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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에서는 제가 제일 시끄러워요. 건배사도 제가 하고, 2차 가자고 먼저 일어나는 것도 저예요.
그런데 택시에서 내려 현관문을 여는 순간부터 가슴 한복판이 뻥 뚫린 것처럼 서늘해져요.
방금까지 열 명 넘게 모여 웃다 왔는데, 집에만 오면 왜 이렇게 외로운 걸까요?"
자동차 부품 회사에서 품질관리 일을 하는 마흔두 살 남성분은 이렇게 물으며 상담을 시작했습니다. 그분은 매달 열두 명이 모이는 고등학교 동창 모임에서 십 년째 총무를 맡고 있었습니다. 식당을 예약하고 단톡방에 먼저 안부를 올리는 사람도 늘 그분이었습니다.
모임이 끝날 무렵이면 하도 웃어서 광대 쪽 근육이 뻐근했습니다. 그런데 집에 들어서면 거실 불을 켜기보다 텔레비전부터 틀었습니다. 아무 채널이나 틀어 놓고 소파에 앉아 있으면 명치 아래가 텅 빈 것처럼 서늘하고 손끝까지 차가워졌다고 합니다.
그렇게 새벽 두세 시까지 단톡방에 올라온 사진을 넘겨 보았습니다. 사진 속에서는 누구보다 크게 웃고 있었지만, 그 얼굴을 볼수록 공허함은 더 커졌습니다.
지난 모임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고기 첫 판이 거의 비어 갈 무렵, 옆에 앉은 친구가 “너는 요즘 어때?” 하고 물었습니다. 그날은 꼭 해 보려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주말이면 누구와도 말 한마디 하지 않고 하루가 지나갈 때가 많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명치가 서늘해지더니 웃음부터 터져 나왔습니다. “나야 뭐 똑같지”라고 짧게 답한 뒤, 다른 친구의 새 차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습니다.
사람들 속에서도 외로움이 밀려오는 분이라면 이 장면이 낯설지 않을 것입니다. 곁에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여럿과 함께 있으면서도 내 마음이 누구에게도 가닿지 않아 생기는 외로움입니다. 그분이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삼키는 반응을 따라가자, 뜻밖에도 크레파스 그림 한 장이 떠올랐습니다. 동창 모임과 어린 시절의 그림 한 장은 어떻게 이어져 있었을까요?
약속이 늘수록 더 허전해진 밤
외로우면 사람을 더 만나 보라는 말을 그분도 여러 번 들었습니다. 그래서 일요일 아침 조기축구회에 들어갔고, 회사 동료들과의 저녁 약속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달력은 금세 빈칸 없이 찼습니다. 그런데 약속이 늘어난 만큼 집에 돌아와 텔레비전부터 켜는 밤도 늘었습니다.
사람을 만나는 일은 외로움을 달래는 데 분명 도움이 됩니다. 이사나 이직으로 곁에 남은 사람이 줄었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모임에 다녀온 밤이 나가기 전보다 더 허전하다면, 만나는 사람의 수와는 다른 부분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혼자서도 확인해 볼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지난 모임에서 누군가 내 안부를 물었던 순간을 떠올리고, 그때 내가 어떤 대답을 했는지 그대로 적어 보는 것입니다. “그냥 그렇지”, “나야 뭐”처럼 한마디로 넘긴 뒤 곧장 화제를 다른 사람에게 돌렸다면, 부족했던 것은 만남의 횟수가 아닐 수 있습니다. 물어 주는 사람이 있었는데도 내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이 방법을 권하자 그분은 다음 상담에 종이 한 장을 들고 왔습니다. 지난 석 달 동안 모임에서 했던 대답 네 줄이 적혀 있었습니다. 모두 “나야 뭐”로 시작해 다른 친구에게 되묻는 말로 끝났습니다.
