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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백을 스무 장쯤 묶어서 재활용품 수거함까지 들고 내려갔어요. 그런데 수거함 앞에서 손가락이 안 펴지는 거예요. 목이 꽉 막히고 심장이 쿵쿵 뛰어서, 결국 그대로 들고 다시 올라왔어요. 현관 신발장 옆에 내려놓고 나서야 손에 다시 피가 통하는 것 같았어요.”
세무사 사무실에서 실장으로 일하는 마흔여덟 살 여성분이 첫 상담에서 꺼낸 이야기입니다. 쇼핑백을 들고 내려간 날은 재활용품을 내놓는 목요일 저녁이었습니다. 그분은 수거함 앞에 선 채 오 분 가까이 움직이지 못했고, 지나가던 이웃이 인사를 하자 휴대전화를 보는 척 고개를 숙였습니다. 집에 올라와 보니 손가락 마디마다 쇼핑백 손잡이에 눌린 자국이 빨갛게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현관 옆에 다시 놓인 쇼핑백은 며칠 뒤 작은방으로 옮겨졌습니다. 작은방은 이미 접어 둔 택배 상자와 뚜껑 없는 유리병, 고장 난 선풍기로 어른 가슴 높이까지 차 있었습니다. 방문은 반쯤밖에 열리지 않았고, 창가에 있던 책상은 몇 년째 보이지 않았습니다. 쌓인 물건은 베란다까지 번져, 빨래는 거실에 건조대를 펴고 말렸습니다.
지난봄에는 남편이 작은방 상자 세 개를 몰래 내다 놓은 일이 있었습니다. 퇴근해서 그 사실을 안 그분은 자정이 넘어 손전등을 들고 내려가 상자를 하나씩 다시 끌고 올라왔습니다. 상자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는 그분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그날 밤에는 상자를 모두 현관 안에 들여놓고서야 잠이 들었다고 합니다.
주변에서는 게을러서, 혹은 욕심이 많아서 그렇다고 했습니다. 그분도 자신을 그렇게 탓했습니다. 그런데 사무실에서는 달랐습니다. 보관 기한이 지난 장부와 영수증을 날짜별로 골라 파쇄기에 넣는 일이 그분 몫이었고, 그 일 앞에서는 한 번도 망설인 적이 없었습니다.
회사 서류는 척척 파쇄하는 사람이 집의 쇼핑백 한 장은 왜 버리지 못할까요? 물건을 못 버리는 이유가 게으름이나 욕심이었다면 사무실에서도 망설였을 것입니다. 상담에서 이 물음의 답을 따라가자, 어린 시절 거실의 낮은 장난감 선반과 그 자리에서 사라진 분홍색 소꿉 주전자가 떠올랐습니다.
몇 년째 쓰지 않은 물건 앞에서도 손이 굳는다면
저장강박증은 저장장애라고도 부릅니다. 물건의 쓸모와 상관없이 버리거나 남에게 주기가 몹시 어려워, 물건이 쌓이고 집 안 공간을 제대로 쓰기 어려워지는 상태를 말합니다. 좋아하는 물건을 모아 두고 꺼내 보며 즐거워하는 수집과는 다릅니다. 저장강박증에서는 물건을 떠나보내려는 순간 불안과 상실감이 밀려와, 쓸모없는 물건도 손에서 놓기 어렵습니다. 이런 어려움이 생기는 데에는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요인이 함께 작용합니다.
내가 겪는 버리기 어려움이 여기에 가까운지 살펴볼 때 도움이 되는 기준이 하나 있습니다. 버리기 어려운 정도가 그 물건을 실제로 쓰는 정도와 맞는지 보는 것입니다. 날마다 쓰는 물건이나 추억이 담긴 사진을 아끼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몇 년 동안 한 번도 꺼내지 않은 쇼핑백 앞에서도 가슴이 뛰고 손이 굳는다면, 물건의 쓸모보다 떠나보내는 순간의 불안이 결정을 좌우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진단을 내리는 잣대는 아니어도, 전문가를 찾아볼지 가늠할 때 참고가 됩니다.
