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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한 시에 정신 차려 보니 부엌 찬장 앞이었어요. 양념통을 하나씩 다 꺼냈다가 다시 넣고 있더라고요. 이런다고 내일 발표가 달라지지 않는다는 거, 저도 알아요. 그런데 손이 멈추질 않아요.”
광고대행사에서 기획팀을 이끄는 마흔한 살 남성분의 이야기입니다. 그날 그분은 큰 계약이 걸린 발표를 앞두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눈을 감자 명치 아래가 단단하게 뭉쳐 숨이 끝까지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손끝은 저릿하고 근질거려 이불을 쥐었다 폈다 했다고 합니다.
결국 일어나 부엌 불을 켰습니다. 찬장 안 양념통은 소금, 설탕, 고춧가루, 참기름 순서로 이미 가지런히 서 있었습니다. 그분은 통을 전부 꺼내 식탁에 늘어놓은 뒤, 늘 두던 순서대로 하나씩 다시 넣었습니다. 마지막 통의 상표를 앞으로 돌려놓자 그제야 참았던 숨이 길게 빠져나갔습니다.
그 안도는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다시 누우면 얼마 지나지 않아 명치가 또 조여 왔고, 그날 밤 그분은 찬장 문을 세 번 더 열었습니다.
이런 반복행동은 집에서만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광고주에게서 날 선 전화를 받으면 통화를 끊자마자 책상 서랍부터 열었습니다. 펜과 메모지, 스테이플러를 꺼냈다가 정해 둔 순서로 다시 넣고 나서야 메일 창을 열 수 있었습니다. 그사이 답해야 할 메일은 계속 쌓였습니다.
한번은 물을 마시러 나온 아내가 식탁 가득 늘어선 양념통을 보고 무슨 일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분은 정리 좀 한다고 얼버무리고 등을 돌렸습니다. 그 뒤로는 아내가 깊이 잠든 다음에야 부엌으로 나갔다고 합니다.
주변 사람들은 원래 꼼꼼한 성격이라 그렇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이 말이 맞지 않는다고 느꼈습니다. 꼼꼼해서 하는 일이라면 끝낸 뒤 뿌듯해야 하는데, 그분에게 남는 것은 겨우 숨이 쉬어진다는 느낌과 부끄러움이었습니다. 강박증 증상을 검색창에 처음 쳐 본 것도 그 무렵이었습니다.
끝낸 뒤 뿌듯한가요, 겨우 숨이 놓이나요
강박장애는 원치 않는 생각이나 충동이 반복해서 떠오르거나, 그 불편과 불안을 줄이기 위해 같은 행동을 되풀이하는 상태입니다. 이때 반복하는 행동을 강박행동이라고 합니다. 손 씻기나 확인처럼 흔히 알려진 모습도 있지만, 그분처럼 정해 둔 순서를 다시 밟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꼼꼼한 성격과 강박증 증상은 행동을 끝낸 뒤의 느낌에서 차이가 납니다. 정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마치고 나서 만족스럽고, 사정이 생겨 정리하지 못해도 조금 아쉬운 정도로 넘어갑니다. 강박행동은 해도 겨우 불안이 가라앉을 뿐이고, 하지 않으면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본인이 그 행동을 멈추고 싶어 합니다. 진단을 위한 기준은 아니지만, 도움이 필요한지 살펴볼 때 참고할 수 있습니다.
상담에서 이 차이를 여쭤보자 그분은 잠시 생각하다 이렇게 답했습니다. “정리하고 뿌듯했던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다 넣고 나면 살았다, 그 생각뿐이에요.”
머리로 아는 것과 달리 손이 따로 움직이는 데에는 ‘부적 강화’라는 원리가 작용합니다. 어떤 행동을 한 뒤 불편한 느낌이 줄어들면, 그 행동을 다시 하게 되기 쉽다는 뜻입니다. 마지막 양념통을 넣은 뒤 숨이 길게 빠져나간 것도 불안이 줄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 안도가 짧다는 것입니다. 불안이 다시 올라오면 몸은 방금 효과를 본 방법부터 찾습니다. 그렇게 되풀이할수록 ‘이걸 하지 않으면 못 견딘다’는 느낌은 오히려 더 굳어집니다.
