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아침 반에서는 호루라기 불면서 회원님 스무 분한테 쩌렁쩌렁 소리치거든요. 그런데 분식집에서 떡볶이 대신 라볶이가 나와도 바꿔 달라는 말을 못 해요. 저 좀 대담하게 만들어 주세요.”
동네 스포츠센터에서 수영을 가르치는 서른한 살 여성분이 상담실 의자에 앉자마자 한 말입니다. 여러 해 동안 소심한 성격 고치는 법을 찾아 이것저것 해 보았다고 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대담해지는 요령보다, 원하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기 직전에 몸과 마음에서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지 살펴봅니다.
그날도 아침 수업을 마치고 젖은 머리로 늘 가던 분식집에 들렀습니다. 떡볶이를 시켰는데 라볶이가 나왔습니다. “저기요” 하고 입을 떼자, 튀김을 건지던 사장님이 집게를 든 채 돌아봤습니다. 입안이 바짝 마르고 혀가 입천장에 달라붙었습니다. 윗배 한가운데는 돌처럼 딱딱하게 굳었습니다.
입에서 나온 말은 “물 좀 주시겠어요?”였습니다. 좋아하지도 않는 라면 사리가 목에 걸리는 것 같아 물을 두 컵이나 마시며 접시를 비웠습니다. 오후 수업 내내 속이 더부룩했고, 밤에 누워서도 “떡볶이 시켰는데요” 한마디를 왜 못 했는지 몇 번이고 되짚었다고 합니다.
분식집에서만 그런 것도 아니었습니다. 삼 년 동안 맡아 온 화요일 저녁반을 새로 온 강사가 맡고 싶다고 했을 때도 “네, 그러세요”라는 말이 먼저 나왔습니다. 정이 많이 든 회원들이라 사실은 놓고 싶지 않던 반이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소심해서 손해를 본다며 자신감부터 길러야 한다고 했습니다.
거울 앞에서는 또렷하던 말
그분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습니다. 당당하게 말하는 법을 다룬 책을 여러 권 읽었고, 할 말을 포스트잇에 적어 탈의실 사물함 안쪽에 붙여 두었습니다. 출근 전에는 거울을 보며 그 말을 소리 내어 연습했습니다. 거울 앞에서는 또렷하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할 말을 미리 정리해 짧게 연습하는 방법은 자기주장 훈련에도 쓰이며, 말을 꺼낼 준비를 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그분이 연습한 말은 사장님이 돌아보거나 실장의 눈썹이 조금만 올라가도 입안에서 맴돌다 사라졌습니다. 물속 회원 스무 명에게는 목이 쉬도록 소리칠 수 있으면서도, 분식집 사장님 한 사람 앞에서는 몸부터 위축되어 한마디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상담에서는 최근에 말이 막혔던 순간들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분식집과 화요일 저녁반 말고도 몇 가지가 더 나왔습니다. 욕실 환풍기가 고장 났는데 집주인에게 보낼 문자를 썼다 지운 일, 친구들과 영화를 고를 때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서도 “아무거나”라고 한 일이었습니다. 목록을 보던 그분이 덧붙였습니다. “말 안 하고 넘어가면 일단은 한숨이 놓여요. 억울한 건 밤에 누워서야 와요.”
소심한 성격 때문에 고민이라면 두 가지를 살펴보시면 좋습니다. 먼저 말이 멈추는 순간이 사람 수나 장소와 상관없이, 내 뜻을 말하면 상대가 번거로워하거나 언짢아할 수 있는 때에 몰려 있는지 봅니다. 다음으로 말을 삼킨 직후 억울함보다 안도가 먼저 오는지 살펴봅니다. 둘 다 해당한다면 타고난 성격이라기보다 경험 속에서 익힌 억제 반응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들어서자마자 음소거가 켜지는 방
“결국 제가 원래 이렇게 생겨 먹은 거겠죠.” 목록을 내려다보던 그분이 웃으며 말했지만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순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순한 것과 원하는 것을 말하지 못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닙니다.
