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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진짜 아파. 배가 꼬이는 것 같다니까. 꾀병 아니야.”
아침 일곱 시 이십 분, 욕실 문 너머에서 들려온 중학교 2학년 아들의 목소리였다고 합니다. 아들은 교복 셔츠 단추를 반쯤 채운 채 변기에 앉아 배를 움켜쥐고 있었습니다. 얼굴은 하얗게 질렸고, 식탁에 차려 둔 토스트는 한 입도 먹지 못했습니다. 어머니는 그날도 담임 선생님께 결석 문자를 보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결석을 알리고 두어 시간이 지나면 모습이 달라졌습니다. 오전 열 시쯤 방문을 열어 보면 아들은 침대에 누워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고, 점심에는 라면 한 그릇을 뚝딱 비웠습니다. 소아청소년과에서 검사를 받았지만 특별한 이상은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어머니는 꾀병을 의심하다가도 아침마다 식은땀을 흘리는 아이를 보면 미안해졌다고 합니다.
아이도 억울했습니다. “학교 가기 싫을 때 다들 배 아프다고 하잖아요. 근데 저는 진짜 아파요. 집에 있으면 괜찮아지니까 아무도 안 믿어요.” 이 학생처럼 등교를 앞두고 생기는 복통은 실제 통증이면서도, 학교를 쉬기로 하면 금세 가라앉을 수 있습니다. 이 두 모습이 함께 나타나는 이유를 알면 아이의 어려움을 꾀병이나 의지 문제로만 보지 않게 됩니다.
교복 단추를 채우면 먼저 아파오는 배
복통은 2학년이 된 3월 중순부터 시작됐습니다. 1학년 때 늘 붙어 다니던 친구 셋이 모두 다른 반으로 갈린 봄이었습니다. 새 반에서는 쉬는 시간마다 책상에 엎드려 있었고, 급식도 절반쯤 남겼다고 합니다.
복통에는 뚜렷한 시간표가 있었습니다. 토요일과 일요일 아침에는 아무렇지 않았고, 여름방학 내내 배탈 한 번 없었습니다. 그러나 일요일 저녁 가방을 챙길 무렵이면 속이 더부룩해졌습니다. 월요일 아침 교복 셔츠를 입으면 배꼽 아래가 딱딱하게 뭉쳤고, 아파트 현관을 나서 편의점이 보이는 모퉁이에 이르면 헛구역질이 났다고 합니다.
복통이 등교 시간과 학교를 떠올리게 하는 물건에 맞춰 나타난다면, 몸이 학교와 관련된 신호에 긴장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자다가 깰 만큼 아프거나 열과 구토가 함께 있다면 진료가 먼저입니다. 학교에서 따돌림이나 폭력이 있는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이 학생의 어머니도 담임 선생님과 이야기했고, 괴롭힘은 없으며 조용히 지내는 학생이라는 답을 들었습니다.
교복과 복통처럼 원래는 관계없던 대상과 몸의 반응이 함께 묶이는 현상을 조건화라고 합니다. 불안한 시간을 보내는 동안 곁에 있던 물건이나 장소가, 나중에는 그 자체로 긴장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이 학생에게는 교복과 현관, 편의점 모퉁이가 그런 신호가 되어 있었습니다. 학교에 도착하기도 전에 배가 먼저 굳었습니다.
상한 우유를 마시고 밤새 고생한 뒤에는 유통기한이 넉넉한 새 우유 팩만 봐도 속이 울렁거릴 수 있습니다. 우유를 피하면 당장은 편해집니다. 하지만 새 우유는 괜찮다는 것을 몸으로 확인할 기회도 사라집니다.
결석한 날 아침도 비슷했습니다. 담임 선생님께 문자를 보내고 나면 신기할 만큼 배가 풀렸습니다. 그때의 안도감은 학교를 피하면 괜찮아진다는 반응을 다시 익히게 했고, 다음 날에는 복통이 조금 더 일찍, 더 세게 찾아왔습니다.