카드값을 막으려고 다른 카드에서 돈을 빌려 메우는 돌려막기와 비슷합니다. 당장 날아온 독촉은 멈추지만 다음 달 갚을 돈은 더 불어납니다. 그분도 찬장 문을 열 때마다 그 순간의 불안은 가라앉혔지만, 다음 불안 앞에서 찬장 없이 버티기는 더 어려워졌습니다.
참을수록 더 조여 오던 새벽
혼자 참아 보려 한 밤도 있었습니다. 부엌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천장만 보며 누워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명치는 더 단단해졌고, 손끝의 근질거림은 팔까지 번졌습니다. 새벽 세 시쯤 결국 부엌 불을 켰고, 그날은 양념통을 두 번 꺼냈다 넣고서야 잠들었다고 합니다.
강박증을 치료하는 대표적인 방법에는 약물치료와 노출 및 반응방지가 있습니다. 약물치료는 불안과 강박 증상의 세기를 낮추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노출 및 반응방지는 불안을 일으키는 상황에서 강박행동을 하지 않고 머물러 보면서, 행동하지 않아도 불안이 낮아지는 경험을 쌓도록 돕습니다. 혼자 무작정 버티는 것과 달리 보통 전문가와 함께 단계를 정해 진행합니다.
그분에게 부족한 것은 의지가 아니었습니다. 멈춰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는 손이 벌써 찬장 손잡이를 잡고 있었습니다. 불안할 때 무엇을 해야 가라앉는지를 머리보다 몸이 먼저 알고 있으면, 결심만으로 그 반응을 바꾸기 어렵습니다. 최면상담에서는 몸이 먼저 움직이는 반응에서 출발해, 그 반응과 이어진 경험과 당시의 감정을 함께 살펴봅니다.
그분과는 발표 전날 밤의 명치 조임에서 시작했습니다. 최면이 깊어진 뒤, 그분은 한동안 그 느낌에 집중했습니다. 그러자 부엌도 찬장도 아닌, 식구들 신발이 흩어져 있던 어린 시절 집의 현관이 떠올랐습니다.
손님이 오기 전, 방석을 놓던 엄마
방석 한 장을 두 팔로 끌어안아야 겨우 들 수 있던 무렵입니다. 그날은 집에 손님이 오기로 한 날이었습니다. 엄마는 아침부터 걸음이 빨랐고, 아이를 부르는 목소리도 평소보다 높았습니다.
엄마는 먼저 현관에 흩어진 신발을 앞코가 문 쪽을 향하도록 한 줄로 세웠습니다. 거실로 와서는 상 둘레에 방석을 놓았는데, 놓는 순서가 늘 같았습니다. 꽃무늬 방석을 창가 쪽 윗자리에 두고 나머지를 한 장씩 차례로 놓아 갔습니다. 모서리가 조금만 비뚤어도 다시 들어 반듯하게 내려놓았습니다.
아이는 안방 문턱에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엄마 입술이 꾹 다물려 있는 동안 아이의 배 속도 딱딱하게 굳어 있었습니다. 마지막 방석을 내려놓은 엄마가 허리를 펴며 “됐다, 이제 오셔도 되겠다” 하고 숨을 내쉬었습니다. 엄마 얼굴이 풀리는 것을 보고서야 아이의 배도 조금 풀렸습니다.
아이는 종종걸음으로 가서 자기 몫의 작은 방석 모서리를 손바닥으로 쓸어 반듯하게 맞췄습니다. 엄마가 하던 그대로였습니다. 그러자 남아 있던 배 속의 뭉침이 한결 더 풀렸습니다. 손님이 오는 날이면 이 순서가 집 안에서 되풀이됐다고 합니다.
