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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창구 번호가 벌써 세 번이나 넘어갔더라고요. 저는 아직 첫 손님 서류를 붙들고 있는데요.
그걸 보는 순간 목덜미가 확 달아오르고 도장이 자꾸 비뚤게 찍혀요. 이제는 딩동 하고 번호 넘어가는 소리만 들려도 고개가 먼저 옆으로 돌아가요.”
은행 지점 창구에서 열두 해째 일해 온 서른여덟 살 남성분이 상담실에 앉자마자 꺼낸 이야기입니다. 그분은 자신을 ‘열등감 덩어리’라고 소개했습니다. 비교하지 말자고 마음먹어도 몸과 시선이 먼저 움직이는 이유를 함께 살펴봤습니다.
객장 벽의 전광판에는 창구마다 지금 부르는 번호가 나란히 뜹니다. 옆 창구 숫자가 앞서 나가면 그분은 명치가 쑥 내려앉고 귀까지 화끈거렸습니다. 마음이 급해지면 통장을 프린터에 거꾸로 밀어 넣기도 했습니다. 점심시간이 되면 뒷목이 뻣뻣하게 굳어 밥을 반도 못 먹는 날이 많았다고 합니다.
비교는 창구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같은 해 입행한 동기가 차장으로 승진했다는 소식을 들은 날에는 축하 메시지를 보내 놓고 화장실 칸에 한참 앉아 있었습니다. 대학 친구가 새 아파트 집들이 사진을 보내온 날에도 속으로 같은 셈을 했습니다. ‘쟤는 벌써 저기까지 갔는데, 나는 아직 여기 있구나.’
상담에서 이 습관을 살피던 중, 그분은 뜻밖의 장면을 떠올렸습니다. 형과 똑같이 입은 초록색 카디건의 단추를 붙들고 쩔쩔매던 어느 아침이었습니다.
앱을 지워도 먼저 돌아가는 고개
그분도 비교를 멈추려고 애써 왔습니다. 사람들의 근황이 올라오는 앱을 휴대전화에서 지웠고, 잠금 화면에는 ‘어제의 나하고만 비교하자’라는 글귀를 띄워 두었습니다. 동기들 소식이 오가는 대화방은 알림을 꺼 두었습니다.
앱을 지운 뒤로 퇴근길 지하철에서 괜히 기분이 가라앉는 일은 조금 줄었습니다. 비교를 부르는 자극을 줄인 덕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창구에서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딩동 소리가 나면 ‘비교하지 말자’는 생각이 떠오르기도 전에 눈이 전광판의 옆 창구 숫자로 향했습니다.
상담에서 최근에 남과 견주어 본 일 가운데 ‘내가 낫다’로 끝난 적이 있었는지 물었습니다. 한참 생각하던 그분은 해외 송금 업무만큼은 지점에서 자신이 가장 빠르다고 했습니다. 그러고는 곧바로 “그래도 본점에 간 동기는 외환 자격증이 두 개예요”라고 덧붙였습니다.
지난 한 주 동안 남과 비교한 일이 어떻게 끝났는지 떠올려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앞선 비교는 금세 잊고 뒤처진 비교만 오래 붙들고 있었는지, 앞선 일에서도 굳이 더 앞선 사람을 찾아냈는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두 모습이 반복된다면, 비교의 결론을 정하는 것은 사실 자체보다 자신을 재는 기준일 수 있습니다.
언제 맞춰 놓았는지 모르는 빠른 시계
심리학에서는 자신을 어딘가 모자란 사람으로 보는 오래된 생각의 틀을 ‘결함 도식’이라고 부릅니다. 이 틀이 작동하면 누군가를 볼 때마다 비교가 저절로 시작되고, 결론은 ‘역시 내가 부족하다’는 쪽으로 기울기 쉽습니다. 열등감이 비교를 부르고, 그 비교의 결론이 다시 열등감을 키우는 일이 되풀이됩니다.
손목시계를 일부러 10분 빠르게 맞춰 두는 사람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 사실을 알고 맞췄어도 몇 해 차고 다니면 얼마나 빠른지 잊어버립니다. 제시간에 가고 있어도 시계를 볼 때마다 늦었다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하고 걸음이 빨라집니다. 결함 도식은 언제 맞춰 놓았는지 잊은 빠른 시계와 닮았습니다.
그분이 앱을 지운 것은 시계를 덜 들여다보려는 노력에 가까웠습니다. 시계를 덜 봐도 시각은 여전히 실제보다 빠릅니다. 그분에게도 ‘비교하지 말자’는 다짐은 목덜미가 달아오른 뒤에야 떠올랐습니다. 생각보다 먼저 일어나는 반응은 의지만으로 바꾸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상담에서는 비교하지 말라고 거듭 설득하기보다, 목덜미가 달아오르는 감각에서 출발해 그 감정과 이어진 경험을 살펴봤습니다.