동창들 식탁의 합석 손님
어린아이가 자신을 돌봐 주는 어른과 맺는 정서적 관계를 심리학에서는 ‘애착’이라고 합니다. 아이는 이 관계에서 겪은 일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자기 마음에 어떻게 반응할지를 미리 짐작합니다. 무언가를 내밀 때마다 누군가 곁에 멈춰 서서 들여다봐 주었다면, 내 이야기를 꺼내도 괜찮다고 여기기 쉽습니다. 반대로 내민 것이 번번이 스쳐 지나갔다면, 모두 저마다 바빠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줄 사람은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런 짐작은 생각보다 먼저 작동합니다. 무슨 말을 할지 고르기도 전에 입을 닫게 하고, 대신 웃음과 맞장구를 앞세웁니다. 그러면 친구들과 한 식탁에 앉아 있어도 마음은 합석한 손님처럼 따로 떨어져 있게 됩니다.
붐비는 국밥집에서 모르는 사람과 합석해 본 적이 있으실 겁니다. 팔꿈치가 닿을 만큼 가깝고 옆 사람들의 웃음소리도 들리지만, 그 대화에 끼지는 않습니다. 식사가 끝나면 계산도 따로 하고 혼자 문을 나섭니다. 그분도 동창들 식탁에서 누구보다 크게 웃었지만, 꺼내지 못한 이야기를 그대로 안고 혼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분도 이런 자신의 모습을 알고 있었습니다. 모임 전날이면 이번에는 꼭 내 이야기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누가 “요즘 어때?” 하고 물으면 명치부터 서늘해졌고, 입에서는 어김없이 웃음과 “나야 뭐”가 먼저 나왔습니다.
전날의 다짐이 모임에서 힘을 쓰지 못한 것은 의지가 약해서가 아닙니다. 웃으며 넘기는 반응은 대답을 고르기 전에 이미 시작됐습니다. 의식적으로 선택한 행동이 아니라 무의식 자동반응이어서, 새로 결심해도 웃음이 먼저 나오는 것을 막기 어려웠습니다. 최면상담에서는 안부를 묻는 말에 명치가 서늘해지는 감각에서 출발해, 그 느낌과 이어진 오래된 기억과 감정을 살펴봅니다.
추석 전날 큰집 안방의 크레파스 그림
그분의 호흡이 느리고 고르게 바뀌며 깊은 최면 상태에 이르자, 동창이 했던 질문을 그대로 건넸습니다. “너는 요즘 어때?” 그 말을 듣자 명치 아래가 서늘해지고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습니다. 그 느낌에 한참 머물던 그분이 코로 숨을 길게 들이쉬었습니다.
"솔잎 냄새가 나요. 송편 찌는 냄새요."
아직 글자를 몰라 그림 귀퉁이에 이름 대신 동그라미를 그려 넣던 무렵의 사내아이가 큰집 안방 문턱에 서 있습니다. 추석 전날 저녁이라 방 안에는 큰아버지와 작은아버지, 고모들과 사촌 형들까지 식구들이 빼곡합니다. 방 한가운데 커다란 쟁반을 두고 어른들이 송편을 빚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집니다. 부엌에서는 먼저 빚은 송편을 찌는 솔잎 냄새가 넘어옵니다.
아이는 방금 다 그린 크레파스 그림을 두 손으로 들고 있습니다. 큰집 마당의 감나무입니다. 갈색 줄기 위에 주황색 동그라미를 꾹꾹 눌러 칠해 감을 여럿 달았더니, 손가락 끝까지 주황색이 묻었습니다.
아이는 그림을 들고 할아버지 무릎 앞으로 갑니다. 할아버지는 “허허, 이게 뭐냐?” 하고 묻지만, 아이가 대답하기도 전에 큰아버지 쪽으로 고개를 돌립니다. 송편을 빚던 고모는 반죽 묻은 두 손을 들어 보이며 웃고는 다시 쟁반 쪽으로 몸을 돌립니다. 엄마는 빚던 송편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잘했네”라고 말합니다.
방 안을 한 바퀴 더 돈 아이는 장롱 옆 구석에 가서 앉습니다. 그림을 반으로 접고, 또 반으로 접어 손바닥만 하게 만든 뒤 무릎 위에 올립니다. 그 위에 두 손을 포개 꾹 누른 채 쟁반 둘레의 어른들을 바라봅니다. 아랫입술이 삐죽 나오고 코끝이 시큰하지만 소리 내어 울지는 않습니다.
