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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가 정류장에 들어올 때마다 그 생각이 들어요. 지금 앞사람 등을 제가 확 밀어 버리면 어떡하지. 제가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건 누구보다 제가 잘 알아요. 그런데 아니라고 할수록 그 장면이 더 선명해져요.”
퇴근 시간의 버스 정류장이었습니다. 줄 가운데 서 있던 그분 앞으로 버스 불빛이 다가오자, 앞사람의 등을 두 손으로 떠미는 장면이 머릿속을 번쩍 스쳤습니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입안은 바짝 말랐습니다. 그분은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저으며, 등이 정류장 유리벽에 닿을 때까지 뒷걸음질 쳤다고 합니다.
그날 그분은 버스 두 대를 그냥 보냈습니다. 세 번째 버스는 줄 맨 끝에서 탔습니다. 내릴 때까지 두 손을 외투 주머니 깊숙이 넣고, 속으로 ‘아니야, 아니야’를 되뇌었다고 합니다.
그분은 여행사에서 항공권 예약 일을 하는 서른일곱 살 여성입니다. 떠오르는 장면은 정류장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지하철역 계단에서는 난간을 붙잡고 있다가 사람들이 다 내려간 뒤에야 발을 뗐습니다. 같은 방향으로 퇴근하던 팀 동료와 나란히 버스를 기다리는 일도 두려워졌습니다. 일이 남았다며 동료를 먼저 보내고, 십 분쯤 늦게 사무실을 나서는 날이 늘었습니다.
떠오르는 장면보다 더 괴로운 것은 그런 생각을 하는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내 안에 나도 모르는 무서운 마음이 숨어 있는 건 아닐까 두려웠습니다. 누구에게 털어놓았다가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을까 봐, 밤마다 혼자 검색창에 ‘같은 생각 반복’을 입력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원하지 않는데도 머릿속에 불쑥 끼어드는 생각을 침투사고라고 합니다. 침투사고가 강한 불안과 함께 되풀이되면 강박사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분이 바란 것은 그 장면이 다시는 떠오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없애려고 애쓸수록 그 생각은 왜 더 자주 찾아왔을까요? 상담에서 이 물음을 따라가자 버스와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장면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어린 그분이 저녁 밥상에서 가족에게 꺼낸 무서운 이야기였습니다.
애써 밀어낸 날일수록 더 선명하다면
지금 겪는 생각이 강박사고에 가까운지 살펴볼 때 도움이 되는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그 생각을 떨쳐 내려고 유난히 애쓴 날일수록 더 자주, 더 선명하게 떠오르나요? 이 질문 하나로 진단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답이 ‘그렇다’라면 생각의 내용보다 생각을 대하는 방식이 반복을 부추기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분도 돌이켜 보니 그랬습니다. ‘오늘은 절대 그 생각 안 해’ 하고 집을 나선 아침에는 정류장에 도착하기도 전, 횡단보도 앞에서부터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반대로 예약 변경 전화가 몰려 정신없던 날에는 버스에 오를 때까지 그 생각을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이런 현상을 ‘사고 억제의 역설’이라고 합니다. 어떤 생각을 억지로 누를수록 오히려 더 자주 떠오르는 것입니다. ‘그 생각은 하면 안 돼’라고 마음먹는 순간, 한편으로는 그 생각이 들어오는지 계속 살피게 됩니다.
숨은그림찾기를 하는데 누군가 ‘이번에는 우산만 찾지 마’라고 했다고 해 봅시다. 우산을 피하려면 먼저 우산이 어디 있는지 알아야 하니, 눈은 우산부터 찾아 둡니다. 그 뒤 다른 그림을 찾는 동안에도 자꾸 우산 쪽으로 눈길이 갑니다. 생각을 밀어낼 때도 비슷한 일이 생깁니다. 피하려던 생각이 오히려 마음 가까이에 머무는 것입니다.
그분에게는 생각을 계속 살피는 마음에 겁과 죄책감까지 붙어 있었습니다. 장면이 스치면 가슴이 뛰었고, 가슴이 뛰면 ‘역시 내가 위험한 사람인가’ 싶어 더 세게 밀어냈습니다. 손을 주머니에 넣고 ‘아니야’를 되뇌면 불안은 잠시 가라앉았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 정류장에서는 장면이 더 일찍 찾아왔습니다.
생각보다 먼저 감기는 눈
그분은 강박사고를 떨쳐 보려고 여러 방법을 써 보았습니다. 정류장에 서면 이어폰 음악을 크게 틀었고, 휴대전화 퍼즐 게임만 들여다봤습니다. 친구는 좋은 생각만 하라고 했고, 그분도 버스를 기다리며 주말 계획을 애써 떠올렸습니다. 다른 일로 주의를 돌리면 불안이 치솟는 순간을 넘기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도 한 가지는 그대로였습니다. 버스 불빛이 보이면 장면이 떠오르기도 전에 미간에 힘이 들어가고 눈이 질끈 감겼습니다. 그분이 물었습니다. “생각은 제가 하는 건데, 왜 마음대로 안 되는 걸까요?”
여기서 먼저 볼 것은 생각보다 몸의 반응입니다. 버스 불빛이 보이는 순간 눈부터 감기고 발이 뒤로 물러납니다. ‘밀어내야지’라고 판단할 틈도 없이 벌어지는 일이라 다짐만으로는 멈추기 어렵습니다. 최면상담에서는 그 생각이 사실인지 따지거나 억지로 지우려 하지 않습니다. 대신 생각이 스칠 때 몸이 먼저 겁을 먹는 무의식 자동반응에서 출발해, 그 반응과 이어진 오래전 경험을 살펴봅니다.