달래고 다그쳐도 몸이 먼저 굳는 이유
어머니는 할 수 있는 방법을 거의 다 써 보았습니다. 달래기도 하고, 언성을 높여 깨운 날도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받아 온 약을 챙겼고, 담임 선생님과 상의해 3교시부터 등교하기도 했습니다. 일주일 동안 아침마다 교문 앞까지 함께 걸어가기도 했습니다. 늦게라도 교실에 들어간 날이 몇 번 있었지만, 편의점 모퉁이에서 되돌아온 날이 더 많았다고 합니다.
약은 이미 생긴 통증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학교에 머무는 시간을 조금씩 늘리는 계획은 몸이 학교에 다시 익숙해지도록 돕습니다. 학교 상담실이나 청소년 상담에서 학교생활의 어려움을 정리해 볼 수도 있습니다. 우울이나 불안이 깊어 보인다면 소아청소년 정신건강의학과의 평가도 받아 볼 수 있습니다. 이 학생은 이런 노력을 하는 동안에도 교복 단추를 채우면 배부터 뭉치는 반응이 계속됐습니다.
“가야 되는 건 저도 알아요. 근데 단추를 다 잠그기도 전에 배가 먼저 아파요.”
학생의 말처럼 몸의 반응은 생각보다 빠르게 시작됩니다. 학교에 가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기도 전에 몸이 움츠러드니, 밤에 굳게 다짐해도 다음 날 아침이면 같은 모퉁이에서 멈췄습니다. 최면상담에서는 학교에 가라고 설득하기보다, 교복 단추를 채울 때 배를 조이는 자동반응과 그 반응에 연결된 감정과 경험을 살펴봅니다.
친한 친구들과 반이 갈린 것 말고는 그해 봄에 특별한 일은 없었습니다. 반이 바뀌는 일은 누구나 겪는데, 이 학생의 몸은 왜 그 몇 주를 이토록 힘들게 받아들였을까요?
유리문에 두 손을 붙인 아이
최면이 충분히 깊어진 뒤, 학생은 교복 단추를 채우는 아침을 떠올렸습니다. 배꼽 아래가 딱딱해지는 느낌에 집중하자 오른손이 저절로 배 위로 올라갔습니다. 한참 뒤 학생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계단이에요. 엄마 손 잡고 올라가고 있어요. 근데 우리 집 계단이 아니에요.”
계단 한 칸마다 두 발을 모아 디뎌야 올라가던 무렵의 남자아이가 어느 주택 2층 현관 앞에 서 있습니다. 어머니가 다시 일을 나가게 되면서 동네 아이 몇을 돌봐 주던 아주머니 댁에 처음 온 날입니다. 유리 현관문 너머로 만화 소리가 크게 들리고, 아이 둘은 블록 통을 두고 다투고 있습니다. 아주머니 등에 업힌 아기도 웁니다.
어머니는 무릎을 굽혀 “해 지면 올게”라고 말한 뒤 계단을 내려갑니다. 아이는 유리문에 두 손을 붙이고 웁니다. 아주머니는 “울면 못 써, 엄마 금방 와”라고 서둘러 말하고는 아기를 업은 채 부엌으로 들어갑니다. 친절한 분이었지만 돌볼 아이가 여럿이었고, 목소리는 크고 말은 빨랐습니다.
간식 시간이 되자 아주머니는 다른 아이들을 이름으로 부른 뒤 “새로 온 애기도 이리 와”라고 손짓합니다. 아이는 유리문 앞을 떠나지 않습니다. 귤 한 조각을 손에 쥐여 줘도 먹지 않고, 배에 힘을 준 채 계단 쪽만 바라봅니다. 집에서처럼 느린 목소리로 애칭을 불러 주며 등을 쓸어 주는 사람은 그곳에 없었습니다.
해 질 무렵 어머니가 올라오자 아이는 목에 매달려 한참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그 집 계단 아래에 이르자 온몸을 뻗대며 어머니의 옷깃을 놓지 않았습니다.
