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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서 시동을 걸다가 또 내렸어요. 밸브 손잡이가 가로로 돌아가 있는 걸 다섯 번이나 봤거든요. 그런데 운전석에 앉으니까 그게 방금 본 건지 어제 본 건지 모르겠는 거예요.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이 떨려서 운전대를 못 잡겠더라고요.”
가구 매장에서 판매 일을 하는 마흔두 살 남성분은 첫 상담에서 지난 토요일 이야기부터 꺼냈습니다. 가족 나들이를 가려던 아침이었고, 아내와 딸은 이미 차에 타 있었습니다. 그분은 빌라 계단을 두 칸씩 뛰어 3층까지 올라갔습니다. 가스레인지 앞에서 여섯 번째로 밸브를 보고 손끝으로 만져 본 뒤에야 다시 내려왔고, 등은 식은땀으로 축축했다고 합니다.
휴대전화 사진첩에는 밸브 사진이 수십 장 쌓여 있었습니다. 찍어 두면 괜찮을 줄 알았지만, 사진을 열면 방금 찍은 사진인지조차 헷갈렸습니다. 현관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도어록이 잠기는 소리를 듣고도 손잡이를 세 번은 당겨 봐야 계단을 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일하는 중에 문득 밸브가 떠오르면 숨이 가빠졌습니다. 확인하지 않으면 불안이 가라앉지 않아, 점심을 거르고 집에 다녀온 날도 있었습니다. 남들은 한 번 보고 나오는 일을 왜 자신은 다섯 번씩 봐야 하는지, 그런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고 합니다.
가스 밸브나 문단속을 몇 번씩 되풀이하는 확인 강박은 이렇게 하루의 시간과 기운을 조금씩 빼앗아 갑니다. 그런데 다섯 번을 보고도 왜 불안은 남았을까요? 상담에서는 어린 시절 마루에서 안고 있던 신문 한 부가 단서가 됐습니다. 정확히는 신문 사이에 끼어 있던 광고지 한 장이었습니다. 그 광고지와 가스 밸브 확인은 어떤 점에서 이어져 있었을까요?
확인할수록 짧아지는 안심
그분의 확인이 처음부터 다섯 번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몇 해 전만 해도 밸브를 한 번 보고 나오면 그날 하루는 잊고 지냈습니다. 그러다 두 번이 되고 세 번이 되더니, 요즘은 계단을 몇 칸 내려가기도 전에 다시 불안해졌습니다. 확인한 뒤 마음이 놓여 있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반복 확인이 얼마나 굳어졌는지 가늠하려면, 확인하고 돌아선 뒤 불안이 다시 올라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것만으로 진단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 시간이 짧아지면서 확인 횟수까지 늘고 있다면, 확인이 불안을 가라앉히기보다 반복시키고 있을 수 있습니다.
이미 불이 들어온 버튼
심리학에서는 이런 흐름을 ‘부적 강화’라고 부릅니다. 어떤 행동을 한 뒤 불편한 느낌이 줄어들면, 다음에도 그 행동을 할 가능성이 커지는 현상입니다. 여기서 ‘부적’은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있던 것이 줄어든다는 뜻입니다. 밸브를 보는 순간 불안이 덜해지니, 다시 불안해질 때마다 밸브부터 확인하게 됩니다.
엘리베이터 버튼에 이미 불이 들어와 있는데 한 번 더 누르는 사람을 떠올려 보세요. 더 누른다고 엘리베이터가 빨리 오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누르고 나면 기다리는 답답함이 잠깐 덜합니다. 그 잠깐 때문에 다음에도 손이 버튼으로 가고, 누르는 버릇이 붙을수록 그냥 서서 기다리기는 어려워집니다.
“밸브를 보고 나면 딱 그 순간만 숨이 쉬어져요. 계단 두 칸만 내려가도 다시 숨이 얕아지고요.”
