지난해에는 두 번이나 ‘제가 어떻게 해요’라며 사양했던 일이었습니다.
칭찬 일기를 넘길 때마다 줄 끝의 ‘그런데’부터 눈에 들어온다면, 좋은 일을 적게 써서만은 아닐 수 있습니다. 칭찬이 자기 것이 되기 전에 ‘어쩌다 된 일’로 밀려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자존감 회복을 위해 새로운 방법을 더하기에 앞서, 칭찬 앞에서 먼저 움츠러드는 몸과 마음의 반응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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