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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담임 선생님이 내일 아침에 교무실로 오래. 왜냐고 물어봐도 그냥 오라고만 하셨어. 나 뭐 잘못한 거 있어?”
밤 열한 시가 넘어 중학교 2학년 아들이 안방 문을 세 번째로 두드리며 한 말입니다. 누우면 심장이 쿵쿵 울려 베개에 귀를 대고 있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입이 바짝 말라 물을 마시러 나올 때마다 안방 문 앞에 서서 같은 질문을 되풀이했습니다. 방으로 돌아가서는 지난 일주일 동안 한 일을 하나씩 떠올리며 새벽까지 뒤척였다고 합니다.
다음 날 담임 선생님이 부른 이유는 다음 주 현장체험학습 때 반 사진을 찍어 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아들은 아침 여덟 시 십 분에 “별거 아니었어”라는 문자를 보냈습니다. 어머니는 한숨을 돌렸지만, 손도 대지 않은 채 식탁에 남은 아침밥을 치우며 마음이 무거웠다고 합니다.
올봄부터 이런 일이 부쩍 잦아졌습니다. 학원 차가 오 분만 늦어도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학원에 전화를 걸었고, 목이 조금만 따끔해도 밤늦게까지 병명을 검색했습니다. 토요일 가족 점심이 한 시간 미뤄졌다는 말에는 “왜 이제 말해!” 하고 소리를 질러 식구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주변에서는 그 나이에 예민한 청소년이 한둘이냐며, 사춘기 불안이니 곧 지나갈 거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 눈에 아들은 늘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청소년 불안을 검색해 보던 어머니는 아들과 함께 상담을 신청했습니다. 별일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도 그런데도 아들의 걱정은 왜 멈추지 않았을까요?
걱정이 끝나자 또 시작된 걱정
상담에서 그날 이야기를 다시 들어 보니 눈여겨볼 대목이 있었습니다. 교무실을 나와 교실로 돌아가는 복도에서 이번에는 카메라 걱정이 시작됐다고 합니다. 비싼 카메라를 떨어뜨리면 어떡하나, 사진이 흔들리게 나오면 아이들이 뭐라고 할까. 한 걱정이 풀리자마자 다른 걱정이 이어진 것입니다.
걱정이 많은지 가늠해 볼 때는 걱정하던 일이 풀린 다음을 살펴보면 도움이 됩니다. 별일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뒤 한동안 마음이 가라앉는지, 곧바로 다음 걱정거리로 옮겨 가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일주일쯤 걱정한 일을 적어 보면 내용은 날마다 달라도 가슴이 뛰고 입이 마르는 반응은 매번 같을 때가 있습니다. 이것만으로 상태를 판단할 수는 없지만, 걱정거리 자체보다 늘 긴장해 있는 몸을 먼저 살펴볼 단서가 됩니다.
다만 잠을 거의 이루지 못하거나, 갑자기 숨이 막히고 쓰러질 것 같은 발작이 오거나, 기분이 오래 가라앉아 학교생활이 크게 흔들린다면 먼저 전문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청소년 불안 증상은 우울, 공황, 강박, 주의력 문제, 학교에서 겪는 어려움과 겹쳐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 학생은 진료에서 다른 문제가 확인되지 않았고, 학교에서 괴롭힘을 겪는 일도 없었다고 합니다.
옆 차만 스쳐도 울리는 경보기
뇌의 편도체는 위험 신호를 빠르게 알아차리고 몸을 경계 상태로 만드는 데 관여합니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을 위험으로 받아들이면 심장이 빨라지고 입이 마르며 몸에 힘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몸이 긴장한 상태에서는 선생님의 짧은 말이나 늦어지는 학원 차, 따끔한 목도 평소보다 크게 느껴집니다. 걱정이 커질수록 몸도 더 긴장합니다.
감도를 너무 높게 맞춰 둔 자동차 경보기를 떠올려 보세요. 도둑이 문을 열 때뿐 아니라 옆 차 문이 살짝 닿거나 오토바이가 지나가기만 해도 요란하게 울립니다. 경보기가 고장 난 것이 아니라 차를 지키는 일을 지나치게 예민하게 하고 있는 셈입니다.
학생도 머리로는 걱정이 지나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괜찮다고 하면 그때는 진짜 괜찮아요. 근데 방에 들어가서 불 끄면 심장이 다시 쿵쿵거려요.” 괜찮다는 대답을 들으면 잠시 안심했지만, 몸은 금세 다시 긴장했습니다.
불안이 심할 때는 진료를 받고 필요하면 약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잠드는 시간을 일정하게 지키거나 걱정을 공책에 적어 보는 방법도 도움이 됩니다. 이 학생도 걱정 공책을 쓰는 동안에는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고 합니다. 그래도 예상하지 못한 말을 들으면 가슴부터 뛰는 반응은 그대로였습니다.
경보기가 자꾸 울릴 때는 소리를 끄라고 다그치기보다 언제부터 작은 신호에도 크게 반응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몸의 긴장은 “걱정하지 말자”고 다짐하기 전에 시작되기도 합니다. 최면상담에서는 깊이 집중한 상태에서 베개에 귀를 댔을 때처럼 몸이 먼저 긴장하는 순간을 다시 느껴 보고, 그 긴장과 함께 떠오르는 오래된 감정과 경험을 살펴봅니다. 요즘의 스트레스가 그 반응을 어떻게 건드리는지도 함께 봅니다.