그분에게 가로로 돌아간 밸브 손잡이는 이미 불이 들어온 엘리베이터 버튼과 같았습니다. 잠긴 것을 봤는데도 한 번 더 확인하면 잠깐 숨이 트였고, 그 안도가 다음 확인을 불렀습니다. 확인으로 불안을 달래는 일이 잦아질수록 확실하지 않은 상태를 견디기는 더 어려워졌습니다. 그렇게 한 번이면 되던 확인이 다섯 번까지 늘었습니다.
강박증에는 약물치료가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곧바로 따르지 않고 불안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려 보는 연습도 치료에 쓰입니다. 그분도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약을 처방받은 뒤로 불안이 치솟는 정도는 조금 누그러졌다고 합니다. 그래도 현관에서 신발을 신는 몇 초는 여전히 버거웠습니다.
“한 번만 보자고 몇 번을 다짐했는지 몰라요. 그런데 도어록 손잡이를 잡는 순간 가슴이 조여 오고, 고개가 먼저 부엌 쪽으로 돌아가요.”
다짐은 생각으로 하지만, 가슴이 조이고 고개가 돌아가는 반응은 생각보다 먼저 일어납니다. 이런 무의식 자동반응은 마음을 다잡는 것만으로 쉽게 멈추지 않습니다. 최면상담에서는 확인을 무조건 참게 하기보다, 확실하지 않을 때 몸이 먼저 긴장하는 반응과 함께 떠오르는 경험을 살펴봅니다. 그때는 알지 못했던 사실을 새롭게 이해하고 당시의 감정을 다루면서, 지금 반복되는 반응도 함께 살펴볼 수 있습니다.
광고지를 쥐고 서 있던 아이
눈을 감고 깊은 최면에 들어간 그분은 도어록 손잡이를 잡았던 토요일 아침의 몇 초를 다시 느껴 보았습니다. 가슴이 조여 오자 고개가 오른쪽으로 두어 번 돌아갔습니다. 그 느낌에 한동안 머물던 그분이 뜻밖의 말을 꺼냈습니다. “신문이에요. 신문이 커서 두 팔로 안고 있어요.”
그곳은 집 마루였습니다. 신문 한 부를 두 팔로 끌어안아야 겨우 들 수 있던 무렵의 남자아이가 서 있었습니다. 부엌에서 엄마가 “신문 아빠 갖다 드려” 하고 말했습니다. 아이가 신문을 집어 들자 사이에 끼어 있던 알록달록한 광고지가 반쯤 삐져나왔습니다.
이 심부름은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은 신문을 그대로 가져가자 엄마가 “옳지, 그렇게 드려야지” 하며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다른 날 똑같이 가져가자 “왜 그렇게 했니, 광고지는 빼고 드려야지” 하는 말이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광고지를 빼 두었더니 다음에는 “그걸 왜 뺐니, 엄마가 볼 거였는데” 했습니다.
아이는 삐져나온 광고지 모서리를 손끝으로 잡았다 놓았다 합니다. 부엌 쪽을 보며 “엄마, 이거 빼?” 하고 묻자 “알아서 해” 하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조금 뒤 “빼? 그냥 줘?” 하고 다시 물었지만 엄마는 지금 바쁘다는 말만 합니다. 가슴이 콩닥거리고, 숨은 목에 걸린 채 더 내려가지 않습니다.
결국 아이는 신문을 안은 채 부엌으로 가서 엄마 소매를 잡아당깁니다. 엄마가 힐끗 내려다보더니 “그냥 드려” 합니다. 그제야 아이의 숨이 길게 빠져나옵니다. 그런데 안방 문 앞에 이르자 아이는 걸음을 멈추고, 부엌 쪽을 한 번 더 돌아본 뒤에야 문을 엽니다.