“저 이런 집에 다닌 거 하나도 기억 안 나는데요.” 학생은 눈을 감은 채 어리둥절해했습니다. 그 집이 어느 동네였는지, 며칠이나 다녔는지는 끝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상담에서는 이런 세부 사실보다 유리문 앞에서 배에 힘을 주고 버티던 아이의 마음을 살폈습니다.
최면 속에서 지금의 학생은 유리문 앞의 어린 자신에게 다가가 눈높이를 맞췄습니다. 어머니처럼 천천히, 집에서만 부르던 애칭으로 아이를 부르며 등을 쓸어 주었습니다.
“엄마는 일하러 간 거야. 창밖이 빨갛게 되면 저 계단으로 올라와. 아줌마 목소리가 큰 건 아기들이 많아서야. 너한테 화난 거 아니야. 배가 딱딱한 건 너무 무서워서 그래.”
지금의 학생에게 잠시 뒤 벌어질 일을 전해 들은 아이는,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을 마음에 둔 채 그날을 다시 겪어 보았습니다. 어머니는 똑같이 계단을 내려갔고, 아이는 이번에도 유리문에 손을 붙이고 울었습니다. 귤도 끝내 먹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엄마가 나를 두고 간 게 아니라 일을 마치면 돌아오는 거구나’라고 알게 되자, 배에 주던 힘이 조금씩 빠졌습니다. 계단만 바라보던 아이는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에도 눈을 돌렸다고 합니다.
그 장면을 경험하는 동안 학생의 배에서 꾸르륵 소리가 났고, 학생은 쑥스러운 듯 입꼬리를 올렸습니다.
유리문 앞의 아이는 낯선 목소리들 사이에서 아무도 자신을 달래 주지 않자 배에 힘을 주고, 먹지 않은 채 어머니가 돌아올 계단만 바라봤습니다. 새 반에서 친한 친구 없이 지내던 학생도 급식을 남겼고, 교복과 현관 앞에서 배부터 굳었습니다. 그날의 재경험 뒤에는 낯선 곳에 혼자 남았다고 느낄 때 먹지 않고 몸에 힘을 주며 버텼던 다른 경험들도 최면 속에서 이어서 살폈습니다. 어머니가 자리를 비운 이유와 다시 돌아온다는 사실을 알지 못해 커졌던 불안을 풀고, 낯선 곳에서도 곁의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 도움을 청할 수 있다는 선택을 함께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학교를 알리는 신호가 와도 배를 굳힌 채 혼자 버티는 반응을 다르게 이어 갈 수 있었습니다.
편의점 모퉁이를 지나간 아침
상담 뒤 어느 월요일 아침, 학생은 알람을 끄고 식탁에서 토스트 한 장을 다 먹었다고 합니다. 교복 셔츠의 마지막 단추를 채울 때 배꼽 아래가 한 번 뭉쳤지만, 숨을 길게 내쉬는 사이 풀렸습니다. 편의점 모퉁이에서도 걸음을 늦추지 않고 그대로 지나갔습니다.
과학 시간에 선생님이 두 명씩 짝을 지으라고 하자, 학생은 옆자리 친구에게 먼저 “같이 할래?”라고 물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누가 말을 걸어 줄 때까지 고개를 숙이고 있었을 것입니다. 요즘은 그 친구와 급식실에도 함께 가고, 식판도 거의 비운다고 합니다.
내일 아침에도 욕실 문 앞에서 같은 말을 듣게 될까 봐 벌써 마음이 무거우신가요? 아이의 복통이 주말에는 나타나지 않다가 등교하는 아침에만 찾아온다면, 학교와 관련된 신호 앞에서 몸이 먼저 긴장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복통은 설득하거나 마음을 다잡기 전에 시작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배를 조이는 자동반응과 그 반응에 연결된 불안을 함께 살펴보는 일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지금 현관 앞에서 배를 움켜쥐고 있는 학생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그 아픔은 꾀병이 아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