어린 시절의 경험 속에서 굳어진 마음의 틀을 심리학에서는 심리도식이라고 부릅니다. 그 가운데 복종 도식은 갈등이나 거절이 걱정돼 자신의 뜻이나 감정을 누르는 반응과 관련됩니다. 이런 예상이 생각보다 먼저 작동하면 원하는 것을 말하기도 전에 물러서게 됩니다. 같은 일이 되풀이되면 자기표현을 누르는 반응이 성격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복종은 남에게 굽히기를 좋아한다는 뜻이 아니라, 갈등을 피하려고 익힌 보호 반응에 가깝습니다.
화상회의에는 방에 들어서는 순간 자동으로 음소거가 되도록 설정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그런 방에서는 아무리 목청을 높여도 상대에게 소리가 전달되지 않습니다. 필요한 것은 더 큰 목소리가 아니라 켜진 음소거를 푸는 일입니다. 그분에게 수영장은 음소거가 없는 방이었고, 원하는 것을 말해야 하는 분식집이나 사무실은 들어서자마자 음소거가 켜지는 방과 같았습니다. 대담해지려는 노력만으로는 이 차이를 바꾸기 어려웠습니다.
거울 앞 연습이 분식집에서 힘을 쓰지 못한 데에도 이유가 있습니다. 거울 속에는 언짢아할 상대가 없으니 말을 멈추게 하는 반응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 반응은 상대의 얼굴이 굳을 것 같은 순간, 무슨 말을 할지 고르기도 전에 저절로 시작됩니다. 그래서 최면상담에서는 할 말을 더 외우기보다, 말이 막힐 때 몸에서 먼저 일어나는 변화를 느껴 보고 그 반응과 이어진 경험을 살펴봅니다.
방바닥에 떨어진 빨간 스웨터
최면이 깊어지자 그분은 집게를 든 사장님이 돌아보던 순간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윗배가 그때처럼 딱딱하게 굳어 오자, 무릎 위에 있던 오른손이 저도 모르게 목 뒤로 올라갔습니다. 한동안 목 뒤를 문지르던 그분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왔습니다. “목이 따끔따끔해요. 그런데 가만히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그분이 들여다본 곳은 할머니와 부모님이 함께 살던 집의 저녁 거실이었습니다. 밥을 먹고 나면 할머니가 입가를 닦아 주던 무렵입니다. 할머니가 며칠 밤을 들여 뜬 빨간 스웨터를 아이 머리 위로 씌웁니다. 털실 목둘레가 목 뒤에 닿자 아이는 몸을 비틀며 “싫어, 따가워!” 하고 소리칩니다. 두 팔을 빼낸 아이가 스웨터를 벗어 방바닥에 던집니다.
할머니 얼굴이 굳습니다. “할미가 너 입히려고 밤마다 뜬 건데.” 부엌에서 나온 엄마가 “따갑다잖아요, 어머니. 억지로 입히지 마세요” 하자 할머니 목소리가 높아집니다. “네가 애 편만 드니까 애가 버릇이 없지.” 두 사람의 말이 점점 빨라지고, 안방에서 아빠가 “그만들 좀 해요!” 하고 소리칩니다.
할머니는 스웨터를 그대로 두고 작은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습니다. 엄마는 말없이 설거지를 시작하고, 그릇 부딪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립니다. 거실 한가운데 선 아이는 닫힌 방문과 엄마의 등을 번갈아 봅니다.
아이는 방바닥의 스웨터를 집어 들고 혼자 머리부터 뒤집어썼습니다. 목 뒤가 따끔거려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숨을 작게 쉬며 배에 힘을 준 채 텔레비전 앞에 앉았습니다. 이튿날 아침 할머니가 스웨터를 내밀자 아이는 말없이 두 팔부터 들어 올렸습니다.
그분은 장면 속으로 들어가 텔레비전 앞에 앉은 아이 곁에 무릎을 꿇고, 먼저 스웨터 목둘레를 손끝으로 만져 보았습니다. 거친 털실이 손끝을 콕콕 찔렀습니다. 그러고는 아이 눈높이에서 말을 건넸습니다.