그분에게 물어보니 작은방 상자 가운데 지난 일 년 동안 열어 본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상자를 테이프로 봉한 채 내놓자는 말만 들어도 목부터 조여 왔다고 합니다.
다시 들고 올라오면 가라앉는 불안
버리려던 물건을 도로 가져올 때 찾아오는 안도는 심리학에서 ‘부적 강화’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불편한 느낌이 사라지는 경험이 보상처럼 작용해, 바로 전에 한 행동을 되풀이하게 만든다는 뜻입니다. 그분에게 물건을 버리는 일은 필요 없는 것을 치우는 일이 아니라 무언가를 잃는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수거함 앞에서 조이던 목은 쇼핑백을 들고 돌아서는 순간 풀렸고, 몸은 ‘들고 돌아오면 괜찮아진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치과에 가기 싫어 예약을 미뤄 본 적이 있으실 겁니다. 미룬 그날은 한시름 놓이지만, 그사이 충치는 조금씩 더 깊어지고 다음 예약은 더 무섭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또 미루게 됩니다. 버리기를 미룰 때마다 그분의 작은방에도 상자가 하나씩 늘었고, 수거함 앞에 서기도 전에 돌아서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버리려는 노력을 안 해 본 것도 아니었습니다. 정리 수납 영상을 보며 물건을 ‘쓸 것, 버릴 것, 나눌 것’으로 가르는 법을 익혔고, 냉장고에 ‘하루 한 개 버리기’ 표도 붙였습니다. 물건을 가르는 방법을 익히면 무엇이 얼마나 있는지 파악하고 정리 순서를 세우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버릴 것’ 상자를 들고 현관을 나서려 하면 손가락이 다시 굳었고, 표는 두 칸까지만 채워졌다고 합니다.
쌓인 물건 때문에 집 안 통로가 막혀 넘어질 위험이 있거나 위생이나 화재가 걱정될 정도라면, 정신건강의학과의 평가와 체계적인 치료를 먼저 받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분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물건 하나를 내놓을 때마다 겪는 괴로움은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습니다.
남의 서류 앞에서는 멀쩡한 손이 자기 물건 앞에서만 굳는다면, 그 반응은 물건의 쓸모보다 오래전 감정과 이어져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반응은 ‘이번에는 꼭 버리자’는 결심보다 먼저 움직이기 때문에 다짐만으로 멈추기 어렵습니다. 최면상담에서는 손가락이 굳는 순간의 감각에서 출발해, 그 감각과 함께 떠오르는 경험과 감정을 살펴봅니다.
언니 손에 들려 나간 분홍 주전자
“지금 손에 무엇을 쥐고 있나요?”
최면이 깊어진 뒤, 수거함 앞에서 쇼핑백 손잡이를 쥐던 순간을 다시 떠올려 보도록 했습니다. 손가락이 저절로 오므라들고 목이 조여 올 무렵 이 질문을 건넸습니다. 한참 만에 작은 목소리로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아무것도 없어요. 주전자가 없어요.”
거실 벽에 붙은 낮은 장난감 선반 앞에 여자아이가 서 있습니다. 아이는 까치발을 해야 선반 둘째 칸에 겨우 손이 닿습니다. 삼 남매가 같이 쓰는 선반이지만, 맨 아래 칸 한쪽은 아이가 자기 것을 모아 두는 곳입니다. 그 칸에 분홍색 소꿉 주전자가 보이지 않습니다. 생일에 이모가 사 준, 아이가 제일 아끼던 주전자입니다.
아침에 언니가 친구 집에 가져가 놀겠다며 들고 나간 주전자였습니다. 언니는 돌아왔지만 주전자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아끼던 물건이 언니나 오빠 손에 들려 나갔다가 사라진 일은 전에도 있었습니다.
아이는 부엌 문간에 서서 엄마 등에 대고 말합니다. “엄마, 내 주전자… 언니가 안 가져왔어.” 엄마는 칼질을 멈추지 않은 채 대답합니다. “같이 쓰는 건데 뭘 그래. 친구 집에 두고 왔나 보지.”
아이는 선반 앞으로 돌아와 빈 칸을 오래 바라봅니다. 두 손이 저절로 주먹이 되고 목구멍이 뜨겁게 막혀 오지만, 울음은 나오지 않습니다. 부엌에서는 칼질 소리만 계속 들려옵니다.