마흔두 살의 그분은 장롱 옆으로 가서 아이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앉았습니다. 아이의 주황색 손가락 끝을 한참 바라본 뒤, 접힌 그림은 그대로 둔 채 말을 건넸습니다.
“누가 좀 오래 봐 주면 좋겠다 싶었지. 다들 한 번씩 보고 금방 딴 데로 가서 서운했구나. 오늘은 식구들이 오랜만에 모여 서로 반가워서 이야기하느라 그래. 네가 그린 게 뭔지 나는 알아. 큰집 감나무잖아. 감은 열한 개고, 손가락에 이렇게 묻을 만큼 꾹꾹 눌러 칠했지.”
말을 마친 뒤, 그분은 그림을 든 아이의 입장에서 그 방을 다시 돌았습니다. 할아버지는 이번에도 대답을 듣기 전에 고개를 돌렸고, 고모는 반죽 묻은 손을 들어 보였으며, 엄마는 송편에서 눈을 떼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이번에도 장롱 옆에 가서 앉았고, 그림을 손바닥만 하게 접어 무릎 위에 두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코끝이 시큰해지지 않았고, 포갠 두 손에도 힘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쟁반 위에서 반달 모양으로 빚어지는 송편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습니다.
그 순간, 상담 내내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던 그분이 소파 등받이에 등을 기댔습니다.
그 저녁 아이는 내민 그림을 누구도 오래 봐 주지 않자, 그림을 접어 무릎에 두고 웃음소리 가득한 방 한쪽에 앉아 있었습니다. 마흔이 넘어 동창의 안부 앞에서 웃음과 “나야 뭐”가 먼저 나온 것도, 내 이야기는 끝까지 들어 줄 사람이 없다는 짐작과 이어진 반응으로 볼 수 있습니다. 외로움 전체를 이 저녁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상담에서는 물어 주는 사람 앞에서도 이야기를 삼키는 반응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나야 뭐' 다음에 꺼낸 말
다음 달 동창 모임에서도 불판의 고기가 줄어들 무렵, 옆에 앉은 친구가 물었습니다. “너는 요즘 어때?” 명치가 잠깐 서늘해졌지만 이번에는 웃음이 먼저 터지지 않았습니다. “나야 뭐…” 하고 나오던 말도 중간에서 멈췄습니다.
그분은 집게를 내려놓고 말을 이었습니다. “사실 요즘은 주말 내내 누구와도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많아.” 친구는 먹던 젓가락을 멈추고 그분 쪽으로 몸을 돌렸습니다. 그러고는 자신도 주말 부부가 된 뒤로 저녁마다 집이 너무 조용하다고 털어놓았습니다.
두 사람은 그날 노래방으로 가는 2차 대신, 식당 앞 편의점 파라솔 아래에서 캔커피를 하나씩 들고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고 합니다. 집에 돌아온 그분은 텔레비전을 켜지 않고 곧장 씻고 누웠다가 그대로 잠들었습니다. 단톡방 사진을 한 장도 넘겨 보지 않았다는 사실은 다음 날 아침 쌓인 알림을 보고서야 알았다고 합니다. 그 주 일요일 오후에는 그 친구에게 먼저 연락해 둘이 동네 뒷산에 올랐습니다.
지난 모임에서도 누군가 안부를 물었을 때 “나야 뭐”로 넘기고 돌아오셨나요? 그렇다면 모임에서 돌아온 밤의 허전함은 사람을 덜 만나서 생긴 것만은 아닐 수 있습니다.
다음에 같은 질문을 받으면 대답하기 전 몸에서 무엇이 먼저 일어나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명치가 서늘해지며 웃음부터 나온다면, 성격 탓이라고 단정하기보다 오래전에 익숙해진 자동반응인지 돌아볼 수 있습니다. 약속을 하나 더 잡기 전에 이 반응부터 다뤄 보는 것이 모임 뒤의 밤을 바꾸는 첫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