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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달을 버텼어요. 부장님 앞에서 보고서를 세 번 다시 쓴 날도 참았고, 회식에서 다들 담배 피우러 나갈 때도 참았어요. 그런데 딸 학원 앞에서 기다리던 이십 분을 못 넘겼습니다. 아무 일도 없는 밤이었는데요."
건축자재 회사에서 영업을 하는 마흔세 살 남성분이 상담실에 앉자마자 꺼낸 말입니다. 그날 밤 아홉 시 반, 학원 앞 길가에 차를 세우자 수업이 늦게 끝난다는 딸의 문자가 왔습니다. 휴대전화 배터리는 얼마 남지 않았고 라디오에서는 광고만 이어졌습니다.
십 분쯤 지나자 오른손 엄지가 검지 옆을 쉬지 않고 문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입안이 텁텁해지고 목 뒤가 근질거리더니, 가슴 한가운데가 답답하게 조여 왔습니다. 핸들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다가 다리를 떨다가, 결국 차 문을 열고 길 건너 편의점으로 걸어갔다고 합니다.
편의점 옆 골목에서 첫 모금을 빨아들이자 엄지의 근질거림이 거짓말처럼 가라앉았습니다. 곧이어 석 달이 한 모금에 사라졌다는 허탈함이 밀려왔습니다. 딸이 나오기 전에 차 창문을 모두 열고 껌을 두 개나 씹었다고 합니다.
그날 밤 그분은 딸의 방 불이 꺼진 뒤에도 한참을 거실에 앉아 있었습니다. 나는 왜 이것 하나를 못 해내나, 하는 자책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네 번째 금연 실패였습니다. 그분은 자신을 의지가 약한 사람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스트레스가 몰린 날은 다 견뎠는데, 재흡연은 늘 아무 일도 없는 순간에 찾아왔습니다. 금연 실패는 왜 하필 그런 순간에 일어났을까요?
그 답을 찾아가다 만난 것은 담배와는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동네 미용실의 긴 의자, 그리고 주머니 속 조약돌 하나였습니다.
손가락으로 꼽아 본 네 번의 재흡연
상담 첫날, 그동안 다시 피운 날을 하나씩 떠올려 보자고 했습니다. 그분은 손가락을 접어 가며 꼽았습니다. 첫 번째는 타이어를 가는 동안 정비소 대기실에서 한 시간을 앉아 있던 날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비행기 출발이 두 시간 늦어진 공항이었습니다.
세 번째는 은행 창구 앞에서 대기 번호가 좀처럼 줄지 않던 오후였고, 네 번째가 학원 앞 차 안이었습니다. 네 번 모두 스트레스를 받은 날이 아니었습니다. 할 일 없이 기다려야 하고, 언제 끝날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접은 손가락을 내려다보던 그분이 "다 기다리던 때네요" 하며 허탈하게 웃었습니다.
다시 피운 날을 차례로 되짚어 보면 자신만의 재흡연 순간이 보이기도 합니다. 화가 난 뒤 담배를 찾는 사람이 있고, 술잔을 든 저녁에만 흔들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매번 비슷한 감정이나 상태가 먼저 찾아왔다면, 결심을 새로 다지기 전에 그 순간부터 살펴볼 만합니다.
감정이나 상황이 담배와 반복해서 짝지어지는 과정을 조건화라고 부릅니다. 같은 감정과 행동이 여러 번 함께 일어나면, 나중에는 그 감정만 올라와도 손이 익숙한 행동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분에게 담배는 기다림의 답답함을 잠시 덜어 주는 행동이었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피울수록 두 경험의 연결도 강해졌습니다.
사무실이 7층에서 11층으로 옮긴 사람을 떠올려 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몇 달이 지나 새 층을 잘 아는데도, 다른 생각을 하며 엘리베이터에 타면 손가락이 7을 먼저 누르곤 합니다. 몇 년 동안 되풀이하며 익힌 버릇은 몇 달 만에 지워지지 않고, 딴생각에 빠져 있을 때 더 쉽게 튀어나옵니다.
설명을 듣던 그분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석 달 동안 기다릴 일이 없었던 건 아니에요. 그런데 아무것도 못 하고 이십 분이나 앉아 있던 건 그날이 처음이었어요."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던 반응이 학원 앞의 긴 기다림에서 다시 나타난 것입니다.
패치로 달랜 몸, 그대로 남은 손
그분도 그동안 여러 방법을 써 봤습니다. 두 번째 금연 때는 니코틴 패치를 붙였고, 세 번째에는 보건소 금연클리닉에 다니며 상담을 받았습니다. 패치 덕분에 첫 몇 주 동안 두통과 짜증을 한결 수월하게 넘겼다고 합니다.
니코틴 보조제는 몸의 금단 증상을 덜어 주는 데 도움이 되고, 금연 상담은 끊겠다는 마음을 이어 가도록 돕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석 달째 들어 몸이 담배를 조르는 느낌이 거의 없었는데도 다시 피웠습니다.
"피우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든 게 아니에요. 엄지가 먼저 움직였고, 담배 생각은 그다음이었어요."
금연 결심은 생각으로 세웁니다. 하지만 반복해서 익힌 반응은 생각보다 먼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결심만 다시 굳혀서는 비슷한 순간에 또 흔들릴 수 있는 이유입니다. 최면상담에서는 참는 요령을 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재흡연 직전의 감정과 몸의 느낌이 손의 반복 행동과 어떻게 이어지는지 살펴봅니다. 그 느낌과 관련된 오래전 경험도 함께 다룹니다.
미용실 긴 의자와 주머니 속 조약돌
깊은 최면 상태에서 학원 앞 차 안의 이십 분을 다시 떠올리자, 그분의 오른손 엄지가 무릎 위에서 검지 옆을 천천히 문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와 똑같이 손끝이 근질거린다고 했습니다. 잠시 뒤 그분이 코를 찡그렸습니다.
