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네, 금요일에는 꼭 보내 드릴게요. 거의 다 돼 가요.”
번역 일을 아홉 해째 해 온 서른여덟 살 여성분이 출판사 편집자와 통화하며 한 말입니다. 전화를 끊고 보니 원서가 든 택배 봉투가 열이틀째 뜯기지 않은 채 책상 모서리에 놓여 있었습니다. 영어 에세이 한 권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이었고, 금요일은 첫 장 원고를 보내기로 약속한 날이었습니다.
봉투를 집으려고 손을 뻗으면 가슴이 꽉 막히고 저도 모르게 숨을 참았습니다. 손끝도 금세 차가워졌습니다. 손을 거두고 일어나 욕실 타일 틈을 칫솔로 문지르기 시작하면 그제야 숨이 풀렸다고 합니다. 그렇게 냉장고를 정리하고 책꽂이의 책을 다시 꽂는 사이 날짜만 흘러갔습니다.
봉투를 뜯은 것은 목요일 밤이었습니다. 커피를 네 잔 마시며 밤을 새웠고, 새벽 다섯 시에 원고를 보낼 때는 오른쪽 손목이 시큰거리고 눈이 따가웠습니다. 편집자는 잘 받았다며 좋다고 답했지만, 그분 눈에는 급히 넘기느라 다듬지 못한 대목만 보였습니다. 조금만 일찍 시작했으면 좋았을 거라는 후회는 다음 장 마감까지 따라다녔다고 합니다.
그분은 게으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마감이 닥치면 밤을 새워서라도 약속을 지켰고, 아홉 해 동안 원고를 늦게 보낸 적도 거의 없었습니다. 그분이 미루는 이유로 꼽은 것은 게으름과 정반대였습니다. “잘하고 싶은 일일수록 손을 못 대겠어요.”
완벽주의와 미루기는 이렇게 함께 나타나기도 합니다. 잘해야 한다는 마음이 클수록 오히려 시작하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글에서는 그 답을 찾던 상담에서 떠오른 할아버지 방의 작은 붓 한 자루를 따라가 봅니다.
대충 해도 되는 일은 바로 하는데
상담에서 미루는 일과 바로 하는 일을 나눠 적어 보니 차이가 뚜렷했습니다. 거래처의 확인 메일이나 동료 번역가가 급히 부탁한 짧은 문서는 그날 바로 끝냈습니다. 미루는 것은 표지에 역자 이름이 들어가는 책처럼 잘해 내야 한다고 느끼는 일뿐이었습니다. 대충 해도 되는 일은 바로 시작하면서 중요한 일만 밀린다면, 시간 관리보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잘해야 하는 일만 미뤄지는 흐름은 심리학의 ‘부적 강화’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부적 강화란 어떤 행동 뒤에 불편한 느낌이 사라지면서 그 행동을 다시 하게 되는 현상입니다. 기준이 높은 사람은 일을 시작하려는 순간 실패할 가능성부터 크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 일을 미루면 불안이 바로 줄어듭니다. 봉투에서 손을 거두자 숨이 풀렸던 그 안도가, 다음에도 손을 거두게 만드는 것입니다.
충치가 시큰거리는데 치과 예약을 미루는 경우를 떠올려 보세요. 전화를 미룬 순간에는 마음이 놓이지만, 그사이 충치는 조금씩 깊어집니다. 다음 전화는 더 겁이 나고, 결국 참기 어려울 만큼 아파진 뒤에야 치과 문을 열게 됩니다.
그분에게는 마감 전날 밤이 치과에 갈 수밖에 없을 만큼 아픈 날과 같았습니다. 쫓기듯 끝낸 원고는 마음에 차지 않았고, 다음 책은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봉투로 손을 뻗기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미룬 뒤의 실패감이 쌓일수록 다음 시작도 무거워졌습니다.
한 줄만 쓰자고 다짐하기도 전에
그분도 여러 방법을 써 보았습니다. 할 일을 잘게 나눠 목록에 적고, 딱 한 줄만 옮기자는 규칙도 세웠습니다. 휴대전화를 끄고 도서관에 가 보기도 했습니다. 일을 작게 나눠 가볍게 시작하는 방법은 미루는 습관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분도 짧은 일에서는 효과를 보았습니다.
하지만 책 앞에서는 달랐습니다. “한 줄만 쓰자는 건 봉투를 뜯은 다음 얘기잖아요. 저는 봉투 쪽으로 손을 뻗기도 전에 숨부터 막혀요.”
순서를 짚어 보면 그 말 그대로였습니다. 가슴이 먼저 막혔고, 손은 그다음에 멈췄습니다. 한 줄만 쓰자는 다짐은 욕실 타일을 닦기 시작한 뒤에야 떠올랐습니다. 봉투 앞에서 숨을 멈추게 한 것은 그분의 의식적인 판단이 아니라, 판단보다 먼저 일어난 무의식 자동반응이었습니다. 이런 반응은 오래전 비슷한 두려움을 겪으며 몸에 익었을 수 있어, 방법을 바꾸거나 다짐을 새로 하는 것만으로는 잘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최면상담에서는 방법을 하나 더 보태기보다, 일을 시작하려 할 때 숨을 참게 되는 감각에서 출발합니다. 그 감각과 이어진 옛 경험을 살피며 당시의 감정도 함께 다룹니다.