그분은 최면 속에서 선반 옆 바닥에 앉아, 아이가 보고 있는 빈 칸을 함께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삼키고 있던 서운함을 말로 꺼내 주었습니다.
“여기 이모가 생일에 사 준 네 주전자가 있었지. 없어져서 많이 속상하지. 엄마가 그렇게 말한 건 저녁 준비에 바빠서지, 네 서운함이 별일 아니어서가 아니야. 주전자가 없어져도 네가 아꼈던 마음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야. 다른 물건을 붙잡고 있다고 주전자가 돌아오는 것도, 다시는 서운하지 않게 되는 것도 아니야. 잃어서 속상한 마음은 말하고 느껴도 되고, 그 마음이 가라앉은 뒤에는 필요 없는 물건을 놓아도 괜찮아.”
아이에게 이 말을 전하고 나서, 그분은 주전자가 없어진 그 오후를 처음부터 다시 겪었습니다. 선반 맨 아래 칸은 이번에도 비어 있었고, 엄마는 도마 앞에서 똑같은 말로 대답했습니다. 아이는 선반 앞으로 돌아와 빈 칸을 바라보았습니다. 서운함은 그대로였지만 목구멍을 막던 뜨거운 느낌은 조금씩 내려갔고, 쥐고 있던 주먹도 서서히 풀렸다고 합니다.
주전자와 쇼핑백은 값도 쓰임도 다릅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는 자기 것이 사라졌을 때 서운함을 말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목이 막히며 두 손에 힘이 들어갔습니다. 지금은 스스로 물건을 내놓는 상황이지만, 몸은 또다시 ‘내 것이 사라진다’고 받아들여 손가락부터 굳었습니다. 상담에서는 이 대표 장면에 이어, 물건이 사라질 때 서운함을 삼키고 다른 것을 붙잡아 온 관련 경험들도 최면 중 함께 다뤘습니다. 상실감을 느끼는 것과 모든 물건을 보관하는 것은 다른 선택이라는 이해를 되짚으며, 두 장면에서 되풀이되는 꽉 쥐는 반응을 풀어 갔습니다.
창가 책상까지 길이 난 작은방
그분은 요즘도 목요일 저녁이면 쇼핑백 묶음을 들고 재활용품 수거함 앞에 섭니다. 손잡이를 쥔 손가락에 익숙한 힘이 들어오고, ‘나중에 쓸 데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스칩니다. 예전에는 거기서 돌아섰지만, 이제는 묶음을 수거함 안에 내려놓습니다. 목에 걸린 서운함이 가라앉기를 잠깐 기다린 뒤 빈손으로 엘리베이터를 탑니다.
주말마다 작은방 상자도 두세 개씩 열어 보았다고 합니다. 대부분은 무엇이 들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던 상자였고, 남길 것과 내보낼 것을 가르다 목이 메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상자를 도로 닫지 않고 끝까지 갈랐습니다. “지금도 버릴 때는 서운해요. 그런데 서운해도 버릴 수 있더라고요.”
상자를 몇 개 비우자 창가 책상까지 걸어갈 길이 생겼습니다. 책상 밑 상자에서는 몇 해 전에 사 두고 한 번도 펴 보지 못한 전산세무 자격증 교재가 나왔습니다. 그분은 교재의 먼지를 털어 책상에 올려놓았고, 요즘은 퇴근 뒤 그 책상에서 한 시간씩 문제를 푼다고 합니다.
반쯤밖에 열리지 않던 그 방문은, 이제 저녁마다 활짝 열려 있습니다.
수거함 앞까지 들고 나간 봉투를 오늘도 도로 들고 들어오셨다면, 그 봉투를 놓지 못하게 하는 것은 욕심이나 게으름만의 문제가 아닐 수 있습니다. 이 사례처럼 내 것을 떠나보낼 때 먼저 올라오는 오래된 서운함과 몸의 자동반응이 손가락을 펴기 어렵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 반응을 다루면 버리는 순간을 조금 더 견딜 수 있고, 쌓아 두기만 하던 방을 다시 쓰는 변화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