그분은 최면 속에서 아이 곁에 앉아, 손에 쥔 광고지의 삐져나온 부분을 함께 들여다보았습니다. 동네 슈퍼마켓 광고지에는 수박과 참외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분은 그림을 가리키며 아이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엄마 말이 날마다 달라서 헷갈렸지. 그건 네 탓이 아니라, 엄마가 그날그날 바라는 게 달라서 그래. 이건 슈퍼마켓 광고라서 빼고 드려도, 끼운 채 드려도 아빠는 신문을 읽으실 수 있어. 한소리 들어도 그걸로 끝이야. 정답을 몰라도 가져가면 돼.”
그분은 이야기를 마친 뒤, 엄마가 심부름을 시키던 순간부터 그날을 다시 겪었습니다. 아이는 이번에도 광고지를 쥔 채 두 번 물었고, 엄마 소매를 당긴 뒤에야 안방으로 향했습니다. 행동은 같았지만, 이번에는 엄마의 대답이 매번 달라 자신이 헷갈렸던 것이지 자신이 잘못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었습니다. 정답을 완전히 확인하지 못해도 심부름을 이어 갈 수 있고, 한소리를 듣더라도 그 순간으로 끝난다는 이해도 함께 있었습니다. 그래서 묻는 동안 숨이 목에 걸리지 않았고, 안방 문 앞에서 부엌을 돌아본 것도 잠깐이었다고 합니다. 최면 초반에 어깨 쪽으로 돌아가던 그분의 고개도 이때는 앞을 향한 채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날 광고지를 빼는 것이 맞았는지는 장면 속에서도 끝내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상담에서는 정답 자체보다, 확실한 말을 듣기 전에는 움직이지 못하고 답을 들은 뒤에도 한 번 더 돌아봐야 마음이 놓이던 반응을 살폈습니다. 이 대표 장면과 함께, 정답을 확인받아야 움직이고도 다시 돌아보던 비슷한 불안과 경험들도 최면 중 이어서 다뤘습니다. 다섯 번을 확인하고도 현관에서 부엌 쪽으로 고개가 돌아가던 모습에도, 확인을 받아야 잠깐 숨이 트이던 어린 시절의 반응이 겹쳐 있었습니다.
마감을 먼저 맡은 금요일
상담을 마친 뒤 맞은 첫 토요일에도 그분은 외출 전에 가스레인지 앞에 섰다고 합니다. 밸브를 잠그고 가로로 돌아간 손잡이를 한 번 본 뒤 현관으로 갔습니다. 신발을 신을 때 부엌 쪽이 한 번 마음에 걸렸지만, 고개를 돌리는 대신 신발 끈을 마저 묶었습니다. 주차장에서는 시동을 걸고 그대로 출발했습니다.
매장에서도 달라진 일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그분은 마감 당번을 되도록 다른 직원과 바꿔 왔습니다. 셔터를 내리고 자물쇠를 당겨 보는 데만 이십 분 가까이 걸렸기 때문입니다. 어느 금요일 저녁에는 아이가 열이 난다는 전화를 받은 동료를 먼저 보내고 마감을 대신 맡았습니다. 자물쇠를 한 번 당겨 본 그분은 그대로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갔다고 합니다.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 그분은 사진첩을 열어 밸브 사진을 한 장씩 지웠습니다. 마지막 사진을 지울 때까지, 매장으로 돌아가 셔터를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늘 아침 가스 밸브는 몇 번 보고 나오셨나요? 그중 몇 번째에 마음이 놓였고, 그 안심은 현관을 나선 뒤 얼마나 이어졌나요? 셀 때마다 숫자가 늘고 있다면, 한 번 더 보는 것으로는 이 불안이 끝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확인 강박에서 달라져야 할 것은 확인 횟수만이 아닙니다. 확실하지 않은 순간 가슴을 조여 오는 무의식 자동반응이 어떤 경험과 이어지는지 살펴보고, 그때의 감정을 함께 다룰 필요가 있습니다. 잠긴 밸브를 한 번 보고 돌아서는 변화는 더 확실한 확인을 찾는 데서가 아니라, 불안이 올라와도 다시 확인하지 않고 다음 행동을 이어 가는 데서 시작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