“정말 따끔하다. 따가운 걸 따갑다고 말한 건 잘못한 게 아니야. 할머니와 엄마의 목소리가 커진 건 어른들끼리 마음이 부딪친 일이야. 네가 느낀 것을 말한 일과 어른들이 다툰 일은 같은 일이 아니야.”
아이의 눈길이 그분의 손끝에 머물다가 천천히 그분의 얼굴로 올라왔습니다. 잠시 뒤 거실에는 같은 저녁이 다시 펼쳐졌습니다. 아이는 이번에도 “싫어, 따가워!” 하며 스웨터를 벗어 던졌고, 할머니와 엄마의 목소리도 똑같이 높아졌습니다. 작은방 문이 닫히자 아이는 전처럼 스웨터를 주워 혼자 뒤집어썼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배에 힘을 주지 않았습니다. 참았던 숨이 길게 빠져나왔고, 목 뒤의 따가움을 억지로 모른 척하지 않은 채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고 합니다. 상담 의자에서 목 뒤를 문지르던 그분의 손도 그즈음 무릎 위로 내려왔습니다.
그날 아이는 자신의 불편을 말하자 어른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다시 참고 따르자 집이 조용해지는 일을 겪었습니다. 이후에도 상대가 언짢아할 것 같으면 자기 뜻을 접는 방식으로 갈등을 피했을 수 있습니다. 분식집 사장님이 돌아봤을 때 윗배가 굳어 다른 말을 꺼낸 모습과, 새 강사 앞에서 “네, 그러세요”라고 답한 모습에서도 같은 대처 방식이 보였습니다.
순대를 바꿔 달라고 한 날
어느 화요일, 아침 수업을 마친 그분은 그 분식집에서 떡볶이와 순대를 시켰습니다. 그런데 순대 대신 튀김이 나왔습니다. 사장님은 여전히 튀김을 건지느라 바빴고, 윗배가 한 번 조여 왔습니다. 그분은 손을 들었습니다. “사장님, 저 순대 시켰는데요. 바꿔 주실 수 있어요?”
사장님은 “아이고, 헷갈렸네” 하며 접시를 바꿔 주었습니다. 그분은 순대를 소금에 찍어 천천히 먹었고, 오후 수업 내내 속이 가벼웠다고 합니다.
그 주 금요일에는 수영장 사무실 문을 두드렸습니다. “실장님, 화요일 저녁반은 제가 계속 맡고 싶어요. 삼 년을 같이 해 온 회원분들이라서요.” 실장은 조금 곤란한 얼굴로, 새 강사와 이야기해 보고 다음 주에 정하자고 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그 곤란한 얼굴을 보자마자 “아니에요, 그냥 새 선생님 드리세요”가 먼저 나왔을 것입니다. 그분은 “네, 기다릴게요” 하고 사무실을 나왔습니다. 탈의실로 걸어가는 동안 윗배는 딱딱하지 않았고, 그날 저녁에는 욕실 환풍기를 고쳐 달라는 문자도 집주인에게 보냈다고 합니다.
그분이 갑자기 더 대담해진 것은 아닙니다. 목소리 크기는 전과 같고, 사무실 문 앞에서는 지금도 숨을 한 번 고른다고 합니다. 달라진 것은 원하는 것을 말하려는 순간 윗배부터 굳고 자기 뜻을 거둬들이던 반응이었습니다.
주문이 잘못 나와도 말없이 드시거나, 아끼던 일을 누가 가져가도 “그러세요”라는 말부터 나온다면 목소리를 키우는 연습은 잠시 내려놓으셔도 됩니다. 그보다 말이 막히는 순간 몸 어디가 먼저 굳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윗배나 목처럼 몸 어딘가가 먼저 굳는다면, 소심한 성격을 타고나서가 아니라 내 뜻을 드러내면 갈등이 생길 것이라는 예상이 먼저 움직이는 것일 수 있습니다. 대담해지려고 애쓰기보다 그 반응을 살펴야 평소 목소리로도 필요한 말을 꺼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