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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오면 교복도 못 벗고 그대로 침대에 누워요. 팔다리가 매트리스에 붙은 것처럼 무거워서 휴대폰 드는 것도 귀찮아요. 친구들이 단톡방에 농구 할 사람 있냐고 올려도 답장을 못 하겠어요. 좋아하던 게임도 켰다가 그냥 꺼요. 저도 제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어머니 손에 이끌려 상담실에 온 고등학교 1학년 남학생은 소파 등받이에 몸을 푹 기댄 채 이렇게 말했습니다. 학원 가방은 며칠째 현관에 놓여 있었고, 학교에서는 수업 시간 대부분을 엎드려 보냈습니다. 오후가 되면 머리가 멍하고 눈이 뻑뻑했으며, 주말에는 낮 열두 시가 넘어 일어나도 몸이 개운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그동안 ‘청소년 무기력’, ‘의욕 없는 청소년’ 같은 말을 휴대폰으로 여러 번 검색해 보셨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사춘기려니 했고, 나중에는 게을러진 줄 알고 잔소리를 늘렸습니다. 아이도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 몸이 따라 주지 않자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겼습니다.
이런 모습이 나타나면 먼저 기분이 오래 가라앉아 있는지, 잠과 식사가 크게 달라졌는지, 집중하기 어려운 문제가 어릴 때부터 이어졌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울증이나 수면 문제,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신체 질환과 관련된 증상은 아닌지 진료로 확인하는 과정도 중요합니다. 이 학생도 먼저 진료를 받았고, 따로 치료가 필요한 병은 없다는 말을 들은 뒤 상담실을 찾았습니다.
성적표를 받은 뒤, 좋아하던 것까지 멈췄다
중학교 때까지는 달랐습니다. 방과 후면 운동장에서 해가 질 때까지 친구들과 농구를 했고, 성적도 반에서 좋은 편이었습니다.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부터는 고등학교 공부를 미리 한다며 학원 세 곳을 다녔습니다. 밤 한 시가 넘어서야 잠들었지만, 그때는 힘든 줄도 몰랐다고 합니다.
달라진 것은 고등학교 첫 중간고사 성적을 받은 뒤였습니다. 몇 달을 애쓴 데 비해 성적은 기대보다 한참 낮았습니다. 그날 저녁부터 문제집을 펴지 않았고, 시험과 상관없는 농구와 게임, 친구들과의 약속까지 하나씩 줄었습니다.
시험을 한 번 망친 뒤 공부가 싫어진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좋아하던 농구까지 함께 멈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해 봐야 소용없다는 생각이 몸을 멈출 때
사람은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해 보면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가늠합니다. 애쓴 만큼 결과나 즐거움이 돌아오면 다음 행동도 시작하기 쉬워집니다. 반대로 노력해도 얻는 것이 없다고 느끼는 일이 반복되면, 시작하기도 전에 의욕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게임에 빗대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퀘스트를 깰 때마다 보상 상자가 열리면 다음 퀘스트도 망설임 없이 시작합니다. 하지만 몇 번을 깨도 상자가 비어 있다면, 퀘스트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해 봐야 받을 것이 없다고 예상해 다음 버튼 앞에서 손가락이 멈출 수 있습니다.
그 학생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학원 안 가기로 하고 나면 그때는 좀 살 것 같아요. 근데 밤에 누워 있으면 제가 또 한심해요.”
학원에 가지 않기로 정한 순간에는 부담이 사라져 잠깐 숨이 트였습니다. 이렇게 피한 직후의 편안함이 반복되면 다음에도 피하는 쪽을 택하기 쉬워집니다. 하는 일이 줄어들수록 새로 얻는 즐거움도 함께 줄어 무기력은 더 깊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기로 정한 순간, 오히려 숨이 트이고 몸이 가벼워지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단순히 힘이 모자라서라기보다 ‘해 봐야 소용없다’는 예상 앞에서 몸이 먼저 피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것만으로 어떤 상태를 진단할 수는 없지만, 무엇 앞에서 멈추는지 알아보는 단서가 됩니다.
부모님도 여러 방법을 써 보셨습니다. 밤에는 휴대폰을 거실에 두게 했고, 방문에는 일주일 공부 계획표를 붙였습니다. 잠드는 시간을 지키고 휴대폰을 줄이는 일은 생활 리듬을 되찾는 데 도움이 되며, 계획표는 해야 할 일을 눈앞에 보여 줍니다. 그러나 이 학생은 휴대폰 없이 누운 밤에도 천장만 바라보다 잠들었습니다. 계획표의 첫 칸을 볼 때마다 팔이 무거워지는 반응도 그대로였습니다.
“아침마다 오늘은 정신 차리자고 다짐해요. 이제는 다짐하는 것도 지쳐요.”
다짐은 생각으로 하지만, 팔이 무거워지는 반응은 생각보다 먼저 찾아왔습니다. ‘해 봐야 소용없다’는 예상이 되풀이되면서, 마음을 먹기도 전에 몸이 멈추는 반응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최면상담에서는 다짐을 하나 더 보태기보다, 무언가를 시작하려 할 때 몸이 무거워지는 느낌에서 출발했습니다. 그 느낌과 관련된 어린 시절의 경험을 살펴보고, 당시 남은 감정을 다뤘습니다.
단무지를 든 채 기다리던 아이
깊은 최면에 충분히 든 상태에서 학생은 학원 가방을 떠올렸습니다. 두 팔이 다시 무거워지자 그 느낌에 집중했습니다. 한동안 말이 없던 학생이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김 냄새가 나요. 참기름 냄새도요. 부엌인데, 식탁이 엄청 높아요.”