형은 벌써 했는데
깊은 최면 상태에서 그분은 딩동 소리를 들을 때처럼 목덜미가 달아오르는 느낌에 주의를 모았습니다. 열기가 또렷해질 즈음, 햇살이 드는 시골집 마당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마루 끝에서 마당으로 내려갈 때 아직 엉덩이를 대고 미끄러져 내려가던 무렵의 아침이었습니다.
식구들은 친척 결혼식에 가려고 서두르고 있었습니다. 아이와 형은 똑같은 초록색 카디건을 입었습니다. 형은 단추를 위에서부터 톡톡 끼우더니 대문 쪽으로 뛰어갔습니다. 아이는 첫 단추를 엉뚱한 구멍에 넣었다가 다시 빼느라 손가락이 자꾸 미끄러졌습니다.
대문 앞에서 버스 시간에 늦겠다며 서성이던 아버지가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형은 벌써 했는데 너는 아직이네.” 아이는 형을 한 번 보고 다시 제 단추를 내려다봤습니다. 얼굴과 목이 화끈 달아오르고 손가락은 아까보다 더 뻣뻣해졌습니다. 결국 아버지가 성큼 다가와 남은 단추를 끼워 주었고, 아이는 아버지 손에 이끌려 대문을 나섰습니다.
그분은 최면 속에서 그 아침의 마당으로 들어가 아이 곁에 섰습니다. 아이와 나란히 대문 앞의 형을 바라보며 말해 주었습니다.
“아빠 말 듣고 얼굴이 화끈했지. 형이 빨리 끝낸 건 너보다 먼저 태어나서 손이 더 크기 때문이야. 아빠는 버스를 놓칠까 봐 급한 거고. 너는 지금 네 손으로 할 수 있는 만큼 잘하고 있어.”
마당의 아침은 처음과 같은 순서로 다시 흘러갔습니다. 형은 이번에도 먼저 뛰어나갔고, 아버지는 같은 말을 했으며, 남은 단추도 아버지가 끼워 주었습니다. 달라진 것은 아이가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방식이었습니다. 아이의 눈은 형이 아니라 제 손가락 끝에 머물렀고, 목의 열기는 금세 가라앉았습니다. 손가락도 처음처럼 굳지 않았다고 합니다.
카디건 단추와 은행 전광판은 전혀 다른 장면입니다. 상담에서는 두 장면에서 되풀이된 반응을 살펴봤습니다. 같은 일을 나란히 할 때 먼저 옆을 보고, 누가 앞섰는지로 자신을 재며, 뒤처졌다고 느끼면 목이 달아오르고 손이 굳었습니다. 그분이 속으로 되뇌던 ‘쟤는 벌써, 나는 아직’이라는 말도 그 아침에 들은 말과 닮아 있었습니다.
번호가 넘어가도 약관에 머문 눈
상담 뒤 어느 오후, 일흔이 넘은 손님이 예금을 해지하고 새 적금에 들겠다며 통장 두 개를 내밀었습니다. 설명할 약관이 여러 장이었고, 그사이 옆 창구에서는 딩동 소리가 연달아 울렸습니다. 그분은 고개를 들지 않고 약관을 손님 쪽으로 돌려 한 줄씩 짚어 가며 설명했습니다. 손님이 돋보기를 꺼내자 “천천히 읽어 보셔도 됩니다”라고 말하고 기다렸다고 합니다.
그달 말에는 몇 해째 미뤄 온 외환 관련 자격시험에 원서를 냈습니다. 예전 같으면 ‘후배들은 벌써 다 땄는데 이제 와서 뭘’ 하며 접었을 일입니다. 그분은 지난해 합격한 후배에게 공부할 때 쓴 책을 빌려 달라고 했고, 퇴근 뒤에는 지점 휴게실에서 문제집을 펼쳤습니다. 목덜미가 화끈거리는 날도 드물어졌다고 합니다.
비교는 그만하자고 다짐하는 것만으로 멈추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남과 견준 결론이 번번이 ‘내가 늦다’로 끝난다면, 시계를 보는 횟수뿐 아니라 오래전에 빠르게 맞춰진 기준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도 누군가의 소식 앞에서 마음이 먼저 작아졌다면 의지의 문제로만 볼 필요는 없습니다. 옆부터 보고 자신을 뒤처진 쪽에 세우는 반응을 알아차리고 다룰 때, 남의 속도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눈을 두는 순간이 늘어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