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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저는 사물함 안 쓸게요. 책은 다 가방에 넣어 다니면 돼요."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이 새 학기 첫날, 사물함 열쇠를 나눠 주던 담임 선생님에게 한 말입니다. 선생님이 열쇠를 내밀었지만 학생은 손을 내밀지 못했다고 합니다. 두 팔꿈치가 옆구리에 딱 붙었고, 손가락은 교복 치마 옆선을 꽉 움켜쥐었습니다. 목구멍이 좁아진 듯 침을 삼키기도 힘들었습니다.
그날부터 학생은 교과서와 문제집을 모두 가방에 넣어 다녔습니다. 어깨끈이 파고들어 저녁이면 어깨에 붉은 줄이 남았습니다. 쉬는 시간 종이 울려 반 아이들이 우르르 복도로 나가도 학생은 의자에서 등을 떼지 못했습니다. 화장실은 수업 종이 치기 직전, 복도가 텅 빈 때를 골라 다녀왔다고 합니다.
1학년 2학기에 학생은 학교폭력을 겪었습니다. 같은 반 여학생 셋이 쉬는 시간마다 복도에 있는 학생의 사물함 앞을 막아섰습니다. 학생이 사물함을 열면 발로 문을 닫아 버렸고, 비켜 달라고 하면 어깨로 밀쳐 냈습니다. 담임 선생님에게 알린 뒤 학교에서 조치가 내려졌고, 2학년이 되면서 세 아이와는 반이 달라지고 교실도 멀리 떨어졌습니다.
이제 학생의 길을 막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아이들과 복도에서 마주칠 일도 거의 없습니다.
“다 끝난 일인 거 알아요. 그런데 쉬는 시간 종만 치면 팔이 몸에 붙어서 안 떨어져요.”
어머니는 새 학기 들어 부쩍 무거워진 딸의 가방을 들어 보고서야 달라진 점을 알아차렸다고 합니다. 학교가 무섭냐고 물으면 딸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무섭다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몸이 먼저 멈춘다는 것이었습니다. 학교폭력 후유증은 이렇게 사건이 끝난 뒤에도 학교의 익숙한 장소와 소리 앞에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상담에서는 사물함 앞에서 몸이 굳는 반응을 따라가며, 그보다 이른 시절 ‘그만’이라는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경험을 함께 살폈습니다.
정전기가 사라져도 멈칫하는 손끝
학교에서 팔부터 굳는 반응은, 위험했던 경험과 그때 보고 들은 신호가 연결되어 남는 조건화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그 신호를 다시 접하면 몸이 당시처럼 반응하는 것입니다. 이 학생에게는 사물함 문이 쾅 닫히는 소리, 쉬는 시간 종소리, 복도에 여럿이 모여 선 뒷모습이 두려움을 불러오는 신호가 되었습니다. 몸은 지금 안전한지 판단하기 전에 위험했던 때의 자세부터 취했습니다.
겨울에 현관 문고리를 잡다가 정전기에 따끔하게 쏘여 본 적이 있으실 겁니다. 그런 일이 몇 번 되풀이되면, 날이 풀려 정전기가 사라진 뒤에도 한동안 문고리 앞에서 손끝이 멈칫합니다. 정전기와 학교폭력은 경험의 무게가 전혀 다릅니다. 다만 아팠던 경험과 닮은 신호 앞에서 몸이 미리 움츠러드는 과정을 이해하는 데는 이 예가 도움이 됩니다.