장롱을 등지고 누운 아이
저녁 밥상에 가족이 둘러앉아 있습니다. 숟가락질이 서툴러 밥알을 자꾸 흘리던 무렵의 여자아이가 밥을 뜨다 말고 불쑥 말합니다. “우리 방 장롱에 까만 손이 살아. 밤에 문 열고 나와.” 어른들의 손이 한꺼번에 멈춥니다.
엄마의 얼굴이 굳습니다. “밥 먹다가 무슨 그런 소리야. 그런 생각 하지 마.” 아빠는 아무 말 없이 국그릇만 내려다봅니다. 아이는 볼이 화끈거려 고개를 숙이고 밥을 입에 밀어 넣습니다. 어른들은 곧 다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밤이 되어 엄마가 방 불을 끄고 나갑니다. 방이 조용해지자 한쪽 벽에 선 장롱이 어둠 속에서 더 커 보입니다. 아이는 장롱 반대편 벽을 향해 돌아누워 ‘생각 안 할 거야’ 하고 되뇌며 눈을 꼭 감습니다.
눈을 세게 감을수록 장롱 문틈에서 까만 손이 나오는 모습은 더 또렷해집니다. 아이는 숨을 참은 채 거실에서 들리는 텔레비전 소리에만 귀를 기울입니다.
그분이 이 저녁을 떠올린 것은 깊은 최면 상태에서였습니다. 정류장으로 들어오는 버스 불빛을 그려 보는 동안 미간이 다시 조여들었습니다. 그 느낌에 집중하자 버스 대신 밥상이 보였다고 합니다. 정류장과는 아무 관계가 없어 보이는, 서른 해도 더 지난 저녁이었습니다.
최면 속에서 어른이 된 그분은 불 꺼진 방으로 들어가 벽을 보고 누운 아이 옆에 나란히 누웠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천천히 알려 주었습니다.
“까만 손 생각 때문에 무섭구나. 그 손은 네 머릿속 이야기에만 있으니까 생각이 나도 장롱에서 나오지 않아. 엄마 얼굴이 굳은 건 무서운 이야기에 놀랐기 때문이지, 네가 나빠서가 아니야. 무서운 생각이 떠오른 것과 네가 정말 그러고 싶은 것은 다른 일이야. 그 생각을 없애야만 안전한 것도 아니니, 떠올라도 눈을 꼭 감고 밀어내지 않아도 괜찮아.”
그분은 그 저녁을 밥상 앞에서부터 다시 경험했습니다. 굳어지는 엄마 얼굴도, 고개를 숙이는 아이도 그대로였습니다. 불이 꺼지자 아이는 전처럼 벽을 향해 돌아누워 눈을 감았고 까만 손도 다시 떠올랐습니다. 다만 눈꺼풀에 주는 힘은 전보다 약해졌습니다. 참고 있던 숨이 풀리자 까만 손은 문틈 언저리에서 흐려졌다고 합니다.
까만 손과 버스 정류장의 장면은 내용도 시기도 전혀 다릅니다. 그러나 두 장면에는 무서운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 눈을 질끈 감고 밀어내는 반응과, 그런 생각을 한 자신이 잘못한 것 같은 마음이 함께 있었습니다. 상담에서는 이 대표 장면뿐 아니라, 원치 않는 생각을 없애려 할수록 더 겁을 먹고 피하게 된 관련 경험들도 최면 중 이어서 다뤘습니다. 생각이 떠오르는 것과 실제로 행동하는 것은 다르다는 이해를 되짚으며, 같은 생각이 스쳐도 눈을 감거나 물러서지 않는 반응을 함께 살폈습니다.
“같이 가요”라고 먼저 말한 저녁
퇴근 무렵, 그분은 가방을 챙기며 팀 동료에게 먼저 말을 건넸다고 합니다. “오늘은 같이 가요.” 두 사람은 정류장 줄 한가운데 나란히 섰습니다. 동료는 가족 여행 계획을 늘어놓았고, 그분은 여행사 일을 하는 사람답게 들러 볼 만한 섬을 몇 곳 골라 주었습니다.
버스 불빛이 모퉁이를 돌아 들어오자 앞사람의 등이 눈에 들어왔고, 익숙한 장면이 머리를 스쳐 갔습니다. 그분은 눈을 감지도, 뒤로 물러서지도 않았습니다. 동료의 말에 대답하는 사이 버스 문이 열렸고 두 사람은 차례로 올라탔습니다. 주머니 속에 숨겨 두던 손으로 교통카드를 찍고 손잡이를 잡았다고 합니다.
동료와 나란히 정류장에 서지 않으려고 일부러 늦게 사무실을 나서던 날은 이제 드뭅니다. 요즘은 둘 중 먼저 일을 마친 사람이 상대의 책상으로 가서 “같이 가요” 하고 기다린다고 합니다. 정류장에서는 유리벽에 등을 붙이는 대신 줄 가운데에 섭니다.
머릿속에 끼어드는 장면 때문에 다니던 길을 돌아가고, 아끼는 사람 곁에 서는 일까지 피해 오셨다면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을 오래 의심해 왔을지도 모릅니다. 줄 가운데 다시 선 그분에게도 장면은 여전히 스쳐 갔지만 몸은 뒤로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밀어낼수록 가까이 붙는 강박사고가 반복된다면, 생각이 떠오를 때 몸부터 움츠러드는 자동반응을 함께 살펴볼 수 있습니다. 같은 생각이 스쳐도 가던 길을 계속 갈 수 있도록 돕는 과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