흰 종이 위에서 멈춘 붓
깊은 최면 상태에서 그분은 책상 모서리의 봉투로 손을 뻗는 순간을 떠올렸습니다. 가슴이 조여 오며 숨이 막혔고, 소파 팔걸이에 놓인 오른손은 무언가를 쥐듯 오므라들었습니다. 한참 뒤 그분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손에 붓을 쥐고 있어요. 저는 붓 같은 건 잡아 본 적도 없는데요.”
할아버지 무릎 사이에 쏙 들어갈 만큼 작은 여자아이가 낮은 책상 앞에 있습니다. 할아버지 방 안에는 먹 냄새가 배어 있고, 신문지 위로 하얀 화선지가 펼쳐져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대나무를 그려 보자며 먹물 찍은 붓을 쥐여 줍니다. 아이가 줄기를 그을 때마다 붓끝이 흔들려 선이 구불구불해집니다. 그러면 할아버지는 뒤에서 아이 손등을 감싸 쥐고 “이렇게, 곧게” 하며 줄기를 다시 그어 줍니다.
이윽고 할아버지가 새 화선지를 펼치고 아이 손에서 자기 손을 뗍니다. 아이는 붓을 든 채 종이 위에서 멈춥니다. 붓끝에서 먹물이 떨어질까 봐 숨을 참고, 고개를 젖혀 할아버지를 올려다봅니다. “왜, 그려 봐.” 할아버지가 말해도 붓은 내려가지 않습니다.
한참 뒤 할아버지가 팔을 뻗어 종이 가운데에 첫 줄기를 길게 그어 줍니다. 아이는 그제야 참았던 숨을 내쉬고, 그 옆에 제 줄기를 조심조심 이어 긋습니다. 아이가 그은 줄기는 이번에도 조금 구불거립니다.
최면 속에서 어른이 된 그분은 붓을 든 채 멈춰 있는 어린 자신과 낮은 책상 건너편에 마주 앉았습니다. 흰 종이 위에 떠 있는 붓끝을 함께 내려다보며 말했습니다.
“붓이 무겁지. 처음 쥐어 보는 붓은 누가 잡아도 흔들려. 할아버지가 손을 잡아 주신 건 네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곧게 긋는 법을 보여 주고 싶으셨던 거야. 구불구불한 줄기도 대나무야. 먹이 번져도 괜찮아, 종이는 또 있어.”
그 말을 전한 뒤, 할아버지가 새 화선지를 펼치는 순간부터 같은 일을 다시 경험했습니다. 이번에도 아이는 먼저 긋지 않았고, 할아버지가 첫 줄기를 그어 준 뒤에야 그 옆에 구불구불한 줄기를 이었습니다. 다만 기다리는 동안 숨을 참지 않았고, 붓대를 쥔 손가락에서도 힘이 빠졌습니다. 아이는 먹물이 화선지에 스며 번지는 모양을 신기한 듯 들여다보았다고 합니다.
할아버지 방의 화선지 앞과 지금의 택배 봉투 앞에서, 그분은 똑같이 숨을 멈추고 기다렸습니다. 아이는 첫 줄기가 틀릴지 모를 때 손을 멈췄고, 할아버지가 대신 그어 주자 참았던 숨을 내쉬었습니다. 상담에서는 지금도 누군가 첫 줄기를 대신 그어 주기를 기다리듯, 마감 전날 밤이 등을 떠밀 때까지 시작을 미뤄 온 반응을 함께 살펴봤습니다.
택배가 도착한 날 저녁
다음 책의 원서가 택배로 도착한 날, 그분은 저녁을 먹기 전에 봉투를 뜯었다고 합니다. 첫 쪽을 펴자 가슴이 잠깐 조여 왔지만 숨을 멈추지는 않았습니다. 그날 밤 첫 단락을 옮겼고, 번역하기 까다로운 낱말에는 노란 형광펜만 칠해 둔 채 다음 줄로 넘어갔습니다. 첫 장 원고는 마감 이틀 전에 보냈고, 보내기 전날 밤에도 자정 전에 불을 끄고 누웠습니다.
형광펜을 칠해 둔 낱말들은 다음 날 아침 다시 보니 대부분 알맞은 말을 금세 찾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석 달 넘게 답하지 못했던 친구의 긴 메시지에도 답장을 보냈습니다. 예전에는 그만큼 정성 들인 답을 써야 한다는 생각에 대화창을 열었다 닫기만 했습니다. 이번에는 “나도 네 생각 많이 했어. 이번 주말에 볼래?” 두 줄을 먼저 보냈고, 토요일에 둘은 동네 칼국숫집에서 마주 앉았다고 합니다.
잘해 내야 한다는 마음에 아직 손대지 못한 일이 있다면, 그 일을 떠올릴 때 숨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펴보셔도 좋습니다. 미루는 동안의 짧은 안도가 다음 미루기로 이어진다면, 다짐을 한 번 더 굳히기보다 시작 앞에서 몸을 물러서게 하는 무의식 자동반응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반응이 달라지면 마감 전날 밤이 아니라, 일을 받은 날에도 시작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