학교폭력 후유증인지 가늠하려면 몸이 언제, 어디에서 굳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 학생의 팔은 집이나 학원에서는 괜찮았습니다. 학교에서 쉬는 시간 종이 울리거나 아이들이 모인 사물함 쪽으로 다가갈 때 옆구리에 붙었고, 그 세 아이가 근처에 없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건과 이어진 장소와 소리에 몸이 반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반대로 지금도 괴롭힘이 이어지거나 보복하겠다는 말을 들었다면, 몸의 긴장은 현재의 위험을 알리는 신호입니다. 그럴 때는 상담보다 학교와 보호자가 아이의 안전을 확보하는 일이 먼저입니다. 잠을 거의 못 자거나 괴롭힘을 당하던 장면이 하루에도 여러 번 떠오르는 등 일상생활이 크게 흔들린다면, 학교폭력 트라우마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관련되는지 정신건강의학과에서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스스로를 해치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혼자 견디지 말고 바로 보호자에게 알려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다 끝났어'라는 말에도 풀리지 않는 팔
학생도 그동안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사건이 알려진 뒤 학교 상담 선생님과 그때 일을 여러 번 이야기했고, 자기 잘못이 아니라는 점도 이제는 알고 있었습니다. 방과 후 복도가 비었을 때 빈 사물함 앞에 서 보는 연습도 했습니다. 아무도 없을 때는 문에 손을 댈 수 있었지만,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모여 있으면 가까이 가지 못했습니다.
학교 상담은 그때 일을 말로 정리하고 자책을 내려놓는 데 힘이 되었습니다. 조금씩 다가가 보는 연습도 두려움을 줄이는 데 활용됩니다. 그래도 이 학생에게는 괜찮다고 판단하기 전에 팔부터 몸에 붙는 반응이 남아 있었습니다. 일부러 고른 행동이 아니어서 마음을 굳게 먹어도 뜻대로 멈추기 어려웠습니다.
최면상담에서는 이 반응을 참거나 이겨 내라고 하지 않습니다. 깊이 집중한 상태에서 팔이 저절로 몸 쪽으로 당겨지는 감각에 머물며, 그 감각과 함께 떠오르는 경험과 감정을 살펴봅니다. 세 아이와 있었던 일을 억지로 다시 떠올리게 하지도 않습니다. 떠오른 장면에서 당시의 감정과 반응을 새롭게 이해하면 비슷한 신호 앞에서 몸이 굳는 정도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간지럼 놀이가 멈추지 않던 오후
최면에 깊이 들어간 뒤 학생은 종소리가 울릴 때 팔이 몸에 붙던 감각에 주의를 모았습니다. 잠시 뒤 두 팔꿈치가 천천히 옆구리로 붙었습니다. 학생은 웃음 섞인 숨을 짧게 내쉬며 말했습니다.
"간지러워요. 웃음이 나는데… 싫어요. 거실 바닥이에요. 오빠가 제 발을 붙잡고 있어요."
혼자 양말을 신으면 뒤꿈치가 발등 위로 돌아가 있던 무렵의 오후였습니다. 아이는 거실 매트 위에서 초등학생 오빠와 간지럼 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오빠가 발바닥을 간지럽히자 처음에는 깔깔 웃으며 발을 버둥거립니다. 웃음이 멈추지 않고 숨이 차오르자 아이는 “그만, 그만” 하며 오빠 손을 밀어냅니다.
아이는 창가에서 아빠 셔츠를 다리고 있는 엄마 쪽으로 엉금엉금 기어갑니다. 오빠가 아이 앞에 벌렁 드러누워 길을 막더니, 아이 옆구리로 손을 뻗습니다. "여기 지나가려면 간지럼 열 번 참아야 돼!"
“엄마, 오빠가 안 비켜 줘!” 아이는 웃음 반 울음 반으로 외칩니다. 엄마는 다리미를 든 채 고개만 돌려 말합니다. “오빠가 놀아 주는 거잖아. 너도 웃고 있으면서.”
아이의 웃음이 뚝 그칩니다. 두 팔꿈치를 옆구리에 딱 붙이고, 두 손으로 내복 윗도리 밑단을 꽉 쥔 채 꼼짝하지 않습니다. 눈에 눈물이 고였지만 흘리지는 않습니다. 오빠는 한참 더 간지럼을 태우다가 심심해졌는지 제 방으로 들어갑니다. 아이는 그제야 소파 뒤로 기어 들어가 무릎을 끌어안습니다.
웃으면서도 싫을 수 있어
그 오후를 다시 경험하기 전, 학생은 최면 속에서 밑단을 쥔 채 굳어 있는 어린 자신 곁으로 가 매트에 앉았습니다. 비뚤어진 양말 뒤꿈치를 바로 당겨 신겨 주고 나지막하게 말했습니다.