엉덩방아를 찧은 저녁, 돌아보지 않던 엄마의 등
눈을 감은 학생의 숨이 느리고 고르게 바뀌며 최면이 깊어졌습니다. 그날 밤 베개에 댄 귀로 들려오던 심장 소리를 다시 느껴 보자고 하자, 아랫입술이 우는 아기처럼 조금 삐죽 나오며 떨렸습니다. 잠시 뒤 학생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엄마가 전화하고 있어요. 저는 바닥에 주저앉아서 울고요.”
소파 모서리를 잡고 겨우 몇 걸음씩 옮겨 다니던 무렵의 남자아이가 저녁 거실에 있습니다. 엄마는 식탁 의자에 앉아 휴대전화를 귀에 댄 채 낮은 목소리로 오래 통화합니다. 아이는 소파를 짚고 걷다가 엉덩방아를 찧습니다. 크게 아플 정도는 아니지만, 울기도 전에 엄마 쪽부터 돌아봅니다.
넘어지면 엄마가 하던 일을 내려놓고 달려와 번쩍 안아 올리는 날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엄마는 고개만 잠깐 돌려 손가락 하나를 들어 보이고는 통화를 이어 갑니다. 아이는 울다가 멈칫해 엄마의 등을 살피고, 엄마가 돌아보지 않자 더 크게 웁니다.
목이 쉬고 딸꾹질이 날 무렵, 전화를 끊은 엄마가 다가와 아이를 안아 올립니다. 아이는 엄마 옷깃을 꽉 움켜쥔 채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엄마가 누구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끝내 들리지 않았습니다.
최면 속에서 어른이 된 학생은 거실 바닥에 엎드려 우는 아이와 눈높이를 맞췄습니다. 넘어진 엉덩이보다 놀란 마음이 더 컸다는 것을 먼저 알아주고, 아이와 나란히 엄마 쪽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아까 엄마 얼굴 봤지? 화난 얼굴이 아니라 뭔가 걱정하는 얼굴이었어. 중요한 전화를 받느라 못 오는 거야. 네 울음은 엄마한테 다 들리고 있어. 전화가 끝나면 꼭 올 거야.”
지금의 학생에게 잠시 뒤 벌어질 일을 전해 들은 아이는,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을 마음에 둔 채 그 저녁을 다시 겪어 보았습니다. 아이는 다시 엉덩방아를 찧었고 울음이 터졌습니다. 엄마는 여전히 손가락 하나를 들어 보이고 통화를 이어 갔습니다. 그래도 ‘엄마가 나를 모른 척하는 게 아니라 전화를 마치면 오는 거구나’라고 알게 되자 울음은 목이 쉴 만큼 커지지 않았고, 엄마의 등을 살피던 눈도 가끔 바닥의 공으로 옮겨 갔습니다. 엄마가 안아 올렸을 때는 옷깃을 쥔 손이 금세 풀렸습니다.
의자에 기대 있던 학생의 아랫입술도 어느새 떨림을 멈췄습니다.
아이에게 힘들었던 것은 엉덩방아보다 엄마가 언제 올지 알 수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아이는 엄마가 돌아보는지 확인하며 울음을 키웠고, 학생은 담임 선생님이 왜 부르는지 모르는 밤에 엄마에게 같은 질문을 되풀이했습니다. 상담에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몸이 먼저 긴장하고, 답을 확인할 때까지 멈추지 못하던 반응을 함께 다뤘습니다.
“다음 주에 찍으면 되지”
상담 뒤 어느 저녁, 학원 선생님에게서 “내일 수업 전에 잠깐 얘기 좀 하자”는 문자가 왔다고 합니다. 이유는 적혀 있지 않았습니다. 문자를 읽는 순간 가슴이 한 번 쿵 했지만, 학생은 “네”라고 답을 보내고 하던 게임을 마저 했습니다. 그날 밤에는 안방 문을 두드리지 않았고, 베개에 귀를 댄 채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 들어 보니 수업 반을 옮기는 일정 이야기였습니다.
2학기 동아리로는 사진반을 골랐습니다. 현장체험학습 날 반 사진을 찍어 보니 생각보다 재미있었다고 합니다. 사진반은 날씨에 따라 야외 촬영 일정이 자주 바뀝니다. 첫 촬영 날 아침에는 비 때문에 촬영이 취소됐다는 공지가 올라왔습니다.
예전 같으면 “왜 이제 말해!”부터 튀어나왔을 일이었습니다. 이번에는 “다음 주에 찍으면 되지” 하고는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 교실 창밖의 빗줄기를 몇 장 찍었다고 합니다.
안방 문을 거듭 두드리던 밤과 창밖의 빗줄기를 찍던 아침 사이에, 예상하지 못한 일은 여전히 생겼습니다. 달라진 것은 그때마다 요란하게 울리던 몸의 경보가 전처럼 크게 울리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밤마다 같은 질문을 들고 오는 아이에게 오늘도 “별일 아닐 거야”라고 답해 주셨다면, 대답을 들은 뒤 아이의 몸도 가라앉는지 살펴봐 주세요. 걱정거리가 바뀌어도 가슴이 먼저 뛰고 확인을 멈추기 어렵다면, 더 좋은 대답을 찾는 것과 함께 작은 일에도 크게 반응하는 몸의 긴장과 그에 얽힌 오래된 불안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