"냄새가 나요. 시큼한 거… 파마약 냄새 같아요."
동네 미용실입니다. 창가의 긴 의자에 두 발이 바닥에 닿지 않을 만큼 어린 남자아이가 혼자 앉아 있습니다. 엄마는 머리에 롤을 잔뜩 만 채 헬멧처럼 생긴 둥근 기계 아래 앉아 원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느라 이쪽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텔레비전에서는 알아듣지 못할 어른들 드라마가 나오고, 탁자에는 머리 모양 사진만 가득한 잡지가 쌓여 있습니다. 아이는 "엄마, 언제 끝나?" 하고 두 번 물었고, 두 번 다 "조금만 더"라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아이는 다리를 흔들고 의자 위에서 엉덩이를 들썩이다가, 등받이에 뒤통수를 콩콩 부딪칩니다. 온몸이 근질근질하지만 어디로 갈 수도 없습니다.
그러다 바지 주머니에서 매끈한 조약돌 하나를 꺼냅니다. 엄지와 검지 사이에 끼워 굴리고, 손바닥에 올려 뒤집었다가 다시 손가락 사이로 굴립니다. 차갑고 매끄러운 감촉이 손끝을 지날 때마다 들썩이던 몸이 조금씩 가라앉습니다. 엄마가 기계 아래에서 나올 때까지 아이의 손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담배 끊으러 왔는데 돌멩이가 나오네요." 그분은 눈을 감은 채 웃었습니다.
마흔셋의 그분이 긴 의자 한쪽에 가서 아이 옆에 나란히 앉았습니다. 그리고 벽에 걸린 둥근 시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심심하지. 가만히 앉아만 있으니 온몸이 근질근질하지. 저 긴 바늘이 맨 아래까지 내려오면 엄마 머리가 끝나. 기다리는 시간에도 끝이 있고, 이 답답한 느낌도 조금 있으면 지나가."
그러고 나서 미용실 문을 열고 들어오던 때부터 그날을 다시 겪었습니다. 엄마는 이번에도 기계 아래에서 원장님과 이야기했고, "조금만 더"라는 대답도 같았습니다. 아이는 이번에도 조약돌을 꺼내 엄지와 검지로 굴렸습니다.
다만 흔들던 다리는 금세 잠잠해졌고, 돌을 굴리는 손도 한결 느긋해졌습니다. 아이는 가끔 시계의 긴 바늘을 올려다보고, 원장님이 바닥의 머리카락을 빗자루로 쓸어 모으는 모습도 구경했다고 합니다.
아직 시계를 읽지 못하던 아이에게 끝이 보이지 않는 기다림은 온몸이 들썩일 만큼 견디기 어려운 시간이었습니다. 아이는 손끝을 계속 움직여야만 그 답답함을 견딜 수 있다고 익혔습니다. 하지만 시계를 가리키는 어른이 된 자신의 설명을 들은 뒤에는, 끝을 정확히 몰라도 기다림은 지나가며 손을 쉬고 있어도 괜찮다는 것을 새롭게 받아들였습니다. 스무 살 무렵 담배를 배운 뒤로는 기다리는 시간을 담배로 보내 왔고, 기다림의 답답함과 흡연이 거듭 짝지어졌습니다. 상담에서는 이 대표 장면뿐 아니라, 심심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시간에 손을 바삐 움직여 답답함을 달래 온 관련 경험들도 최면 중 이어서 다뤘습니다. 기다림이 곧 담배로 이어지지 않도록, 답답함을 알아차리고도 그 시간을 지나가는 반응을 함께 익혀 갔습니다.
학원 앞에서 창문을 내린 밤
상담 뒤 어느 밤, 학원 수업이 또 늦게 끝난다는 문자가 왔습니다. 그분은 같은 길가에 차를 세우고 기다렸습니다. 십 분쯤 지나 엄지가 검지 옆을 한 번 문질렀을 때, '아, 지금 심심하구나' 하고 알아차렸다고 합니다.
창문을 내리자 학원 3층 교실의 불빛과, 가방을 멘 다른 반 아이들이 하나둘 계단을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길 건너 편의점 간판은 그날 밤 그저 환한 불빛으로만 보였다고 합니다. 딸이 차에 탈 때까지 그분은 운전석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건강검진을 받으러 간 날에는 대기실에서 한 시간 가까이 순서를 기다렸습니다. 옆 의자의 할아버지가 돋보기를 두고 와 문진표 글씨가 보이지 않는다며 곤란해하셨습니다. 예전 같으면 대기 번호판만 쳐다보다 밖으로 나갔을 그분이, 문진표 질문을 하나씩 소리 내어 읽어 드렸다고 합니다. 할아버지의 이름이 먼저 불렸을 때는 자기 순서가 아직 멀었다는 것도 잊고 있었습니다.
학원 앞의 이십 분은 요즘도 자주 찾아옵니다. 그분에게 그 시간은 이제 담배를 참는 시간이 아니라, 딸이 계단을 내려오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지난번 금연이 무너진 날, 담배를 사기 직전에 무엇을 하고 계셨나요? 화가 치민 순간이었는지, 술잔을 든 순간이었는지, 아니면 이분처럼 멍하니 기다리던 순간이었는지 떠올려 보세요. 다음에 흔들릴 때를 미리 알아차리는 단서가 될 수 있습니다.
매번 무너지기 전에 같은 감정이 앞섰다면, 그 감정과 담배를 묶어 온 자동반응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사례의 재흡연은 석 달을 버틴 의지가 약해서라기보다, 기다림이 길어지자 익숙한 손의 반응이 먼저 나온 순간에 가까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