"간지러우면 누구나 웃음이 나. 웃음이 나오는 거랑 좋은 거랑은 달라. 네가 '그만'이라고 한 거, 나는 똑똑히 들었어."
“엄마는 네 웃음만 보고 네가 싫다는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어. 그래도 네가 ‘그만’이라고 한 말은 분명했고 잘못되지 않았어. 한 사람이 못 알아들어도 다시 말하거나 다른 어른에게 도와 달라고 해도 돼. 팔을 옆구리에 붙인 채 상대가 물러날 때까지 굳어 있을 필요는 없어.”
지금의 학생에게 그때 몰랐던 사실을 전해 들은 아이는,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을 마음에 둔 채 그 오후를 다시 겪어 보았습니다. 오빠는 이번에도 드러누워 길을 막았고 엄마의 대답도 같았습니다. 아이 역시 팔을 붙이고 밑단을 쥔 채 오빠가 방으로 들어갈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그래도 ‘웃음이 나와도 싫다고 말할 수 있고, 내 말이 잘못된 것은 아니구나’라고 이해하자 서러움은 전보다 작았고 밑단을 쥔 손가락에서도 힘이 빠졌습니다. 상담실에 앉은 학생의 팔꿈치도 옆구리에서 조금씩 떨어졌습니다.
학교폭력은 그 세 아이가 한 일이며, 어린 날의 간지럼 놀이가 폭력을 불러온 것은 아닙니다. 학생의 몸에는 ‘그만’이라는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길까지 막혔을 때, 팔을 옆구리에 붙인 채 상대가 물러날 때까지 기다리던 반응이 남아 있었습니다. 최면에서는 자기 의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말을 멈추고 몸을 굳혔던 관련 경험들도 이어서 살폈습니다. 싫다는 말이 한 번 받아들여지지 않아도 그 말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다시 요구하거나 도움을 청할 수 있다는 이해를 함께 다뤘습니다. 1학년 때 사물함 앞에서 비켜 달라는 말이 번번이 무시되자 이 반응이 강하게 되살아났고,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종소리와 복도만으로도 팔이 굳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쉬는 시간, 짝과 함께 나간 복도
상담 뒤 학생은 담임 선생님을 찾아가 사물함 열쇠를 다시 받았다고 합니다. 열쇠를 받는 순간 손끝이 한 번 멈칫했지만, 팔꿈치는 옆구리에 붙지 않았습니다.
어느 쉬는 시간에는 종이 울리자 짝과 함께 복도로 나갔습니다. 사물함 앞에는 반 아이들 서넛이 모여 떠들고 있었습니다. 학생은 “잠깐만, 나 여기 좀” 하며 그 사이로 손을 넣어 자기 사물함을 열었습니다. 팔이 한 번 몸 쪽으로 움찔했지만 영어 교과서를 꺼내 문을 닫을 때까지 손은 멈추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날 저녁 가방에는 필통과 문제집 한 권만 들어 있었습니다. 그 뒤로 어깨에 붉은 줄이 남는 일도 없었다고 합니다. 이제는 쉬는 시간에 반 아이들 틈에 섞여 화장실에도 다녀옵니다. 옆 칸 사물함을 쓰는 아이가 뻑뻑한 자물쇠와 씨름하자, 열쇠를 살짝 들어 올려 돌리는 요령을 알려 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새 학기 들어 아이의 가방이 유난히 무거워지지는 않았나요? 가방 무게는 아이가 학교 안에서 어디를 피해 다니는지 알려 주는 단서일 수 있습니다. 종이 울려도 의자에서 일어나지 못한다면 그 모습을 마음이 약한 탓으로 돌리지 않아도 됩니다. 위험했던 때의 방식으로 몸이 스스로를 지키려는 반응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건이 끝난 뒤에도 이런 반응이 계속된다면, 다짐을 더 보태기보다 당시 보고 들은 신호 앞에서 저절로 일어나는 몸의 반응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