그분에게 또렷이 남은 것은 방석 귀퉁이를 매만지던 엄마의 손끝과, 현관 쪽을 자꾸 돌아보던 엄마의 옆얼굴이었습니다.
그분은 최면 속에서 안방 문턱에 걸터앉아 어린 자신과 나란히 엄마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엄마가 하는 일을 풀어 주었습니다.
“엄마는 손님이 오시는 게 조금 떨려서 방석을 맞추는 거야. 방석이 조금 삐뚤어도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아. 엄마가 긴장하니 너도 덩달아 배에 힘이 들어간 거야. 하지만 엄마의 긴장을 네가 방석을 맞춰서 풀어 줘야 하는 건 아니야. 방석을 만지지 않아도 그 떨림은 조금 있으면 지나가.”
그 설명을 들은 뒤, 엄마가 신발을 세우던 때부터 같은 일을 다시 겪었습니다. 엄마는 이번에도 입술을 다문 채 방석을 놓았고, 아이도 종종걸음으로 가서 작은 방석 모서리를 쓸었습니다. 다만 배 속은 전처럼 딱딱하게 굳지 않았고, 한 번 쓸고 난 손은 방석에서 바로 떨어졌습니다. 엄마가 “됐다” 하고 숨을 내쉬기 전에 아이의 숨이 먼저 고르게 드나들었다고 합니다.
이 경험에서 아이가 익힌 것은 정리 솜씨가 아니었습니다. 집 안에 긴장이 돌 때 정해진 순서를 마치면 몸이 풀리는 모습을 보았고, 아이도 방석을 만진 뒤 긴장이 누그러지는 경험을 되풀이했습니다. 새롭게 이해한 뒤에는 주변이 긴장해도 자신이 순서를 완성해 모두를 안심시켜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선택이 생겼습니다. 상담에서는 이 대표 장면에 그치지 않고, 불안할 때 물건의 순서와 모양을 맞춰 안도해 온 관련 경험들도 최면 중 이어서 다뤘습니다. 발표 전날 밤 이미 가지런한 양념통을 다시 꺼내게 한 것도, 그때 익숙해진 안도의 방식과 이어져 있을 수 있습니다.
찬장 대신 물 한 컵
상담을 마친 뒤 또 큰 발표를 앞둔 밤이 있었습니다. 누우니 명치 아래가 조여 오는 것은 전과 같았습니다. 그분은 부엌에 나가 물을 한 컵 따라 마셨습니다. 찬장이 바로 눈앞에 있었지만 손잡이로 손이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식탁 의자에 앉아 물을 마시는 사이 명치의 조임은 조금씩 느슨해졌습니다. 그분은 빈 컵을 개수대에 두고 다시 들어가 잠들었습니다.
며칠 뒤 사무실에서 광고주의 항의 전화를 받은 날도 그랬습니다. 전화를 끊자 손이 서랍 쪽으로 향했지만, 펜 한 자루만 꺼내 들고 서랍을 닫았습니다. 그 펜으로 광고주에게 보낼 수정 계획을 적어 내려갔습니다.
그러다 옆자리 신입이 같은 광고주의 전화를 받고 얼굴이 하얗게 질린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예전 같으면 서랍 속 펜 순서를 맞추느라 보지 못했을 모습이었습니다. 그분은 의자를 끌고 가 신입과 함께 답장 초안을 썼다고 합니다.
오늘 밤에도 이미 가지런한 물건을 다시 꺼내 들고 계신가요? 그렇게 손이 움직이는 것을 약한 의지나 유난히 깔끔한 성격 탓으로만 볼 수는 없습니다. 불안이 올라올 때 몸이 오래전에 익힌 방식으로 안도부터 찾아가는, 무의식 자동반응일 수 있습니다.
머리가 아는 대로 손이 따라오게 하려면, 참는 힘을 더 키우기보다 그 자동반응을 다뤄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