식탁 위를 보려면 까치발을 들어야 했던 때였습니다. 친척들과 계곡에 놀러 가기로 한 날 아침, 엄마와 외할머니가 식탁 앞에서 김밥을 싸고 있었습니다. 밥이 담긴 양푼 옆에는 단무지와 시금치, 달걀지단, 햄이 줄지어 놓여 있었습니다. 엄마가 김발에 밥을 펴면 할머니가 재료를 올려 돌돌 말았습니다.
아이는 의자를 끌어와 올라서서 “나도 할래!”라고 말했습니다. 엄마는 밥을 펴던 손을 멈추지 않은 채 “조금만 기다려, 이 줄만 끝내고”라고 답했습니다. 아이는 접시에서 단무지 한 줄을 집어 들고 자기 차례를 기다렸습니다.
한 줄이 다 말리고 다음 줄이 시작됐습니다. 아이가 “지금 해도 돼?”라고 다시 묻자, 이번에는 할머니가 “거의 다 했어, 조금만” 하며 칼을 들었습니다. 아이 손에 쥔 단무지는 점점 미지근해졌습니다.
다시 물어보려고 고개를 들었을 때는 양푼이 비어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다 됐다, 이제 옷 입자” 하며 손을 털었고, 엄마는 김밥 꽁다리 하나를 아이 입에 넣어 주었습니다. 아이는 쥐고 있던 단무지를 식탁 모서리에 슬그머니 내려놓고 의자에서 내려왔습니다. 팔이 축 늘어지고 배 속이 허전했습니다.
김밥을 은박지에 싸는 동안 아이는 더 다가가지 않았습니다. 부엌 문턱에 서서 어른들의 손만 바라봤습니다. 그날 계곡에서 무엇을 하고 놀았는지는 끝내 떠오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깊은 최면 상태에서 지금의 학생은 단무지를 든 어린 자신에게 그때 몰랐던 사실을 알려 주었습니다. 오늘 차례가 오지 않았지만 해 보고 싶다고 말한 것이 잘못은 아니며, 이번에 못 했다고 다음에도 먼저 나서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해 보고 싶은 마음은 그대로 가져도 된다는 말도 전했습니다.
어린 자신에게 그 말을 전한 학생은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을 마음에 둔 채 그날 아침을 다시 겪어 보았습니다. 엄마는 똑같이 “조금만 기다려”라고 했고, 양푼은 아이 차례가 오기 전에 비었습니다. 아이는 이번에도 단무지를 내려놓고 문턱에서 바라보았습니다. 서운함은 남았지만 ‘이번에 못 했어도 다음에 또 해 보면 된다’고 생각하자 팔이 축 늘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김발을 꾹꾹 누르는 할머니의 손과 입안에 남은 김밥 꽁다리의 고소한 맛도 또렷했다고 합니다.
김밥을 기다리던 부엌과 고등학교 성적표는 겉으로는 전혀 다른 장면입니다. 그러나 기대하고 기다린 뒤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자 팔에서 힘이 빠졌고, 그다음부터는 먼저 나서지 않았다는 점은 닮아 있었습니다. 이 장면 하나로 학생의 무기력 전체를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최면에서는 기대한 만큼 결과가 오지 않으면 다음 시도까지 접고 몸이 무거워졌던 경험들을 더 따라가며, 한 번의 결과가 다음 기회까지 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이해로 풀어 갔습니다. 몇 달을 애쓴 뒤 기대에 못 미친 성적을 받은 후 공부뿐 아니라 농구공 앞에서도 되살아난 반응을 함께 다룬 것입니다.
단톡방에 보낸 한 글자
상담을 마치고 맞은 어느 금요일 저녁, 그 학생은 그날도 교복 차림으로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마침 단톡방에 “농구 할 사람?”이라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전 같으면 휴대폰을 엎어 두었겠지만, 이번에는 누운 채로 “나”라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교복 바지만 갈아입고 공을 챙겨 나갔다고 합니다.
오랜만에 잡은 공이라 첫 슛은 림에도 닿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이 웃자 학생도 따라 웃었습니다. 그 뒤로도 슛이 여러 번 빗나갔지만, 해가 질 때까지 코트를 뛰어다녔다고 합니다.
그 주말에는 현관에 두었던 학원 가방을 방으로 가져왔습니다. 수학 문제집을 펴고 중간고사에서 틀린 문제부터 다시 풀었습니다. 다섯 문제 가운데 두 문제를 또 틀렸지만, 지난봄처럼 문제집을 덮지는 않았습니다. 학원 선생님께 물어볼 문제에 물음표를 그려 두고 다음 장을 넘겼다고 합니다.
빗나간 슛도 틀린 문제도 그대로였습니다. 달라진 것은 그 앞에서 팔이 먼저 무거워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지금 이 글을 교복도 벗지 못한 채 누워서 읽고 있다면, 스스로를 한심하다고 여기기 전에 오늘 무엇 앞에서 팔이 무거워졌는지 떠올려 보세요. 아이 방문 앞에서 이 글을 찾아본 부모님이라면, 잔소리를 한 번 더 하기 전에 아이가 어떤 일 앞에서 멈추는지부터 살펴봐 주세요.
마음을 다잡으라는 말이 통하지 않았다면, 의지보다 먼저 몸을 멈추게 하는 반응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사례의 학생은 그 반응과 이어진 감정을 다룬 뒤, 농구공을 다시 잡고 문제집의 다음 장을 넘길 수 있었다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